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평화상을 수상했던 중국 민주화운동가 류샤오보가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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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u xiaobo

중국 노벨평화상 수상자이자 민주화운동가였던 류샤오보가 13일 세상을 떠났다. 향년 61.

중국 랴오닝성 선양시 당국은 간암 말기 판정을 받고 가석방돼 중국의과대학부속제일병원에 입원했던 류샤오보가 이날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시인이자, 문학평론가, 학자이자 민주화 운동가였던 류샤오보는 수십년 동안 계속된 탄압 속에서도 끊임 없이 민주화를 희망하고 요구했다. 그에게는 여러차례 해외로 망명할 기회가 있었으나, 그는 끝까지 중국에 남아 민주화를 염원하며 분투했다. 노벨평화상을 수상했으나 감옥에서 고통받다가 간암에 걸린 뒤에도 감시 속에서 비극적으로 숨졌다. 류샤오보의 죽음은 중국의 인권 상황에 대한 국제적 비판을 부를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중국 체제 내에서 민주화 개혁을 꿈꿨던 희망의 종말로 여겨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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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5년 12월 지린성 창춘에서 태어난 류샤오보는 문화대혁명(1966~1976년) 시기 하방(下放·지식인을 농촌 등 노동 현장으로 보냄)돼 건축공사 근로자로 일했다. 문혁이 끝난 뒤인 1977년 지린대학 중문과에 입학했고, 베이징사범대학에서 석·박사 학위 과정을 이수했다. 강단에 선 그는 촉망받는 시인이자 평론가, 교수였다.

1989년 봄 베이징 천안문(톈안먼)에서 민주화와 부정부패 타파 등을 요구하는 시위가 벌어졌을 때, 그는 미국 콜럼비아대학에 방문학자로 가 있었다. 그는 천안문 시위 소식을 듣고 베이징으로 돌아와 광장 한가운데로 들어갔고, ‘천안문 4군자’의 일원으로 단식투쟁을 했으며, 6월 3일 밤 군대의 진압이 시작될 때 학생들이 진압을 피해 광장에서 나갈 수 있도록 군대와 협상을 했다.

무력 진압 뒤 이틀 후인 6월6일 중국 공안당국에 '반혁명선전선동죄'로 체포된 그는 강단에서 쫓겨나는 공직박탈 조치를 당했다. 그는 1990년대 초반 미국에서 제작된 천안문 시위 관련 다큐멘터리 촬영 당시에도 망명 권유를 받았으나 중국 내에서 개혁을 위해 노력하겠다며 망명을 거부했다. 1995년 5월 베이징 교외에 1년여 감금됐다가 그 다음해 10월 ‘사회질서교란죄’라는 명목으로 법원에서 3년의 노동교화형을 선고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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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로도 중국 정부에 비판적인 글을 발표하며 여러차례 투옥된 그는 2008년 12월 세계인권의 날에 발표된 ‘08헌장’ 작성과 서명운동을 주도했다. 체코인들이 소련의 억압적 정책에 반발해 발표했던 77헌장을 모델로, 공산당 일당체제 종식과 다당제 도입, 삼권분립, 당의 군대를 국가의 군대로, 사법독립 등 광범위한 민주개혁을 요구하는 내용이었다. 그는 헌장이 발표되기 며칠 전 체포됐고, 2009년 12월 국가 전복선동죄를 적용받아 징역 11년형을 선고받았다.

재판을 받을 당시 그는 ‘나에게는 적이 없다’는 글을 발표해 이렇게 말했다. “증오는 지혜와 양심이 아니다, 적대적인 감정은 국가의 영혼을 오염시키고, 야만적인 삶을 악화시키고, 사회의 관용과 인간성을 파괴한다. 또, 국가가 자유와 민주를 향해 나아가는 것을 방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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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2월10일 노르웨이 오슬로 시청에서 열린 노벨평화상 시상식, 류샤오보가 앉아야할 자리에 빈 의자가 놓여 있다.

2010년 노벨위원회는 그를 노벨평화상 후보자로 발표했으나, 감옥에 갇혀 있던 그의 시상식 참석은 중국 당국에 의해 불허됐다. 시상식에는 ‘빈 의자’만 놓였다. 노르웨이 노벨위원회는 당시 “류샤오보가 중국에서 기본적인 인권을 위해 길고 비폭력적인 투쟁을 벌였다”며 “중국 인권 개선을 위한 광범위한 투쟁을 대표하는 인물”이라고 시상 이유를 밝혔다. 중국은 류샤오보의 노벨평화상 수상을 이유로 노르웨이에 몇년 동안 경제 보복조처를 취했다. 08헌장에 대해서는 중국 개혁파 내에서도 찬반 논란이 있고, 중국 현실에 맞지 않는 내용이라는 비판도 존재한다. 또한 중국 정부의 철저한 검열로 인해 08헌장과 류샤오보의 노벨평화상 수상 자체가 중국인들에게는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류샤오보는 지난 5월 말 감옥에서 간암 말기 진단을 받았으며, 중국 당국은 6월에야 그를 가석방해 선양 소재 중국의대 제1병원에서 치료를 받도록 했다. 하지만 마지막 한달 동안도 류샤오보는 외부와의 접촉이 철저히 차단된 채 당국의 통제 아래 있었다. 병상에 누워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깡마르고 허약해진 류샤오보의 모습은 중국 체제 내에서 민주화를 실현하려던 희망의 촛불이 꺼져가는 것처럼 보였다.

류샤오보는 죽음이 임박한 최근 아내 류샤를 위해 해외로 나가 치료받기를 소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류샤는 류샤오보의 노벨평화상 수상 직후부터 가택연금을 당해 외부와 격리된 채 고통스런 생활을 해왔다. 류샤는 류샤오보가 민주화를 위해 어려움을 겪는 내내 그와 함께 했던 동지였다. 촉망받던 시인이자 화가, 사진작가였던 류샤는 1996년 류샤오보가 갇혀 있던 노동교화소 식당에서 결혼식을 올렸고 이후 힘든 세월을 항상 함께 했다. 아내와 함께 해외로 나가고 싶다는 그의 마지막 소망은 끝내 이뤄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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