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시대'에 정치 드라마들은 고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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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비전은 타임 캡슐과도 같다. 한 시대의 불안과 가치는 엔터테인먼트에 반영될 수밖에 없다. 어느 시기의 사회적, 문화적, 정치적 상황을 알고 싶다면, 그 당시의 TV 쇼를 보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다.

그러므로 방송국들이 5월에 발표한 2017~2018년 스케쥴 중 새로운 시리즈들을 보면 도널드 트럼프의 대통령 취임이 드라마 편성에 미친 영향을 볼 수 있다.

작년 12월에 콘텐트 런던 미디아 서밋에서 채닝 던지 ABC 엔터테인먼트 사장은 트럼프 승리 이후 자사의 편성 철학에 의문을 품게 되었다고 말했다.

“우리 드라마 중에는 아주 잘 살고 교육을 많이 받은, 아주 좋은 차를 몰며 굉장히 좋은 집에 사는 사람들이 나오는 게 많다. 그런 드라마들은 분명 유지될 것이고, 우린 그런 이야기들을 꼭 계속 보여주고 싶다. 소원 성취는 우리가 엔터테이너로서 하는 일의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우리 드라마들은 미국인들의 일상적인 삶의 진정한 현실에 충분히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트럼프의 승리뿐 아니라 시청률 역시 이러한 자성을 이끌어낸 것 같다. ‘스캔들’, ‘디 아메리칸즈’, ‘홈랜드’, ‘마담 세크리터리’, ‘지정 생존자’, ‘콴티코’ 등 거의 모든 정치 드라마들이 선거 기간 동안 시청률이 하락했으며, 트럼프 당선 이후 더욱 떨어졌다.

케이블 뉴스 네트워크는 선거를 앞두고 시청률이 크게 올랐으며, 거의 매주 백악관 관련 스캔들이 터지면서 고공 행진을 계속하고 있다. 하지만 ‘스캔들’, ‘콴티코’, ‘지정 생존자’를 방송하는 ABC 같은 방송사는 정치적 피로감의 영향을 크게 받고 있다.

특히 ‘스캔들’은 트럼프 시대의 피해자로 보인다. 시청률 하락이 2015년에 시작되긴 했지만, 폐지될 위험까지는 없었다. 선거 후 제작자인 숀다 라임스는 인터뷰에서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고 난 이후 이 시리즈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말을 자주 한다. 올리비아 포프와 글래디에이터들이 벌이는 드라마 속 스캔들이 심야 뉴스에 나오는 소식들보다 훨씬 더 드라마틱하긴 하지만, 트럼프 취임 직후에 방영된 최근 시즌의 첫 에피소드들에서는 선거를 다루었다. 시청자들은 선거일에 겪었던 상실감을 다시 느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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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캔들’의 초기 시즌은 대성공을 거두었지만, 7시즌을 마지막으로 막을 내린다는 소식은 놀랍지 않았다.

“나는 이걸 어떻게 끝내야 할지 알고 있었다. 그런데 도널드 트럼프가 당선되었다. 우리에겐 목적지가 있었다. 난 이제 그게 우리의 목적지가 맞는지 모르겠다.” 라임스가 4월에 헐리우드 리포터에 한 말이다.

뉴욕타임스에 한 말도 비슷하다. “우리 쇼는 기본적으로 호러물이다. 정말이다. 우리는 워싱턴의 사람들은 괴물이며, 장막 뒤에서 일어나는 일을 안다면 누구나 기겁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들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살인도 할 수 있고, 언제나 무슨 일을 해도 처벌받지 않는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건 오바마가 대통령인 세계, 우리 시청자들이 워싱턴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만족하던 세계, 낙관적이던 떄에 기반한 것이었다. 불이 켜져 있을 때는 호러 이야기를 할 수 있다. 하지만 불이 꺼진 지금, 사람들은 호러를 보고 싶어하지 않는 것 같다. 사람들은 어딘가 촛불을 켜주길 원한다.”

ABC가 최근에 선보인 키퍼 서덜랜드 주연의 ‘지정 생존자’는 9월에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으나, 선거가 다가오고 트럼프가 당선될 때까지 매주 수백만명의 시청자를 잃었다. 시청률 하락이 전적으로 트럼프 탓이라고 대놓고 말하지는 않지만, 던지는 사실상 그렇게 설명했다.

“백악관 정치 피로감과 어느 정도 관련이 있는 것 같다 … 지금은 전반적으로 정치 드라마를 만들기 힘든 때이다. 우리가 사는 세계에 큰 변화들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던지가 1월에 엔터테인먼트 위클리에 한 말이다. 또한 캐릭터들과 캐릭터 사이의 관계를 파고 들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것은 정치적 스토리라인보다는 로맨틱 드라마에 집중하겠다는 뜻으로 보인다.

그런데 ‘평범한 미국인들’(즉 트럼프를 찍은 사람들을 말한다)의 삶의 현실을 보여주는 드라마에 집중한다던 ABC는 편성 철학을 별로 바꾸지 않은 것 같다. 새 시리즈들을 발표하자, 배니티 페어는 ABC가 사실은 트럼프를 ‘조용히 트롤’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문을 표했다. 보수 성향 히트작 ‘라스트 맨 스탠딩’을 취소했기 때문이었다.

ABC가 새로 선보일 시리즈 중에는 ‘전쟁으로 피폐해진 나라에서 온 난민들이 미국의 작은 어촌으로 망명하려 하는데, 이들이 온 나라는 미국이다. 그리고 그들을 피난길에 오르게 한 일은 아직 벌어지지 않았다.’는 설정의 ‘더 크로싱’이 있다. 또한 화제거리를 만들기 위해 시장 선거에 출마했다가 당선되어버리는 래퍼의 이야기를 담은 ‘더 메이어’도 있다. 두 드라마 모두 꽤 날이 서 있다는 느낌이다. 던지는 ‘더 메이어’가 “지금의 일들에 대한 시의적절한 비유”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게다가 ABC가 접기로 한 파일럿들은 더욱 의미심장하다.

‘블래키시’를 만든 케냐 배리스의 코미디 ‘리비 & 맬컴’을 접기로 했다. 펠리시티 허프만과 커트니 B. 밴스는 “극과 극으로 다른 정치 평론가가 서로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사랑에 빠져 즉석에서 가정을 이루고, 일도 함께 하게 된다.” 쇼 진행자 마크 체리의 새 드라마 ‘레드 블러디드’는 레바 매킨타이어를 켄터키 주 작은 마을의 보안관 역으로 캐스팅할 예정이었다. 보안관은 “중동 핏줄의 젊은 FBI 요원이 보안관을 도와 끔찍한 범죄를 해결하자 공화당 지지 성향의 관점이 흔들리는 것을 느낀다는” 설정이었다.

두 시리즈를 보지 못한 상태에서 언급하긴 힘들지만, 우리의 차이점은 뒤로 미뤄놓자는 수사를 지나치게 정확하게 보여주는 것 같다. 정치 드라마(‘VEEP’과 같은 정치 코미디조차)가 트럼프의 시대에서 실패하고 있는 현실을 볼 때, ABC가 이 드라마들을 접는 것도 놀랍지 않다.

시청자들이 정치에 관심을 잃은 것은 아니다. MSNBC가 최초로 주간 시청률 1위를 기록한 것만 봐도 그렇다. 하지만 시청자들이 지쳐서 오락과 정치를 분리하고 싶어하는 것도 것도 이해가 간다. 그리고 ‘극과 극으로 다른 정치 평론가’가 사랑에 빠지는 걸 보고 싶다면, 조 스카보로와 미카 브레진스키가 아침 뉴스 프로그램 ‘모닝 조’에서 옥신각신하는 걸 보면 된다.

던지는 가을 편성에서 현재의 정치적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고 기자들에게 말한 바 있다.

던지는 이번 달에 광고주 개상 프리젠테이션 전 컨퍼런스 콜에서 “뉴스가 많고, 사람들은 TV를 볼 때 웃고, 울고, 즐기며 감정을 느끼고 싶어한다고 생각한다. 이 나라의 분위기를 보면 TV가 탈출구라는 걸 알 수 있다 … 이번 시즌 프로그램들을 생각할 때 이 사실이 큰 영향을 주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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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탈출구를 원한다면, 2017~2018 시즌에 슈퍼히어로 쇼가 무려 8개나 예정되어 있다는 사실도 설명된다. ‘빅뱅 이론’이 현재 TV 시청률 1위라는 사실은 시청자들은 정치적인 드라마를 보기보다는 웃음을 원한다는 것을 시사한다. ‘디스 이즈 어스’가 수위를 차지한 것은 시청자들이 사람들간의 관계를 다룬 이야기를 원한다는 걸 보여준다. 방송사들은 새 시즌을 맞아 기존 포맷을 뒤엎고 잘 먹힐 편성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영 셸든’이 그 예다.

지금의 정치적 상황 속에 TV에서 카타르시스를 원한다는 것은 ‘새터데이 나잇 라이브’가 최근 몇 년 동안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했다는 것, 스티븐 콜버트가 2016~2017 시즌 심야 시청률 1위에 등극했다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시청자들은 드라마의 탈을 쓴 현 정치 상황에 대한 묵직한 강의에는 지쳤지만, 풍자에는 목말라 있다.

“최근 몇 년 간은 ‘SNL’에게 있어 힘든 해였다. 문화의 분열이 심했기 때문이다. ‘왕좌의 게임’ 같은 인기 쇼의 패러디를 한다 해도 ‘치어스’나 ‘프렌즈’처럼 시청자 전부가 공감할 수 없었다. 한편 지금의 정치는 전국에 큰 영향을 미치는 현상이며, 이런 일은 정말 오랜만이다. 사람들은 정치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우리 프로그램엔 좋은 일이다. 하지만 너무나 힘든 상황이 우리에게 유리하게 작용했다보니, 전쟁에서 이득을 보는 무기상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다.” ‘SNL’ 작가이자 ‘위크엔드 업데이트’의 공동 앵커인 콜린 조스트가 헐리우드 리포터에 한 말이다.

정치가 모든 관심을 다 빼앗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면, 정치 드라마는 어떻게 될까? 5월 30일부터 넷플릭스에서 다섯 번째 시즌을 시작한 ‘하우스 오브 카드’와 같은 드라마는 백악관의 현실 만큼 괴상한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 없다는 평론가들의 비판을 받는다. 클레어 언더우드 역의 로빈 라이트마저 트럼프가 시즌 6의 아이디어를 다 훔쳐갔다는 농담을 했다. 트럼프는 아직 ‘하우스 오브 카드’의 황당함을 따라잡지는 못했지만, 아직 시간은 충분하다.

족벌주의, 포퓰리즘, 유권자 억압, 헌법의 위기, 탄핵 가능성, 늘어나는 전사자를 생각하면, ‘하우스 오브 카드’의 시즌 5는 결코 지루하지는 않다. 하지만 현 정권처럼 마냥 지켜볼 수 있을 정도로 재미있지는 않다.

넷플릭스는 시청률 데이터를 공개하지 않기 때문에 ‘하우스 오브 카드’ 시청자가 얼마나 되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넷플릭스 시청자들은 아마 TV 시청자들이 경험하는 것과 같은 정치적 피로감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멜리사 깁슨과 프랭크 퍼글리스도 이 점을 인지하고 있다.

“TV 쇼는 정치를 닮아왔지만, 지금의 정치 이야기, 특히 대통령을 둘러싼 정치 이야기는 정말이지 TV 쇼 같아졌다. 매일 방영되는 쇼, 트럼프 쇼와 경쟁하고 있다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하루 24시간 방영되는 쇼다. 하지만 우리가 손을 쓸 방법은 없다.” 퍼글리스가 최근 허프포스트 전화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하우스 오브 카드’ 시즌 5의 플롯은 최근의 정치 뉴스에서 따온 것은 아니다. 대선일에 이미 시즌 5 마지막 에피소드들을 촬영하고 있었따. 하지만 쇼의 테마와 플롯들은 현재 미국 정부에서 이미 일어나고 있는 일들과 상당히 비슷하고, 판타지와 리얼리티의 경계는 흐릿하다. 트럼프가 온갖 스캔들을 일으킨 뒤 ‘하우스 오브 카드’를 보면 리얼리즘이 한 겹 더해질 수 있겠다. 이 시리즈 전체가 현 대통령에 대한 언급이 아니라고 믿기가 점점 더 힘들어진다.

물론 프랜시스 언더우드는 트럼프보다 먼저 백악관에 기어들어갔다.

“우리는 현실 세계와 대화를 주고받는 독특한 위치에 있다고 생각한다.” 시청자들이 ‘하우스 오브 카드’와 트럼프를 연결짓게 될 거라 생각하는지 묻자 깁슨이 허프포스트에 말했다. “하지만 물론 우리의 세계는 다른 세계이고, 근본적 차이는 프랜시스 언더우드는 시스템 내에서 올라갔다는 점이다. 언더우드는 뼛속까지 정치인이며 시스템 안의 사람이다. 시스템을 폭파시키려 하지만, 안에서부터 폭파시키려 한다. 한편 도널드 트럼프는 밖에서부터 시스템을 폭파시키려하는 오만한 아웃사이더다.”

프랜시스 언더우드와 트럼프의 차이점은 그외에도 많다. 언더우드는 TV에 등장하는 캐릭터 중 가장 말을 잘 하는 사람 중 하나인 반면, 트럼프는 67개 정도의 단어만 사용한다. 하지만 이것이 트럼프가 TV에 미치는 영향 중 하나다. 트럼프와 무관한 것까지도 트럼프에 대한 것이 되어버린다.

“우리는 문화적, 정치적으로 지금 이 순간에 반응하고 있다. 트럼프를 만들어낸 순간이기도 하며, 어찌보면 프랜시스를 만들어낸 시간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그 둘 사이의 유사점은 최근 몇 년 간에 일어난 일에서 나온 것일 수 있다. 프랜시스는 몇 시즌 전부터 국수주의와 포퓰리즘을 거론했다. 지금 이 시대의 분위기가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퍼글리스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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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프포스트US의 From ‘Scandal’ To ‘House Of Cards,’ Political Dramas Are Suffering In The Trump Era를 번역, 편집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