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도착한 문대통령이 '장진호 전투 기념비'를 처음으로 찾은 이유(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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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 JAEIN
SEOUL, SOUTH KOREA - MAY 09: South Korean President-elect Moon Jae-in, of the Democratic Party of Korea, speaks to supporters at Gwanghwamun Square on May 9, 2017 in Seoul, South Korea. Moon Jae-in declared victory in South Korea's presidential election, which was called seven months early after former President Park Geun-hye was impeached for her involvement in a corruption scandal. (Photo by Chung Sung-Jun/Getty Images) | Chung Sung-Jun via Getty 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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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취임 후 첫 방미 길에 오른 문재인 대통령이 미국에서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장진호 전투 기념비'다.

문 대통령은 28일(현지시간) 오후 4시께 미 버지니아주 콴티코 국립 해병대 박물관에 건립된 기념비를 찾았다.

이는 장진호 전투 기념비 제막 이후 우리 정상의 최초 방문이자 한미정상회담의 첫 일정을 '혈맹 행보'로 시작한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기념비는 지난 2015년 7월 착공돼 지난 5월 준공됐다. 총사업비는 60만달러(약 7억원)가량이 들어갔으며 우리 정부는 3억원 가량을 지원했다.

약 2m 높이의 대리석으로 된 기념비는 8개의 패널이 둘러싼 팔각형 기단 위에 장진호 전투를 상징하는 은색 금속 기념물인 '고토리의 별'을 올린 형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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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면에는 장진호 전투에 대한 설명을 기록해놨으며, 나머지 7면에는 유담리, 황초령 고개, 하가우리 등 2주에 걸친 장진호 전투의 세부 내용이 적혀있다.

장진호 전투는 1950년 11월26일부터 12월11일까지 함경남도 개마고원의 저수지인 '장진호'에서 있었던 전투다.

당시 북진했던 미 해병1사단 주축의 연합군 1만3000여명이 중국인민지원군 제9병단 등 12만명에게 포위되며 큰 피해를 봤다. 당시 사망자 3000여명을 포함해 약 1만2000명의 미군 사상자가 발생했다.

장진호 전투는 미군 전쟁사에서 '역사상 가장 고전했던 전투'로 기록돼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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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 미국 방문 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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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중공군 남하를 막아내며 북한 주민들이 남한으로 피란한 '흥남철수 작전'이 가능했다.

장진호 전투와 흥남 철수 작전으로 문 대통령을 비롯해 조셉 던포드 미 합참의장, 제임스 매티스 미 국방장관 등 현재 한미 양국의 고위급 인사가 탄생할 수 있었다.

흥남 출신인 문 대통령 부모도 이때 흥남부두에서 7600톤급 상선 메러디스 빅토리호를 타고 탈출했다. 그렇게 피란한 지 3년 뒤인 1953년, 거제에서 문 대통령이 태어났다.

한편 장진호 전투 기념비는 박근혜정부 인사인 박승춘 전 국가보훈처장이 현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 반대 속에 설립을 추진한 사업이다.

다음은 문 대통령의 기념사 전문.

존경하는 로버트 넬러 해병대 사령관님, 옴스테드 장군님을 비롯한 장진호전투 참전용사 여러분, 흥남철수작전 관계자와 유족 여러분, 특히 피난민 철수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신 현봉학 박사님의 가족분들 모두 반갑습니다.


장진호 전투 기념비 앞에서 여러분을 뵙게 되니 감회가 깊습니다. 꼭 한번 와보고 싶었던 곳에 드디어 왔습니다. 오늘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첫 해외순방의 첫 일정을 이곳에서 시작하게 돼 더욱 뜻이 깊습니다.


67년 전인 1950년, 미 해병들은 '알지도 못하는 나라, 만난 적도 없는 사람들'을 위해 숭고한 희생을 치렀습니다.


그들이 한국전쟁에서 치렀던 가장 영웅적인 전투가 장진호 전투였습니다. 장진호 용사들의 놀라운 투혼 덕분에 10만여명의 피난민을 구출한 흥남철수 작전도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그 때 메러디스 빅토리 호에 오른 피난민 중에 저의 부모님도 계셨습니다.


'피난민을 구출하라'는 알몬드 장군의 명령을 받은 고(故) 라루 선장은 단 한 명의 피난민이라도 더 태우기 위해 무기와 짐을 바다에 버렸습니다.


무려 1만4000명을 태우고 기뢰로 가득한 '죽음의 바다'를 건넌 자유와 인권의 항해는 단 한 명의 사망자 없이 완벽하게 성공했습니다.


1950년 12월 23일 흥남부두를 떠나 12월 25일 남쪽 바다 거제도에 도착할 때까지 배 안에서 5명의 아기가 태어나기도 했습니다.


크리스마스의 기적! 인류 역사상 최대의 인도주의 작전이었습니다.


2년 후, 저는 빅토리 호가 내려준 거제도에서 태어났습니다. 장진호의 용사들이 없었다면, 흥남철수작전의 성공이 없었다면, 제 삶은 시작되지 못했을 것이고, 오늘의 저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의 희생과 헌신에 대한 고마움을 세상 그 어떤 말로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존경과 감사라는 말로는 너무나 부족한 것 같습니다.


저의 가족사와 개인사를 넘어서서, 저는 그 급박한 순간에 군인들만 철수하지 않고 그 많은 피난민들을 북한에서 탈출시켜준 미군의 인류애에 깊은 감동을 느낍니다. 장진호 전투와 흥남철수작전이 세계전쟁 사상 가장 위대한 승리인 이유입니다.


제 어머니의 말씀에 의하면, 항해도중 12월 24일, 미군들이 피난민들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이라며 사탕을 한 알씩 나눠줬다고 합니다.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입니다.


비록 사탕 한 알이지만 그 참혹한 전쟁통에 그 많은 피난민들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나눠준 따뜻한 마음씨가 저는 늘 고마웠습니다.


존경하는 장진호 용사와 후손 여러분! 대한민국은 여러분과 부모님의 희생과 헌신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감사와 존경의 기억은 영원히 계속될 것입니다.


한미동맹은 그렇게 전쟁의 포화 속에서 피로 맺어졌습니다. 몇 장의 종이 위에 서명으로 맺어진 약속이 아닙니다. 또한 한미동맹은 저의 삶이 그런 것처럼 양국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삶과 강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한미동맹의 미래를 의심하지 않습니다. 한미동맹은 더 위대하고 더 강한 동맹으로 발전할 것입니다.


존경하는 장진호 용사와 후손 여러분! 67년 전, 자유와 인권을 향한 빅토리 호의 항해는 앞으로도 계속돼야 합니다. 저 또한 기꺼이 그 길에 동참할 것입니다.


트럼프 대통령과 굳게 손잡고 가겠습니다. 위대한 한미동맹의 토대 위에서 북핵 폐기와 한반도 평화, 나아가 동북아 평화를 함께 만들어 가겠습니다.


이 자리에 함께 하고 계십니다만, 메러디스 빅토리 호의 선원이었던 로버트 러니 변호사님의 인터뷰를 봤습니다. '죽기 전에 통일된 한반도를 꼭 보고 싶다'는 말씀에 가슴이 뜨거워졌습니다. 그것은 저의 꿈이기도 합니다.


오늘 저는 이곳에 한 그루 산사나무를 심습니다. 산사나무는 별칭이 윈터 킹(Winter King)입니다. 영하 40도의 혹한 속에서 영웅적인 투혼을 발휘한 장진호 전투를 영원히 기억하기 위해서입니다.


이 나무처럼 한미동맹은 더욱 더 풍성한 나무로 성장할 것입니다. 통일된 한반도라는 크고 알찬 결실을 맺을 것입니다.


이제 생존해 계신 분이 50여 분 뿐이라고 들었습니다. 오래도록 건강하고 행복하십시오. 다시 한 번 장진호 참전용사와 흥남철수 관계자, 그리고 유족 여러분께 감사와 존경의 인사를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2017년 6월 28일 제19대 대한민국 대통령 문 재 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