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프인터뷰] ‘택시운전사'의 결정적 장면에 대한 장훈 감독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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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택시운전사’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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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택시운전사’를 보는 동안 20년 전의 드라마 ‘모래시계’가 떠올랐다. 후배를 만나러 광주에 간 태수(최민수)는 후배가 계엄군의 총에 죽은 후, 도청으로 들어가려 한다. 그때 후배의 엄마가 그를 말리며 이렇게 말했다. “반장님은 안디야. 반장님은 타지 사람인 게, 살아있어야지. 살아서 늠들한테 우리 얘기를 해줘야지. 우리 말 안 믿을지 모릉께, 반장님 같은 타지 사람이 우리 얘기를 해줘야 써.” 태수가 부여받은 임무는 ‘택시운전사’의 재식(류준열)이 힌츠펜터(토마스 크레취만)에게 부탁한 것과 같다 “약속해줘요. 우리의 상황을 세계에 알려주겠다고.” 아무도 우리의 말을 믿지 않을 거란 두려움이 비극의 증인이 되어달라는 요청으로 드러난 것이다. 약 37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그날의 사건을 ‘폭동’으로 믿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는 걸 보면 이러한 두려움은 과장된 게 아니었다.

‘택시운전사’와 ‘모래시계’를 비롯해 ‘화려한 휴가’(2007)와 ‘26년’(2012), 그 외 광주의 그 날을 그린 소설과 드라마 또한 같은 두려움에서 출발한 이야기일지 모른다. 다만 ‘택시운전사’의 다른 점이 있다면, 그건 ‘골목’과 ‘샛길’이다. 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 작품들이 금남로에서 계엄군이 시민들을 저격한 비극을 고스란히 드러내려 하거나, 그날의 기억에서 출발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면 ‘택시운전사’는 그날 금남로 주변의 어느 골목을 비춘다. 비극의 현장에서 한 발 떨어져 있었지만, 모든 걸 본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은 샛길을 통해 빠져나와 그날의 진실을 알리려 했다는 이야기. 실제 당시 광주에 갔던 독일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와 그를 데려다준 ‘김사복’이란 택시운전사의 실화를 토대로 한 영화는 평범한 소시민이자, 외부인의 시선에서 경험한 광주의 그 날을 보여준다. 세상의 풍파에 후진으로 대응하던 택시운전사가 유턴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사람들’에서 찾는 것 또한 이러한 태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극 중에서 만섭은 딸에게 “아빠가 손님을 두고 왔어”라고 말하는데, 이때의 손님은 사실 힌츠페터를 포함한 광주의 사람들이다.

‘택시운전사’는 역사적인 비극을 다루는 영화인 동시에 2017년의 여름 대작 중 한편이다. 이미 ‘고지전’(2011)을 통해 6.25의 비극을 그렸던 장훈 감독에게도 영화의 소재와 크기가 어떤 균형을 이루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많았을 것이라 생각했다. 특히 영화의 후반부에 이어지는 클라이막스 시퀀스에 대해 물어보고 싶었다. 이야기상에서는 ‘사실을 알려야 한다’는 걱정과 인물들 사이의 감정적 공감이 폭발하고, 영화 밖에서는 역사적 사실성과 흥행에 대한 의지가 충돌하는 장면이었기 때문이다. 8월 13일까지 전국에서 약 793만 명을 동원한 ‘택시운전사’는 8월 14일인 오늘, 800만 명을 돌파할 예정이다. 장훈 감독을 만난 건, 지난 8월 11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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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택시운전사’는 ‘고지전’ 이후 6년 만에 나온 작품이다. ‘고지전’ 이후 제안이 많았을 텐데, 차기작이 오래 걸린 이유는 무엇이었나.

= 제안이 너무 많이 와서 전화번호를 바꾸기도 했다. 나로서는 제안이 오는 작품들에 대해 시간을 쓸 수밖에 없었다. 한 편 한 편 다 소중한 작품이니, 일단 보고 거절을 하더라도 직접 만나서 거절을 했다. 그것만 해도 엄청난 시간이더라. 또 혼자만의 시간을 좀 갖고 싶었다. ‘영화는 영화다’에서 ’고지전’까지 만드는 데에 3년 반이 걸렸다. 너무 지쳤고, 나중에는 영화를 계속해야 할 이유를 모르는 상태가 됐었다. 이 힘든 일을 왜 계속 해야하지? 이런 식이었다. 그런 이유를 찾는 데에 시간이 많이 걸렸다.

- ‘택시운전사’도 제작사로부터 제안받은 작품으로 알고 있다. 광주 민주화 운동이 배경인 영화인데, 이미 이 소재를 다룬 영화나 소설 등이 많았다. 그런데도 끌렸던 부분이 있었다면?

= 처음에는 부담스러웠다. ‘고지전’도 6.25 전쟁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라서 부담을 많이 느꼈었다. 몸보다 심리적으로 힘들더라. 그런 기억이 있어서 ‘택시운전사’도 쉽게 볼 수 없었다. 그런데 아무런 선입견 없이 관객 입장에서 봤을 때, 인물들의 이야기가 마음에 남았다. 주인공 만섭은 그냥 평범한 인물이다. 나 역시 평범한 사람으로서 공감하는 게 있었다. 나라면 유턴할 수 있었을까? 그런 생각을 하게 했다. 만약 내부인의 시각으로 보는 광주의 이야기였다면 엄두를 못 냈을 것이다.

- 80년 광주를 다룬 다른 작품 중 감독 개인적으로 인상적인 게 있었나?

= ‘박하사탕’이 인상적이었다. 이번 영화를 준비하는 동안에는 소설 ‘소년이 온다’를 읽었다. ‘모래시계’는 더 어릴 때 나온 건데, 그때 드라마를 다 챙겨보지 못했다.

- 금남로 장면에서 골목에 있는 인물들을 보여주는 장면을 보고 ‘택시운전사’의 태도가 여기에 있다고 생각했다. 비극의 실체를 묘사하기보다는 비극을 옆에서 지켜보는 영화라고 할까. 하지만 영화감독으로서는 비극의 실체를 정면으로 그려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을 것 같다.

= 아무래도 그때의 광주를 얼마나 제대로 다룰 수 있는가에 대해 기대하는 분들이 많은 것 같다. 그때 광주에서 10일 동안 벌어진 사건들은 매우 참혹했고, 또 매우 다양했다. 그것을 영화 한 편에 담아내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택시운전사’는 특히 두 명의 외부인을 따라가는 영화이고, 이들에게 허락된 시간은 1박 2일뿐이다. 전체를 다루는 것은 기획의 성격상 어려웠다. 부분적으로 다룰 수 밖에 없었지만, 관객에게 울림을 줄 수 있다면 관객이 이후 실제 기록들을 찾아보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싶었다. 연출자로서의 해석이나 시도를 드러내서 관객이 만든 사람의 시선을 강하게 느끼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만섭과 함께 그 자리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이기를 바랐다.

- 개인적으로는 광주역 장면에서 그런 느낌이 강했다. 사람들이 춤도 추고, 먹을 것도 나누는 밝은 분위기의 장면이었다. 광주의 비극을 그린 다른 이야기에서는 보지 못했던 장면 같다.

= 실제 기록에 있는 모습들이 그랬다. 영화에 차마 담을 수 없을 만큼 처참한 상황이 많았지만, 그 기간 동안 광주에서는 절도사건 하나 없이 모든 치안과 질서가 유지됐다. 서로 밥을 해서 나눠먹었다는 기록과 사진들을 보면서 감동했다. 분명 그 또한 당시 광주의 모습 중 하나였으니까. 영화 속 만섭에게는 데모를 이렇게도 할 수 있다는 걸 경험하게 하는 상황이다. 그곳에서 춤추고 노래하는 할아버지를 보면서 만섭이 “여기는 데모를 이렇게 해?”라고 말하는 대사도 있었다. 하지만 송강호 선배가 표정으로 다 보여주었기 때문에 나중에는 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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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위르겐 힌츠페터 기자를 만났다고 했는데 무엇부터 물어보고 싶었나?

= 힌츠페터는 자신이 겪은 상황들을 기록으로 남겼고, 인터뷰도 많이 했다. 하지만 택시운전사에 대한 기록은 그분이 갖고 계신 정보 밖에 없다. 김만섭은 영화적으로 재구성할 수 밖에 없는 인물인데, 영화는 실제 인물과 재구성한 인물을 함께 붙일 수 밖에 없는 거다. 그래서 일단 우리가 재구성한 이야기가 힌츠펜터가 겪은 실화의 허용범위 안에 있는지가 궁금했다. 영화적 재구성이라고 해도 어떤 선이 있는 거니까. 긴 줄거리를 독일어로 번역해 보여드렸는데, 읽는 동안 고개를 끄덕끄덕 하시더라. 읽고난 후에는 응원의 말을 해주셨다.

또 하나는 캐릭터를 좀 더 입체적으로 만들기 위한 정보였다. 처음 받았던 시나리오의 인물들은 좀 평면적이었다. 그래서 힌츠페터에게 광주에는 왜 오게 됐는지를 먼저 물었다. 어떤 사연이 있기를 바랬지만, “기자라서 갔다”고만 하시더라.(웃음) 그래서 왜 기자가 됐냐고 물어봤는데, 손가락을 비비면서 돈 때문이었다고 했다. 별다른 사연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영화적으로 더 많은 걸 집어넣고 싶지는 않았다. 영화에서는 한동안 기자로서의 감각이나 열정을 잊고 살던 사람이 다시 심장이 뛰는 느낌을 찾게 된다는 정도로 설정했다. 그런데 사실 그리 잘 전달된 것 같지는 않다.

- 과거 KBS에서 위르겐 힌츠페터를 인터뷰했던 다큐멘터리 ‘푸른 눈의 목격자’를 봤다. 힌츠페터는 기록에 대한 집착이 있는 사람이다. 영상뿐만 아니라, 당시 찍었던 사진도 매우 많았다. 군인에게 검문을 당할 때도 사진을 찍었고, 함께 취재했던 다른 동료를 찍은 사진도 있었다. 그런데 왜 김사복의 얼굴이 나오는 사진은 한 장도 없었을까 궁금했다.

= 나도 그걸 여쭤봤다. 왠지 그분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제대로 찍힌 사진은 없더라. 멀리서 김사복을 찍은 사진은 있는데, 그걸로는 식별이 안됐다. 사실 처음에는 힌츠페터가 김사복에게 가진 감정의 이유가 궁금했다. 저렇게 만나고 싶어 할 정도면 서로에 대해 아는 게 많을 것 같은데, 자신보다 나이가 좀 더 많고, 샛길을 찾을 정도로 기지가 있었다는 정도만 기억을 하더라. 생각해보면 광주의 그 상황에서 언어도 다른 두 사람이 개인적인 이야기를 많이 할 수는 없었을 것 같다. 다만, 여정을 함께 하면서 말하지 않아도 서로 느낄 수 있었던 교감이 있었을 것 같았다.

- 평범한 소시민의 극적인 변화를 묘사하는 영화에서 송강호는 매우 좋은 캐스팅이다. 하지만 극 중 만섭의 변화는 ‘변호사’에서 송강호가 연기한 우석의 변화를 연상시킨다. 관객의 입장에서는 이미 한 번 본 것으로 생각할 여지가 크다. 감독으로서도 고민했던 부분일 것 같다.

= 두 캐릭터의 차이점에 무엇일까에 대해서는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크게 보면 비슷하다고 볼 수 있지만, 연출자로서 다르다고 정리한 건 있다. ‘변호인’의 우석은 각성을 하고난 후 사실 다른 인물이 된다. 하지만 만섭은 어렵게 용기를 낸 후에도 평범한 삶을 살아간다. 만섭은 영웅적인 인물이 아닌 것이다. 그 차이를 생각했다. 또 송강호 선배가 우석과는 다른 인물로 만섭을 만들어준 게 큰 역할을 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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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섭이 김사복이 되는 설정과도 연결되는 부분 같다. 만섭은 왜 자신의 본명을 숨긴 걸까에 대해 여러 의견이 있다. 광주에서 자신을 위해 희생한 사람들이 더 많다는 생각 때문일 수도 있다. 또 하나는 그처럼 위험한 일에 다시 엮이면 안 된다는 판단일 수도 있다.

= 비슷하게 생각했다. 본명을 알려주면 딸을 지키지 못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자신이 어려운 용기를 내기는 했지만, 그 용기를 밀고 갈 수는 없었을 것이다. 가족을 지켜야 하는 가장의 입장에서는 매우 위험한 일이니까.

- 실제 ‘김사복’은 힌츠페터가 알고 있는 택시운전사의 이름이다. 하지만 이 이름이 가명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건 어떤 계기였나?

= 내가 이 영화에 합류하기전에 이미 제작사에서 많은 조사를 했다. 비슷한 연령대의 김사복이란 남성을 다 찾은 후, 그 분들의 사진을 구해서 힌츠페터에게 보냈다고 하더라. 그런데 힌츠페터는 그 사진들 중에서 자신이 만난 김사복을 찾지 못했다. 그래서 이중에도 없다면 이름이 가명일지도 모른다고 판단한 거다. 물론 실제 본명인지, 가명인지는 알 수 없다.

- 토마스 크레취만은 ‘택시운전사’의 이야기에 대해 어떤 이야기들을 했는 지도 궁금하다.

= 개인적으로는 ‘피아니스트’의 인상적인 연기 때문에 만났던 배우다. 사실 외부에 알려진 독일 배우가 그리 많지 않다. 현지에서는 다들 텔 슈바이거를 연기했는데, 그분은 터프가이 느낌이라 잘 맞지 않았다. 크레취만에게는 어렵게 연락을 했는데, 출연동의는 쉽게 받았다.

크레취만은 흔히 ‘나치 전문 배우’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여기에는 크레취만 자신의 철학이 있다. 그는 자신이 독일의 배우이기 때문에 독일이 잘못했던 과거를 그리는 영화에 독일인으로서 참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게 독일 배우로서의 의무와 책임이라는 거다. 역사적인 의식이 강한 분이기 때문에 우리가 시나리오를 전달했을 때도 이것이 한국에서 매우 중요한 역사이고, 게다가 독일인 기자가 이 사실을 세상에 알렸다는 사실을 접한 후 독일인으로서 출연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처음 만났을 때는 그리 깊은 이야기를 할 필요가 없었다. 다만 다른 자료를 더 볼 수 있냐고 했서 우리가 갖고 있던 자료를 전달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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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택시운전사’는 역사적 비극을 그린 영화인 동시에 2017년 여름 극장가의 대작 중 한편이다. 비극을 다루는 태도를 견지하는 한편, 영화의 크기에 대한 기대를 충족시켜야 한다는 점에서 고민이 많았을 것 같다.

= 그랬다. 정말 여러 가지가 다 연관된 고민이었다. 연출자로서는 관객에게 어떤 입장을 강요하고 싶지 않았다. 연출이 보이지 않았으면 했다고 할까. 촬영이나 음악을 쓰는데에 있어서도 색깔을 드러내지 않는 쪽이 좋겠다고 했었다. 그런 한편 관객의 동의를 얻으려면 인물에 집중해야만 했다. 만섭에게 동화되어서 감정을 느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우리에게는 광주 민주화 운동이 하나의 트라우마이고, 마음의 빚이기 때문에 아프고 무겁게 느낀다. 하지만 관객들이 현장에 있는 것처럼 느낄 수 있다면 또 다른 감정을 경험할 수 있을 거로 생각했다.

- 개인적으로 후반부의 차량추격신은 그런 태도에서 좀 벗어난 것 같았다. 영화의 톤이 갑자기 다른 단계로 이동한 느낌이었다. 슬프다기보다는 과잉된 것처럼 보였고, 장훈 감독이 이전 작품에서 보여준 연출의 톤과도 다르다고 생각했다. 여러 가지 복합적인 고민에서 나온 장면이었을 것 같다.

= 정말 힘들었다. 제일 힘든 장면이었다. 또 제일 찍기 어려운 장면이었다. 그 장면의 설정은 처음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부터 있었다. 초고에는 수십 대의 택시가 따라붙었다. 지금보다 더 대규모의 장면이었다. 길이와 내용을 떠나 역사를 다루는 입장에서 이 장면이 과연 맞는 건가 싶었다. 아무리 영화적인 표현이라고 해도 말이다. 그런 고민이 제작 초기부터 가시처럼 박혀 있어 불편했다. 참여한 스텝들도 의견이 갈렸다. 촬영감독과 음악감독은 그 장면이 영화에 맞지 않는다고 했다. 나도 좀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또 이 작품을 쓴 작가와 제작사, 투자사, 또 다른 배우와 스탭들은 이 장면이 필요하다고 하더라. 이 부분에 대한 이야기를 정말 많이 했다. 결국에는 내 역할이 이 장면을 잘 찍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실제 그때 광주에서 택시기사분들이 큰 역할을 했고, 위험한 상황도 많이 겪으셨다. 그런 이야기를 카체이싱이란 형태로 바꿔서 묘사한다는 입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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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시 역사를 다루는 건 어려운 일인 것 같다.

= 정말 어렵다. 차기작은 사극인데, 그것도 어려울 것 같다.(웃음)

- 차기작은 세종대왕과 장영실의 이야기를 그린 ‘궁리’로 알고 있다. 이 영화의 제작은 언제부터 시작하나.

= ‘택시운전사’와 관련된 일정이 다 끝난 후, 빠르면 9월부터 본격적으로 시나리오 작업에 들어갈 거다.

- ‘고지전’ 이후 6년이 걸렸지만, 차기작의 속도는 더 빨라질 것 같다. 앞서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동안 영화를 해야하는 이유를 찾아야 했다고 했는데, 이제 이유를 찾은 건가.

= 어떤 일이든 할 때는 이유를 알고 해야한다. 알면 알수록 더 좋은 판단을 할 수 있다. 그때는 그런 걸 다 잃어버렸던 거다. 스트레스와 상처를 너무 많이 받았다. 영화를 해야하는 이유를 다시 찾았는데, 처음보다 더 설득력 있는 이유를 찾은 것 같다. 시간은 오래 걸렸지만, 영화를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알 것 같다.

- 왜 계속 영화를 하고 싶은가.

= 영화를 하는 이유는 사람에 대한 고민을 계속할 수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영화를 만드는 동안에는 그런 질문을 계속 던질 수 있다. 그게 나한테는 가장 흥미로운 일이고, 매력적인 일이다. 그래서 영화를 만들면 내가 가장 궁금해하는 일을 가장 좋아하는 일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웃음)

- 이 인터뷰가 나갈 즈음에는 ‘택시운전사’의 관객 수가 800만명을 넘어서 1,000만 명에 가까워 질것 같다.

= 아직 상영중인 영화이기 때문에, 내가 흥행영화의 감독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동안 연출자로서 다른 사람의 돈을 받아 만드는 영화이니, 손익분기점을 넘기기를 바랬다. 만약 그보다 더 수익을 남길 수 있으면 행복한 일이고. 엄청난 결과는 기대하지 않는다. 영화에 참여한 사람들이 만족할 만한 결과가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겠지만, 모두 만족할 수 있는 정도면 좋겠다. 앞으로 만들 다른 작품에서도 수익이 어느 정도 남는 결과가 나오기를 바란다.

- 그런데 그게 가장 어려운 거 아닌가?

= 그래서 그게 내 목표다.(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