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이 아시아에서 '진보의 성지'가 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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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최고법원인 사법원이 24일 아시아 최초로 동성결혼을 법제화하기로 하자 ‘아시아=인권 사각지대’라는 오랜 관념을 품어온 서구 언론들도 놀랍다는 반응을 내놓고 있다. 중국 대륙과의 대립을 배경으로 국민당 장기독재 아래서 1987년까지 40년 가까이 계엄통치를 받은 대만 사회가 최근 동성결혼 허용뿐 아니라 탈원전과 대체복무 등 진보적 의제에서 아시아의 선구자로 부상한 배경은 뭘까.

우선 진보적 흐름이 눈에 띄게 강화된 사회 분위기가 있다. <에이피>(AP) 통신은 대만 20대 인구의 80%가 동성결혼 허용을 지지한다고 현지 시민단체를 인용해 보도했다. 동성결혼에 대한 긍정적 인식이 움튼 것은 1990년대로, 당시 성장하던 여성운동의 영향이 컸다. 옌스 담 대만 창룽대 교수는 “지식인층이 성평등을 찬성”하고 나선 상황의 산물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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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출범한 민진당의 차이잉원 정부가 35살의 천재 프로그래머 오드리 탕(탕펑)을 디지털담당 정무위원(장관)에 임명한 것은 변화상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24살에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전환수술을 한 탕은 최연소 장관인 동시에 최초의 트랜스젠더 장관이 됐다.

대만은 징병제를 실시하면서도 일찍이 대체복무를 허용했다. 1990년대부터 군 정예화를 추진하면서 발생한 잉여인력을 2000년 도입한 대체복무제로 연결시켰다. 군에서는 중국과의 대립을 이유로 병력 부족과 안보 악화를 우려했지만, 동시에 추진된 장비 현대화가 이를 가능케 했다. ‘체대역’으로 불리는 대체복무제는 양심적 병역 거부를 인정하며 인권 수준을 한 단계 높였다는 국제사회의 평가를 받는다.

대만은 원전 가동 전면 중단도 추진한다. 가동중인 원자로 3기는 2025년까지 순차적으로 정지시키고, 태양광·풍력 발전 확대에 1조2000억대만달러(약 43조원)를 투자하기로 했다. 차이잉원 총통은 대선에서 ‘원전 제로’ 공약을 내건 바 있다.

민진당의 집권은 여러 분야에서 진보적 의제와 정책에 날개를 달아줬다. 1987년 계엄 해제 때까지 지하활동을 한 ‘당외’(재야) 인사들이 창당을 주도한 민진당은 계엄령 해제와 총통 직선제를 요구하며 시위를 많이 해 ‘가두당’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2000·2004년 천수이볜 전 총통의 두 차례 집권과 2016년 차이 총통의 집권을 통해 시민운동의 목소리가 정책으로 반영되고 있다. 베이징의 한 대만 매체 기자는 “계엄 해제 이후 ‘당외’ 운동이 왕성해져 사회 분위기가 격변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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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문물 수용도가 높은 것도 대만 사회의 진보성을 설명하는 데 빠지지 않는 요소다. 전체 인구가 2300만명가량인데 지난해 1년간 출국한 사람이 1459만명이다. ‘세계엔 하나의 중국밖에 없으며, 대만은 중국의 일부’라고 중국이 압박하는 탓에 정식 외교관계를 맺은 나라는 21개국뿐이지만 젊은이들은 여행과 유학으로 외국 경험이 풍부하다. ‘아시아의 네 마리 용’ 중 하나로 경제가 성장한 결과 정치적 민주화 요구가 높아졌다는 시각도 있다.

대만의 ‘민주사회’로의 변모는 중국과 확연히 대비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중국에서 검열로 차단된 정보, 뉴스를 수집·전달하는 온라인 매체 <차이나 디지털타임스>는 대만의 동성혼 허용 판결 소식이 나온 직후 중국 당국이 이를 과도하게 보도하지 말라는 지시를 언론사들에 내렸다고 했다. 보도하더라도 사법원, 입법원, 총통 등 대만 기관 명칭에 반드시 따옴표를 붙이라는 내용도 있다고 한다. 대만의 민주주의적 면모가 부각되는 것을 경계하는 조처다. 역사와 전통이 다르니까 중국의 민주주의는 서구식 민주주의와 다를 수밖에 없다고 하는 중국공산당 입장으로서는 대만해협 건너의 정치·사회 발전이 부담스러운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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