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안사, 비밀조직 꾸려 '5·18 폭동'으로 조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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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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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2 군사반란과 5·18 내란을 주도하며 전두환 등 신군부 집권에 앞장선 보안사령부(현 기무사령부)가 1988년 국회 광주 청문회를 앞두고 5·18 민주화운동을 왜곡하기 위해 군 관련 서류를 조작한 사실이 29년 만에 처음으로 드러났다.

당시 계엄군 발포를 자위권으로 옹호하고 광주 시민을 폭도로 몰아간 보안사의 사실 왜곡이 이후 국방부 태도에 반영됐고, 현재 인터넷상의 5·18 왜곡 주장의 근원이 됐다는 지적이다.

16일 <한겨레>가 단독으로 입수한 ‘5·11연구위원회’(약칭 5·11분석반) 관련 기록을 보면, “(5·11분석반은) 국회 (광주)청문회 증언과 문서검증에 대비하고, 광주 합수요원 변절 방지 활동을 하기 위해 설립됐다”고 명시돼 있다.

5·11분석반은 국회 5·18광주민주화운동진상조사특별위원회 구성(88. 7.8)을 앞두고 88년 5월11일 보안사가 주도해 국방부·육본·합참·한국국방연구원(KIDA) 소속 위원 5명, 실무위원 15명으로 꾸려진 비공개 조직이다.

이들은 5·18 군 관련 기록을 검토한 뒤 불리한 사실과 문구를 조작·왜곡해 5·18 민주화운동을 ‘폭동’으로 몰기 위해 증인을 미리 선정한 뒤 예상 질문과 답변지를 작성했다. 5·11분석반 회의용으로 만든 ‘광주사태 관련 문제점 분석’(88. 5)이라는 문서를 보면, ‘광주소요사태 진압작전 전투상보’ 등 9개의 5·18 관련 군 서류를 조작하도록 지시했다.

조작·왜곡 대상은 계엄군 발포 정당성 확보, 대검 사용 등 잔혹한 시위 진압 관련 내용이다. 5·11분석반은 80년 5월21일 오후 계엄군의 집단 발포 이전에 광주 시민이 공수부대에 먼저 총을 쏜 것처럼 조작해 계엄군 발포가 정당한 자위권 발동 차원이고 광주 시민이 폭도임을 강조했다.

구체적으로 80년 5월21일 시민군의 최초 무기 탈취시간(전남 나주 반남지서 피습)을 오후 5시30분에서 집단 발포 이전인 오전 8시로 조작해 국회에 제출했다. 이는 검찰이 96년 12·12와 5·18 수사 때 옛 전남도청 앞 집단 발포로 희생된 시민들의 죽음을 ‘내란목적 살인죄’로 단죄하지 못하게 된 배경이 됐다.

당시 광주에 주둔한 전투교육사령부의 ‘상황일지’(5.14~5.27) 중 ‘5.18 20:15(7공수 총검)으로 진압’이라는 보고 내용도 ‘검토 삭제’ 하도록 육군본부와 특전사 등에 지시했다. 공수부대가 광주에서 대검으로 잔혹하게 민간인을 살상했다는 ‘유언비어’를 정당화시킨다는 이유였다.

‘특전사 광주소요사태 진압작전 전투상보’(16쪽) 중 ‘5.20 23:00 각종 가스탄(화염방사기, 엠203 발사기, E-8발사통) 등으로 폭도를 제지’했다는 부분은 “(유탄발사기인) 엠203 발사기는 대량살상화기로 시비 가능성이 있다”며 “엠203 발사기 삭제 또는 가스탄으로 수정(작성 부대 통보)”하라고 지시했다.

5·11분석반은 89년 12월30일 국회 청문회 종료 때까지 18개월 동안 활동했다. 5·18 연구자 정수만 전 5·18민주유공자유족회장은 “5·11분석반의 5·18 왜곡 시나리오가 지금 인터넷에서 횡행하는 5·18 왜곡 주장의 근거이자 뿌리다. 5·18 이후 보안사의 5·18 왜곡에 대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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