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인들은 '정상화'를 피해야 하는가?

게시됨: 업데이트됨:
인쇄

megyn kelly

지금은 상당히 괴상한 저널리즘의 시대라는 걸 인정해야겠다. 도널드 트럼프의 대통령 취임이 민족간의 불평등과 정치적 부패 등의 이슈를 전면으로 가져왔다. 우리가 겪고 있는 이 시기가 너무나 특이하기 때문에, 언론인과 뉴스 네트워크들은 객관성이라는 일반적 기반을 무시하고 자신이 어느 편인지를 명확히 했다. 언론인들이 자신의 정치적 의견을 제쳐두고 반대 입장의 사람과 이야기를 나눈 때들도 있었다. 그리고 일방적인 입장을 지닌 시청자들은 경악했다. 메긴 켈리는 음모 이론가 알렉스 존스를 섭외하여 집중 포화를 받기도 했다. 메긴 켈리와 NBC의 입장은 확고했고, 알렉스 존스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 인터뷰의 시청률은 낮았고 평은 더욱 나빴다. 그러나 이 이슈는 끝나지 않았다. 다음 번에 다른 언론인이 다른 편견이 있는 사람을 섭외하면 다시 침묵이 깨질 것이다. 언론인들, 심야 쇼 호스트, 정치 평론가들이 논란을 일으키는 인물을 게스트로 초청하는 한, 언론인들이 사람들을 ‘정상화 normalize’하는 걸 어떻게 피해야 하는가? 라는 문제는 남는다.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 그 일에 대해 인터뷰하기 가장 좋은 사람이 누구인가를 알 수는 없다. 성자로 알려진 사람을 인터뷰할 가능성과 심한 인종차별주의자를 인터뷰할 가능성은 비슷하다. 인종차별적 이념을 지닌 사람들을 방송에 내보내는 호스트는 인종차별이 받아들여져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란 주장도 있다. 그러나 언론인이 사회에 편견이 존재한다는 걸 보여준다고 해서 시청자들에게 편견이 괜찮다고 말하는 건 아니다. 저널리즘은 늘 도덕적이지 못한 사람들을 보도해왔다. 저널리스트가 인물을 홍보하지 않으면서도 노출시키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인종차별주의자들을 등장시키면 그들을 따르는 청중이 생긴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도 많다. 이미 유명한 사람을 정상화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잊은 주장이다. 인종차별적 견해를 가진 사람이 아직도 대중의 눈에서 숨겨져 있는 것처럼 행동하고 싶은 유혹은 존재한다. 그런 사람들이 쇼를 진행하거나 웹사이트를 운영할 정도로 많은 추종자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직면하기보다 쉬운 건 물론이다. 그러나 알렉스 존스, 토미 라렌, 마일로 이아노풀로스 같은 논란을 끄는 사람들이 TV에 나오면 팬들이 생길 ‘위험’이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무지한 일이다. 그들은 이미 추종자들을 형성했다. 그래서 그들을 직면하고 그들의 이론이 틀렸음을 입증해야 하는 것이다.



모욕적인 견해를 가진 사람들이 보통 TV 게스트들과 마찬가지로 정중한 취급을 받는 것을 지켜보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미화된 인종차별주의자들, 성차별주의자들, 음모이론가들이 자신의 팬들에게선 받지 않을 질문을 받는 것을 보는 것은 뿌듯한 일이다. 트레버 노아가 2월에 토미 라렌을 인터뷰했을 때, 흑인 남성이 백인 여성과 마주앉아 그의 생명은 자신의 생명보다 가치가 떨어진다는 말을 들어야 하는 사회를 변호하는 것은 정말 경멸적이라고 생각한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토미 라렌을 출연시킴으로써, 트레버 노아는 ‘흑인의 생명도 중요하다’ 운동가들이 폭력적이고 무례하다는 그녀의 이론의 오류를 반박할 수 있었다. 어떻게 시위해야 하는지 묻자, 라렌은 시위로 생겨난 나라 미국에서는 사람들은… 시위해선 안 된다고 했다. 메긴 켈리가 샌디 훅 초등학교 총기 난사 사건에 대해 묻자, 이 사건은 거짓 이야기일 수 있다는 말을 퍼뜨렸던 알렉스 존스는 자신은 이게 거짓인지 아닌지도 모르겠다고 인정했다. 편견에 가득찬 호스트들을 자신들의 텃밭에만 내버려 두면, 그들은 자신의 관점을 늘 재확인할 뿐이다. 그들이 정말로 믿는 게 무엇인지, 혹은 어떻게 그런 결론을 내렸는지 물어봄으로써 언론인, 평론가, TV 진행자들은 그들의 신뢰성에 의문을 제기할 수 있는 것이다.

편견을 지닌 인물들이 그저 사라지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TV 프로그램 검열을 하지 않으면 저널리즘이 그 역할을 할 수 있음을 이해해야 한다. 인터뷰를 통해 편견을 지닌 인물들을 시험에 들게 할 수 있다. 그들의 협력자들과 거리를 두게 만들 수 있고, 커리어를 잃게 만들 때도 있다. 토미 라렌은 ‘더 뷰’에 출연한 후 TheBlaze에서 일할 수 없게 되었다. 낙태 지지 입장에 대한 질문을 받자 라렌은 동료 보수파들이 위선적이라 비난하며 여성들은 낙태를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녀가 주로 등장하던 TheBlaze의 동료들도 비난의 대상이었다. 마일로 이아노풀로스가 진보 매체에 등장하자, 그의 위험한 견해가 드러났다. 그가 소아성애를 용납하는 발언을 하는 영상이 돌자, 그는 자신의 주무대이던 브레이트바트 뉴스의 에디터 자리에서 물러나야 했다.

milo yiannopoulos

존스, 라렌, 이아노풀로스 같은 사람들은 팩트를 고려하지 않는 전혀 다른 종류의 저널리즘에서 승승장구한다. 그들의 저널리즘은 덥석 결론을 내리고, 그 결론을 지지하는 사람들에게 되풀이해서 말하는 저널리즘이다. 언론인들에게 그런 사람들을 다루지 말라는 것은 결국 그와 똑같은 저널리즘을 요구하는 것이다. 우리는 편견이 존재하며 영향력이 강하다는 현실을 무시하는 세계관을 고수하는 저널리즘을 원한다. 이 세상에 인종차별이 없는 게 더 좋을 것이란 사실은 이와는 무관하다. 편견이 존재함을 강조하지 않으며 편견에 반대하는 기반을 유지하는 저널리즘을 원한다. 정상화란 존재한다. 가벼운 농담과 단순한 질문 속에 존재한다. 저널리즘은 현실을 직시하고 바꿀 수 있게 해주는 강렬한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kakao

허핑턴포스트US의 Can Journalists Avoid ‘Normalizing?’를 번역, 편집한 것입니다.
   

수정 사항 제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