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 '성전산'을 둘러싸고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유혈 충돌이 격화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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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Palestinian protester uses a sling to hurl stones towards Israeli troops during clashes near the border between Israel and central Gaza Strip July 21, 2017. REUTERS/Ibraheem Abu Mustafa TPX IMAGES OF THE DAY | Ibraheem Abu Mustafa / Reu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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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유대교, 기독교 3대 종교의 성지인 예루살렘의 성전산이 다시 유혈 분쟁 중심지로 떠올랐다.

아에프페(AFP) 통신은 22일 예루살렘 동쪽의 알아자리야에서 17살 팔레스타인 청년이 이스라엘군 쪽의 총격으로 숨졌다고 23일 보도했다. 같은 날 근처에서 18살 팔레스타인 청년이 화염병 폭발로 숨졌다. 지난 14일 성전산을 둘러싼 충돌이 시작된 이래 사망자는 13명으로 늘었다.

이번 충돌은 14일 성전산의 무슬림 관리 지역에서 나온 팔레스타인계 이스라엘인 3명이 북쪽 출입구를 지키던 이스라엘 경찰관 2명을 사살한 게 발단이 됐다. 이스라엘 쪽은 이슬람 사원 경내까지 추격해 총격범들을 사살했다. 이스라엘 쪽이 사후 조처로 성전산 출입구에 금속탐지기를 설치하자 팔레스타인인들이 돌과 화염병을 던지는 격렬한 반대 시위에 나서면서 충돌이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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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21일에는 양쪽에서 6명의 사망자가 나왔다. 이날 예루살렘과 그 주변에서 팔레스타인 청년 3명이 이스라엘군 및 이스라엘 정착촌 주민이 쏜 총에 숨졌다. 같은 날 밤에는 팔레스타인 서안지구의 이스라엘 정착촌 주민 집에 오마르 알아베드(19)라는 팔레스타인 청년이 침입해 일가족 3명을 흉기로 살해했다. 알아베드는 범행 전 페이스북에 “우리 여성들과 젊은 남자들이 불법적으로 살해당하고, 우리의 아크사는 신성 모독을 당하고 있다”는 글을 남겼다. 그는 총상을 입고 병원으로 후송됐다. 잇단 충돌로 팔레스타인인 400명이 넘게 다친 것으로 추산된다.

성전산은 이슬람 선지자 마호메트가 승천한 곳에 세웠다는 바위돔사원(황금돔사원)과 알아크사사원이 있는 곳으로, 무슬림들이 메카와 메디나에 이어 세 번째 성지로 받드는 곳이다.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이슬람에서는 다른 아들 이스마엘이라고 설명)을 제물로 바치려 했다는 곳이기도 하다. 유대교에서는 솔로몬성전 터로 추앙받는다. 최근 수년간은 비교적 조용한 편이었지만 ‘화약고 중의 화약고’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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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전산은 1967년 중동전쟁(6일전쟁)으로 이스라엘이 동예루살렘을 점령한 후 이-팔 분쟁의 불씨 역할을 해왔다. 이스라엘은 예루살렘 전체를 정복했지만, 무슬림들이 십자군전쟁 때 되찾은 이래 관리해온 성전산에 대해서는 ‘종교적 주권’을 인정했다. 출입문에 이스라엘 경찰관들을 배치하되 성전산 내부는 요르단이 지원하는 이슬람 재단이 관리하게 했다. 그러나 이스라엘 강경파는 유대교 성지의 회복을 주장하고, 무슬림들은 이런 동향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충돌해왔다. 2000년에는 이스라엘 야당 지도자 아리엘 샤론(나중에 총리 역임)이 무장 경찰 수백명을 대동하고 성전산을 방문해 2차 인티파다(팔레스타인 민중 봉기)를 촉발시켰다.

팔레스타인 쪽은 금속탐지기 설치를 성소에 대한 주권 침해 시도로 받아들인다. 이스라엘 쪽은 테러 위험을 이유로 여성과 50살 이상 남성으로만 성전산 출입을 제한하고 나섰다. 이런 조처에 중국 방문 일정을 단축하고 돌아온 마무드 아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은 이스라엘과의 모든 교류 중단을 선언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이번 사안을 논의할 회의를 24일 소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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