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프 인터뷰] 주공아파트가 고향인 사람들의 이야기: 서울 강동 둔촌주공아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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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서울 둔촌주공아파트의 공식 이주 기간이 시작됐다. "아침 출근할 때마다 이삿짐센터 차가 네다섯 대씩" 눈에 띄는 이 기간이 2018년 1월 19일 끝나면 긴 철거와 새 아파트 분양이 시작된다. 이곳에서 태어났거나, 인생의 많은 부분을 보낸 1980년대생 세 명의 이야기를 들었다. 주공아파트나 시범아파트, 오랜 아파트단지에서 자란 이들이라면 아래에서 자신의 것과 비슷한 추억을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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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첫 번째 고향, 혹은 두 번째 고향

둔촌주공아파트는 1980년 첫 입주자를 받았다. 37살 김수연씨 가족도 그때 이사 온 집들 중 하나였다. 38년째 같은 집에 살고 있는 수연씨뿐 아니라, 수연씨의 부모님에게도 이 집, 이 아파트 단지는 '제2의 고향'이다.

"아버지가 30대 초반, 어머니가 20대 중반 좀 넘어 이사 와서 이제 아버지는 일흔, 어머니는 60대 중반 되셨어요. 집에서 우리끼리는 '일이년만 더 살았음 좋겠다' 이런 얘기하거든요. 거실에서 보이는 풍경 두고 가기 아쉽다고 하시고요. 그냥 전 당연히 내 집하면, 둔촌주공아파트 그 집, 그 동 그 호. 다른 사람들은 이해를 못 할 수 있는 부분이지만 저는 둔촌 아파트가 고향이거든요. 평생을 살아온 익숙한 곳." (김수연, 37년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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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이 결혼하고 육아에 어머니 도움을 받으려고 앞 동으로 이사해서 몇 년 살았는데, 살다 보니까 제가 어릴 때 많이 놀았던 집 앞 놀이터에서 조카가 놀고 있더라고요. 나도 저렇게 꼬마였을 때가 있었지, 그런 생각도 들고, 세대를 이어서 같은 동네에 산다는 게 이런 거구나, 그런 생각도 들고요. 동생하고 저는 둔촌 아파트에 오래 살아서 추억도 많고 정겨운 '고향'이라고 생각하긴 했는데, 지금은 많이 낡고 음습한 분위기도 있어서 (올해 초에) 이사할 때 쯤엔 이제는 좀 떠나고 싶다는 생각도 하고 있었어요." (황현선, 29년 거주)

"1980년 여름부터 1992년 여름까지 살았어요. 아예 없어진다고 하니 서운하더라고요. 이미 나는 그곳에서 나와 다른 곳에서 산 지 또 다른 십여 년이 넘게 흘렀지만, 어린 시절의 추억들이 사라진다는 기분? 20대가 된 다음에 가끔씩 생각나거나 우울할 때 들러서 산책도 하고 그랬던 곳인데. 힘들 때 고향을 찾게 되는 그런 마음이 아니었을까 싶어요." (기형준, 12년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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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사계절 사용한 '라지에타'

현대식 아파트에 온돌식 난방이 깔리기 전에는 공기를 덥히는 서양식 방열기인 라디에이터를 썼다. 겨울철이 지나 뜨끈함이 사라진 라디에이터는 아이들의 놀이터가 됐고, 어른들의 빨래 건조대가 됐다. 라디에이터는 종종 일본식 이름 '라지에-타-'로 불렸다.

"제가 백일 아기였을 때부터 살았다고 하는데, 어렴풋이 떠오르는 집에 대한 기억이 '라지에타'예요. 아주 어리고 작았을 때 그 위에 누워있다가 잠들었던 기억이 있어요." (기형준)

"동네 주차장에서 고무줄놀이하고 얼음땡하고,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술래잡기하고. 해가 뉘엿뉘엿 넘어갈 때 집집마다 엄마들이 복도에 나와서 애들 이름 부르면서, 밥 먹으러 들어오라고 소리 지르셨던 거. 그때 들어갔던 기억이 나요." (김수연)

"친구들이 '둔촌축제' 한다고 해서 동네 안에서 서로 만나서 장터에 가서 분식도 사 먹고, 집에 와도 동네에 계속 무대에서 하는 공연 소리가 울리거든요. 그래서 집에서 그 소리 들으면서 축제 분위기를 느끼고 재밌어했던 거 같아요." (황현선)

3. 주공아파트 아이들은 다 들어본 '지하 방공호' 이야기

오래된 고층 주공아파트 단지의 지하실들이 모두 연결돼 있다는 소문은 사실일까? 단지 자체가 사라졌거나, 남아있는 곳들도 지하실 문을 걸어 잠근 지 오래다. 당시 아이들의 기억도 희미해졌다.

"깜깜하고, 수로 같은 게 바닥에 파여 있었어요. 거기에 물이 있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데, 그거 따라서 더듬더듬 걸어 들어갔던 기억이 있어요. 경비 아저씨 만날 때까지. 친구들이 한쪽 입구로 들어가서 다른 동으로 나왔다고 말했던 거 같아요." (황현선)

"어릴 때 지하실 가면 이어져 있다고, 그렇게 예전에 지어놨다고 해서 딱 한 번 가봤는데 좀 무서워서.. 안으로 깊이 들어가 보진 않았어요. 어두웠거든요." (김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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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둔촌단지의 관광명소: 기린 미끄럼틀과 벚꽃길

둔촌주공아파트 단지의 마스코트 같은 것이었던 기린 미끄럼틀은 주민들의 공식 이주 기간이 시작되기 몇 해 전인 2014년 안전 등의 이유로 먼저 철거됐다.

"그 미끄럼틀 부수는 날 가봤어요. 부수는 장면은 못 봤고, 그 날 밤에 다 부수고 난 잔해를 보러 갔었어요. 다른 동네에서 놀러온 사촌언니랑 동생이랑 미끄럼틀 타고 놀았던 기억이 있어요. 탄 횟수가 아마 백 번 정도? 나이가 들어서는 안 탔으니까. 기린 미끄럼틀 있는 놀이터 근처에 언덕이 있는 잔디밭 같은 데서 박스 버려진 거 들고 눈썰매도 많이 탔었어요." (황현선)

"어린 시절에 저희들한테는 좀 높고 무서운 미끄럼틀이었어요. 그래서 아주 어렸을 때는 혼자 타기가 너무 무서워서 항상 동네 형이나 누나들이 뒤에서 잡아주고 같이 내려와야지만 탈 수 있었는데. 조금 더 자라고 난 뒤에 처음으로 혼자 타봤을 때 기억이 아직도 나요. 처음 혼자서 미끄럼틀을 타고 내려왔을 때의 기쁨? 부수는지 전혀 몰랐다가, 어느 날 갔는데 터만 남아있고 없어졌더라고요. 어린 시절이 이렇게 사라지는구나, 쓸쓸한 마음도 들었고." (기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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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에는 자목련도 종종 볼 수 있고요. 가을에는 은행나무가 많기 때문에 노란 숲처럼 보여요. 특히 동북고등학교 가는 언덕길 쪽은 장관이라고 할 수 있어요. 가장 좋아하는 계절은 벚꽃 필 때쯤. 여름에는 장미가 피는 걸 좀 볼 수 있고요. 우리 동 앞에는 채송화가 있었는데 그게 어느 계절 꽃인지는 모르겠어요. 밖에서 일하고 집으로 돌아올 때 동네를 보면 나무도 많고 동물도 많고 고양이도 많고. 서울이라는 도시에 이렇게 숲 같은 공간이 있구나." (황현선)

"보이지 않아도, 밤에 지나갈 때 향기가 나서 돌아보면 라일락이 있어요. 봄에는 현관문만 열고 나와 봐도 목련이 막 흐드러지게 피어있거든요. 그래서 그것도 참 좋았고, 4단지에서 1단지로 내려갈 때 벚꽃이, 윤중로에 가지 않아도 참 예쁘다, 사진 찍고 싶을 정도로 흐드러지게 피어있는데 그게 참 좋았고. 다른 동네 사람들이 놀러 와서 사진 찍을 정도로 예쁜 모습이어서 봄을 제일 좋아했던 거 같아요. 개나리도 있고. 여름에는 또 단지가 완전히 초록색으로 변하거든요. 나무들이 오래돼서 키카 크고 울창해서 더 그렇죠. 가을엔 은행나무들이 보기가 좋았고, 겨울에도 집 밖으로 눈 쌓인 놀이터가 예뻐서 사진도 많이 찍고 했었거든요." (김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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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학교 운동장 스카우트 '뒤뜰 야영'의 추억

“국민학교 다닐 때 학교 내에 보이스카웃 걸스카웃이 있었는데, 일 년에 한 번씩 '뒤뜰 야영'이라고 해서 학교 운동장에 텐트를 치고 야영을 체험하는 행사가 있었어요. 그런데 뒤뜰 야영을 하는 날은 아들딸 보기 위해서 온 부모님들, 단원 아닌 친구들까지 와서 캠프파이어를 했어요. 옆집 아줌마 아저씨, 친척, 어머니 아버지의 친구분들, 다들 같은 아파트 살고 자제분들이 이 학교 다니고 있으니까. 뒤뜰 야영하는 날은 누구냐에 상관없이 말 그대로 학교운동장에서 신나게 노는 하룻밤이었던 거 같아요. 동네 사람들이 모여서 마을 축제처럼 시끌시끌하게.” (기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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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동네 끝에는 논바닥에 물을 채워 만든 스케이트장이 있었다

"4단지 끝에 맞닿은 논이 있었는데, 겨울에는 그 논을 물로 채워 얼려서 스케이트장을 열었어요. 옆에 비닐하우스에 난로 놓고 쫀드기나 쥐포 구워 먹는 데가 있고, 스케이트 빌려주는 데가 있고 그랬어요. 강사님 초청해서 원하는 아이들 스케이트 배워주기도 했고요. 서울에 있는 아파트치고 마을 논에 물 채워서 스케이트 타는 데가 있을까요? 또 저 어렸을 때 산 아래, 아파트 바로 옆에 벽돌 공장이 있었거든요. 햇볕 내리쬐는데 벽돌 말린다고 한 줄로 쫙, 벽돌 말리던, 그 옆으로 지나갔던 기억이 있고요." (김수연)

"한 마을에 다 사는 것 같은 그런 동네였어요. 이 아파트단지 밖으로 나가는, 국민학교 때 흔히 큰 길이라고 말했던, 외부에 있는 신호등을 건너야지만 갈 수 있는 길이 있는데, 그 길을 건너가는 일은 완전히 다른 세상으로 가는 것처럼 저희한테 큰일이었거든요. 학교를 등하교하는 것도 항상 집에서, 단지 안에서 이뤄졌고 그 안에 우리들의 놀이터가 있고, 뛰놀던 동산이 있고, 우리들만의 세상이었던 거 같아요. 이 주공아파트 단지라는 세상이.” (기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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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현선씨의 집 거실에서 찍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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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연씨의 집 거실에서 찍은 사진



7. ‘이 다음번에 살고 싶은 곳’

“다음에는 사실 둔촌 아파트가 재건축된 집에 살고 싶어요. 익숙한 고향이니까. 낡은 게 고쳐지면 훨씬 편리하고, 이미 알고 있던 지형지물이 주변에 다 있고. 교통도 편리하고.” (황현선)

"올해가 가기 전에 이사를 했다가, 재개발되고 난 다음에 다시 들어오는 거로 계획은 세워뒀는데 그렇게 될지는 모르겠어요. 물론 이사 간 곳에도 곧 익숙해지겠지만 고향을 떠나서 다른 데서 살라고 하면 느끼는 두려움 같은 게 있는 것 같아요. 아침마다 출근할 때 이삿짐센터 차량이 한 네다섯 대씩 보이거든요. 그걸 보면 약간 조바심 나는 건 있더라고요. 사실 재개발 얘기가 제가 대학 다닐 때부터 나왔던 거거든요. 15년 넘는 기간 동안 재개발이 된다, 안 된다, 이게 너무 반복돼서 사실 별로 감흥이 없었어요. 그러다가 아파트를 보게 됐는데, 많이 낡았더라고요. 생각 없이 지나쳤던 정자라든가, 저하고 나이를 같이 하는 나무들 한 번씩 더 쳐다보게 되고. 여기서 이사 간 어릴 때 친구들이 그리워하는 아파트에 제가 꽤 오랜 시간 살면서 누릴 수가 있어서 행운이었다 생각도 들고, 고맙다는 생각도 들고, 다른 아파트나 다른 곳에 제가 이주해서 살았을 때 이런 느낌을 받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짠하죠. 이사간다는 게, 이 마을이 없어진다는 게 슬프기도 하고. 토닥토닥해주고 싶어요. 오랜 시간 나와 함께 해줘서 고맙다고." (김수연)

*둔촌동 생태계 이주 프로젝트

강동구청 영상팀이 찍은 2017년 7월 아파트단지 모습


강동구청에 따르면 "둔촌주공아파트의 '생태계 이주'는 주민들 주도로 이뤄지고 있으며 계획 단계"다. 책 ‘안녕, 둔촌주공아파트’의 발행인 이인규씨 등이 참여하는 ‘둔촌냥이 프로젝트’가 길고양이들의 안전한 이주를 준비하고 있다.

위 영상에서처럼 10층 아파트 높이를 훌쩍 넘으며 울창하게 수십 년 자란 나무들을 아까워하는 주민들도 많지만 나무들의 경우는 이주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강동구청 관계자는 허프포스트에 ‘주공아파트재건축조합에서 필요한 사람들이 비용 부담하는 조건으로 가져갈 수 있게 하려고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귀한 나무들이지만 만만치 않은 비용이다. 지난 4월, 재건축조합의 한 관계자는 한겨레에 “나무 한 그루 옮기는데 평균 100만 원 정도 든다. 옮겨 심더라도 살리기 어려워서 그런지 가져가겠다는 사람도 많지 않다. 30년씩 돼 제자리를 잡은 나무들이 참 아깝다”고 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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