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아직도 다이애나의 죽음에서 교훈을 얻지 못했다: ‘우리는 모두 파파라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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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여성이 체육관에 간다. 그녀는 대문이 달린 고객 전용 주차장에 들어가 차에서 내린다. 거기서도 건질 만한 사진, 내일 모두의 입에 오르내릴 사진을 기대하며 찍어대는 카메라 소리가 들린다. 하지만 그녀는 카메라에 등을 돌린다. 거의 뒤로 걷다시피 하며 건물 입구로 간다. 사진가들은 다른 각도를 잡아보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하며, 이럴 경우에 대비해 가져온 사다리를 타고 벽을 기어오른다. 하지만 그들은 이미 그녀를 놓쳤다. 그녀가 그들보다 한 수 위였다.

하지만 그녀가 다시 그들의 표적이 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오늘날 대부분의 셀러브리티들을 둘러싼 익숙한 풍경이다. 하지만 이 젊은 여성은 팝 스타, 배우, 리얼리티 TV 스타가 아니다. 그녀는 영국 왕세자비다.

다이애나의 사망 20주기를 앞두고 몇 주 전부터 TV, 뉴스 자막, 잡지 표지에 다이애나의 이름이 등장했다. 다시 한 번 오전 토크쇼에 꾸준히 등장했고, 다큐멘터리도 잔뜩 나왔다. 1980년대와 90년대에 ‘대중들의 공주 people’s princess’를 둘러쌌던 광기가 돌아왔다.

다이애나를 둘러쌌던 애국심, 동화, 비극의 조합과 비교할 수 있는 사람은 지금은 없다. 그러나 얼스 코트의 다이애나 아파트 밖에서 노숙하는 사진가들이 생기면서 태어난 파파라치 문화는 그녀의 사망 이후 계속 진화했다. 다이애나는 너무나 오랫동안 세계의 시선에 괴로워했다. 카메라 앞에서는 밝게 웃었지만, 정신 건강 문제와 싸우고, 개인적으로는 심한 섭식 장애를 겪었다. 사진, 특종, 독점 기사에 대한 수요는 어떤 프라이버시도 무시했다. 사실 당시 타블로이드 업계를 크게 키운 것이 그녀의 사생활이었다. 다이애나는 공주였지만, 파파라치들에겐 여왕이었다.

테일러 스위프트, 킴 카다시안, 로버트 패틴슨 등의 셀러브리티들은 다이애나를 너무나 괴롭혔던 사생활 문제를 물려받았지만, 다이애나 정도로 심하게 겪지는 않는다. 왕족이든 우체부든, 누구나 사생활의 권리는 있다. 그러나 다이애나 시절 파파라치는 그 경계를 이해할 수도, 이해하려 하지도 않았고, 결국 그로 인해 그녀는 목숨을 잃었다.

princess of wales langevin jacques

1997년 8월 31일, 다이애나는 36세의 나이에 프랑스 파리의 터널에서 교통사고로 비극적 죽음을 맞았다. 남자친구 도디 파예드와 함께 리츠 호텔에서 나와 호텔 경비 책임자 앙리 폴이 모는 벤츠에 올라탔다. 이 커플의 개인 경호원 트레버 리즈-존스가 조수석에 앉았고 다이애나와 도디는 뒷좌석에 탔다. 사진가들이 우르르 뒤를 쫓았고 폴(취한 상태였던 것으로 후에 밝혀졌다)은 중심을 잃었다. 차는 2차선 도로에서 시속 100km 정도의 속도로 기둥을 들이받았다. 파예드와 폴은 즉사했고, 리즈-존스는 중상을 입었다. 파파라치가 도착했을 때 다이애나는 아직 살아있었다. 어쩌면 살릴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녀의 다친 몸의 사진이 그녀의 생존보다 더욱 중요했던 모양이다.

18년 이상 다이애나의 사진가로 일했던 왕립 사진가 켄트 개빈은 즉각 구급차를 부르지 않고 사진을 찍어댄 파파라치들에 대해 “무시무시하다. 믿을 수가 없었다.”고 허프포스트에 말했다. 현장 촬영을 한 프랑스 남성 파파라치 10명은 즉시 체포되었고 기소 당했지만 사고의 책임이 폴에게 있음이 밝혀지자 “그들은 처벌을 면했다”고 개빈은 말한다.

“오랫동안 괴로움을 겪던 그녀가 마침내 행복해지려 하고 있던 때라는 게 비극적이다. 하지만 그녀가 보았던 터널 끝의 빛은 파파라치들의 플래시였다. 어찌 보면 그건 그녀 인생의 메타포이다.” 앤드류 모튼이 허프포스트에 말했다. 모튼이 쓴 공식 전기 ‘나, 다이애나의 진실 Diana: Her True Story’은 최근 미국에서 재간되었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후계자로 예상되는 찰스 왕자의 아내였고 그의 후계자인 윌리엄과 해리를 낳은 다이애나는 국제적으로 엄청난 관심을 받았다. 그녀가 무엇을 하는지, 어떤 옷을 입는지, 무슨 말을 하는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두들 매일같이 알고 싶어했다. 90년대 초에 이혼하자 파파라치들은 더욱 달려들었다. 가장 상처받기 쉬운 상태의 그녀 모습을 찍어 돈을 벌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다이에나가 세라피를 받으러 갈 때조차(아마 가장 사적인 외출일 텐데) 사진가들이 너덧 명 달려들었다. “그들은 모두 렌즈로 그녀를 겨누고 ‘고개 들어, 이년아.’ 따위의 말들을 외쳐댔다. 그건 엄청난 침해 행위다. 그녀는 그들에게 ‘딴데가서 다른 사람 강간하지 그래?’라고 말했다. 자신의 삶에 대한 이런 간섭 때문에 무척 괴로워했다.” 모튼의 말이다.

그녀의 자녀들도 괴로워했다. 이제는 결혼하여 아버지가 된 윌리엄 왕자는 어머니가 겪은 일에 지금도 깊은 영향을 받았다고 HBO 다큐멘터리 ‘Diana, Our Mother: Her Life and Legacy’에서 이야기했다. 남성들이 반응을 끌어내려고 다이애나에게 침을 뱉고 욕을 했다고 한다. “슬프지만, 어머니가 우셨던 건 대부분 매체의 침범 때문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해리와 나는 그걸 겪으며 살아야 했다.”

1993년에 공적 활동을 그만두었지만, 다이애나를 둘러싼 상황은 변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악화되었다.

“우린 무엇이든 했다. 지금으로선 그때 있었던 일을 믿기가 힘들다.” 스미소니언 채널의 ‘Diana and the Paparazzi’에서 파파라치 마크 선더스가 말했다. “우리는 덤불 속에 숨고, 나무 위에 숨고, 차 뒤에 숨었다. 매일 사진을 찍었다. 눈덩이처럼 계속 불어났고 끝없이 계속되었다.”

“끔찍했다.” 개빈의 말이다. 그는 피어스 모건과 더 미러에 고용되어 다이애나 사진을 찍었지만, 개빈은 거리에서, 그녀의 집에서, 휴가지에서 몰려다니는 독립 파파라치를 결코 존중하지 않았다. “그녀와 공식 사진가들 사이에는 믿음이 있었고, 파파라치와는 그런 게 없었다. 통제불능이 되었다.”

다이애나가 파파라치들의 피해자이긴 하지만, 가끔 파파라치를 이용하지 않았다면 그만큼의 명성을 얻지 못했을 것이다. 왕실의 팬이 아닌 사람들은 다이애나가 자신의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것에 대해 더 냉소적인 경향이 있다. 다이애나가 사진가들을 전화로 불러냈을지는 알 수 없지만, 자신이 세계적으로 점점 더 유명해지고 있고, 매체를 이용해 자신의 삶을 더 낫게 만들고 남들을 도울 수 있다는 것은 분명 알고 있었다. 킴 카다시안은 초기에 셀러브리티 뉴스에 자주 나오려고 사진가들을 불러냈지만, 다이애나는 자신이 대중에게 갖는 영향력을 보다 이타적 목적으로 사용했다.

이혼 후 다이애나는 개인적 문제로 생겨난 소란에서 벗어나 자신이 좋아하는 자선 활동을 하며 보다 행복한 삶을 살려 했다. 그녀는 진정한 인도주의자였으며 HIV/AIDS 관련 단체, 지뢰 제거, 암 연구 단체들과 긴밀히 활동했다.

“양날의 검이다. 다이애나는 카메라가 어딜 가나 나를 따라올 거라면, 내가 가고 싶은 곳으로 따라오게 만들어서 사람들이 그런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하자고 결심했다. 그녀는 주목받지 못하는 인도주의적 문제에 매체를 동참시킬 수 있다는 걸 깨닫게 된 것이다.”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Diana: In Her Own Words’의 제작자 톰 제닝스가 허프포스트에 말했다.

다이애나가 자기에게 유리하도록 직접 파파라치를 이용했다는 루머도 있지만, 개빈은 그렇게 믿지 않는다고 말한다. “도디 파예드와 사귀었던 때의 진짜 이야기는 우린 모른다. 특정 사진가에게 전화를 걸었는지, 이탈리아 파파라치를 불러 보트에 탄 모습을 찍었는지는 사실일 수도, 아닐 수도 있다. 나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에 대한 언급을 할 수가 없다.”

princess of wales anwar hussein

당시 파파라치가 어디에나 있었지만, 다이애나와 주위 사람들을 플래시의 물결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법적 조치는 없었다. 파파라치가 그녀의 차를 추적하거나 어디에나 따라다니지 못하게 하는 법이 없었기 때문에, 그녀가 사망했을 때의 상황이 벌어졌을 수도 있다. 다이애나 사망 이후 매체는 사진가들이 셀러브리티들을 쫓는 방식을 바꿔보려 했지만, 영국에서 비슷한 일을 방지하기 위한 법은 만들어지지 않았다.

다이애나 사건 후 영국의 자율규제기구는 매체의 셀러브리티 취재 행동강령에 다음과 같은 규정을 추가했다.

i)언론인과 사진가들은 협박, 괴롭힘, 끈질긴 추적으로 정보나 사진을 얻거나 얻으려 해서는 안된다. ii) 사적인 공간에서 상대의 동의 없이 사진 촬영을 해서는 안된다. 그만두라는 요구가 있은 뒤에도 집요하게 전화걸기, 질문, 추적, 촬영해서는 안된다. 나가라는 요구가 있으면 상대가 소유한 공간에 남아있으면 안되며 따라가서도 안 된다. iii) 에디터들은 고용인들이 이 조건을 따르도록 해야 하며, 이 조건에 따르지 않은 방법으로 얻은 것을 실어서는 안된다.

이런 ‘규칙’에도 불구하고, 왕실 사람들은 계속해서 사생활 침해를 당한다. 2012년에 프랑스 잡지들은 윌리엄 왕자와 케이트 미들턴이 남부 프랑스로 휴가 갔을 때 미들턴이 토플리스로 일광욕하는 사진을 실었다. 올해 5월에 이들은 그 사건 관련자 6명을 고소했고, 190만 달러의 피해 보상금을 요구했다. 왕실 대변인은 “이 사건은 다이애나 왕세자비 생전에 있었던 매체와 파파라치의 최악의 행동들을 떠올리게 하며, 그 사실 때문에 윌리엄 왕자 부부에게 더욱 괴로운 일”이라 밝혔다.

“왕실과 영국 신문, 잡지 에디터들은 이제 파파라치가 찍은 것엔 손대지 않는다는데 합의했다. 그들의 시장은 영국에서는 거의 없어지다시피 했다.” 개빈의 설명이다.

왕족들의 촬영에 대한 변화는 윌리엄 왕자가 이끌었다. 그는 자기 가족의 파파라치 사진을 완전히 없애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2015년이 이들 부부는 자녀들에 대한 부적절한 감시와 괴롭힘을 더 이상 참지 않겠다는 긴 성명을 냈다.”

“우리는 이 이슈들을 논의하기로 결정했다. 사건들이 점점 잦아지고 있으며 수법은 위험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선을 넘었고, 수법이 더 위험해진다면 안전에 실제로 문제가 생길 것이다.” 성명의 일부다.

파파라치 사진이 새어나갈 경우 ‘고발할 것’이라는 윌리엄의 말에 요새는 사진가들이 왕족 사진을 공격적으로 찍으려는 경향이 덜해졌다고 개빈은 말한다. “만약 [파파라치가] 정말로 현장에서 잡히면 호된 처벌을 받을 것이다.” 개빈은 예전 만큼 돈이 되지도 않는다고 덧붙인다. “케이트나 아이들을 찍으려는 파파라치들은 다이애나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다.”

미국에서는 캘리포니아 주가 1998년에 최초로 반 파파라치 법을 만들었다. 사진가들이 사유지에 무단 출입할 수 없게 하는 법이었다. 2005년에 법이 강화되어, 사진가가 촬영 대상과 육체적 접촉을 할 수 없다는 조항이 추가되었다.

2009년에 아놀드 슈왈제네거 주지사는 셀러브리티의 사생활을 침범하는 사진을 찍은 사진가에게 벌금을 물리는 법에 서명했다. 당시 제니퍼 애니스톤은 이 법을 지지했다. 애니스톤은 그 전에 자기 집 뒤뜰에서 토플리스로 일광욕하는 사진을 배포한 남성과 55만 달러에 합의한 적이 있다. 2010년에는 파파라치가 촬영을 위해 무모하게 운전하지 못하게 하는 법이 생겼다. 2012년에 위헌 판정이 났지만, 2015년에 다시 뒤집혔고 현재 발효 중이다.

파파라치들의 사생활 침해를 막는데 가장 성공적이었던 법은 상원 법안 606조였다. 셀러브리티들이 원했던, 그들의 자녀를 보호하는 법이다. 2013년에 캘리포니아의 제리 브라운 주지사가 이 법을 통과시켰다. 업계에서 가장 자주 표적이 되는 할 베리와 제니퍼 가너 등 셀러브리티 어머니들이 큰 지지를 보냈다. 사진가들이 잡지 판매 목적으로 아이들을 거칠게 촬영하는 것을 금지한 법이었다. 그러나 이른바 ‘페도라치라 불리는 셀러브리티 자녀들의 이미지 판매는 계속되었다. 다음 해에 크리스틴 벨이 바톤을 이어받아, 동의없이 촬영한 셀러브리티 자녀의 사진을 싣는 매체를 보이콧하는 캠페인을 열었다. 우리가 대중 문화를 소비하고 다루는 방식에 엄청난 변화가 일어났다. 피플, 엔터테인먼트 위클리, 버즈피드, 엔터테인먼트 투나잇, 허프포스트 등의 매체가 이 캠페인에 참여했고, 어린이들이 아닌, 스포트라이트를 받기로 선택한 사람들을 지면에 실었다.

“아무 영향도 없을 거라 생각했지만, 소비자들에게 이야기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는 걸 알았다. 우리는 긍정적인 반응을 얻었고, 사람들은 자신이 어떤 매체를 사고 있었는지, 자신이 보던 사진이 아이들에게 해를 주며 얻어낸 것은 아닌지 깨닫기 시작했다.” 올해 벨이 허프포스트에 한 말이다.

파파라치 업계에서 소비자 쪽을 표적으로 삼은 것은 큰 승리를 거두었다. 셀러브리티 문화에 변화가 인다는 신호였다. 대중이 어린이들에 대한 경계를 다시 생각해볼 수 있다면, 파파라치 업계 전체 역시 진화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공인과 가족들을 보호하기 위한 법이 생겼는데도, 헐리우드 유명인들의 삶을 들여다보고 싶은 욕구는 여전했다. 그래서 원하지 않는 카메라의 시선을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도 아직 있다.

princess of wales martin godwin

다이애나가 남긴 영향과 끝없는 대중의 관심의 무게를 따라 오늘날로 와보면 아마 카다시안이 있을 것이다. 그들은 자신이 현대 미국의 왕족이라고 생각하고 싶어할지 모르겠지만, 카다시안과 제너가 사람들의 마음에 불러일으킨 열정은 다이애나와 비교 자체가 불가능하다. 그러나 웨일스의 공주 다이애나를, 음, 소셜 미디어의 공주와 비교해보면, 그녀의 죽음 이후 법적 보호가 상당히 이루어졌지만 우리 문화는 아직도 사생활이 필요한 사람들의 선에 대한 존중에 부족함이 많다는 걸 알 수 있다.

다이애나는 세상에서 가장 많이 사진 찍힌 여성일 것이다. 킴 카다시안은 아마 인터넷에서 가장 많이 사진이 도는 여성일 것이다. 둘 다 정확한 정의는 아니다(셀카 수를 세는 걸 상상할 수 있는가?). 하지만 카다시안과 패리스 힐튼 등의 사교계 명사들은 별로 유명하지 않다가 갑자기 주목받은 아름답고 젊은 여성 다이애나의 유산에서 자신의 모습을 본다.

그들의 이야기는 정말 다르지만, 카다시안은 다이애나가 겪었던 것과 비슷한 싸움을 마주하고 있다. 유명인에 대한 공감의 깊이는 얕지만(대체 누가 킴 카다시안을 안쓰럽게 여길 수 있단 말인가) 명성, 돈, 혹은 왕족이라는 사실 때문에 우리가 연민을 잃어선 안 된다. 10월에 파리에서 카다시안이 당한 강도 사건이 좋은 예이다. 복면을 쓴 남성들이 호텔 안내원을 인질로 잡고 방에 들어와 카다시안에게 총을 겨누고 수백만 달러 어치의 보석을 훔쳐갔다. 그녀는 후에 TV에서 생명의 위협을 느꼈으며, 이들에게 강간당할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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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소식이 알려진지 며칠만에 카다시안이 이 사건을 조작했다, 혹은 소셜 미디어에서 부를 과시해서 화를 자초했다는 기사들이 나왔다. 우리의 첫 반응은 공감이 아닌 회의였다. 공공의 시선을 받는 동시에 인간의 공감 대상도 될 수는 없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았다.

카다시안은 자기 이야기의 진실성을 의심하는 사람들에 대해 “사람들에게 인간이 아닌 것 같은 대접을 받으면 정말 힘들다. 정말 생생하고 거친 경험을 겪는다. 큰 트라우마가 된다. 심지어 그 날 밤에 내가 죽었더라면 좋았겠다는 댓글까지 봤다. 누가 죽기를 진심으로 바라다니, 당신은 얼마나 사악한 사람인가? 온세상이 당신을 비난한다는 건 정말 나쁜 일이다.”라 말했다.

하지만 다이애나는 자신의 개인적인 순간들이 잡지 표지에 나온 걸 보려면 동네 가판대로 가야했지만, 카다시안 같은 유명인들은 전화기만 켜도 볼 수 있다. 제정된 법들이 유명인들의 삶을 낫게 해준 건 사실이지만, 지난 10년간의 기술 발전이 셀러브리티 매체의 소비 방식을 발전시키고 더욱 문제화할 줄은 아무도 몰랐다.

“내가 현대 셀러브리티들이 안됐다고 느끼는 유일한 것이 소셜 미디어다. 모두 아이폰을 가지고 있고, 대중들은 열심히 클릭해댄다.” 개빈의 말이다.

로버트 패틴슨과 셀레나 고메즈 등은 이러한 새로운 대중의 비판을 좋아하지 않는다. 이들은 파파라치에겐 돈줄이고 폰을 가진 팬들이 잔뜩 있다. 두 사람 모두 괴롭힘을 피해보려 최선을 다했고 동물처럼 사냥당했다. 패틴슨은 외출할 때 늘 일종의 변장을 한다. 카메라를 피하려고 선글라스와 모자를 쓴다. 친구들과 옷을 바꿔입거나, 우버를 여러 대 부르고 트렁크에 숨기까지 했다.

‘트와일라잇’으로 패틴슨의 인기는 엄청나게 치솟았고, 그의 대중적 존재는 완전히 달라졌다. 그는 파파라치는 ‘자기 일을 하려고 애쓰는 패배자들’이라고 부르며, 8월에 GQ 인터뷰에서 누군가 쉴새없이 지켜보고 있으면 자기 삶을 살 수 없다고 말했다.

젊은 여성이 체육관에서 나온다. 위에 떠 있는 카메라들에 등을 돌린 채, 앞에 모여있을 구경꾼들을 피하려고 옆 출구로 나온다. 사진을 찍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완벽한 사진을 건지려고 사다리를 기어오르는 파파라치들이 아니다. 아이폰을 들고 모여든 팬들이다. 그녀는 사진가들에게 고개를 돌린 채 옆으로 걸어 큰 검은색 에스컬레이드에 올라탄다. 그녀는 자기 사진이 신문과 잡지에 실리는 것만이 아니라 소셜 미디어와 인터넷에 퍼지는 것까지 걱정해야 한다.

그러나 그녀는 공주가 아니다. 자기 이미지를 지키려 애쓰는 스타다.

유명인의 사적인 순간에 난입하는 파파라치를 악당으로 몰기란 쉽다. 하만 포스팅을 올리고, 좋아요를 누르고, 공유하는 우리 자신들을 비난하기란 그보다 어려운 일이다. 인스타그램과 트위터 등을 통해 유명인들은 자기 입장을 있는 그대로 밝힐 수 있긴 하지만(스타들은 거짓 루머를 소셜 미디어를 통해 쳐내는 경우가 많다), 한편 소비자들은 이를 통해 전통적인 파파라치의 이미지를 날려버리고 직접 사진을 찍고 올린다.

우리가 다이애나를 잃은 후 세상은 바뀌었지만, 우리는 그녀 생전에 끈질긴 매체가 저질렀던 피해를 깊이 인식하고 변화하지 않았다. 셀러브리티를 둘러싼 쫓고 쫓기는 게임에서 우리가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우리는 아직 제대로 깨닫지 못했다. 우리의 문화는 지금도 셀러브리티 소비를 받아들일 뿐 아니라, 새로운 지평으로 옮겨갔다. 자기 집에서 수동적으로 타블로이드 이미지를 보거나 자기만큼 굶주린 사진가들 뒤에서 싸인해 달라고 소리지르던 팬들은 이제 셀러브리티 감시의 최전선에 서있다. 모바일 장비는 평범한 DSLR보다도 흔하니까. 아이폰을 꺼내 브런치를 먹는 유명인을 360도 촬영하는 것은 이젠 향수마저 느껴질 것 같은 카메라 플래시를 감추기보다 쉽다.

“우린 모두 파파라치다. 파파라치는 계속될 것이고, 그저 형태만 달라질 것이다. 50년대, 60년대의 긴 초점 렌즈에서 2000년대의 폰 카메라로, 이제는 드론으로 변했다.” 모튼의 말이다.

우리는 이젠 타블로이드를 사서 보지는 않을지 모른다. 다이애나의 짧았던 인생에서 악역을 맡았던 파파라치 업계에 돈을 대지는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스타그램에 언제든 사진을 올릴 수 있고, 좋아요와 댓글이 사진 찍는 속도보다 더 빨리 올라오는 지금, 우리는 아직도 짐승에게 먹이를 주고 있는 걸까? 우리는 공감 능력이 너무나 부족해서 우리 행동의 영향을 보지 못하는 걸까? 끝없는 팬 피드를 스크롤하거나 직접 이미지를 올릴 때, 우리는 우리 눈 앞에서 살아 숨쉬는 진짜 인간을 보지 못하는 걸까? 혹은 우리는 명성은 원래 사생활의 상실을 의미한다고 생각하게 되어버렸나?

다이애나 20주기 추모에는 여러 의미가 있지만, 어쩌면 우리가 셀러브리티의 인스타그램 페이지를 보고, 거리에서 따라다니고, 그들이 승승장구할 때 조롱하고 실패할 때 기뻐하게 만드는 굶주림을 비판적으로 살펴야 한다는 교훈이 있을지 모르겠다. 다이애나가 살아남았다면 이런 새로운 영역을 탐구했을 수도 있는 것 아닐까? 하지만 매체와 대중에서 여러 해 동안 고통스러워 했던 그녀의 삶을 볼 때, 한 가지만은 확실하다. 그녀는 우리가 나아지길 바랐을 것이다.

princess of wales paparazzi

허핑턴포스트US의 We Still Haven’t Learned From Diana’s Death: ‘We’re All Paparazzi’를 번역, 편집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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