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인 그 이상' 유영하와 이경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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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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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고인 본인이 직접 물어볼 게 있습니까?”(김세윤 부장판사)

“없습니다.”(박근혜)

“피고인, 하고 싶은 말 있나요?”(김 부장판사)

“… 나중에 말하겠습니다.”(박근혜)

매주 월·화·목·금요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 417호 형사대법정에서 재판이 끝날 때쯤 반복되는 풍경이다. 재판 넉달째, 부쩍 한산해진 방청석에서 20~30여명의 지지자들이 박근혜 전 대통령의 육성을 들으려 몸을 앞으로 기울이지만, 안타깝게도 별 수확은 없다. 이제껏 그들이 들은 단어라곤 지난 5월23일 첫 공판 때 말한 “(직업은) 무직입니다”, “(주소는) 강남구 삼성동…”, “(국민참여재판을) 원하지 않습니다” 정도가 전부다.

피고인 박근혜는 말이 없다. 옛 보좌진과 상봉하거나 지난 정부의 과오를 폭로하는 이들을 대면할 때도 예의 무심한 표정이다. 재판 말미 재판장이 발언권을 주지만 찍어낸 듯 “물을 게 없다”는 답변이 나온다. 대면보고를 기피하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도 질문을 사절하던 재임 시절 모습 그대로다. 단독면담에서 긴말 대신 “레이저 눈빛을 쏘며” 질책했다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진술이 믿길 법도 하다.

그의 입을 대신하는 것은 변호사다. 23일 현재 선임된 변호인은 유영하, 이동찬, 이상철, 남호정, 도태우, 채명성, 김상률 변호사 등 7명이지만, 가장 빈번히 입을 여는 것은 탄핵심판 때부터 곁을 지킨 유영하 변호사다. 말수가 적은 의뢰인을 둔 덕에 그에겐 할 일이 많다. 검찰과 신경전을 벌이는 것은 물론, “대통령께 죄송하다”며 울먹이는 공동피고인 최순실씨로부터 거리를 두는 것도 그의 몫이다. 박 전 대통령도 유 변호사에게만은 애틋해 보인다. 수시로 귀엣말을 하고, 좀처럼 볼 수 없는 웃음을 건네기도 한다.

절절한 ‘사미인곡’에 우는 변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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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22일 피의자 조사를 마친 뒤 서울중앙지검 청사를 나오는 박근혜 대통령과 유영하 변호사.

“대통령님에 대해 너무 왜곡되고 잘못 알려진 게 많이 있어서 가슴이 아픕니다. 대통령님께선 가족도 없으시고, 정말 사심 없이 24시간 국정에만 올인하신 분입니다. 특별히 낙도 없으시고 정책에서 일부 성과가 나면 그것을 낙으로 삼고 보람 있게 생각하시는 분입니다.”

18일 오전, 박근혜 청와대의 ‘문고리 권력’으로 불린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이 증인으로 나와 박 전 대통령에게 사미인곡을 쏟아내자 피고인석도 출렁거렸다. 시선을 정면에 두지 못하고 천장을 쳐다보며 울음을 삼켰다. 흐느낌의 출처는 박 전 대통령이 아니었다. 유영하 변호사였다.

“대통령님은 부정부패, 뇌물에 대해선 정말 경기를 일으킬 정도로 아주 결벽증을 갖고 계신 분이기 때문에 이런 상황에 있는 것이 가슴이 아픕니다. 지근거리에서 좀더 잘 모시지 못했던 부분에 대해선 죄송스럽고 회한이 많습니다.”(정 전 비서관)

유 변호사는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쳤다. 박 전 대통령이 손으로 눈가를 한번 닦아내는 동안 유 변호사는 물을 마시며 북받치는 감정을 정리해야 했다. 재판장이 “휴정하고 오후에 재판을 다시 하는 게 좋겠냐”고 물어볼 정도였다.

유 변호사는 감정이 풍부해 보인다. 전 정권에 등 돌린 증인에겐 가시 돋친 말을 던지고, 비호하는 이에겐 애틋한 마음을 드러낸다. 때론 예상치 못한 순간에 검찰에 날을 세우며 전투태세를 구축한다. 이날도 유 변호사는 정 전 비서관에게서 원하는 답을 얻었다. 정 전 비서관은 “오랫동안 모셔온 대통령님께서 재판을 받는 참담한 자리에서 (증언하는) 고통을 감내할 수 없다”며 증언을 거부하면서도, 청와대 문건유출 사건에서 박 전 대통령과 공모하지 않았다고 7분간 강조했다.

“‘최순실씨 의견도 한번 들어보는 게 어떻겠냐’는 취지의 말씀은 있으셨지만, 최씨한테 문건을 전달하라는 구체적인 지시가 아니었습니다. 어떻게든 국정을 잘해보려는 국정 책임자의 노심초사였습니다.”

유 변호사가 할 말을 대신 해준 셈이다. 두 사람의 마음이 통한 대목은 또 있다. 두 사람의 머릿속에 피고인 박근혜는 여전히 ‘대통령님’이다.

“전과 있죠?” 증인 괴롭히는 변호인

최순실씨는 박 전 대통령과 다르다. 주어진 발언권을 십분 활용해 증인을 몰아붙이고, 검찰과 특검을 향해 “그런 질문 하지 말라”고 쏘아붙이기도 한다. 논리가 통하지 않을 때는 목소리를 높이고, 정제된 말을 신중하게 고르지 않는 모습도 박 전 대통령과의 차이점이다.

최씨 변호인도 그와 닮았다. 2014년 ‘정윤회 문건’ 의혹 때 정씨를 변호하는 등 최씨 일가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온 이경재 변호사는 증인의 내밀한 부분까지 낱낱이 드러내는 신문 방식으로 입길에 올랐다. 11일 삼성과 최씨 사이에서 연락책 역할을 한 박원오 전 승마협회 전무가 증인으로 나오자 이 변호사는 기다렸다는 듯 질문 포화를 쏟아냈다. 박씨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1심 재판에서 “최씨 지시로 정유라씨 승마 훈련 지원 계획을 짰고, 삼성은 최씨가 하자는 대로 해줬다”고 말했고, 진술 상당 부분은 유죄 증거로 사용됐다. 궁지에 몰린 최씨로선 박씨 진술을 흔드는 게 절실했다. 몇 차례 출석을 미루며 애태우던 박씨가 마침내 법정에 모습을 드러내자 이 변호사는 벼려온 칼날을 휘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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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5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첫 공판에 출석한 최순실씨와 이경재 변호사.

“증인은 승마협회 공금을 횡령한 혐의로 법정구속됐죠. 당시 횡령 배임이 어느 정도 금액으로 기억되나요? 실형이면 적지 않은 금액이거든요.”(이경재 변호사)

“그건 나중에 판결문을 제출하도록 하시죠.”(김 부장판사)

“제가 분명히 과거를 얘기했으니, 사건에 관계되는 질문만 해주세요.”(박원오씨)

“서울승마협회에선 증인이 출입하는 걸 금지했다는데 사실이죠?”(이 변호사)

“출입금지됐다는 얘기는 듣지도 못했어요. 제가 가질 않은 거죠.”(박씨)

박씨의 가정사, 범죄 전력, 출신 학교와 개인사가 여과 없이 공격 대상이 됐다. “판결문으로 갈음하라”는 재판장의 제지나 “사생활 관련 신문은 자제해달라”는 검찰 반발도 웬만해선 이 변호사를 막을 순 없었다. 신문 1시간여 지나 비로소 최씨의 영향력에 대한 질문으로 접어들었지만, 말다툼은 이어졌다.

“최서원(최씨)이 서열 1위라고 말한 적 있죠. 근거가 뭡니까?”(이 변호사)

“복합적입니다.”(박씨)

“예를 들어보세요.”

“상주 사건(2013년 경북 상주에서 열린 승마대회에서 정유라씨가 준우승하자 상주경찰서가 심판 판정에 대한 내사를 벌임) 때 저는 아니라고 했지만, 다른 사람들은 다 최씨가 했다고 했습니다. 경찰서에서도 나오고 하려면 분명 청와대에서 움직인 거 아니냐고요. 그럼(청와대를 움직이려면) 최순실이 하지 않았겠냐는 얘기가 퍼진 겁니다.”

“특별한 근거를 갖고 있지도 않네요.”

“설명이 됐나요?”

말꼬리를 잡는 변호인과 굽히지 않는 증인의 날카로운 언어가 공중에서 부딪혔다. 이날 최씨 쪽은 4시간을 썼지만, 증인신문을 채 마치지 못했다. 박씨는 이달 29일 법정에 다시 나올 전망이다.

“법조인의 품위를 지켜달라”

때로 증인을 힘들게 하는 것은 변호인의 숙명이다. 불리한 증언을 흔들어 법관에게 피고인이 무죄라는 ‘합리적 의심’을 불러일으키고, 끝내 유리한 진술을 끌어낸다면 성공한 변론이다. 추측성 증언을 파고들어 진술의 신빙성을 떨어뜨릴 수도 있다. 하지만 증인신문도 금도를 넘어선 안 된다고 판사들은 말한다. 사건의 본질과 무관한 내용이나 증인의 내밀한 사생활에 재판부는 관심이 없다. 변론의 기술 측면에서 그다지 효과적이지도 못하다. 증언대는 증인에게 모욕을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구체적인 사실관계를 확인하기 위해 존재하기 때문이다.

“증인은 법정에 들어서자마자 ‘선서한 뒤 위증하면 처벌될 수 있다’는 말을 듣습니다. 상당수 법정 경험이 처음이니 긴장하죠. 검찰이나 변호인에게서 공격당할 거라고 예상하면 당황해서 대답이 모호해지기도 해요. 그런 사정을 알면서도 증인을 다그쳐서 원하는 답을 얻겠다고 하면 실패한 변론인 거죠. 재판장이 개입할 수밖에 없고요.”(서울고법의 한 판사)

박 전 대통령 재판에서 재판장이 빈번히 개입하는 건 변호인과 증인이 함께 흥분하는 경우다. 지난 6월13일, 노태강 전 문화체육관광부 체육국장(현 2차관)의 좌천 경위를 증언하기 위해 나온 유진룡 전 장관이 유 변호사의 질문을 알아듣지 못하고 “신문사항을 보여달라”고 요청하자 언쟁이 터졌다.

“그걸(신문사항을) 한번 줘보실래요?”(유 전 장관)

“뭘 줘요, 주기는! 듣고 얘기하면 되잖아요.”(유 변호사)

“지금 큰소리치는 거예요?”

“지금 반말하시는 겁니까? 반말하지 마시라고요.”

“유 변호사님, 법조인이십니다. 흥분하시면 심리 진행이 어려워집니다. 평소에는 흥분 안 하셨는데요. 사실관계만 물어주세요. 증인은 사실관계를 확인하기 위해 온 겁니다.”(김 부장판사)

하지만 유 변호사는 멈추지 않았다. 그는 유 전 장관 증언이 끝나자 “일개 장관이 배알도 없나. 당시엔 (청와대에서 만든 보고서를) 그대로 읽어놓고 지금에 와서야 최순실, 정유라를 위한 (청와대) 지시였다는 황당무계한 궤변을 늘어놓고 있다”며 원색적인 비난을 감추지 않았다.

법정 서열 1위는 누구?

법정 공방은 검찰과 변호인, 변호인과 증인 사이에서만 벌어지는 게 아니다. 변호인들끼리도 신경전을 벌인다. 범죄 사실에서 의뢰인의 지분을 축소하거나 신문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서다. 지난 7월31일 김완표 전 삼성 미래전략실 전무 증인신문을 앞두고 유영하 변호사와 이경재 변호사는 서로 먼저 질의하겠다고 싸웠다.

“거의 매번 박 전 대통령 쪽에서 (증인신문을) 먼저 하십니다. 우리는 핵심 문항에 대해 아주 짧게 질문하려고 하는데, 박 전 대통령 쪽은 아주 방대한 양을 질문합니다. 효율성을 위해서라도 순서를 그렇게 잡으면 (안 되지) 않겠습니까.”(이 변호사)

“상피고인 변호인이 ‘요점에 대해서만 질문하겠다’고 하는데 (저희 쪽에) 굉장히 예의 없는 발언입니다.”(유 변호사)

결국 이날 증인신문은 공소사실과 더 밀접한 박 전 대통령 쪽이 먼저 진행하는 것으로 정리됐다. ‘대한민국 권력서열 1위는 최순실, 박근혜는 3위’라는 말이 떠돌았다지만 법정에선 박 전 대통령 쪽이 대개 앞선다. 거의 모든 혐의의 정점에 있는 탓이다.

화려한 변론도 끝내 진실을 감출 순 없다. 지난 14일 강태서 전 문체부 운영지원과장은 “지난해 3월 노태강 당시 국립중앙박물관 교육문화교류단장은 전보 대상이 아니었는데도 사직을 요구했다. 상관인 김종덕 전 장관도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말해서 대통령 지시라고 이해했다”고 증언했다.

2013년 최씨 뜻과 다른 대한승마협회 감사 결과를 보고했다가 박 전 대통령에게 ‘나쁜 사람’으로 찍혀 문체부에서 좌천된 노 차관이 지난해엔 사표 제출까지 강요당했단 얘기다. 이틀 전인 12일 증언대에 선 노 차관도 박민권 전 문체부 1차관 등으로부터 “대통령이 방문하고 싶어하던 (‘프랑스 장식미술전’ 무산을) 책임져야 하지 않느냐”는 압력을 받았다고 진술했다. 노 차관 진술을 지켜보던 박 전 대통령은 유 변호사를 쳐다보며 어이없다는 듯 웃음을 지었다.

반면 외면해온 진실을 뒤늦게 마주한 최씨 쪽은 오열했다. 14일 딸 정유라씨가 이 부회장 재판에서 증언한 내용이 공개됐을 때다. 지난 7월12일 정씨는 이 부회장 재판에 ‘깜짝’ 출석해 최씨가 “(삼성이 준 말을) 네 것처럼 타면 된다”고 말했다고 증언한 바 있다. 최씨 쪽 권영광 변호사는 “정유라씨 증인신문 조서가 재판에 제출되자 감정이 격해졌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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