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사례를 중심으로 대나무숲에서 '참글'과 '주작글'을 가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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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페이스북에 '대나무숲' 없는 대학교가 없을 정도로 익명 제보 게시판이 인기다. 그런데, 이 게시판에 올라오는 글들을 다 믿을 수 있을까?

catharine conley

지난 7월 31일 페이스북 '한양대학교 대나무숲'에는 채널 A의 '하트 시그널'에 대한 글이 하나 올라왔다. 해당 작품은 대본 없는 '실제 상황'을 표방하는 동거 프로그램이다.

남 셋, 여 셋 일반인 여섯 명이 한 집에서 일상을 보내고 밤마다 마음이 가는 사람에게 문자를 보내는 콘셉트.

그런데 이날 대나무숲에서 제보자는 "그 프로그램 리얼 아니고 드라마. 저희 언니도 나갈 뻔했다"며 "방송국 사람들 정말 엄청나게 꼼꼼하고 리얼같은 대본을 만든다"고 주장했다.

사실 확인을 할 수 없는 이 글에 출연진이 직접 등판했다. 해당 방송에 출연 중인 '강성욱', '김세린' 씨가 본인들의 아이디를 통해 댓글을 달았다.

"대본은 한 줄짜리 용지마저도 받아본 적이 없습니다." -강성욱/페이스북 댓글

"대본 있었으면 저 대본 찢고 나왔을 거예요. 흐극....있다고 하시는 분들은 절 두 번 죽이시는 거예요." -김세린/페이스북 댓글

그러니까, 한양대학교 페이스북에 올라온 제보자의 주장은 그냥 하나의 '설' 이었다는 얘기다.

사실 하트시그널에 대본이 있고 없고는 중요한 게 아니다. 문제는 이런 허위 제보가 좀 더 민감한 사안의 범주 안에 들어갈 때 생긴다.

지난 2일에는 동국대학교 페이스북에 '1인 1 탈의실 1 샤워실'을 제공하는 피티센터에서 샤워하다가 린스를 짰는데 질감이 이상해서 신고했더니 정액이었다는 내용의 글이 올라왔다.

사진이 첨부된 해당 글은 하루 만에 커뮤니티와 소셜미디어를 통해 번졌고, 조작한 제보라는 비난을 받았다. 대부분은 알고 있을 것이다. 린스 통에 '짤 수 있을 만큼'의 정액을 채우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을.

곧바로 동국대학교 대나무숲은 '해당 제보는 익명의 제보자로부터 받은 내용이며 사실관계가 입증되지 않았다'며 '해당 제보 게시물에서의 특정 성별 혐오를 조장하는 분쟁이 일어나고 있으며, 외부 유저들의 유입을 통한 무분별한 비방과 욕설로 인해 정상적인 토론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라고 밝히고 이 글을 삭제했다.

동국대학교 대나무숲 페이스북 페이지에 따르면 원 제보자 역시 글을 내려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대나무숲에서 소설을 쓰기란 이렇게나 쉽다.

그러나 그렇다고 대나무숲이 없어져야 한다는 이야기는 절대 아니다.

사안이 중하면 중할수록 대나무숲은 순기능을 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지난 27일 연세대학교 대나무숲에는 '교수가 수백만 원대 후원금을 요구했다'는 내용의 제보 글이 올라왔다.

catharine conley

해당 글에 따르면 "1학점짜리 운동 수업 담당 교수(강사)가 연구 후원금 명목으로 200만 원을 요구했다"는 것.

앞의 두 경우와는 달리 이 경우엔 학교 차원에서 즉각 조사가 이뤄졌다.

동아일보에 따르면 즉각 조사에 들어간 연세대 측 관계자는 “대나무숲 글 이전부터 다른 학생들의 신고가 있어 학과 차원에서 조사가 이뤄졌고 연세대 졸업생인 A 강사가 후원금을 요구한 사실을 확인했다”며 “즉각적으로 연세대 모든 강의에서 배제했고 당연히 2학기 수업도 취소됐다”고 밝혔다.

'대나무숲'의 순기능이다. 이 강사만 대나무숲을 통해 처벌받은 건 아니다. 지난 3월에는 건국대학교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서 동급생을 성추행한 한 학생의 행각이 피해자의 언니를 통해 밝혀져 무기정학 처분을 받고 서울 광진경찰서에서 수사에 착수한 바 있다.

지난 일주일 사이에 일어난 이 세 가지 사례를 제보자의 입장에서 뒤집어 생각해보면, 대학교 대나무숲에 올라온 글들을 어떤 자세로 할지 마음을 정할 수 있다.

1. 학칙이나 법에 어긋나는 사안이라면 대학이나 경찰의 조사가 시작될 수 있다.

2. 조사가 필요한 내용이 아니라면 마음껏 아무 글이나 쓸 수 있다.

3. 마음껏 쓰는 글을 믿을지 안 믿을지는 우리 마음이다.

4. 반대로 조사가 필요한 사안에 관해 썼다면, 진짜일 가능성이 높다. 실전을 각오한 거니까.

5. 대나무숲에 올라오는 연애 일기장이 하트시그널보다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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