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기념재단이 공개한 1980년 광주의 모습(화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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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형태극기를 앞세우고 민족민주화대성회 참석을 위해 교문을 벗어나 금남로로 향하고 있는 전남대학교 교수들, 이들 뒤를 학생들이 따르며 민주주의를 위한 구호를 외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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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남 도청 앞 광장에서는 분수대를 중심으로 2만 여명의 시민과 학생들이 모여 ‘민족민주화대성회’를 열고 대대적인 횃불행진을 벌였다.
  • 전남대학교 정문 앞에서 촉발된 5ㆍ18민주화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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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교정문에서 전경과 대치하고 있는 전남대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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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십자)완장을 찬 위생병마저 페퍼포그 차량 옆에서 저항의지도 없는 학생을 곤봉으로 힘껏 내려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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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젊은 부부가 금남로2가를 지나다 공수부대가 휘두른 곤봉에 머리를 맞아 피흘린 채 끌려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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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찰병력이 시위군중에 밀리기 시작하자 금남로에 재투입된 계엄군이 양손에 진압봉을 받쳐들고 시위군중을 향해 전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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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일 오후3시경 계엄군들이 금남로와 충장로로 출동, 전 지역을 들쑤셔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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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후 7시경 무등경기장을 출발한 200여대의 차량시위는 계엄군의 만행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목격한 운전기사들의 용기있는 행동이었으며 5월 항쟁의 최대 전환점을 가져다주었다.
  • 계엄군의 집단 발포, 시민군의 등장, 철수하는 계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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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엄령 철폐를 외치는 시민들이 광주 동구 금남로 가톨릭센터 앞에서 공수부대원 및 경찰과 대치하고 있다. 19회 전라남도민 체육대회 아치가 당시를 알려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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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민군들이 태극기를 휘날리며 시내를 질주하자 시민들이 박수치며 격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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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주시내 각 동마다 부녀자들이 쏟아져나와 주먹밥을 만들거나 음식을 만들어 시민군들에게 제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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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상자들로 초만원을 이룬 광주시내 각 병원에서 피가 부족하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많은 광주시민들이 팔을 걷어부치고 헌혈에 앞장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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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항쟁 당시 광주는 무정부상태였지만 시민들이 구성한 수습대책위원회를 중심으로 광주시민들은 자발적으로 질서를 지키고 어려운 난국을 타개하기 위한 지혜와 용기를 모아내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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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항쟁기간 전남도청앞 광장은 사태의 추이를 알고자 하는 시민들로 가득 메워졌고, 항쟁지도부는 민주수호범시민궐기대회를 통해 사태의 본질을 알리는 한편 시국을 성토하였다.
  • 전남도청을 지켰던 사람들과 계엄군의 재진입 그리고 15년간의 5·18정신 계승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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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내를 재장악하기 위해 화정동에 위치한 ‘돌고개’를 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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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0년 5월 29일 망월동에서 일제히 진행된 1백 29구의 장례식, ‘폭도’라는 이름으로 진실이 왜곡되고 통제되었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야 하는 유족들의 슬픔마저 막을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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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 ‘슈피겔’지에 실린 아버지의 영정사진을 든 아이 사진은 죽은 자와 살아남은 자를 절묘하게 대비함으로써 광주의 아픔을 전 세계인에게 전해준 5·18의 상징적인 사진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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