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 학교'의 "예쁜 마음만 가져오라"는 말이 말도 안 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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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이승한의 술탄 오브 더 티브이 엠넷 '아이돌 학교'

지난 몇 달 심심찮게 들었던 질문은 “왜 엠넷 '프로듀스 101' 시즌 2를 다루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쇼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나 시청률이 타의 추종을 불허하게 높은데, 어째서 글이나 방송에서 한 차례도 이 프로그램을 언급하지 않느냐고 묻는 이가 제법 많았다. 심지어 어떤 이는 질문 뒤에 힐난을 숨기곤 했다. 지난 시즌보다 오히려 그 열기가 더 뜨거운데 이 정도 이슈를 다루지 않는 건 평론가로서 직무유기 아니냐. 내 주변에 사람들은 죄다 욕하면서도 프로그램 보고 투표도 하던데, 당신도 그러고 있지 않느냐 등등. 프로그램이 끝난 뒤라 솔직하게 이야기하자면, 일 때문에 첫 몇 회를 확인한 것 외에는 '프로듀스 101' 시즌 2를 보지 않았다. 시청하는 게 심적으로 괴로운 프로그램이었기 때문이다. 더 정확히 말해 혹시라도 배타적으로 응원하고 싶은 소년이 생기게 될까 두려워 차마 볼 수 없었다.

엠넷이 아무리 미사여구를 동원해서 “사회 초년병인 연습생들의 꿈을 실현시켜주는 프로그램”이라고 말을 해도 '프로듀스 101' 시리즈의 본질은 크게 바뀌지 않는다. 엠넷은 아직 데뷔도 안 한 연습생들의 외모, 노래, 춤부터 인성, 사생활 등 팔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을 팔면서, 판매 실적이 저조한 연습생들을 공개적으로 아래에서부터 차례로 쳐낸다. 시청자들은 이 잔혹한 게임을 비난하지만, 응원하는 연습생을 위해 뭐라도 해줄 수 있는 방법은 오로지 게임의 룰에 따라 투표에 참여하는 것밖에 없다는 사실도 안다.

'프로듀스 101'이 참고한 일본의 아이돌 그룹 AKB48 또한 팬들의 투표를 거쳐 멤버들의 포지션을 정하지만, 선거가 매년 있기에 이번 선거 결과가 안 좋더라도 다음 선거를 기약할 수 있다는 희망이 있다. 반면 '프로듀스 101'은 최종 11위 안에 들지 못하면 그룹의 멤버가 될 수 없는 시스템이다. 한층 더 절박하고 잔혹해진 시스템 앞에서, 연습생의 팬들은 지하철 광고판을 빌려 행인들에게 투표를 부탁하고, 서로가 서로에게 ‘남는 픽(개별 시청자가 행사할 수 있는 투표수) 있으면 우리 애 좀 찍어 달라’며 상부상조를 도모해야 했다.

이런 점을 두고 수많은 평자들이 시즌 1 때부터 ‘인질극’이라는 표현을 사용해 쇼를 비판했지만, 아주 냉정하게 말하면 이 시스템은 인질극보다는 앵벌이에 가깝다. 인질극은 하다못해 대가를 지불하면 악몽이 끝날 거라는 희망이 있지만, 불행하게도 '프로듀스 101'의 시스템은 그렇지 않다. 프로젝트 팀으로 데뷔를 한 뒤에도 팀은 여전히 CJ E&M의 자장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멤버들은 약속된 프로젝트 팀 활동이 끝난 뒤엔 저마다의 기획사로 돌아가 재차 새로운 그룹으로 데뷔를 해야 한다. 마음을 써야 하는 상황은 반복해서 돌아오고, 데뷔가 간절한 선한 눈의 연습생들을 돕기 위해 배후의 배를 불리는 악순환을 피할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누구 하나에게 마음이라도 주게 되면, 꼼짝없이 울며 겨자 먹듯 이 게임의 일부가 되어 투표를 해야 하는 처지가 되는 것 아닌가. 결국 '프로듀스 101' 자체를 보이콧하는 것 외에 내가 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없었다. 나 하나 안 본다고 쇼가 사라지는 것도 아닌 걸 알면서도.

그런데 '프로듀스 101' 시즌 2가 끝나기도 전에 한층 더 심란한 소식이 들려왔다. 엠넷이 연습생이 아닌 일반인 참가자를 모집해 여자 아이돌 그룹을 육성하겠다며 '아이돌 학교'라는 프로그램을 준비 중이란 소식이었다.

심란함은 일단 예고편에서부터 시작이 됐는데, 폐활량 훈련이랍시고 체육복 차림의 참가자들을 실내 풀장에 잠수시키고, 무대 위기 대처술 훈련이라며 장대비 속에 교복 차림의 참가자들을 내몰아 온몸이 젖어도 흐트러짐 없이 군무를 추게 만드는 장면들은 그냥 학대로 보였다. 게다가 교복 위에 계속 물을 끼얹어 몸의 곡선을 도드라지게 하는 연출은 또 어떻고.

상대를 최대한 어리고 순진하고 무해해 보이게 만든 뒤, 마음 놓고 육체를 감상하고자 하는 집착은 공식 뮤직비디오 ‘예쁘니까’에서도 이어진다. 노래와 춤 중간중간 뜬금없이 터지는 물대포와 잔디밭 스프링클러에 연습생들의 교복은 속절없이 젖고, 춤을 추던 참가자들이 멈춰서 숨을 몰아쉬는 순간 카메라는 클로즈업으로 살짝 벌어진 참가자들의 입을, 풀샷으로는 오르락내리락하는 흉곽을 비춰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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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컷 관음한 후 화면은 예선 현장으로 보이는 체육관으로 넘어가는데, 얼핏 봐도 기백명은 되는 참가자들이 한 동작으로 춤을 추는 장면은 엠넷 오디션 프로그램 특유의 “우리 프로그램에 지원자가 이만큼 많이 모였다. 우리 대단하지?” 자랑이 너무 노골적이라 실소가 터졌다. 이렇게 대놓고 성 상품화를 하더라도, 그거라도 좋다고 지원하는 사람이 이리 많으니 문제없다는 선언이기라도 한 걸까.

‘성 상품화’ 논란에 대해 작심하고 해명해야 했던 건 진행을 맡은 제작진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제작진은 참가자들에게 부루마(일본식 체육복 하의)를 입힌 이유를 묻는 질문에 “자세히 보면 부루마가 아니다”라는 하나 마나 한 대답을 하는 데 그쳤다. 예쁜 옷을 찾다 보니 다소 비슷한 의상을 마련하게 됐다는 말인데, 일본에서도 불필요하게 노출이 심하다는 지적이 제기되어 교육현장에서는 슬슬 그 자취를 감추고 있는 부루마와 비슷한 의상이 ‘예쁘다’는 판단은 누구의 미감을 기준 삼아 내린 걸까.

제작진은 대답하지 않았다. 프로그램의 콘셉트와 연출 방향에 대한 질문에 책임을 지고 답변을 해야 할 제작진의 말은 뒤로 묻히고, “만일 성 상품화적인 방송이었다면 회사에서 이 프로그램을 시키지 않았을 것”이라며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선생님들도 계시는데” 성 상품화라니 기분이 안 좋다는 김희철의 발언만 소셜네트워크를 순회하며 욕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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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진은 '프로듀스 101' 시즌 1 때부터 줄곧 주장했던 성장 드라마를 강조한다. 아직 실력이 다 다듬어지지 않은 이들과 함께 ‘건강한 경쟁’을 통해 꿈을 키우고 고난을 극복하며 성장하는 경험을 하고 싶다는 게 제작진의 말이다. 그러나 프로그램은 마흔한명의 참가자들이 제 삶에서 어떤 가치를 더 우선시하며 살고 싶은지 궁금해하지 않는다.

교장을 맡은 이순재는 “아이돌들은 국격 향상에 큰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에 아이돌 양성에 소홀해선 안 된다”며 이들의 목표를 이미 ‘국격 향상’으로 맞춰 뒀고, 제작진 또한 프로그램 예고편에서부터 “오천만을 넘어 전세계 육십억을 입덕시킬” 임무를 부여한다. 참가자들은 그저 멋지게 노래하고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것을 꿈꾸면 되는 게 아니라, 한류 열풍의 열기를 이어가며 국격을 높여야 한다는 ‘산업 역군’으로서의 가치를 끊임없이 주입받는다. 그리고 언젠가 먼 미래에 “떳떳하게 훌륭한 아내와 어머니로서”(이순재) 살아가야 한다는 결론까지. '아이돌 학교'는 제각기 다른 매력과 재능이 있는 참가자들을 한류 열풍에 적합한 자원으로 취급하고 정해진 생산공정에 맞춰 돌아가는 컨베이어벨트 위에 올린다.

인성과 멘탈까지 모두 가르쳐줄 테니 ‘예쁜’ 마음을 가지고 오라던 프로그램의 커리큘럼은 고작 11주. 심지어 그 두달 보름 남짓한 기간 동안 내내 커리큘럼을 함께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프로그램은 '프로듀스 101'이 그랬듯 실시간으로 순위를 공개하고, 국민 프로듀서 대신 ‘육성회원’이라 호명된 시청자들에게 투표를 요구한다. 또다시 엠넷의 앵벌이가 시작됐다. 데뷔가 간절한 이들을 보며 누군가는 다 알면서도 다시 마지못해 투표에 참여할 것이고, 또 누군가는 내게 “왜 '아이돌 학교'를 다루지 않느냐”고 물을 것이다. 엠넷은 혹평도 이슈가 된다며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것이고. 하지만 그래도 이제 누군가는 진지하게 화를 내야 할 때가 된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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