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극우의 부상에 맞서, 마크롱이 '원대한' EU 개혁안을 제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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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 몇 년 사이 급부상한 유럽 극우정당들에게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이민자에 대한 반감, 이슬람 혐오, 다문화주의 거부, 반(反)엘리트주의, 국가주의, 보호무역주의 등이다. 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핵심에는 유럽연합(EU)에 대한 불만이 있다.

유럽 극우정당들의 구호는 선명하다. '우리가 낸 세금이 가난한 EU 회원국들을 돕는 데 엉뚱하게 쓰이고 있다!', 'EU가 우리 나라의 주권을 침해하고 있다!', 'EU가 방조한 유입 이민자들이 우리 일자리를 빼앗아 간다!', 'EU가 아니라 우리 국민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부를 원한다!'.

이들은 EU를 탈퇴하자고 주장하거나, 유로화 사용을 중단하고 자체 화폐를 다시 도입하자고 외친다. 국경 통제권을 회복하고, 독자적인 이민 정책을 시행해야 한다고 말한다. 'EU에 빼앗긴' 각 나라의 권한과 자율성을 다시 찾아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유럽 '연합'을 거부하는 것이다.

지난 일요일(24일)은 꽤 역사적인 날이었다. 히틀러와 나치즘의 역사적 과오를 끊임없이 반성하고 참회해왔던 독일에서, '극우'로 분류되는 정당이 주류 정치무대에 다시 등장했다. 이들은 연방의회에 진출했을 뿐만 아니라, 제3정당으로 올라섰다. 이들의 주장은 '독일을 위한 대안(AfD)'이라는 당 이름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위기를 맞았다. 4연임에 성공했지만, 집권여당인 기민·기사(CDU·CSU)연합의 지지율은 지난 선거 때보다 9% 가까이 하락했다. 무려 1949년 이후 가장 낮다. 'EU의 리더' 역할을 해왔던 메르켈은 당장 순탄치 않은 연정 협상을 앞에 두고 있다. 운신의 폭이 좁아졌다.

바로 이 때, 독일 총선이 끝난 지 불과 이틀 만에, 독일과 함께 EU '빅2'로 불리는 프랑스가 나섰다. 주인공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다. 그는 26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가진 연설에서 EU 개혁안을 제안했다. 2시간 가까이 이어진 연설을 관통하는 한 마디는 다음과 같았다.

"우리의 미래를 보장하는 유일한 길은 자주적인, 단합된, 민주적인 유럽을 재건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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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롱의 원대한 제안

마크롱이 제시한 EU 개혁안은 원대한 구상들로 가득하다. 그는 전례 없는 수준의 통합을 제안했다. 그는 EU 공동의 국방 예산 및 정책을 수립하고 EU 차원의 '신속 대응군'을 창설하자고 말했다. 회원국의 정보기관들이 공동으로 교육기관을 만들어 정보요원들을 양성하는 한편, 첩보를 공유하고 '연합 시민보호군'을 꾸려 테러리즘에 맞서자고 했다.

EU 공동 이민 정책의 필요성도 역설했다. 마크롱은 EU 차원의 난민 대응기구를 만들고 공통된 난민 정책을 수립하자고 제안했다. 지금처럼 몇몇 남유럽 회원국들이 일방적으로 부담을 떠안아서는 안 된다는 것. EU 공통 신분 증명서, EU 국경 경찰 신설, EU 차원의 난민 교육·지원 프로그램도 제시했다.

재정에 대한 내용도 있었다. 마크롱은 회원국 공통 예산 수립과 이를 관장할 EU 재무장관 신설을 제안했다. EU 예산은 EU의회의 감시를 받게 하자고 했다. 유럽재정안정화기구(ESM)를 '유럽통화기금(EMF)'으로 확대하자고 말했다. 법인세 일원화나 금융거래세 부과 같은 공통 조세정책은 물론, 기업 규제 통합도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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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도 빠질 수 없다. 마크롱은 회원국 시민들이 EU에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내년 초부터 각 회원국에서 '민주적 전당대회'를 열자는 아이디어도 냈다. 또 영국의 EU 탈퇴 이후 공석이 될 유럽의회 70여석을 '범 유럽' 국가들에게 배분하자고 제안했다.

무엇보다 마크롱은 유럽 극우정당에 맞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떠오르는 극우 국가주의에 맞서고 "유럽을 시민들에게 되돌려주기" 위한 EU 개혁은 시급한 문제라고 말했다. "우리는 과거가 되풀이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과거로부터) 교훈을 얻었다고 생각했습니다." 마크롱의 말이다.

마크롱이 발표한 EU 개혁안 대부분은 그의 대선 공약이기도 했다. 그는 결선투표 경쟁자였던 마린 르펜 국민전선(FN) 대표의 '반(反)EU' 레토릭에 맞섰다. EU 탈퇴('프렉시트') 대신 EU 개혁과 더 긴밀한 통합을 약속했다. 반세기 동안 프랑스 정치를 지배했던 양당체제가 무너진 상황에서 EU 집행부는 그의 당선그 누구보다 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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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의 오래된 숙제들

EU는 두 차례의 세계전쟁이 낳은 결과물이었다. EU 설립자들은 이 원대한 정치적 프로젝트가 유럽에 평화와 안정, 그리고 번영을 가져다 줄 것이라고 믿었다. "20세기 끔찍한 두 번의 전쟁 이후 EU 설립자들이 만들어 낸 '유럽 정신'에 다시 활기를 불어 넣으려는 연설이었다." 가디언은 사설에서 마크롱의 연설을 이렇게 평가했다.

'유럽 정신'이라는 이상은 현실에서 뿌리를 내리지 못했다. 가장 큰 장애물은 경제였다는 데 별다른 이견이 없다. 유로를 공동 화폐로 쓰기 시작한 이후, 회원국들 간 불균형은 점점 심해졌다. EU는 상대적으로 경제가 허약한 남부 유럽과 부유한 북부 유럽으로 쪼개졌다. 실업률, 경제성장률, 부채비율은 제각각이었다.

'유로'라는 같은 화폐를 쓰지만 각자의 사정은 너무나도 달랐다. 재정통합 없는 화폐 동맹의 한계가 곳곳에서 드러났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2015년 그리스 재정위기다.

경제 위기가 발생했을 때 유로존의 모순은 다시한번 드러난다. 독자적인 통화를 쓰는 나라는 경제 위기가 닥치면 금리를 낮추고 통화가치를 평가절하하며 경기부양책을 사용해 위기를 탈출하지만, 유로존 국가들은 이런 방법을 쓸 수 없다. 독자 통화가 없으니 통화가치 평가 절하는 불가능하고, 금리 조절은 유럽중앙은행의 몫이다. 남은 방법은 유럽중앙은행, 유럽연합 집행위원회, 국제통화기금으로 이뤄진 ‘트로이카’ 국제 채권단이 그리스에 요구했던 긴축정책 정도에 불과하다.(한겨레 2015년 7월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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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의 '엘리트주의적' 의사결정 구조도 진정한 통합을 어렵게 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지난해 '브렉시트' 투표 직후, 뉴욕타임스는 민주적인 듯 민주적이지 않은 EU의 구조를 이렇게 짚었다.

맞다. EU에는 선거가 있다. 그러나 제대로 작동하는 민주주의 사회에는 시민들이 투표 말고도 자신의 의견을 표명할 다른 매커니즘이 있다.

유기적으로 형성됐다기보다는 테크노크라트들에 의해 설계됐다는 사실이 부분적 이유가 될 수 있는데, EU는 그런 매커니즘을 따르거나 허용하지 않는다. 이건 많은 유럽 시민들이 EU가 민주적이라고 느끼지 않는 이유가 된다.

그 중 일부는 설계 때문이다. EU의 입법부는 선거로 뽑이지만, 여러 측면에서 EU는 테크노크라시를 우선시하는 곳이다. EU는 전문가들이 가능한 최선의 결정을 내리면서 동시에 국가주의적 정치 상층에서 이를 약화시키는 기구로 설계됐다.

언제나 이 프로젝트의 궁극적 목표는 평화로운, 단합된 유럽이었다. 그 목표는 (개별 국가의) 정치로부터 보호함으로써 달성될 수 있다고 여겨졌다. 무엇보다 국가주의적 분노는 한 때 파시스트와 나치의 등장을 초래했다. EU는 그런 일이 다시 발생하지 않도로 하기 위해 설계됐다. (뉴욕타임스 2016년 6월29일)

유럽 극우정당들은 이같은 EU의 경제적, 정치적 한계를 맹렬히 공격한다. 이들이 내세우는 대안은 EU를 떠나버리는 것이다. 반면 마크롱은 개혁으로, 더 강한 통합으로 이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 그가 제시한 EU 개혁안이 완벽한 해법은 아닐지 몰라도, EU 리더들의 환영을 받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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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만치 않은 장애물들

마크롱의 이날 제안으로 EU 개혁 논의에 불이 붙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장 클로드 융커 EU 집행위원장은 이날 "우리에게는 27개국 연합을 발전시킬 로드맵이 필요하다"며 "모든 아이디어를 공개적으로 토론하고 2019년 5월 전까지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2019년 3월29일로 예정되어 있는 '브렉시트' 다음날 개최될 EU 정상회의를 언급하며 하며 꺼낸 말이다.

논의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일단 독일이 문제다. 지난 5월 프랑스 대선 직후, 메르켈과 마크롱은 EU 개혁에 뜻을 모았다. 반면 이견도 드러났다. 특히 EU의 경제적 개혁에 있어서 두 사람은 근본적으로 다른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다.

독일 총선 이후의 상황 변화도 감안해야 한다. 대연정을 구성했던 사회민주당(SPD)의 이탈로 메르켈의 기민·기사 연합은 녹색당, 자유민주당(FDP)을 상대로 연정 협상에 나서야만 하는 상황이다. 문제는, 메르켈의 연정 상대들이 EU 재정통합에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는 점이다.

반응은 곧바로 나왔다. 독일 FDP 소속인 알렉산더 람스도르프 유럽의회 의원은 "큰 기금을 새로 만든다고 해서 유럽이 강해지지는 않는다"며 마크롱이 제안한 'EMF' 가능성을 일축했다. 그는 또 FDP 성명에서 "유럽의 문제는 공적 자금이 부족해서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한편, "유로존 통합 예산은 완전히 잘못된 인센티브를 만들게 된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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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니컬한 반응도 있었다. 다음달 총선에서 차기 체코 총리가 될 가능성이 높은, 체코 2위의 거부 안드레이 바비스 예스당(ANO) 대표는 EU 통합이 강화될수록 영국처럼 아예 EU를 떠나는 국가들이 늘어날 것이라고 주장했다. "융커(EU 집행위원장)나 마크롱은 브렉시트가 왜 일어났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블룸버그는 마크롱의 연설에 대한 유럽 내 각기 다른 반응을 소개하며 이것이 바로 개혁이 필요한, 분열되어 있는 유럽의 현재 상황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마크롱의 제안은 EU를 '극우의 광풍'으로부터 구원할 수 있을까? 당장 이 질문에 답하기는 어렵다. 다만 EU가 어떻게든 지금과는 달라져야 한다는 사실 만큼은 분명하다. '르펜 대통령'을 일단 막아낸 마크롱에게도, EU에게도, 남은 시간은 그렇게 길지 않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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