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촌 홍익문고가 영업 60주년을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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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우의 서울 백년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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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는 오랜 전통의 서점을 찾아보기 어렵다.

책이 문화 교양의 중심 매개였던 1980~90년대가 저물자 책방에도 겨울이 왔다. 1981년 문을 연 ‘대형서점’ 교보문고가 서점업계의 맹주로 올라서는 30여년 동안, “그 밖의” 서점들은 ‘멸종’을 걱정해야 할 처지로 내몰렸다. 2005년 기준 2103개이던 전국 서점 수는 2013년 1559개로 25.9%가 줄었다.('한국서점편람 2016', 한국서점조합연합회) 도서정가제 강화 등으로 다소 완화되었다고는 하지만 서점의 감소 추세는 그다지 바뀌지 않고 있다.

연세대, 서강대, 이대 등이 몰려 있는 대학가 신촌에도 ‘오늘의책’, ‘알서림’, ‘신촌서점’ 같은 서점들이 유명했지만, 경영 악화로 이미 오래전에 문을 닫은 것을 생각하면, 홍익문고가 반세기 넘도록 건재한 것은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전철 2호선 신촌역에서 연세대학교 쪽 출구로 나오면 바로 보이는 5층짜리 흰색 건물이 홍익문고(서대문구 연세로2)이다. 교통 요지인데다 책을 읽으며 기다릴 수 있는 장점 때문에 오래전부터 신촌의 대표적인 약속 장소였다. “강남에는 뉴욕제과, 강북에선 홍익문고”라고 할 만큼 유명했다. 이 기사를 쓰고 있는 기자도 홍익문고에서 시집 등을 뒤적이며 누군가를 기다리던 추억을 여러개 가지고 있을 정도이다. 지금도 홍익문고 1층에는 그때처럼 시, 소설, 수필 등 문학류와 자기계발서, 잡지류 등이 배치돼 있다. 약속의 명소다운 배려이자 마케팅 전략이기도 한 이 배치는 홍익문고만의 ‘특색 있는 역사’를 들려주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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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창업 60주년이 된 홍익문고 2대 대표 박세진씨가 돌아가신 아버지가 직접 꾸미고 만든 매장 배치와 흰색 판매대의 유래를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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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년 현재 위치로 이전한 뒤 많은 이들의 추억의 장소가 된 홍익문고가 올해로 ‘창업 60주년’을 맞이했다. 창업자인 고 박인철은 22살 때 판잣집을 세 얻어 차린 헌책방 이름을 홍익(弘益)이라 정했다. 단군신화의 ‘홍익인간’에서 따온 것으로, ‘책으로 세상을 널리 이롭게 하겠다’는 포부였다.

홍익문고는 반세기 지나도록 지하 1층 지상 4층(층 평균 30평 안팎) 매장에 수십만권의 책을 분야별로 진열해놓고 하루 평균 1000~1500여명의 고객을 맞고 있다. 판매 비중이 높은 분야는 취업, 어학, 학습지류. 인터넷의 영향, 학습 인구의 감소, 대형 서점의 영향 등으로 해마다 5~10% 안팎의 매출 감소를 겪고 있지만, 건물이 자가여서 임대료 부담이 없다는 점이 버팀목 노릇을 해주고 있다.

사실 건물의 뛰어난 입지를 고려할 때, 자본주의 논리대로라면 서점보다는 임대사업을 하는 것이 훨씬 이익이 되는데도, 현 대표 박세진(50)씨는 아버지에 ‘유지’에 따라 순수 서점 운영을 고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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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어카 행상에서 출발해 신촌 번화가 요지의 5층 건물 주인이 된 홍익문고도 위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위기는 신촌 일대 재개발 계획이었다. 재개발을 받아들이면 홍익문고 건물은 철거되고 서점은 없어지거나 다른 곳으로 축소 이전될 수밖에 없는 상황. 이 소식을 들은 신촌 일대의 주민단체, 은사인 연세대 정찬영 총장 등 동문·재학생, 책단체 등이 ‘홍익문고 지키기 주민모임’을 결성해 반대 탄원운동을 벌인 끝에 극적으로 재개발 지정 대상에서 제외될 수 있었다. 2012년의 일이었다. 이 일은 아버지의 사망으로 막 서점을 물려받았던 젊은 박 대표에게 큰 감동과 함께 새로운 다짐을 굳히는 계기가 되었다.

“홍익문고의 문화적 가치를 잊지 않고 지켜준 시민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오늘의 홍익은 존재할 수 없었을 겁니다.”

엘지전자 부장이던 세진씨는 아버지 박인철이 암 투병 끝에 사망하자 2009년 회사를 그만두고 가업을 승계했으나, 서점의 모든 일이 아직은 서투르고 힘들기만 한 때였다.

“남들은 재개발을 해서 임대사업으로 전환하면 2~3배 더 돈을 벌 수 있을 텐데 왜 저러나 싶었을 겁니다. 그러나 재개발 계획안에 동의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고, 무엇보다 아들로서 아버지의 유지를 쉽게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이 일이 있고 나서 그는 ‘지금부터는 내 힘으로 지킨다’는 사명감을 가슴에 새기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홍익문고 외벽에 도와준 분들에 대한 감사의 말과 함께 “홍익문고를 100년까지 이어가겠다”는 다짐의 말을 내걸었다. 모두의 앞에서 자신에게 하는 약속이었다.

“만약 홍익문고에 커피숍이나 식당 같은 임대사업이 들어 있었다면 그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까지 발 벗고 나서 주었을까요? ‘백년서점-홍익문고’라는 슬로건을 내건 건 무엇보다 나 자신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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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8년 문을 연 최초의 ‘홍익책방’ 앞에 선 창업자 박인철(왼쪽)과 그의 어머니(오른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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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익문고 매장에 들어서면 인상적인 것 중의 하나가 흰색 페인트칠이 된 오래돼 보이는 판매대와 안내데스크들이다. 대부분 창업자 박인철이 직접 제작하고 색을 칠한 것들인데, 모서리가 마모되고 페인트가 벗겨진 대로 지금껏 사용하고 있다. 그래서 오랜만에 홍익문고를 찾은 손님들도 추억 어린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다. 어, 옛날하고 똑같네….

“요즘 시대에 맞게 인테리어를 하는 게 낫지 않겠느냐고 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 서점 전체가 아버지의 유품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큰 틀은 바꾸지 않고 부분부분 고쳐가며 그대로 쓰고 있습니다.” 시간이 멈춰 쌓인 것 같은 분위기가 역설적으로 60년 홍익문고의 전통을 웅변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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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익문고 매장에 걸린 독서 장려 표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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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철은 근검절약이 몸에 밴 사람이었다. 손에 지문이 닳아 없어질 정도로 하루도 쉬는 날이 없었다. 세진씨가 돌아가신 아버지를 추억할 때면 “손끝이 까맣고 맨질맨질한” 그의 손가락부터 떠올릴 정도다. 세진씨에 따르면 박인철이 사후에 남긴 개인 물품은 딱 세 가지. 고무줄로 묶은 작은 트랜지스터라디오, 손바닥만 한 휴대폰, 낡아서 너덜너덜해진 손지갑.

홍익문고에는 그가 생전에 서점 바닥을 쓸던 몽당빗자루도 여전히 남아 있다. “워낙 아껴 쓰는 분이기도 했지만, 몽당빗자루 하나에도 서점을 지키는 혼령이 깃들어 있다고 믿으셨지요. 늘 입에 달고 계셨죠. 물건, 함부로 버리지 마라.”

박인철은 피난지 전라도 광주에서 광주서중을 나와 서울의대를 지원할 정도로 명석했지만, 집안은 너무나 가난했다. 어린 동생들을 리어카에 태우고 생선이나 과일 따위를 팔러 다녔다. 책은 “냄새 없고, 썩지도 않는”데다, 신촌에는 헌책방도 없어서 1957년부터 신촌 일대에서 책 노점을 시작했다. 이듬해 지금의 신촌로터리 근처 판잣집에 헌책을 사고파는 ‘홍익책방’을 차렸다. 돈이 없어 졸업을 미루던 대학(한양대 전기과) 등록금을 마련해준 아내와 결혼해 10여년 고생 끝에 1978년 현재의 건물 1층에 ‘홍익문고’ 간판을 내걸었다. 근면하기 이를 데 없는 박씨 부부는 차근차근 매장을 4층 전체로 확장했고, 또 얼마 뒤엔 “운 좋게” 건물을 싼값에 사들일 수 있었다. 성실에는 그만큼의 행운이 따르는 법인가? “당시 신촌 일대 도로 확장 때 토지 수용을 피하기 위해 건물주가 서둘러 팔게 된 것을 세입자였던 아버지가 지인들과 함께 사들였는데, 나중에 도로 확장 계획이 변경되는 바람에 건물이 살아남게 되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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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홍익문고는 다른 동네서점들처럼 경영 상태가 썩 좋지 않다. 인터넷과 스마트폰 등의 영향으로 일반 교양서적이 잘 팔리지 않는데다, 학습 인구의 감소로 참고서, 문제집류의 판매량도 자꾸 줄어들고 있다. 게다가 신촌 주변에 대형 서점들이 잇따라 들어서고 있어 걱정이 많다.

“최근 몇년간 매년 5~10% 정도 매출 감소가 이어지고 있고, 최근에는 홍대 부근에 교보문고 합정점 등 대형 서점들이 들어서고 있는 게 신촌 쪽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렵다고 서점을 접거나 책 이외의 품목으로 사업을 변경할 생각은 조금도 없다. “문구도 팔고 커피도 팔고 하면 조금 나아질 수는 있겠지만, 나는 책 하나로만 가보고 싶습니다.” 그래서 홍익문고에서는 아직도 연필 한 자루 팔지 않는다. 순수 서점으로 승부하겠다는 마음은 아버지나 아들이나 변함이 없다. “순수한 서점만이 홍익문고를 지켜준 사람들에 대한 보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홍익문고의 생각을 서울시와 구청도 돕고 있다. 서울시는 2014년 홍익문고를 서울의 미래유산에 선정했고, 서대문구에서는 홍익문고 앞 거리를 문학의 거리로 지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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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서울시 미래유산 선정 인증서.]

“문학의 거리에 15분의 유명 작가 핸드프린팅을 설치해서 책 구매층을 모아주고 있습니다. 서점 앞의 ‘달려라 피아노’도 명물로 자리 잡으면서 홍익문고를 알리는 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홍익문고는 그 보답으로 피아노 관리와 연주 프로그램 섭외 등을 도맡아 하고 있다. 사무 공간으로 쓰는 서점 옥상(5층)을 시민단체나 독서모임의 강연, 토론회, 회의실 장소로 개방하기도 한다.

“아버지는 서점 이름을 지을 때부터 책의 가치를 사람을 이롭게 하는 데서 찾았던 것 같습니다. 나중에 홍익문고를 운영하면서부터는 늘 네 가지를 가장 먼저 이롭게 하라고 말씀했습니다. 고객, 직원, 거래처 그리고 가족.”

홍익문고 직원 수는 20명. 평균 근속연수가 10년 이상이다. 30년이 된 직원도 있다고 한다. 박인철은 아무리 어렵더라도 직원을 줄여서 해결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직원들에게는 고객을 최우선으로 여기라고 가르쳤다. 아들에게도 고객이 최우선이다. “책을 사러 오시는 한 사람, 한 사람이 전부 홍익문고 100년을 밀어주는 사람들이 아닙니까?”

홍익문고 박씨 가문은 3대를 이어갈 수도 있다. 군 복무 중인 큰아들이 서점 경영에 관심이 많다고 박씨가 전한다. “홍익문고 창업 100주년 때 제 나이가 90살입니다. 오래 살고 싶어서가 아니라 아들과 함께 홍익문고 100년의 약속이 이뤄지는 것을 꼭 보고 싶습니다.”

홍익문고 창업 60주년 기념 달력 표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소중한 것은 시간을 넘어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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