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군자 씨가 별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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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백 여성가족부 장관이 지난 10일 오전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쉼터 나눔의집을 방문해 김군자 할머니와 인사를 나누며 손을 꼭 잡고 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군자 씨가 23일 오전 8시4분 경기도 광주 나눔의 집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1살.

나눔의 집 설명에 따르면, 1926년 강원도 평창에서 태어난 김 할머니는 10대에 부모를 여의고 17살의 나이로 중국 지린성 훈춘 위안소로 강제동원됐다. 몇 번의 탈출 시도는 번번이 실패로 돌아갔다. 저항하다가 맞아 왼쪽 고막이 터진 할머니는 평생 왼쪽 귀가 들리지 않았다.

할머니는 지난 2007년 2월 위안부 결의안 채택을 위해 열린 미국 의회의 일본군 위안부 청문회에서 “해방 후 38일을 걸어 조국에 돌아왔다”며 “위안소에서 하루 40여명을 상대로 성노리개가 돼야 했고, 죽지 않을 만큼 맞아 고막이 터졌다”고 증언했다.

전쟁이 끝난 뒤에는 함경북도 성진으로 가 두만강을 넘었다. 당시 함께 강을 넘던 친구 1명은 강물에 떠내려가 죽는 것을 지켜봤다. 그렇게 죽을 고비 끝에 고향에 돌아와 위안소로 끌려가기 전 결혼을 약속했던 남자와 생활했지만 남자는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떠났다. 어린 아이도 5개월 만에 숨졌다. 그때부터 1998년 나눔의 집으로 오기까지 할머니는 혼자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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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8월 14일 오전 광주시 퇴촌면 나눔의 집에서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과 안신권 소장이 세상을 먼저 떠난 할머니 흉상 앞에 모였다. 사진은 왼쪽부터 이옥선, 박옥선, 강일출, 김군자 할머니.]

할머니는 일본 정부로부터 공식 사과와 정당한 배상을 받는 것이 소원이었다. 할머니는 한국 정부로부터 받은 배상금 등을 모아 아름다운 재단에 1억원, 나눔의 집에 1000만원, 퇴촌 성당에 학생들 장학금으로 1억5000만원 등을 기부한 바 있다.

빈소는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차병원 지하 1층 특실에 차려졌다. 발인은 25일, 장지는 나눔의 집 추모공원이다.

김 할머니의 별세로 정부에 등록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239명 가운데 생존자는 37명으로 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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