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가 일본군 위안부 동원을 증명할 영상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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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영상이 비추는 건, 나란히 서 있는 7명의 여성이다. 군인으로 보이는 남성이 그들 중 한 명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여성들은 모두 초조하거나 두려운 표정이다.

이 영상은 7월 5일, 서울시가 공개한 것이다. 서울시는 “서울대 인권센터와 함께 지난 2년간의 조사 끝에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 National Archives and Records Administration) 2관에서 70년 넘게 잠자고 있던 한국인 위안부 영상을 발굴했다”고 밝혔다.

보도자료에 따르면, 영상 속 지역은 중국 송산이다. 1944년 6월, 미‧중 연합군(Y군)은 ‘버마로드(Burma Road)’상의 일본군이 점령한 송산, 등충, 용릉 등을 공격했고, 9월 7일 송산을 점령했다. 이때 일본군 ‘위안부’로 있던 24명 중 10명이 생존해 미‧중 연합군의 포로로 잡혔고, 14명은 일본군에 의해 학살되었거나 전투 과정에서 죽었다. 서울시는 “당시 사진 속 송산에 포로로 잡혀있던 한국인 일본군 위안부를 촬영한 18초짜리 영상”이라고 소개했다. 영상 속 장소는 “미‧중연합군 제8군 사령부가 임시로 사용한 민가 건물로, 이곳에서 ‘위안부’ 포로 심문(Interrogation)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연합군이 송산을 점령했을 당시 기록된 사진들은 이미 한국인 위안부가 있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자료로 활용되었다. 아래 사진들이 그중 일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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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2000년 12월 일본 도쿄에서 열린 ‘일본군 성노예전범 여성국제법정’ 준비 과정에서 피해자 박영심(1993년 피해 증언, '06년 별세) 할머니가 사진 속 만삭의 여성이 자신이라고 스스로 밝히기도 했다. 서울시는 “포로로 잡혔을 당시 만삭이었던 고(故) 박영심 할머니는 탈출 과정에서 사산해 중국군의 치료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위의 영상에서는 보이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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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팀은 당시 미‧중연합군이 작성한 포로 심문 보고서를 보면 “포로수용소에는 조선인 25명(여성 23명, 남성 2명)이 구속되었는데 조선인 가운데 10명은 송산 지역의 위안소에서 체포된 ‘위안부’들이었으며, 13명은 등충의 위안소에 있었던 ‘위안부’들이었다”며 “포로 명단 가운데 고(故) 박영심의 이름도 명확히 표기되어 있었다”고 전했다.

아래는 위의 영상을 촬영한 미군 164통신대 사진대 배속 사진병 페이(Edwards C. Fay) 병장(추정)이 촬영했던 일본군 위안소 영상이다. 용릉(Lung-ling)에 위치한 곳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