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들이 열흘 동안 '풀 메이크업'을 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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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점막을 채우는 게 진짜 어렵거든요. 내 손을 믿지 말고 집중해야 해요.”

지난 30일 오후 서울 강남구 역삼동 한 카페에서 김정현(24)씨가 오른쪽 눈 아래 점막을 검은색 펜슬 아이라이너로 채워나갔다.

피붓결을 정돈하는 베이스크림부터 선크림, 비비크림을 차례로 덧바른 데 이어, 얼굴에 윤곽을 주는 하이라이터와 셰이딩까지 마무리한 김씨에게 찾아온 난관은 바로 얼굴의 인상을 좌우하는 ‘눈화장’. 거울로 양쪽 아이라인이 비뚤어지진 않았는지, 아이라이너가 눈 밑으로 번지진 않았는지 수시로 살피던 김씨는 검은색 아이섀도와 금빛 ‘글리터’(반짝이)까지 눈두덩이에 얹고 나서야 화장을 마쳤다.

화장하는 데 걸린 시간은 총 40분. 비비크림이 덮인 김씨의 이마 위로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매일 ‘풀메이크업’으로 출근하는 김씨는 지난 2월 군에서 제대한 남성이다. 평소 외출할 땐 얼굴에 선크림을 바르는 게 고작인 김씨가 화장을 시작한 계기는 ‘화장하는 남자’ 프로젝트였다.

김씨는 “여자가 ‘쌩얼’을 하면 ‘화장도 안 하냐’는 타박을 받고, 남자가 색조화장까지 하면 이상한 눈으로 쳐다본다”며 “화장에 대한 차별이나 불평등을 직접 느껴보려고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됐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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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0일 ‘풀메이크업’을 한 김정현(24)씨가 사용한 화장품들.

‘화장하는 남자’ 프로젝트는 그간 여성의 몫으로만 여겨졌던 화장을 남성 참가자들이 열흘간 직접 체험해보는 행사다. 화장으로 인한 불편함과 고충을 직접 깨닫고, 이를 통해 여성들에게 화장을 강요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점을 알리자는 취지다.

프로젝트를 주도한 고려대생 최기선(21·자유전공)씨는 취지에 공감하는 친구들과 기획단을 꾸리고, 페이스북을 통해 참가자들을 모집했다. 화장품은 주변에서 기부를 받고, 모자라는 부분은 사비로 해결했다.

참가자 13명은 지난 25일 열린 첫 모임에서 화장법 강의를 들은 뒤, 일상생활에서 화장을 하며 겪는 어려움을 나누고 있다. 최씨는 “남성들이 귀찮고 힘든 점을 감수하면서 여성들의 고충에 대해 공감하는 것 자체가 취지”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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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5일 오후 서울 성북구 고려대의 한 강의실에서 진행된 ‘화장하는 남자’ 프로젝트 첫 모임에서 한 참가자가 화장 실습을 하고 있다.

실제로 화장은 중요한 자기표현의 수단이지만, 여성들에게는 또다른 강요로 다가오는 것이 현실이다.

지난 3월 알바노조가 편의점, 영화관, 음식점 등에서 일하는 여성 아르바이트 노동자 495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일터에서 머리 색깔, 화장 등 용모 단정과 관련해 벌점을 주거나 지적한다”고 응답한 비율이 60%에 이르렀다. 응답자의 45%가 가장 힘든 점으로 꼽은 것 역시 ‘화장이나 옷차림 등의 외모 통제’였다.

‘풀메이크업’을 한 지 엿새가 지나자 참가자들은 화장으로 인해 ‘일상’이 달라졌다고 입을 모았다. 밥을 먹거나 땀을 흘린 뒤에 반복적으로 화장 수정을 하느라 진이 빠지고, 옷을 갈아입다 흰 티셔츠에 화장품이 묻어 당황하기도 일쑤였다.

김정현씨는 “여자친구가 화장을 했을 때 왜 뜨거운 순대국밥을 먹기 싫어했는지 이제야 알 것 같다”고 말했다. 최기선씨 역시 “(화장 때문에) 얼굴이 답답한 느낌이 들 뿐 아니라 행동도 하나하나 조신해야 할 것만 같은 이상한 강박관념에 갇히게 되더라”며 “마음가짐이나 행동까지 사회적인 시선에 맞게 재단되는 것 같다”고 토로했다.

프로젝트 기획단은 남성 참가자들의 화장한 모습과 소감 등을 페이스북 페이지를 통해 공유하고 있다. 오는 7일까지 이어지는 활동 모습을 담은 영상도 제작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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