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간 인권위가 엉망진창이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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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1월 쌀 수입 협상 반대 시위에 참여했던 농민 2명이 경찰 진압 과정에서 숨졌다. 같은 해 12월26일 국가인권위원회는 “사망 원인은 경찰의 과잉진압 탓”이라며 경찰 수뇌부를 문책하라는 권고안을 채택했다. 바로 다음날인 12월27일 노무현 대통령은 “인권위 권고에 따라 책임자를 가려내고 피해자에게 배상하겠다”는 대국민사과문을 발표했다. 이틀 뒤 허준영 경찰청장은 사태에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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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병철 전 위원장

2015년 11월 민중총궐기대회에서 경찰의 물대포에 맞아 백남기 농민이 쓰러졌다. 인권위는 10개월 뒤인 지난해 9월이 돼서야 수사당국에 신속한 수사를 촉구했다. 이후 이 사건에 대해 사과한 사람도, 책임진 사람도 없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기 ‘한국 인권의 보루’로 여겨진 인권위에 지난 10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독재했다고 해도 좋다.” 2009년 12월28일, 현병철 전 인권위원장이 용산참사를 다루던 회의를 강제 폐회하며 했던 이 발언은 ‘반인권’ 인권위의 모습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2009년 7월 이명박 전 대통령이 현 위원장을 임명한 뒤, 인권위는 <피디수첩> 수사, 용산참사, 민간인 사찰 등 국가기관의 인권침해 사안에 대해 아무런 의견을 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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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전 위원장 체제에 문제를 제기하는 위원들의 사퇴가 잇따랐다. 2010년 11월 유남영·문경란 상임위원이 사퇴했고, 조국 비상임위원(현 청와대 민정수석)도 물러났다. 조 수석은 당시 사퇴하면서 “현 위원장이 정파의 잣대로 인권위를 운영하면서 본연의 역할을 방기했다. 사태의 심각성을 알리기 위해 물러난다”고 말했다.

현 전 위원장은 2011년엔 인권위 계약직 조사관의 계약 연장 거부에 반발해 1인시위를 벌인 직원 11명을 징계하며 ‘내부 단속’도 확실히 했다. 2014년엔 아동성폭행 피해자를 ‘2차 가해’한 전력이 있는 유영하 변호사와 성소수자 혐오를 드러내온 최이우 목사가 나란히 상임위원으로 임명돼 시민사회로부터 ‘무자격 반인권’ 인사라는 비판을 받았다.

인권위의 뒷걸음질엔 국제적 망신이 뒤따랐다. 2014년 4월 세계 120여개국의 인권기구 연합체인 ‘국가인권기구 국제조정위원회’(ICC)는 인권위에 대해 상임위원 임명 절차의 불투명 등을 문제 삼아 ‘등급 보류’ 판정을 내렸다. 2004년 아이시시에 가입한 뒤 처음 당한 수모였다. 이전까지 인권위는 3개 등급(A·B·C) 가운데 최고 등급(A)을 유지해왔다. 같은해 11월과 이듬해인 2015년 3월까지 모두 세차례 등급 보류 판정을 받았다. 사실상 ‘강등’이었다. 2015년 8월 이성호 위원장이 취임한 뒤인 지난해 5월에야 세계국가인권기구연합(GANHRI·옛 ICC)으로부터 A등급을 통보받아 체면을 회복했다. 그러나 이 위원장 체제에서도 백남기 농민 사건, 테러방지법 등에 소극적인 목소리를 낸 것을 비롯해 성소수자와 양심적 병역거부자, 이주민 등 소수자에 대한 인권 보호에 둔감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25일 청와대가 발표한 인권위 위상 강화 방침에 대해 내부 직원들과 인권단체는 환영하면서도 또다른 ‘친정부’ 인권위가 되어선 안 된다고 경계했다. 인권위의 한 직원은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권고 수용률 등을 높여야 한다는 조처는 훌륭하다”면서도 “자격을 갖춘 인권위원이 오느냐가 앞으로 중요 과제”라고 말했다.

명숙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는 “분명 환영할 만한 조처”라면서도 “현재 상임위원은 대통령, 국회, 대법원장 등 임명권자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다. 후보추천위원회를 구성해 자격 미달자를 걸러내야 한다”고 말했다. 이경숙 인권위 상임위원은 “정권에 따라 인권위 조직과 예산이 외풍에 흔들리지 않도록 헌법기구화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