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로7017: '살아있는 식물도감'이 1024m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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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저명한 환경저술가인 마이클 폴란은 '세컨 네이처'란 책에서 자연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우리의 필요와 욕구를 충족시킬 해법을 찾으려면 숲이 아니라 정원에 가야 한다고 역설했다. 자연과 문화를 분리하는 서구의 자연관을 비판하면서, 자연을 온전하게 이해하고 현명하게 이용해야 함을 강조한 말이다. 4일 막바지 공사가 한창인 ‘서울로 7017’(이하 서울로)에 가면서 이 책이 떠올랐다.

서울로는 자연인가 문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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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양목을 화분에 심고 있던 중림동 쪽 들머리로 공중정원에 올라서니 대번에 답이 나왔다. 서울로는 길이 1024m의 살아 있는 식물도감이었다. 회현동 시작 지점의 가지과 구기자나무에서 중림동 끝 지점의 회양목과 회양목까지 50개과 228종의 식물 2만4000여 그루가 과별로 가나다순으로 배치돼 있다.

공원을 걷다 보면 약 20m마다 새로운 과의 식물이 나온다. 마치 식물도감의 색인을 보는 것 같다. 자연에서 식물이 가나다순으로 서 있을 리 없다. 서울로에서 자연과 문화는 융합한다.

왜 식물을 과별로 배치했을까?

참나무과 구간에 가면 이유를 금세 알 수 있다. 떡갈나무, 굴참나무, 졸참나무 등 자생 참나무 6종이 나란히 서 있다. 잎과 줄기, 도토리의 모양, 색깔 등으로 종의 차이를 쉽사리 알 수 있다. 소나무과 구간에서는 소나무와 잣나무가 잎의 수 등에서 어떻게 다른지 짚어보며 배우는 게 가능하다.

이 밖에도 갈대와 억새, 작약과 모란 등 헷갈리기 쉬운 식물을 마주 비교해보거나, 무궁화와 접시꽃, 부용이 모두 아욱과 식물로 가까운 친척임을 알 수 있도록 돼 있다. 이런 배치는 공원 설계자인 비니 마스가 강조한 부분이다.

김인숙 서울시 공원시설과장은 “교육 목적으로 쓸 수 있도록 이렇게 배치했다. 전시, 종 보전, 경관 기능과 함께 ‘서울로’가 식물원 기능도 하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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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식물원이 되려면

좋은 식물원이 되려면 대표적이고 희귀한, 그리고 잘생긴 식물을 보유하는 것이 핵심이다. 서울로를 둘러보면서 몇 가지 눈에 띄는 나무가 있었다. 목련과 나무를 모아놓은 목련광장에는 함박꽃나무가 있다. 깊은 산 계곡에 가야 만날 수 있는 이 나무가 서울역을 내려다보면서 그윽한 향기의 꽃을 피우는 모습을 개장 때 볼 수 있을 것이다.

그저 ‘목련’이라고만 적혀 있는 나무도 스쳐 지나가면 안 된다. 흔히 보는 원예종인 중국 원산의 백목련과 달리 이 목련은 제주도에 자생하는 희귀한 나무로 목련 수집에서 세계적인 명성이 있는 천리포수목원에서 분양받은 것이다.

물푸레나무과에서도 자생지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희귀식물인 미선나무와, 북한산의 털개회나무를 미국에서 가져가 세계적인 조경수로 개량한 미스김라일락은 놓칠 수 없는 나무이다. 생물다양성과 생물 주권의 중요성을 생각하게 하는 식물들이다.

이 밖에 서부역 진입로에 심어놓은 진달래과의 만병초는 고산 희귀식물로 야생에서 보는 것이 어려운 나무이고, 장미과의 마가목과 염창동 진입로에 많이 심어놓은 주목도 높은 산에 분포하는 식물이다.

이야기가 있는 나무도 있다

만리동 광장에는 제법 큰 대왕참나무숲이 조성됐다. 국산 참나무도 많은데 왜 미국산 참나무인 대왕참나무를 심었을까? 여기에는 고 손기정 선수의 이야기가 얽혀 있다.

손 선수는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마라톤 금메달을 따고 히틀러 독일 총통에게서 부상으로 떡갈나무 묘목을 받았다. 그 묘목을 만리동 옛 양정고 교정에 심었다. 한동안 이 나무는 월계수로 잘못 알려졌는데, 양정고가 서울 목동으로 이전할 때 서울시가 이 나무를 기념수로 지정하려고 조사를 했더니 대왕참나무로 밝혀졌다. 독일민족주의를 제창한 히틀러가 전쟁 상대인 미국의 대왕참나무를 묘목 때 형태가 비슷한 독일 참나무로 잘못 알았던 것이다. 만리동에 대왕참나무를 심은 데는 이런 사연이 있다.

국산 참나무를 쓰지 못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대왕참나무와 달리 국산 참나무는 수형과 규격 등이 표준화되어 있지 않고 같은 크기의 묘목을 대량으로 확보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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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가 전국 30여 곳을 돌면서 어렵게 구한 귀한 식물을 심었다지만

개중엔 아쉬움을 남기는 것도 있다. 도심의 환경과 관상 가치를 고려해 자생종만을 심을 수 없어 원예종을 추가한 건 어쩔 수 없다고 하자. 그러나 마구 번져 문제가 되는 종지나물 같은 외래종을 굳이 심을 필요가 있을까? 또 명색이 ‘서울로’인데 이름에 ‘서울’이 들어간 식물이 있으면 어땠을까?

예컨대 제비꽃과에는 외래종인 종지나물은 있어도 서울제비꽃은 없다. 이 밖에 서울개발나물, 서울고광나무, 서울귀룽나무, 서울김의털 등이 이름에 ‘서울’이 들어간다. 또 서울이 아니라도 영등포에서 처음 발견됐고 밤섬에 자생하는 등포풀도 서울과 직접 인연이 있는 식물이다. 갈매나무과에 대추나무만 있고 정작 갈매나무가 없는 것도 아쉽다. 갈매나무는 시인 백석이 자신의 처지를 빗대어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고 읊어 유명한 나무이다. 물론, 갈매나무는 추위에 잘 견디지만 공해에 약해 서울역에서 살아갈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자리 잡기까지 최소 3년은 필요

서울로는 사실 식물이 자라기에 좋은 환경은 아니다. 여름엔 뜨겁고 겨울엔 바람이 세고 춥다. 배기가스로 인한 대기오염도 심하다. 특히 그늘이 없어 음지성 식물은 살기 힘들다. 설계자가 도감식 배치를 고집해 여러 종의 식물을 복층으로 배치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과연 얼마나 많은 식물이 이런 악조건을 견딜까? 김인숙 과장은 “90% 이상 살릴 수 있다”고 자신했지만, 서울시가 남양주와 덕양에 보유하고 있는 양묘장과 화훼류 재배지 식물로 죽는 식물을 대체할 계획임을 부인하지 않았다.

철길 위를 지나는 구간은 사방이 뚫려 겨울엔 바람이 세고 매우 추울 것으로 예상되는 곳이다. 다행히 이곳에는 자작나뭇과의 자리여서 자작나무와 소사나무처럼 추위와 강풍에 잘 견디는 나무를 심었다. 그러나 이들이 한여름 땡볕을 견딜 수 있는지는 두고 봐야 한다.

악조건을 이기기 위한 대책도 다양하게 마련됐다. 차나무과의 노각나무는 더운 지방 식물이어서 알루미늄 매트로 보온장치를 했다. 바람이 센 곳에는 굵은 뿌리를 고정시켰고 식물에 자동으로 물을 공급하는 관수 장치도 설치했다.

개막일이 애초 계획보다 한달 미뤄지고 최근 이상고온이 이어지면서 개막에 맞춰 개화할 것으로 기대되던 작약, 모란 등의 꽃은 이미 한물갔다. 개막일 즈음에는 장미과의 각종 조팝나무와 돌나물과의 돌나물과 기린초 범의귓과의 수국과 산수국 등의 꽃이 방문객을 반길 것이다.

사실 서울시가 걱정하는 건 꽃보다 사람이다. 600개가 넘는 크고 작은 콘크리트 화분이 빽빽하게 들어선 고가정원이라 너무 많은 사람이 밀려들면 통행이 쉽지 않다. 무엇보다 탐방객의 높은 기대를 맞추는 것이 공원의 특성상 힘들다. 김 과장은 “식물이 자리를 잡으려면 3년은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나무가 주요한 볼거리인 시설은 늘 이런 어려움에 직면한다. 언론 보도 등으로 기대가 한껏 높아진 탐방객은 빈약한 식물을 보고 실망하기 마련이다. 개장 초기의 서울숲과 국립생태원 한반도숲, 경의선 숲길 등이 그런 예다.

시설보다는 운영하고 참여하는 소프트웨어가 더 중요한 이유

최근 조성된 경의선 숲길은 철도로 단절되고 낙후된 지역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운동과 산책, 출퇴근의 주요 통로가 되면서 이용객이 날로 늘고 있다. 서울로의 화분 숲은 경의선 숲길에 견줘 인공미와 교육 기능을 더했다. 자연을 문화 쪽으로 더 끌어당겼다. 시설보다는 운영하고 참여하는 소프트웨어가 더 중요한 이유다.

환경이나 개인의 건강 측면에서 기대되는 움직임은 서울로를 걸어 출퇴근하기이다. 이 공중정원을 따라 날마다 40여분씩 철마다 달라지는 200종이 넘는 식물의 모습을 관찰하면서 자동차 걱정 없이 걸을 수 있게 된다. 거대 도시 서울에서 보기 드문 행운이 될 것이다. 이런 이들이 늘어나면 대기오염과 온실가스 배출이 줄어드는 것은 물론이고 서울 자체가 점점 걷기 편한 쪽으로 변신하게 되지 않을까.

관련 기사: 장애인·노약자들 걷기 힘든 ‘서울로 7017’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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