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의 숲'의 유재명을 있게 만든 8년 전의 1분 30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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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30일, tvN 드라마 ‘비밀의 숲’이 종영했다. 하나의 살인사건이 검찰을 비롯한 권력층 내부의 비리를 줄줄이 끌어내는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황시목(조승우)이었지만, 그를 주인공으로 만든 건 이창준(유재명)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말하자면 그는 비밀의 숲에 처음 나무를 심고, 길을 낸 설계자다. 이창준은 자신이 이러한 일을 벌인 이유를 유서로 드러낸다. “이제 입을 벌려 말하고 손을 들어 가리키고 장막을 치워 비밀을 드러내야 한다. 나의 이것이 시작이길 바란다.” 황시목은 자신의 몸을 던진 동시에 사람의 목숨을 장악한 그를 ‘괴물’이라고 부른다. 이 괴물의 최후에 ‘비밀의 숲’을 봐왔던 시청자들은 공명했고, 그를 연기한 배우 유재명은 강렬한 최후의 얼굴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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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유재명이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동룡 아버지를 연기했을 때만해도 그가 이창준 같은 인물로 다시 시청자와 만날 수 있을 거라 생각한 사람은 별로 없었을 것이다. 그는 ‘응답하라 1988’ 이후 드라마 ‘욱씨남정기’, ‘뷰티풀 마인드’, ‘화랑’, ‘힘쎈여자 도봉순’을 통해 다른 남자 중년배우들처럼 누군가의 아버지이거나, 누군가의 직장상사를 연기했다. 하지만 ‘비밀의 숲’을 통해서 유재명은 이창준의 유서에 나온 것처럼 “사회 해체의 단계”에 놓인 이 시대를 드러낸 얼굴이 되었다. 이창준이 ‘비밀의 숲’의 설계자였다면, 배우 유재명을 이창준으로 만든 설계자는 누구인지 궁금했다. 그리고 그 시작을 8년 전의 1분 30초에서 찾았다.

유재명은 연극배우였다. 20년 넘게 연극만 했다. 단역으로 영화에도 출연했다. ‘범죄와의 전쟁 : 나쁜놈들 전성시대’, ‘자칼이 온다’, ‘관상’, ‘동창생’, ‘제보자’, ‘베테랑’ 등등이다. 하지만 역시 유재명을 알린 작품은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이다. 그리고 이 드라마의 연출자는 신원호 PD다. 신원호 PD는 유재명을 어떻게 발견한걸까? 지난 2015년의 한 기사에 힌트가 있었다. 당시 ‘헤럴드POP’의 보도에 따르면, 신원호 PD는 영화 ‘바람’(2009)에서 유재명의 연기를 본 후, 그에게 ‘응답하라 1994’를 제안했다. 하지만 이때는 출연이 성사되지 못했고, ‘응답하라 1988’에서 함께 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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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한 감독이 연출한 영화 ‘바람’은 ‘응답하라 1994’의 주인공 중 하나였던 배우 정우를 발견하게 한 작품이기도 하다. 부산을 배경으로 어느 고등학생의 거친 성장기를 그렸다. 이 영화에서 유재명이 맡았던 배역은 주인공 짱구의 과외선생이었다. 영화 의 스탭리스트에 나온 배역의 이름은 ‘문학종’. 유재명은 약 1분 30초 정도 등장하는데, 짱구에게 공부를 하라고 다그치는 일장 훈계를 한다. 이 장면은 단 한 차례의 편집도 없이 하나의 컷으로 촬영됐다. 다음 대사를 보고 그의 연기를 상상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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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구, 턱 괴지마. 복나간다, 복! 니 몇점 정도 맞을 거 같애. (그래도 한 200점은 안맞겠습니까?) 그래? 오늘 함 마 200대 세리 맞아볼까? 어? 니 이래가지고는 200점이 아니라 20점도 못 맞아. 알겠어? (선생님, 갠또 때려도 그보다는 잘 맞을 자신 있습니다.) 어이, 그래 고생많다. 갠또 때리느라고.... 어? 니 이래갖고는 아무것도 안돼. 알겠어? 니, 대학못가믄 어찌될 거 같애. (대학 간다니까예.) 그래 가, 가, 가. 30점 맞아 가면 되겠네. 어? 니 임마 부산에 있으면 비졸이 인거야, 비졸이. (비졸이가 뭔데예?) 비고도리 임마! 고도리도 아니고 비고도리.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비고도리. 어? 니, 지금 만나는 친구 나중에 다 뭐할거 같애? 전~부 비졸이 인기다. 비졸이. 포장마차 가고, 노가다 하고, 맨날 친구들하고 술쳐먹고 어울리고. 어? 닌 책방하면 돼 부산에 있으면. 근데, 사장은 안돼. 왜? 느그 형님이 있으니까. 니는 부사장 해야돼. 오케이. 오늘 수업 그만하자. X빤다고 공부하나? 어? (예. 예) 이씨... 긴까 쫌... 웃지마~! 좀 열심히 해가지고 좋은 대학가서 엄마 좀 행복하게 해드리고, 좋은 가시나 싹싹 꼬셔가지고 뽀뽀도 쭉쭉쭉 해보고 임마.... 어? 캠퍼스의 낭만 이 자슥아. (크으~~) 크~ 지랄하고 있네. 이 쌔끼가 진짜로. 웃지마. 허리 펴. 내를 봐. 샘 나이가 내일 모레 마흔이야. 마흔! 점수 1점 때문에 사람의 인생이 바뀐다. 알겠어?”


*갠또
: ‘갠또’는 일본어의 ‘캔또’를 뜻하는 듯 보인다. ‘けんとう’는 방향, 부근, 어림, 예상, 예측, 짐작등을 뜻하는 단어다.

물론 신원호 PD의 발견뿐만 아니라 '비밀의 숲' 제작진의 선택이 아니었다면, 유재명의 이창준도 없었을 것이다. '동룡이 아버지'에게서 이창준의 모습을 발견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니 말이다. '스포츠한국'에 따르면, 유재명은 지난 7월 29일 "시청자들께서 많은 관심과 사랑을 보내주셔서 감사하다. 좋은 분위기에서 막을 내리도록 마지막까지 함께 해주시길 바란다. 앞으로 또 다른 모습으로 인사드리겠다"며 종영인사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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