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에서 '옥자'를 보며 체험했던 10가지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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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옥자'에 대한 스포일러가 아주 많습니다.

봉준호 감독의 신작 ‘옥자’가 6월 12일, 언론시사회를 통해 공개됐다. ‘옥자’는 이미 지난 칸 영화제에서부터 극장과 온라인 스트리밍 사이의 갈등을 드러낸 기폭제가 됐던 작품이다. 한국에서도 CGV를 비롯한 멀티플렉스가 개봉여부를 결정하지 않은 가운데, 이미 개봉을 결정한 서울 충무로 대한극장에서 언론시사회가 열렸다.

거대한 슈퍼돼지 옥자, 그리고 옥자를 가족처럼 아껴온 산골소녀 미자의 모험을 그린 이 영화는 공장식 축산산업의 실체를 토대삼아 자본주의의 슬픔을 드러낸다. 누군가에게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이, 또 누군가에게는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가 떠오르겠지만, 역시 ‘옥자’에서 더 많이 발견한 수 있는 건 봉준호 감독의 전작일 듯. ‘옥자’는 오는 6월 28일, 극장과 넷플릭스에서 동시에 개봉될 예정이다. 자세한 이야기는 그때 하도록 하겠다. 일단 극장에서 '옥자'를 관람하는 동안 체험했던 10가지 순간을 먼저 정리했다.

1. ‘넷플릭스의 타이틀’

영화의 시작과 함께 뜨는 건, ‘넷플릭스’의 오프닝 타이틀이다. 벽면에 튀어나온 하얀색 글씨가 빨간색으로 변하는 아주 짧은 타이틀 말이다. ‘옥자’가 넷플릭스의 영화이니 당연한 것이지만, 스마트폰과 PC, 태블릭 등으로 넷플릭스를 사용하던 이들에게 극장 스크린에서 이 타이틀을 보는 건 낯선 경험일 것이다.

2. 옥자의 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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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예고편에서 공개된 부분이지만, ‘옥자’는 정말 큰 동물이다. 옥자의 얼굴이 미자의 몸 전체만하다. 그런데 옥자는 전혀 둔한 동물이 아니다. 옥자는 자유자재로 뛰고, 몸을 날릴 뿐만 아니라 위기 상황에서도 가장 좋은 대안을 찾을 정도로 높은 지능을 가진 동물이다.

3. 옥자와 미자, 미자의 할아버지가 사는 곳

‘옥자’를 꼭 극장에서 봐야하는 이유가 있다면, 영화에서 약 3분의 1정도의 분량을 차지하는 산 속의 풍경 때문일 것이다. 나무는 푸르고, 물은 맑고, 햇빛은 강렬하며 그 속에서 우정을 나누는 미자와 옥자의 모습은 황홀하다. 산 속 시퀀스에서 미야자키 하야오의 ‘원령공주’가 떠오를 수도 있을 듯. 그리고 분명 영화를 보는 내내 앞부분의 장면이 다시 보고 싶어질 것이다.

4. ‘죠니 윌콕스’(제이크 질렌할)의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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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자’에는 매우 많은 외국배우가 등장한다. (사실 넷플릭스가 만든 할리우드 영화에서 한국배우들이 몇몇 등장하는 거나 다름없지만...) 틸다 스윈튼, 릴리 콜린스, 폴 다노 등이 있지만 이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등장을 보여주는 건 제이크 질렌할이 연기한 죠니 윌콕스다. 동물학자이자 동물관련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인기 방송인이며 ‘옥자’를 생산한 거대기업 미란도 코퍼레이션과 손을 잡은 그는 여러 외국인 캐릭터 중에서 유일하게 미자의 산 속 오두막을 방문한다. 첫 등장부터가 강렬하게 소란스럽다.

5. 미자의 운동신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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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고편에서도 봤지만, 미자는 보통 소녀가 아니다. 말로 안되면, 몸을 던지는 건 미자나 옥자나 마찬가지다. 본격적인 액션에 앞서 미자가 산 속을 질주하는 장면이 있다. 이후에 보여질 미자의 운동신경이 산속에서 자라며 길러진 것이라는 추정을 할 수 있다.

6. 을지로 지하상가에서 벌어지는 추격전

봉준호 감독의 전작들을 본 관객이라면, 그가 난장판을 연출하는데 매우 탁월한 감독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옥자’에서 이런 그의 장기가 드러나는 장면이 바로 지하상가에서 벌어지는 추격전이다. 이 시퀀스에서 많은 이들이 ‘괴물’의 한강 추격전 장면을 떠올리는 건 무리가 아니다. 하지만 ‘괴물’의 그 장면이 넓은 공간을 배경으로 한다면, ‘옥자’ 속 지하상가는 매우 좁은 공간이다. 옥자의 거대한 몸이 이 공간을 통과하며 만드는 난장판의 쾌감은 ‘괴물’보다 더 크다.

7. 동물해방전선(ALF‧Animal Liberation Front)의 멤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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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다노와 릴리 콜린스, 스티븐 연 등은 동물해방전선의 멤버를 연기한다. 전 세계 도살장과 동물원등의 문을 해체하고, 동물을 학대하는 기업들의 실체를 고발하는 이들도 옥자를 향한 추격에 동참한다. 동물해방을 위해 살아오면서 이 단체가 지켜온 신념을 이야기하는 폴 다노의 모습에서 ‘데어 윌 비 블러드’ 속 그의 모습이 떠오를 수도 있을 듯. 뭔가 좋은 일을 하는 것 같은데, 그리 좋은 방식으로 일하는 것 같지는 않고, 그래도 귀여운 구석이 있는 운동가들이다. 그런데 릴리 콜린스의 경우 실제 분량으로 따지면, 꼭 릴리 콜린스 정도의 배우가 나올 필요가 있었을까 싶은 의문이 남는다.

8. ‘옥자’에서 가장 보기 힘든 장면

한국에서 미국으로 데려온 옥자는 어느 실험실로 끌려간다. 여기에서 영화 전체를 통틀어 가장 보기 힘든 장면이 나온다. 단, 영화에서는 실제적인 장면보다는 사운드로 묘사를 하는데, 그래서 더 끔찍하게 느껴지는 장면이다. 이 장면에 대해 봉준호 감독은 칸 영화제 기자회견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이런 장면은)동물 관련 다큐멘터리들이 많이 다뤄왔지만, 극영화에선 아마도 처음인 것 같다. 동물도 우리와 함께 자본주의 시대를 사는 피로와 고통이 있다. 그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자 했다”고 말했다.

9. 수 만마리의 슈퍼돼지들

옥자를 구하려는 미자가 끝내 도착하는 곳은 공장식 도축장이다. 극중에서 미자의 할아버지는 옥자는 “목살, 등심, 삼겹살이 될 운명”이라고 말한다. 옥자의 운명을 실감하지 못했던 미자가 드디어 실체와 마주하는 순간이 이 장면이다. 동물 관련 다큐멘터리와 기사등을 통해 접했던 내용과 크게 다르지는 않지만, 옥자의 얼굴이 보이는 순간 지옥으로 느껴질 것이다. 돼지를 총으로 쏴서 죽인 후, 가죽을 벗겨내고, 몸통을 부위별로 잘라 따로 포장을 하는 생산라인의 풍경이 묘사된다.

10. 미자의 마지막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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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 감독의 영화에서 후련하고, 감동적인 결말을 기대하는 건 무리다. 그는 관객에게 감동을 선사할 생각이 아예 없는 영화감독이다. 연쇄살인범은 끝내 잡히지 않았고, 괴물에게 자식을 잃은 아빠는 가까운 곳에 총을 두고 산다. 살인범으로 몰린 아들을 구한 엄마는 자신이 마주한 진실을 잊으려고 발버둥치고, 17년 내내 달리기만 하던 기차에서 빠져나온 소녀와 꼬마는 사실 이제 어떻게 살아갈지 막막하다. ‘옥자’의 마지막 또한 마찬가지다. 아름답지만, 찜찜한 구석이 있다.

11. 극장을 나오며...

‘옥자’는 분명 좋은 메시지를 담고 있는 재미있는 영화다. 돼지는 사랑스럽고, 소녀는 용감하다. 하지만 동시에 슬픈 이야기다. 사랑스러운 돼지는 고통받고, 그런 돼지를 구하려는 소녀는 몸이 부서져라 달려야 한다. 그런데 ‘옥자’는 그동안 보았던 봉준호 감독의 장점이 살아있는 작품일까? ‘괴물’과 ‘마더’등에서 경험했던 영화적 밀도에 비해 ‘옥자’는 흥미로운 부분과 지루한 부분이 명확하게 구분되는 영화다. 만약 ‘넷플릭스’를 통해 ‘옥자’를 다시 본다면 새로운 느낌을 얻게 될까? 극장에서 ‘옥자’를 체험했으니, 6월 29일 넷플릭스를 통해 한번 더 경험해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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