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계엄군이 광주교도소에 시민을 암매장했다는 증언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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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기념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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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이 광주교도소에 시민을 암매장했다는 전직 교도관의 증언이 나왔다.

전남일보에 따르면, 5·18 민주화운동이 벌어졌던 1980년 5월 광주교도소에서 내·외곽 치안을 담당하는 보안과 소속 교도관으로 일을 했다고 밝힌 A씨가 "계엄군이 광주교도소 내 3곳에 다수의 사망자를 암매장한 뒤 은폐했다"고 밝혔다.
전남일보가 A씨의 증언을 바탕으로 묘사한 당시의 상황은 이랬다.

5월18일 이후 광주시내에서 심상찮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점을 알게된 어느 날 A 교도관은 평생 잊지 못할 장면을 보게 됐다.

계엄군이 며칠 동안 군용 트럭에 여러 구의 시신을 싣고 와 교도소 곳곳에 암매장하는 모습을 목격한 것이다.

포장이 덮인 군용 트럭이 교도소 접견실 옆 등나무 밑에 주차하자, 옷과 얼굴이 흙으로 범벅이 된 시위대들이 내렸다.

충격적인 건 그 다음이었다. 차 안에 거적으로 덮여진 시신들이 놓여 있었다.

가마니로 만든 들것을 가져온 군인들이 시신을 창고 뒷편 화장실로 옮긴 뒤 이튿날 암매장했다. 며칠에 걸쳐 똑같은 방식으로 시신들이 암매장됐다.

A씨는 계엄군이 암매장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사용한 방법도 상세히 묘사했다.

군인 6~7명이 야전삽을 이용해 직사각형 형태로 잔디를 걷어내고 야전삽 길이 만큼 구덩이를 파고 시신을 묻고 잔디로 다시 덮었다.

이때 나온 흙은 판초우의에 차근차근 쌓아놓고, 남은 흙은 인근 논에 뿌리거나 먼 곳에 버리는 방식으로 시신을 묻은 흔적을 전혀 남기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새로 파낸 흙을 모두 치우고 잔디가 뿌리를 다시 내릴 경우 암매장 장소는 외관상 구분이 불가능해진다.

광주교도소 외부에서 숨진 시신을 교도소 건물 안에 집중적으로 암매장 했다는 증언이 나온 건 이번이 처음이다.

A씨는 자신의 경험과 동료 교도관의 목격담 등을 바탕으로 계엄군이 암매장을 했을 것이라고 추정한 장소 3군데도 제시했다.

1. 교도소장 관사 뒤편
2. 간부 관사로 향하는 비탈길
3. 교도소 감시대 옆 공터

전남일보는 "특히 교도소장 관사 뒤편은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의 핵심 증인이었던 고영태씨의 아버지 고(故) 고규석씨 등 8구의 시신이 발견된 곳"이라고 덧붙였다. 담양에 거주하던 고씨는 5월21일 광주에서 차량으로 교도소 인근 도로를 지나다 계엄군의 총탄에 사망했으며 5월30일 교도소 안에서 시신으로 발견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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