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더우먼'을 둘러싼 정체성 논쟁 몇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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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NDER WOMAN GAL GADOT
Cast member Gal Gadot poses at the premiere of "Wonder Woman" in Los Angeles, California U.S., May 25, 2017. REUTERS/Mario Anzuoni | Mario Anzuoni / Reu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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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 영화 '원더우먼'이 주연배우의 ‘정체성 논란’으로 중동과 북아프리카에서 줄줄이 상영 금지되고 있다. ‘유대인은 백인인가 유색인종인가’라는 오래된 논쟁도 튀어나왔다.

8일 워싱턴 포스트 등을 보면, 레바논 정부는 지난달 31일 '원더우먼'의 15개 극장 동시 개봉을 불과 2시간 앞두고 금지시켰다. 튀니지에서도 개봉을 하루 앞둔 7일 상영이 금지됐다. 알제리에서는 8일로 예정됐던 영화제 상영이 취소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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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에서는 온라인에서 상영 반대 운동이 광범위하게 일었다. 주연배우 갤 가돗(32)이 단순히 이스라엘 태생이어서만은 아니다. 2004년 미스 이스라엘 출신인 그는 여성에게도 의무인 2년간의 군 복무를 했다. 복무 기간은 레바논인 1천명 이상이 희생된 2006년 이스라엘-레바논 전쟁 기간과 겹친다. 2014년 이스라엘군이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를 폭격했을 때 가도트가 페이스북에서 이스라엘군을 ‘응원’한 것도 중동인들의 반감을 산다.

가돗은 “겁쟁이처럼 여성과 아이 뒤에 숨어 끔찍한 짓을 하는 하마스(팔레스타인 무장단체)에 맞서 조국을 지키려고 목숨을 내건 모든 소년과 소녀들, 이스라엘 시민들에게 사랑과 기도를 보낸다”고 적었다. 중동 지역 개봉일인 8일이 이스라엘군이 6일전쟁에서 가자지구를 점령한 지 50돌이라는 점도 논란거리다.

2014년 가자지구 폭격 때 이스라엘군을 응원하는 페이스북 메시지를 올리면서 딸과 함께 찍어 첨부한 사진.



여기에 통상 원더우먼은 백인 영웅의 이미지라는 점에서 ‘유대인은 백인인가’라는 해묵은 논쟁까지 재발했다. 미국 영화 매체가 ‘유색인종이 주인공’이라고 한 게 발단이다. 이스라엘 언론에선 이를 둘러싼 글이 잇따라 실리고 있다.

유대인은 크게 아슈케나지, 세파르디, 미즈라히, 에티오피아계로 분류되곤 한다. 로마 등의 탄압으로 각각 동유럽, 이베리아반도, 중동 지역, 에티오피아 쪽으로 흩어진 유대인의 이산(디아스포라) 때문에 생긴 구분이다. 가돗의 할아버지는 아우슈비츠 수용소 생존자로, 조상이 동유럽에 산 가돗는 아슈케나지다.

그런데 오랫동안 흩어져 살다 보니 유대인들의 유전적 친연성은 옅어졌다. 동유럽 출신은 코카서스인에 가까운 외모인 반면 에티오피아·중동계는 피부색이 어둡다. 고대 유대인은 팔레스타인인들과 같은 셈족 계열이다.

미국에서는 유대인을 백인으로 분류하고도 다른 백인과 같은 특권을 주지는 않기도 했다. 유대인들은 이런 ‘이중성’ 때문에 비백인이라는 이유로 박해받기도 하고, 팔레스타인 땅을 점령한 백인이라는 비난도 듣는다. 일부 유대인들은 인종을 따지는 것 자체가 반유대주의와 연결된다고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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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더우먼'은 ‘페미니즘 영화’로도 주목받는다. 1941년 만화로 처음 등장한 원더우먼은 강한 힘을 가진 여성 히어로라는 점에서 페미니즘의 상징이 되기도 했지만, 남성이 쇠사슬을 걸면 힘을 잃는 무기 등 일부 설정과 장면이 남성의 성적 판타지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받았다. 여성 감독 패티 젠킨스가 연출을 맡은 이번 작품은 여성 영웅을 단독 주연으로 내세우고 액션에 집중한 연출 덕에 여성 영웅의 가치 그 자체를 강조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워싱턴 포스트는 여러 논란에 대해 “'원더우먼'이 교차성(intersectionality)에 대한 논쟁을 다시 불러일으켰다”고 했다. 교차성은 한 사람한테 존재하는 인종·계급·민족·종교·성적지향 등 여러 정체성이 사람이 차별당하는 방식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에 관심을 두는 개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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