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더 우먼'이 여성인 나에게 힘을 주지 못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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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NDER WO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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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밝혀두자면, 나는 인기 슈퍼히어로 영화를 즐겨보는 사람은 아니다. 왜냐하면 나는 미화된 폭력이나 이런 영화들에 흔히 나오는 젠더 스테레오타입, 즉 남성 영웅과 사랑의 대상이 되는 여성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원더 우먼’이 나온다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썩 기대하지는 않았다. 나는 슈퍼히어로 공식을 경계했다. 하지만 내가 이 영화를 기대 ‘해야 한다’는 건 알고 있었다. 여성 히어로가 주인공으로 나오고 여성이 감독한 최초의 슈퍼히어로 영화이기 때문이다. 영화 업계로선 분명 진보고, 헐리우드의 여성들이 기뻐할 만한 일이다.

‘원더 우먼’ 개봉 일주일 전, 여성이 주연한 영화가 박스 오피스에서 크게 히트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개봉 첫 주 주말에 보라는 이메일들을 많이 받았다. 여성 영화제작자와 페미니스트들이 보낸 것이었다.

나는 보러 가기로 했다. 여성 공동체(sisterhood)를 지원하고 싶었다.

개봉 첫 주에 가지는 못했지만, 여성 친구 5명과 함께 지난 주말에 보고왔다. 우리는 ‘원더 우먼’ 코스튬이나 티아라를 하진 않았지만, ‘여성에게 힘을 주는(empowering) 가장 강력한 영화’를 볼 생각에 신나 있었다.

극장에 불이 꺼지자 여성 전사들이 승마, 창던지기, 칼싸움을 훈련하는 멋진 지중해 섬 장면이 펼쳐졌다. 여성들은 강했고, 집중하고 있었으며 굉장했다. 그들의 내면과 외면의 힘이 느껴졌다. 이들은 힘이 있는 여성들이었다.

테미스키라라는 이름의 이 섬에는 다이애나가 산다. 갤 가돗이 연기한 다이애나가 바로 원더 우먼이다. 다이애나의 어머니 히포틀라(코니 닐슨)비롯한 수백 명의 아마존 전사가 산다. 남성은 보이지 않는다. 여성들만이 사는 섬이다. 여성 공동체를 보호하는 국가다. 이 오프닝 장면을 보며 나는 기분이 좋았다. 힘이 났고 영감을 받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변화가 생긴다. 스티브 트레버(크리스 파인)라는 미국 조종사가 섬 근처에 불시착하고, 섬은 바깥 세상에 드러난다. 곧 독일 해군이 침공해 들어온다. 폭력적인 전투 장면이 나온다. 다이애나는 바깥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전쟁을 끝내기 위한 전쟁’에 대해 알게 된다. 다이애나는 이러한 학살과 인류 파괴를 이해할 수 없고, 막아야겠다고 느낀다. 평화를 이루기 위한 사명을 띠고 스티브와 함께 섬을 떠난다.

여성 공동체여, 안녕.

런던에 도착한 다이애나는 ‘남성의 세계’에 들어가고, 처음 보고 ‘끔찍하다’고 한다. 여기서 영화의 방향이 크게 바뀐다. 더 이상 강력한 여성들의 여성 공동체는 나오지 않는다. 수백 명의 남성들과 여성 주인공 한 명이 나올 뿐, 여성들의 모임은 보이지 않는다.

영화를 보면서 나는 영화 속 가상의 ‘남성의 세계’에 들어간 느낌이 들었을 뿐 아니라, 여성 주인공의 이야기를 남성의 렌즈를 통해 전하는 헐리우드의 남성의 세계에 들어간 것 같았다.

그뒤로 2시간 동안, 정치인, 지휘관, 중위, 장군, 대위, 병사, 스파이, 파일럿 등 남성들은 잔뜩 나오지만 주요 여성 캐릭터는 원더 우먼, 미친 과학자, 비서 셋 뿐이다. 내가 오프닝의 섬 장면에서 받았던 힘은 줄어들었다, 혹은 아예 빼앗겼다는 느낌이 들었다.

시작할 때는 여성들에게 영감과 희망을 주는 것 같았지만, 곧 전형적인 남성 영웅의 이야기로 바뀌어 버렸다.

미디어에서의 젠더를 연구하는 지나 데이비스 연구소에 의하면 영화와 텔레비전에서 여성과 소녀가 충분히 나오지 않는 것이 여성과 소녀의 마음에 주는 영향은 오래 간다고 한다. 자신에게 무엇이 가능한지에 대해 좁은 시각을 갖게 되고, 남녀 모두가 무의식적 편견을 갖는데 강한 영향을 준다.

지나치게 성적 매력만 부각되거나, 1차원적이거나, ‘호감이 가지 않는’ 등의 유해한 젠더 스테레오타입이 등장할 경우 더욱 큰 해가 된다. 예를 들어 여성 과학자는 사악한 과학자로 묘사되었으며 한 번은 ‘마녀’라고 불리기도 한다. 나는 이것은 똑똑한 여성이 자신의 힘을 사악한 목적으로 사용한다, 여성 과학자는 믿어선 안된다는 유해한 스테레오타입을 강화한다고 느꼈다. STEM(과학, 테크놀로지, 엔지니어링, 수학) 분야에 있는 소녀와 젊은 여성들에게 이게 어떻게 받아들여질까?

모든 여성 캐릭터가 다 긍정적이어야 하고 무지갯빛이어야 한다는 주장은 아니다. 다만 여성 캐릭터의 수가 워낙 적으니, 부정적인 면을 지닌 캐릭터를 만들 때는 생각을 좀 더 해야한다는 말이다.

원더 우먼은 남성 전사 패러다임에 갇힌 여성 전사였다는 걸 알고 나는 놀랐다. 특별한 능력에 의지해 부당함에 맞서 싸우는 단 하나의 영웅인데 말이다.

그리스 신 제우스가 다이애나에게 힘을 준 것으로 밝혀진다. 이 설정은 전혀 여성에게 힘을 주지 못한다. 남성이 우리 중 일부에게 특별한 선물을 줄 권력을 가지고 있다는 체계를 강화하는 셈이다. (그 선물이 승진, 임금 인상 등일 수도 있다.)

사실 다이애나는 ‘신’으로 불리지, 한 번도 ‘여신’으로 불리지 않는다. 나로선 충격적이었다. 여성에게 힘을 준다는 영화가 여성성에 대한 간단한 인정조차 하지 않을 수가 있다니?

다이애나가 자신의 ‘모든 능력’을 발견하는 과정은 힘, ‘남성의 세계’와의 싸움과 관련이 있다. (로맨틱한 사랑과 인류에 대한 사랑이 그 원천이 되었다.) 하지만 이것이 정말 여성의 최종 목적지가 맞나?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여성 영웅의 이야기는 남성 영웅의 이야기와 다르다고 생각한다. 겹치는 부분이 많지만, 나는 여성이 자신의 힘을 깨닫는 과정에서는 여성 공동체가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한다.

쉽게 말해, 힘으로 가는 여성의 길은 외톨이의 공식이 아니다. 집단이 중요하다.

남성들의 세계에서 학문, 직업, 재정적 성공을 거두려 혼자서 노력한 여성들은 정말 많았다. 혼자서 노력하다 그들은 과도한 스케쥴을 소화하고, 녹초가 되고, 스트레스와 관련된 부신 피로와 우울증 등을 앓는다.

여성들을 위한 이런 모델에는 분명 문제가 있다. 여성이 남성의 렌즈를 통해 자신을 보고 남성이 규정한 분화의 기준을 사용해 스스로를 측정하기를 계속한다면, 그게 진보라고 할 수 있을까?

멋진 작품을 만든 패티 젠킨스 감독,원더 우먼 역을 굉장히 잘 소화한 갤 가돗에게 존경과 찬사를 보내긴 하지만, 이런 질문을 던지고 싶다. 한 단계 더 나아가려면, 남성 패러다임 속의 여성 주인공이 아닌, 여성 영웅을 그린 이야기와 영화를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원더 우먼’을 본뒤 여러 여성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들 모두 섬 장면을 좋아했으며, 그 장면이 더 길었으면 좋았을 거라고 말했다. 섬 장면에서 살아있는 기분, 활력, 힘을 느꼈다고 한다. 나 역시 그들도 강력한 여성 공동체의 존재 때문에 그런 감정을 느꼈다고 말했다.

‘원더 우먼’을 진정 여성에게 힘이 주는 영화로 만들려 했다면, 관객들에게 그 섬의 문화에 대해 더 알려주는 게 좋았을 것이다. 육체적인 전사 훈련 외에 내적인 교훈은 어떤 것을 가르치는가? 의사 결정 방법은? 정치 체제는 어떻게 운영되는가? 아마존 여성 한 명을 ‘상원의원’이라고 부르는 장면이 있었다. 나는 그에 대해 알고 싶다.

또한 강한 여성 캐릭터들이 더 있었으면 좋았겠다. 여성 조종사나 여성 가게 사장은 어떨까. 특히 원더 우먼을 돕는 더 많은 여성 캐릭터들이 있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공정하게 말하자면 이 영화의 배경이 된 시대에는 그러기가 쉽지 않았으리라는 건 나도 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나는 ‘남성의 세계’에서 전쟁이 끝난 다음의 삶이 어땠는지 더 알고 싶었다. 삶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아마존 여성들은? 그들이 사회에 통합된 모습은 어땠을까? 즉, 서로를 돕는 여성들의 집단들이 더 많아진 모습은 어땠을까?

원더 우먼이 그 고생을 해서 얻은 것은 무엇인가? 그녀는, 그리고 세계는 어떻게 바뀌었을까?

속편에 등장할지도 모르겠다.

‘원더 우먼’의 원작 코믹은 윌리엄 물튼 마스턴이라는 남성 작가가 만들고 썼다. 여성에 대한 존경과 감사를 담고 있음은 물론이지만, 남성적 렌즈, 남성이 생각하는 이상적 여성이라는 한계가 있었다. 2017년 버전 역시 남성들이 만들었다. 앨런 하인버그, 잭 스나이더, 제이슨 푸크스다. 앨런 하인버그가 시나리오를 썼다.

패티 젠킨스 감독의 업적은 자랑스럽지만, 여성들에게 진정한, 오래 지속되는 변화가 생기려면 제작사 임원들, 주요 제작 작업을 맡는 사람들 중에도 여성이 더 늘어나야 한다.

여성과 소녀들에게 진정 영감을 줄 수 있는, 여성 관점의 새로운 이야기들이 필요하다. 그럴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작가들과 제작자들이 그런 이야기를 대중에게 하길 바란다. 캐스팅 디렉터, 촬영감독, 쇼 호스트 중에서도 여성들이 더 많아져야 한다. 그러면 여성 배우들을 캐스팅하고 보여주는 방식에 있어 젠더 감성이 있는 결정이 이뤄질 것이다.

이 영화에 열광하는 것은 이해가 간다. 우리 여성들은 여성 주인공이 나오는 영화에 목말라 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피해자가 아닌 영웅으로 보길 고대한다. 우리의 삶에서, 우리에 대한 문화의 시선에서 우리의 목소리를 내길 고대한다.

원더 우먼은 개봉 첫 주 주말에 미국과 캐나다에서 1억 310만 달러를 번 것으로 추정된다. 여성 감독 작품으로는 최고 기록이다.

이건 축하할 일이지만, 헐리우드가 ‘닥치고 고마운 줄 알아’라는 태도를 취하지 않을까 걱정도 든다. 즉 여성 감독과 여성 주인공 영화를 줬으니 이제 됐지? 하던 대로 할게, 라고 나오지 않을까 싶다.

코믹북 슈퍼히어로가 처음으로 영화에 등장한 것은 1951년의 ‘슈퍼맨’이었다. 여성이 그 역할을 맡는데 66년이 걸렸다. 여성적 관점에서 나온 진정한 여성 영웅이 등장할 때까지 66년을 더 기다리지는 말자.

여성에게 힘을 주는 것은 여성이 상대를 때려눕히거나 타인에게 권력을 행사하는 것을 보여주는 게 다가 아니다. 자신의 힘을 스스로 사용하고, 여성 공동체에 들어가고, 함께 무엇을 만들 수 있는지 발견하는 것이다.

‘원더 우먼’을 다 보고난 나는 안타깝게도 힘을 얻었다는 기분이 들지 않았다. 어찌할 바를 몰랐고 실망했으며, 솔직히 화가 났다. 왜 이게 여성들에게 힘을 주는 영화라고들 하는 걸까? 나는 내 옆의 친구에게 물었다. “나도 그 생각하고 있었어.” 친구의 대답이었다.

내 테스토스테론 수치는 올라갔지만 그게 내게 힘을 주진 않았다. 그저 공격적인 기분이 되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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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핑턴포스트US의 Why I Didn’t Feel Empowered By ‘Wonder Woman’를 번역, 편집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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