"직원들 착오" "조직 위해"... 부정 채용 ‘몸통'들의 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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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그냥 전달만…직원들이 행정상 미스테이크(실수)를 한 것 같다.”

“정말 엑셀런트한 사람입니다. 조직을 위해 뽑았습니다.”

최근 두달여 공공기관 부정채용 문제를 취재하면서 채용 청탁자와 인사권자 등 이른바 ‘몸통’ 20여명을 접촉했다. 이들에겐 공통점이 있었다. 감사원 감사나 법원 판결 등을 통해 사건의 실상이 드러난 경우 청탁 사실을 순순히 인정했지만, 한겨레가 자체 확인하거나 아직 감사나 판결 등으로 확정되지 않은 경우엔 청탁 사실을 전면 부인했다.

그나마 청탁 사실을 인정한 이들은 ‘특별한 일 아니었다’거나 ‘훌륭한 인재를 뽑기 위한 것이었다’ ‘지역 사정에 따른 것이었다’는 등 제각각 이유를 댔다.

주로 기관장급 또는 지역 유지급 인사들이었다. 이들은 나쁜 의도가 아니었고 심지어 좋은 의도로 한 일이었다고 주장하지만 이들 행위로 인해 공공기관 채용의 공정성이 훼손되고, 다수의 지원자가 들러리가 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친남동생’을 운전기사로, 의원시절 비서관을 비서로 특채한 기관장

2015~16년 국립중앙의료원에서는 안명옥 원장의 운전기사와 원장의 사실상 비서 역할을 하는 직원을 특채했다가 지난 8월 보건복지부 감사에서 “특채 제도의 편법 운영”이라는 지적을 받았다. 특수 직무가 아니어서 특채로 뽑을 이유가 없다는 게 복지부의 판단이었다. 공교롭게 이 두 사람은 안 원장의 친남동생과 국회의원 시절 비서관이었다. 안 원장은 2004~2008년 한나라당 국회의원으로 활동했다. 특수 직무는 아니지만 안 원장과 특별한 관계에 있는 이들이었다.

안 원장은 남동생의 운전기사 특채에 대해 “제 어머님이 직장 다니는 동생에게 누나를 보호하라고 했다. 제 모든 힘을 써서 대한민국 공공의료 부문을 세우기 위해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동생 특채와 공공의료부문 바로 세우기가 관계가 있느냐’는 질문에 “관계 있다. (동생이) 어떤 상황에서도 기동성 있게 모든 것을 해준다. 내가 어디를 가든, 한밤중에 가더라도 아무 소리없이 저와 일을 같이 한다”고 말했다.

의원 시절 비서관을 직원으로 특채한 것에 대해서는 “해당 직원은 정말 일을 잘하는 사람이다. 의료원에 실력있는 사람을 뽑아 쓰는 게 문제가 되느냐”고 말했다. ‘절차를 지켜 뽑았어야 하는 거 아니냐’는 질문에는 “지키지 않아도 될 절차까지 다 지켰다. 그리고 저는 인사위원회에 들어가지 않기 때문에 (관련 내용을)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지역 유지 청탁으로 3명 부정 채용한 기관장

보건복지부 산하 오송생명과학단지 지원센터에서는 2014년 청원경찰 5명을 채용하는 과정에서 3명의 부정 합격자가 발생했다. 황해석 당시 센터장이 지역 유지로부터 채용 청탁을 받아 직원들에 전달했다가 벌어진 일이었다. 올 4월 공개된 감사원 감사 보고서에는 “센터장이 지역 유지로부터 채용 청탁을 받은 3명의 지원자 이름이 담긴 쪽지를 인사 담당에게 건네며 ‘잘 검토해 보라’고 합격 지시를 했다”고 적혀 있다.

황 전 센터장은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통상적으로 부탁이 오니까 (합격·불합격) 결과라도 알려주기 위해 직원들에게 챙겨보라고 한 것이지, 합격시켜라고 지시한 것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단순 전달이었을 뿐 합격 지시는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의 말을 들은 직원들은 애초 계획대로라면 서류 전형도 통과하지 못할 지원자를 전형 기준까지 바꿔 통과시켰고, 결국 자격 미달인 3명이 최종 합격했다. 이들은 현재도 근무중이다.

황 전 센터장은 청탁한 지역 유지가 누구인지에 대해 “모른다. 지나가는 사람들이어서 기억도 나지 않는다”고 답했다. 그는 “밑의 직원들이 행정상 미스테이크가 있었다. 굳이 합격시킬 이유가 없었다. 오해가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부정 채용 때문에 피해를 본 지원자들에 대해서는 “결론이 그렇게 났으니까 잘못된 것이다. 그렇게 되면 안되는데, 나도 (부정 채용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그래서 내가 감사원에서도 있는 그대로 얘기했다”고 말했다.

강원랜드 채용 청탁자의 변명

2012~13년 강원랜드 직원 채용 과정에서 염동열 자유한국당 의원 쪽에 6명의 지원자를 청탁한 것으로 드러난 강원도의 한 현직 군 의원은 “지역의 사회지도층 중에 청탁하지 않은 사람이 있는지 한번 알아봐라. 관행처럼 너도나도 청탁을 했다. 강원랜드가 폐광지역 경제 회생을 위해 탄생한 것이었고, 이 곳에 지역 자녀들이 취업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어쨌든 간에 청탁한 것은 나쁘지만 지역의 힘없고 빽없는 이들을 위한 것이었다”며 지역의 특수한 사정을 강조했다.

이 의원은 또 “김대중, 노무현 정부 때 낙하산으로 와 현재 본부장 등 간부로 일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들이 더 큰 문제다. 돈 없고 빽없는 얘들 취직 부탁한 게 문제냐”고 말하기도 했다.

그나마 이 의원은 청탁 사실을 고백한 매우 드문 경우 중 한 명이었다. 강원랜드 청탁자로 이름을 올린 십여명의 다른 청탁자들은 청탁 사실이 전혀 없다고 부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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