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의 무덤' :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전략을 이해하기 위한 간략한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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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FGHANISTAN
ARLINGTON, VA - AUGUST 21: U.S. President Donald Trump delivers remarks on Americas military involvement in Afghanistan at the Fort Myer military base on August 21, 2017 in Arlington, Virginia. Trump was expected to announce a modest increase in troop levels in Afghanistan, the result of a growing concern by the Pentagon over setbacks on the battlefield for the Afghan military against Taliban and al-Qaeda forces. (Photo by Mark Wilson/Getty Images) | Mark Wilson via Getty 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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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 이후 미국을 17년간의 최장기 전쟁의 수렁에 빠뜨린 아프가니스탄은 ‘제국의 무덤’이라고 불린다. 영국과 소련은 아프간을 침공했다가 심각한 피해를 입으며 제국의 쇠락을 초래했다.

아프간은 고대 이래로 유라시아 대륙의 초원 지대에서 인도아대륙 및 해안지대로 진출하는 통로였다. 고대 이후 초원유목세력과 대륙세력에게는 유라시아 대륙의 연안지대로 진출하는 통로였다. 해양세력에게도 유라시아 대륙 내부로 진입하는 통로로 여겨졌다. 그리스 제국의 알렉산더 대왕이 아프가니스탄을 넘어서 인도로 침공한 것을 시작으로, 징기스칸, 티무르 등 초원유목세력들이 아프간을 넘어 인도와 페르시아 연안 지대로 침공했다.



18세기 이후 영국과 러시아는 이 아프간에서 격돌하며 유라시아 대륙의 패권을 겨루는 ‘그레이트 게임’을 펼쳤다. 영국은 당시 중앙아시아 내륙 지대로 영토를 넓히던 러시아가 인도와 중동까지 진출할 것을 우려했다. 영국은 러시아를 막기 위해 먼저 아프간을 침공해 점령했다가 혹독한 대가를 치렀다.

영국은 1839년 1차 영국-아프간 전쟁을 시작으로 1919년 3차전쟁까지 3차례나 아프간을 침략해 점령했다가 번번히 참혹한 피해를 입으며 물러나야 했다. 특히, 영국은 1차 아프간 전쟁에서 1만6500여명이 사망하는 재앙을 겪었다. 영국은 이 전쟁에서 4500명의 병력을 이끌고 아프간 수도 카불을 점령했다. 하지만, 그 다음해부터 궐기한 아프간 부족들의 반란 앞에 2만4천여명이 넘던 병력과 군속들 중 군의관 단 한명만이 카이버 고개를 넘어 인도로 생환했다.

영국은 2차 아프간 전쟁에서도 결국은 아프간에서 퇴각하는 등 큰 피해를 입었다. 영국은 세 차례의 전쟁 끝에 결국 아프간을 중립국으로 인정하는 조약을 맺고는 아프간에서 발을 빼야만 했다.

afghanistan british invasion

영국과 러시아는 아프간을 핵심 무대로 한 그레이트 게임에 몰두하다가, 유럽 대륙에서 독일의 부상을 견제하지 못했다. 독일의 부상에 따른 1차대전은 러시아 제국의 몰락뿐만 아니라 영국 제국이 쇠락하는 계기가 됐다.

2차대전 뒤 냉전 시대에도 아프간은 미국과 소련 양대 강국 사이의 중립국으로서 독립을 지켜왔다. 그러나, 1978년 아프간에서 소련의 영향을 받은 사회주의 성향의 군부 쿠데타가 일어나면서 아프간에서는 지금까지 지속된 전쟁의 불씨가 뿌려졌다.

쿠데타로 성립된 아프간 사회주의 정권에 대해 부족 세력과 이슬람 세력들이 거세게 반발했고, 미국은 이들 세력을 은밀히 지원했다. 소련은 아프간 사회주의 정권을 지원하려고 1979년 12월25일 크리스마스를 기해 일제히 침공했고, 이는 소련을 몰락시키는 첫 균열이 됐다.

afghanistan soviet

아프간 남성들이 파괴된 옛 소련 전차 앞에서 사진을 찍는 모습. 2014년 2월14일.

소련은 막강한 화력과 병력으로 아프간을 점령했으나, 국토의 대부분인 광막한 황야와 산악 지대에는 영향력이 미치지 못했다. 황야과 산악 지대는 이슬람 부족 세력들의 무대였다. 이들은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 파키스탄의 지원을 받는 저항군인 ‘무자헤딘’으로 변해서, 소련군들을 괴롭혔다.

특히, 이슬람권 세계 전역에서는 아프간의 무슬림 형제들을 도우려는 이슬람주의 전사들이 참전했다. 아프간 전쟁은 이슬람주의 무장세력의 산실이 됐고, 외국에서 온 무자헤딘들은 그후 본국으로 돌아가 이슬람주의 무장세력 운동의 주축이 됐다. 9.11테러를 주도한 알카에다를 창립한 오사마 빈라덴이 대표적이다. 빈라덴은 아프간 전쟁에 참여하면서 열렬한 이슬람주의 무장세력의 지도자로 변해갔다.

소련은 결국 1988년 아프간에서 일방적으로 완전히 철군했다. 소련의 아프간 전쟁은 소련 붕괴의 단초가 됐을뿐만 아니라, 냉전 이후 분쟁의 시발점이 됐다.

소련 철군 뒤 아프간의 무장군벌 사이의 내전이 벌어졌고, 1986년 극단적인 이슬람주의 세력인 탈레반이 집권했다. 탈레반은 소련의 아프간 전쟁 때 미국 중앙정보국의 지원을 받은 파키스탄정보부(ISI)가 키운 세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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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2011년 5월1일, 버락 오바마 당시 미국 대통령과 조 바이든 부통령 등이 백악관 상황실(Situation Room )에서 오사마 빈 라덴 사살 작전을 지켜보고 있는 모습.

오사마 빈라덴의 알카에다는 탈레반이 집권한 아프간에서 둥지를 틀고는 2001년 미국 뉴욕의 무역센터와 워싱턴의 국방부 건물인 펜타곤을 여객기로 공격하는 전대미문의 9.11 동시테러를 벌였다. 미국은 9.11테러에 대한 보복으로 알카에다가 숨어있던 아프간을 침공해 한달만에 탈레반 정권을 붕괴시켰다. 하지만, 이는 지금까지 이어지는 미국의 아프간 전쟁 수렁의 시작이었다.

아프간의 탈레반 정권 붕괴에 자신을 얻은 미국의 조지 부시 정권은 2003년 이라크 침공을 감행했다.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정권도 붕괴됐으나, 이라크는 곧 미국의 침공에 항의하는 내란의 무대가 됐다. 이 내란의 와중에서 알카에다를 비롯한 이슬람주의 무장세력들이 다시 세력을 회복했다. 이는 지금 시리아와 이라크를 점령하고 준국가 세력으로 행세하는 이슬람국가(IS) 탄생의 배경이 됐다.

아프간에서도 곧 탈레반이 세력을 회복해, 지금까지 내전을 벌이고 있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행정부는 출범한지 1년만에 다시 미군 병력을 증강해 아프간 내전을 평정하려 했으나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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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2015년 10월15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아프가니스탄 철군 연기를 발표하는 모습.

결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도 21일 새로운 미군 공세와 병력 증강을 시사하는 새로운 아프간 전략을 발표하게 된 배경이다. 2001년 미국의 아프간 침공으로 시작된 아프간 전쟁은 결국 서남아시아 지역에 이슬람주의 세력을 키우는 결과만을 초래했다. 탈레반이 세력을 회복했을뿐만 아니라, 이슬람국가도 아프간에서 세력을 키우며 탈레반과 경쟁하고 있다. 또 미국의 아프간 전쟁은 파키스탄에서도 이슬람주의 무장세력의 영향력을 넓히는 결과만 나았다.

아프간에서 탈레반 등 이슬람주의 세력의 재집권을 막지 못하게 되면, 파키스탄을 포함한 서남아시아 전역이 이슬람주의 세력의 영향권 하에 떨어질 위험이 크다. 이는 미국 등 서방 세계에게는 중요한 전략지역인 중동의 걸프 지역의 안보에 심대한 영향을 미친다.

미국으로서는 아프간에 탈레반 등 이슬람주의 세력을 방치한채 철수할 수도 없고, 계속 주둔하자니 더욱 수렁에 빠지는 딜렘마에 처해가고 있다. 미국도 영국과 소련 제국의 쇠락을 부추긴 아프간 딜레마에 빠져 있는 것이다. 미국은 과연 제국의 무덤인 아프간에서 성공적으로 빠져 나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