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가닿고 싶어요...이번엔 혼자가 아닌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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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이승한의 술탄 오브 더 티브이

멤버들이 더블린에서 머물 숙소를 소개하며, JTBC '비긴 어게인'은 멤버들이 연습을 하는 장면 한 대목을 살짝 미리 보여준다. 유희열은 건반 앞에 앉고, 윤도현은 기타를 안았다. 경이로워하는 눈빛으로 뮤지션들을 바라보는 노홍철의 옆자리에 이소라가 앉았다. 단출한 구성으로 불러본 ‘바람이 분다’가 끝나자, 멤버들은 모두 이소라의 노래에 한마디씩 얹는다. “아니, 기타 반주하는데 이렇게 가슴이 설레나?” “아, 이거 진짜 너무 대박이다.” “노래 부르기는 되게 힘들 것 같은데 듣기에는 되게 좋다.” 이소라는 당황해 웃으면서 말한다. “야, 이게 뭐야. 나는 이런 게, 내가 이래서 안 나오는 거야. 에이, 이거는 노래가 아니지. 안 돼.”

웃고 떠들며 연습을 계속하는 바람에 자연스레 스쳐 지나갔지만, 나는 그 장면이 내내 기억에 남았다. 평론가 신형철이 장승리의 시집 '무표정'을 소개하며 했던 말이 떠올랐던 것이다. “비판이 다 무익한 것이 아니듯 칭찬이 늘 값있는 것은 아니다. 부정확한 비판은 분노를 낳지만 부정확한 칭찬은 조롱을 산다. 어설픈 예술가만이 정확하지 않은 칭찬에도 웃는다. 진지한 예술가들은 정확하지 않은 칭찬을 받는 순간 자신이 실패했다고 느낄 것이다.”(신형철. 정확하게 사랑하기 위하여. '한겨레21' 제948호)

노래하는 내내 낮은 의자 위에서 뜻처럼 길게 뽑히지 않는 호흡에 답답해하던 이소라는, 자신이 만족하지 못한 결과물에 쏟아진 칭찬에 ‘내가 이래서 안 나오는 것’이라 잘라 말한다. 이소라는 정확하게 칭찬받고 싶다.

정확하게 칭찬받고 싶다는 욕망은, 듣는 이의 마음에 정확하게 가닿고 싶다는 욕망과 그 맥을 같이한다. 이소라의 노래는 구체성 없이 모호한 위로인 적이 드물다. 그는 상대의 마음이 멀어졌다는 애매한 표현 대신 정확하게 “같이 걸을 때도 한 걸음 먼저 가”고 “친구들 앞에서 무관심”한 연인의 뒷모습 때문에 “못 견디게 외로”운 마음을 “저울이 기울어 나만 사랑하는 거 같”다고 콕 집어 말한다.(‘시시콜콜한 이야기’)

“너 없는 나”의 외로움을 이야기할 때조차 그는 어정쩡하게 괴롭고 외롭다고 말하는 대신, 지치고 성마른 목소리로 자신의 증상을 정확히 말한다. “지난밤 날 재워준 약 어딨는 거야. 한 움큼 날 재워준 약 어디 둔 거야. 나 몰래 숨기지 마. 말했잖아. 완벽한 너나 참아.”(‘트랙 7’)

심지어는 시작도 못 해보고 망한 연애를 기록할 때조차, 어떤 미화나 추상의 세계로 들어가는 대신 이소라는 냉정하리만치 정확하게 자기 이야기를 한다. “그렇게 살다 보면 남자나 연애에도 관심 없어 일에 파묻혀 살기 그런 게 나란 애니까.” 사람에게 어찌 다가가야 할지 모르고 맴돌던 그는 급기야 호격 조사를 붙여서 ‘사랑’에게 말을 건다. “좀 멈춰라 사랑아. 한 적도 난 없이 너를 보내버리고. 날 반하게 한 네게 이런 노래라도 남기고 싶어.”(‘좀 멈춰라 사랑아’)

정확하게 가닿기 위해 이소라는 늘 자신에게 ‘잘해야 한다’고 다그친다. “잘해야 한다, 무슨 일이든 잘하는 게 좋아요. 잘한다는 건 자기가 그걸 안다는 거고 열심히 했다는 거고, 모든 것이잖아요. 아무리 하찮은 일이라도 잘하는 것이 중요해요.” 2011년 문화방송 '나는 가수다'를 시작할 무렵, 이소라는 문화방송 홍보실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잘해야 한다. 아마 이소라에 대해 조금이라도 안다고 생각하는 이들이라면 그게 무슨 뜻인지 짐작을 할 것이다. 이소라는 자신의 노래가 청자의 마음에 정확히 가닿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순간 단호하게 “이것은 노래가 아니다”라고 잘라 말하는 사람이다. 2009년 소극장 공연 때에는 자신이 납득할 수 있는 목 상태가 아니라는 이유로 예정된 시간의 절반을 넘긴 시점에 돌연 공연을 중단하고 관객들에게 입장료 전액을 환불해줬고, 2011년 '나는 가수다' 오스트레일리아 공연에서는 준비해갔던 곡들이 공간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판단에 공연 4시간 전에 급하게 이현우의 ‘슬픔 속에 그댈 지워야만 해’를 선곡해 피아노 한 대만을 벗삼아 무대를 선보인 사람이다.

자신의 노래가 청자들에게 위로가 되고 추억이 될 것을 알기에, 이소라는 무대 위에서 사력을 다해 노력한다. 이소라는 화려한 무대 장치나 퍼포먼스, 정제된 손동작이나 표정 같은 것에 관심을 줄 여력이 없다. 대신 그는 필요하다면 심장을 쥐어짜듯 몸을 뒤틀며 감정을 쏟아내는 데 집중하고, 미간을 찡그려가며 무서울 정도로 몰입한다.

이소라가 까칠하고 대하기 어려운 사람이라는 세간의 평은 아마 이처럼 집요하게 ‘잘하기 위해’ 진력하는 그의 태도에서 나온 것이리라. 이소라는 자신이 생각하는 온전한 건강 상태가 아닐 때면 자신의 이름을 건 KBS JOY '이소라의 두번째 프로포즈' 녹화도 펑크를 내는 사람이었으니까. 남의 이야기를 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소라가 프로그램 녹화 현장에서 누구와 의견 합치를 이루지 못해 대판 싸웠다는 둥, 자기 프로그램에 립싱크를 하는 가수를 출연시킬 수 없다며 제작진과 불화했다는 둥 하는 소문들을 부지런히 옮겼다. 이런 수많은 소문들에 대해 굳이 진위 여부를 확인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중요한 건 이미 대중에게도 이소라는 자신이 생각하는 최선을 다하기 위해서라면 타협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인식이 각인되었다는 점이다.

그는 여전히 “노래를 잘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 꿈이라 말하고, 지금도 충분히 노래를 잘하시지 않느냐는 유희열의 말에 “그렇지 않아요. 노래를 잘한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때부터 이제 더 못할 거예요. 그래서 그런 생각을 할 수가 없어요”(유희열의 스케치북)라고 답한다. 심지어 그는 자신이 진행하던 라디오 프로그램에 고민을 보낸 청취자에게도 “저는 뭐 다른 디제이들처럼 ‘아이고, 그럼 좀 쉬시고요. 지금도 괜찮…’ 뭐 이런 거 없”다고 단호히 잘라 말하며 이렇게 말했다. “자기가 하는 일이라든지 이런 거에 대해서는 행복할 날이 없어야 돼요, 사실은. 그래야 조금씩, 더, 앞으로 나아간다고 생각을 합니다.”(라디오 '이소라의 메모리즈') 더 정확하게, 더 잘하기 위해. 그는 노랫말에서조차 “고독하게 만들어 널 다그쳐 살아가/ 매일 독하게 부족하게 만들어 널 다그쳐 흘러가”(‘트랙 9’)라 당부한다.

이렇게 늘 스스로 다그치는 이소라가 음악여행길에 올랐다는 소식은 나를 포함한 여러 사람을 놀라게 했다. 각자 저마다의 음악세계가 분명한 동료들과 함께, 소리가 정밀하게 통제되지 않는 길거리 버스킹이라는 환경 속에서, 자신을 모르는 청자들을 향해, 통하지 않는 언어로 노래를 한다는 건 이소라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정확하게 가닿지 않는 위로에 괴롭지는 않았을까?

'비긴 어게인' 제작발표회 현장에서 이소라는 이렇게 말했다. “지금까지 노래한 중에 손가락에 꼽게 고독한 나날들이었다.” 그리고 의미심장한 말을 한마디 덧붙였다. “지금까지 혼자서만 하다가 같이 한다는 것에 대해 배웠고, 노래를 좀더 편안하게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물론 이소라의 성격을 고려하면, 더 편안하게 해야겠다는 이야기가 쉽게 쉽게 노래하겠다는 뜻은 결코 아닐 것이다. 어쩌면 올 초 SBS '판타스틱 듀오 2'에 나와서 남긴 말이 그 의미를 푸는 힌트일 게다. 이소라는 자신과 듀엣 무대에 설 마지막 1인을 선택하며 그 이유를 설명했다. “어떨 때는 잘하고요. 어떨 땐 잘 못해요. 불안해요. 그게 저랑 비슷하더라고요. 그래서, 그런 거에서. 너무 나 같다는 생각? 그래서 끝까지 같이 노래를 부르고 싶었어요. 노래를 잘하고 이런 것들은, 그 기준하고는 먼 거 같아요.”

이소라는 상대의 노래에서 기술적인 부분을 평가하고 저울질하는 대신, 조금이라도 더 잘하고 싶어하는 진심을 읽는다. 그렇다면 ‘편안하게 해야겠다’는 다짐 또한, 상대의 마음과 더 생짜의 진심으로 만나기 위한 다짐일 것이다. 그의 더블린 여행이, 그가 올해 안으론 꼭 발매하겠다는 9집이 더 기대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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