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즈(MS.) 호칭을 만든 실라 마이클스가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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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즈(Ms.) 미혼 여성과 기혼 여성을 구분하지 않는 여성 호칭이다. 'Ms.'를 본격적으로 사용하게 된 건 불과 50년 전의 일이다. 원래 남성(Mr.)과 달리 여성 호칭은 결혼 여부에 따라 미스(Miss)와 미세스(Mrs)로 구분해 사용했다. 그러다 1960년대 'Ms. 사용운동'이 전개되면서 'Ms.'가 널리 쓰이기 시작했다.

'Ms. 사용운동'을 이끈 여성 인권 운동가 실라 마이클스(Sheila Michaels)가 지난달 22일(현지시간) 뉴욕 맨해튼에서 눈을 감았다. 향년 78세.

6일 뉴욕타임스(NYT)는 마이클스가 백혈병으로 투병생활을 한 끝에 동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숨을 거뒀다고 보도했다.

마이클스는 1939년 5월 8일 미국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에서 변호사 아버지와 라디오 작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생부와의 인연은 깊지 않았다. 다섯살부터 할머니 손에서 자랐고, 곧이어 엄마와 새아빠와 함께 살았다. 어릴적 이름은 실라 케슬러(Sheila Kessler). 생부가 아닌 새아빠의 성(姓)을 따랐다.

female protest

마이클스는 대학교에 입학한 뒤 인권운동에 관심을 갖게 됐다. 그러다 윌리엄메리대학 2학년 재학 중 그는 퇴학 처분을 받았다. 대학 학보사에서 분리주의(사람을 인종·종교·성별에 따라 분리하자는 주장)에 반대하는 사설을 썼다는 이유였다.

이후 뉴욕으로 이주한 마이클스는 1959년 인종평등회의(CORE), 1962년 비폭력 학생 협력위원회 등에서 활동하며 본격적으로 인권운동가의 길을 걷게 된다.

여성운동에 관심을 갖게 된 건 가족 때문이었다. 인권운동을 하며 1963년 애틀랜타에서 체포되자 어머니와 새아빠는 그녀와 연을 끊었다. 새아빠의 성 '케슬러'도 버리라고 요구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성을 바꿔야 했고, 생부를 따라 '마이클스'라고 붙인 것이다.

마이클스는 2007년 한 인터뷰에서 "나는 아버지에게도, 남편에게도 속하지 않았다. 남자에게 속하지 않은 여성으로서의 '타이틀'을 찾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를 계기로 전개한 운동이 'Ms. 사용운동'이다. 마침 미국의 1960년대는 여성 인권운동의 태동기였다. 현대 여성 인권운동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평가받는 1963년 저서 '여성의 신비'(The Feminine Mystique)가 미 전역을 휩쓸 때였다.

'Ms'가 더 널리 알려진 건 1969년 마이클스가 뉴욕 라디오 방송에 출연했을 때였다. 그는 라디오 방송 도중 'Ms'를 언급했고, 발음을 묻는 DJ의 질문에 "미즈"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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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S. 창간호

이후 탄력을 받은 'Ms. 사용운동'은 여성 인권 운동가 글로리아 스타이넘이 1971년 '미즈'라는 여성 잡지를 창간하면서 대중화되기 시작했다. 잡지 이름은 스타이넘이 라디오 방송에서 흘러나온 "미즈"라는 말을 듣고 영감을 받은 것이었다.

잡지 '미즈'가 높은 인기를 누리면서 1972년 미 정부는 공식 문서에 'Ms'를 사용하는 것을 공식 승인했다.

'미즈' 마이클스는 1980년대 한 일본인 셰프와 결혼했지만 곧 이혼했다. 유족으로는 이복남매 1명이 있다.

NYT는 "마이클스는 작지만 중대한 유산을 남겼다. 그는 두 개의 자음과 하나의 작은 점, 총 3개의 철자로 영어를 완전히 바꿔놓았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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