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스트 이슈는 트랜스젠더 이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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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o female transgender friends looking at camera, cheerful expression | Johnny Greig via Getty 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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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호교차적(intersectional) 페미니즘은 평등은 나와 비슷한 여성들만을 위한 것이 아님을 인식한다. 평등은 모두를 위한 것이어야 한다. ‘적절한’ 여성들만을 위하려 한다면 우리의 운동은 축소되며, 페미니즘에 상호교차성이 부족했던 과거의 실패를 반복하게 된다. 게다가 단순한 연대의 개념을 넘어, 페미니스트와 트랜스젠더의 핵심 이슈들 중 상당 부분은 일치한다.

1. 젠더 고정 관념과 싸우기

1989년에 미국 대법원은 앤 홉킨스 사건을 다루었다. 홉킨스는 자신이 일하는 회사에서 승진이 2년 연속 연기된 것이 자신이 젠더 고정 관념을 따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홉킨스의 부서장 토마스 베이어는 승진 가능성을 높이려면 “더 여성스럽게 걷고, 메이크업을 하고, 헤어스타일링을 받고, 보석을 달아라.”고 말했다. 남성 직원들 중에는 자신이 생각하는 여성의 행동 방식대로 홉킨스가 행동하지 않아서 그녀가 파트너가 되는 게 불편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프라이스 워터하우스 사는 항소했으나, 대법원은 젠더 고정 관념에 기반해 고용에 대한 결정을 내리는 것은 성차별이므로 1964년의 공민권법 7조 위반이라는 하위 법원의 판결을 유지했다.

홉킨스 건은 직장내 여성 권리 확립에 있어 중대한 사건이었지만, 그 이후 직장에서 트랜스젠더 보호의 손을 들어준 거의 모든 소송에서 홉킨스 사례를 기본 논거로 삼았던 것은 우연이 아니다. 가부장적 젠더 규범을 누구에게도 적용하지 않으면서 트랜스젠더들에게는 요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이는 트랜스젠더를 남성과 여성 아래에 두는 합법적 계급제를 받아들이는 셈이다. 스스로가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이런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어야 한다.

우리는 젠더 고정 관념은 모든 사람에게 해로움을 인지하고, 함께 그에 맞서기를 다짐한다. 우리 자신, 삶에서 우리의 역할, 우리의 젠더 표현 방식 등을 정의하는 것은 보편적 인권이다.

2. 신체적 자주권

2014년 6월에 두 보수주의자가 과격한 반 트랜스젠더 글을 미국 전국지에 기고했다. 폴 맥휴 박사는 트랜스젠더는 정신병이라며 성전환에 반대하는 글을 월스트리트 저널에, 케빈 윌리엄슨은 트랜스젠더의 정체성을 공격하는 견문이 좁고 독설에 찬 글을 내셔널 리뷰에 기고했다.

두 사람 모두 생식권에 대해서도 과격한 반대 입장을 취하고 있다. 괴상한 견해를 지닌 맥휴는 정통 가톨릭을 자처하며, 교회 내 스캔들에서도 역할을 했다. 게다가 맥휴는 모든 낙태에 반대하며, 성인 친척에게 강간당해 임신한 11세 소녀가 출산으로 인해 사망한다 하더라도 아기를 낳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케빈 윌리엄슨은 낙태를 한 여성, 낙태 시술을 한 의사와 간호사들은 모두 교수형에 처해야 한다고 했다.

의학적으로 필요한 치료, 우리의 몸을 원하는 대로 할 권리는 페미니스트와 트랜스젠더 모두에게 근본적 이슈다. 타인들의 믿음이 트랜스젠더와 의사 사이에 끼어들게 한다면, 그들이 다른 사람들과 의사 사이에 끼어들게 하지 못할 핑계가 과연 있을까?

3. 가부장제/주인중심제(kyriarchy)에 대한 반대

여성을 묶어두기 위한 구조는 트랜스젠더들이 커밍아웃하지 못하게 가둬두려하는 구조와 동일하다. 교회 내에서 여성이 영향력있는 자리에 오르는 것을 금지하는 종교 기관은 보편적으로 성전환을 죄로 간주한다. 여성들을 막는 유리 천장은 트랜스젠더(특히 트랜스 여성)들도 가로막는다. 우리는 아직도 군대 안에서의 여성과 트랜스젠더의 역할을 놓고 싸우고 있다. 여성과 트랜스젠더 여성들은 자신의 성적인 존재가 병적으로 여겨지거나 잘못된 양분법(헤픈 여자 vs. 불감증, 게이 남성 vs. 페티시 소유자)에 갇히는 것에 계속해서 맞서 싸우고 있다.

트랜스젠더는 가부장적 권력구조들, 그를 뒷받침하는 논리들에 큰 위협이 된다. 우리는 남성 혹은 여성이라는 것은 이러한 ‘의미’를 갖는다는 주장이 그은 선을 흐리게 만든다. 성적 지향과 섹슈얼리티의 관례적 규정을 없앤다. 우리는 너무나 많은 형태의 억압(성차별, 동성애혐오, 인종차별)의 교차지점에 있다. 트랜스젠더 이슈를 성공적으로 다루면 가부장적 권력구조의 여러 중심지에 침투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젠더 고정 관념을 강화하려 하는 주체들의 억압을 방어할 수 없었던 곳들에서 방어의 방법을 찾을 수 있게 된다. 폭력의 피해자를 비난하고 책임을 떠넘기던 것, 게이와 레즈비언에 대한 ‘차별할 권리’를 보장하는 법의 도입 요구, 끔찍한 아동 학대를 훈육이란 이름으로 두둔하는 행위, 정교 분리 개념 폐지 요구 - 이 모든 것은 필요한 어떤 수단이라도 끌어다 스스로를 지키려는 권력에서 나온다.

페미니스트와 트랜스젠더 이슈들은 상호의존적이다. 신체 자주성을 모두에게 보장할 것이냐, 아무에게도 주지 않을 것이냐. 젠더 고정관념 강요는 우리 모두에게 적용되거나, 아무에게도 적용되지 않는다. 우리를 지배하는 억압 체제에 반대하면서, 그 체제가 불리한 단 한 집단 만큼은 계속 억압하게 묵인할 수는 없다.

우리는 함께 해야만 성공할 수 있다. 페미니스트 이슈는 트랜스젠더 이슈이기 때문이다.

허핑턴포스트US의 Feminist Issues Are Transgender Issues를 번역, 편집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