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씨 책방' 퇴거 명령한 판사가 "유감스럽다"고 한 이유

게시됨: 업데이트됨:
인쇄

111

입구 오른쪽에 미래유산 표지판이 보인다.

법원이 서울미래유산으로 선정된 중고서점 '공씨책방' 대표를 상대로 현 건물을 건물주에게 인도할 것을 명령했다. 공씨책방은 20여년간 서울 서대문구 현재 위치에서 영업해왔다.

서울서부지법 민사5단독 황보승혁 판사는 건물주가 낸 건물인도 청구소송과 관련해 공씨책방 대표 장화민씨(61 ·여)에게 건물 1층을 건물주에게 인도하고 연체된 임차료 등을 지급하라고 21일 선고했다.

황보 판사는 옛 건물주가 지난해 통보한 임대차계약 갱신거절의 효력이 없다고 볼 수 없고, 지난 2월 기준 연체된 임차료가 3개월분 이상이어서 현 건물주는 임차료 연체를 이유로도 임대차 계약을 해지할 수 있는 상황이라며 이같이 판결했다.

재판과정에서 공씨책방 측은 중고서적 영업의 특성상 계약만료 40여일은 지나치게 짧은 시간이라며 갱신거절 통보의 효력이 없다는 논리를 폈다.

이에 대해 황보 판사는 "입법론으론 상당할지 모르지만 현행법 해석으론 무리가 있다"고 밝혔다.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에 따르면 임대인은 계약만료 6개월에서 1개월 전까지 갱신거절 또는 조건변경 통지를 할 수 있다.

또한 황보 판사는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된 공씨책방의 가치를 보존하기 위해 1995년부터 있어 온 현재 위치에 유지될 필요가 있다는 공씨책방 측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황보 판사는 "공씨책방의 문화적 가치는 장소 또는 건물과 결부돼 있기보다는 책방이 소지한 서적과 운영자의 해박한 지식, 오랜 시간 누적돼 온 단골고객의 인적네트워크로 구성된다"며 "이전되더라도 본질적인 부분이 침해될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어 "서울시도 이전되더라도 계속 지원하겠다고 피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황보 판사는 "공씨책방 사건은 사회의 이목이 집중되는 사건이었는데 현행법 해석상으로는 이런 결론 밖에는 가능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재판하는 입장에서도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12

공씨책방은 1972년 경희대 앞에서 처음 문을 연 국내 1세대 헌책방이다. 2013년 서울시가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했다. 1995년부터 현 위치에 자리 잡은 뒤 매년 10월 1년 단위로 계약을 갱신했다. 지난해 월 임대료는 130만원이었다.

옛 건물주가 건물 매매 직전 월 임대료를 기존의 2배 수준으로 올려 250만원을 내거나 퇴거할 것을 요구했다. 새 건물주 역시 임대료로 300만원을 내라고 요구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공씨책방은 젠트리피케이션(둥지내몰림)의 한 사례로 주목받았다.

재판과정에서 서울시가 임대료 차액을 기업 후원을 통해 지원하겠다는 의사를 밝히면서 조정의 물꼬가 트이는듯 했으나 현 건물주 측은 조정을 거부했다. 건물주 전모씨 측은 "공씨책방이 임대료 인상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아 운영하던 카페를 그 자리로 옮기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공씨책방 대표인 장씨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변호사와 상의해 항소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수정 사항 제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