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롱이 이겼지만 진보가 안전한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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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CRON
A picture taken on May 8, 2017 shows a vandalised electoral campaign poster of French president-elect Emmanuel Macron in Paris, reading 'France to the banksters'. / AFP PHOTO / JOEL SAGET (Photo credit should read JOEL SAGET/AFP/Getty Images) | JOEL SAGET via Getty 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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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전역과 미국에서 포퓰리스트 국수주의가 떠오르고 있다. 서구의 운명, 진보주의의 미래가 프랑스 유권자들의 손에 달려 있다고 말하고 싶은 유혹이 느껴질 것이다. 결선 투표에서 중도 개혁주의자 엠마뉘엘 마크롱이 극우 마린 르펜을 상대로 큰 승리를 거둠으로써 프랑스는 유럽, 미국, 일본 등 진보적 민주주의 국가들이 반 세기 이상 번영의 기반으로 삼은 가치와 제도의 연쇄적 파괴를 피했다. 이번 선거로 서구를 구했다는 주장도 있다.

부분적으로는 옳다 해도 이런 주장은 너무 단순하다. 프랑스 선거는 중요했지만 결국 결정적이지는 않았다. 서구의 다른 곳들 뿐 아니라 프랑스에서도 싸움이 끝났다고 할 수는 없다. 이 이념 전쟁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선거는 중요하지만, 선거로 싸움이 끝나지는 않는다.

이 싸움이 스포츠 경기처럼 느껴질 때도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미국에서는 도널드 트럼프와 힐러리 클린턴이, 프랑스에서는 마린 르펜과 엠마뉘엘 마크롱이, 네덜란드에서는 헤이르트 빌더르스와 마르크 뤼터가 맞붙었다. 이탈리아에서는 마테오 렌치와 코미디언이자 정치 활동가인 베페 그릴로가 내세우는 후보가 겨루게 된다. 이런 후보들은 챔피언을 정하는 키 플레이어가 아니다. 서구의 포퓰리즘 뒤에 숨은 이슈들은 이번 선거철이 끝난다 해서 사라지지 않는다.

그 이유를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왜 정치의 아웃사이더가 백악관에 입성했는지, 극우 후보 장-마리 르펜이 2002년 프랑스 대선 결선 투표에서 18% 득표에 그쳤는데 그의 딸인 마린 르펜은 어떻게 결선 투표에서 34% 정도를 얻었는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marine le pen

유럽과 미국의 유권자들은 분노와 환멸을 느끼고 있다. 그럴 만도 하다. 트럼프와 르펜 같은 포퓰리스트 국수주의자들은 진정한, 정당한 분노에 응답하고 있다. 트럼프와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이 주장했던 대로, ‘시스템’은 잘 기능하지 못하고 있다. 최악의 경우 조작되어 있다.

사회주의자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은 실업률을 낮추겠다고 여러 번 약속했지만, 올랑드가 2012년에 취임한 이래 임기 5년 내내 프랑스 실업률은 10% 내지 그 이상을 기록했다. 이탈리아와 비슷하지만 더 나쁜 상황이다.

유럽 전체에 퍼진 진보와 포퓰리스트 이념의 싸움을 목격하게 될 다음 나라는 이탈리아다. 2008년부터 2013년까지는 이탈리아 현대 역사상 최악의 경제 슬럼프였다. 마테오 렌치가 집권한 3년 동안 경제와 가계 소득은 지극히 미미한 성장을 기록했다. 39세로 지금의 마크롱과 같은 나이에 1861년의 이탈리아 통일 이래 최연소 총리가 되었던 렌치는 2014년에 개혁 공약으로 집권했지만, 작년 12월에 개헌을 제안하고 국민 투표에 붙였다가 참패한 후 굴욕적으로 사퇴했다.

반란과도 같은 그릴로의 오성 운동이 설문 조사에서 수위를 달리고, 늦어도 다음 봄에는 열릴 예정인 총선에서 앞서 나가는 것도 놀랄 일이 아니다. 오성 운동은 청년층과 노년층, 대졸과 고졸, 전문직과 노동 계층에 폭넓게 어필하고 있다. 핵심 정책들은 이탈리아의 유로 단일 통화권 탈퇴에 대한 국민 투표 등이며, 지금까지 가장 인기있는 정책은 광범위한 반부패 추진이다. 가장 강력한 슬로건은 단 한 단어다. ‘오네스타’, 즉 ‘정직’이다.

trump clinton debate

트럼프처럼 오성 운동은 ‘늪에서 물을 빼겠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는 부유한 정치 활동가 그릴로가 고르는 총리 후보가 시행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그릴로 자신이 선거에 나오지 않는 이유는 오래 전에 교통사고로 기소된 바가 있어, 범죄 기록이 있는 사람은 오성 운동 후보가 될 수 없다는 스스로 만든 규칙에 걸리기 때문이다.

미국의 현실 또한 잊지 말자.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 연설은 미국에서의 ‘대학살’을 과장하여 언급하기는 했지만, 완전히 틀린 이야기는 아니었다. 단순히 GDP로만 보면 미국 경제는 2008년 이후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보다 더 잘 회복했다는 건 의미가 없다. 1천만 명 가량의 한창 일할 나이의 남성들이 노동시장을 떠나고, 취업 노력을 할 만한 정도의 일자리를 찾는 걸 포기한 사회는 잘 기능하는 사회가 아니다.

소수의 기업에 의해 과점되는 업계가 점점 더 많아지고 있으며(유나이티드 등의 항공사들이 고객들을 그렇게 함부로 대하고도 넘어갈 수 있는 이유다), 대기업과 억만장자들이 선거 유세 자금을 틀어쥐고 있어 상당수의 유권자들에게 개방적이지도 않고 평등하게 느껴지지도 않는 시스템이 완성된다. 계속 변화하는 국제 사회에 대한 적응성 지수에서 서구 국가들 중 미국이 낮은 순위를 기록하는 이유가 이것이다.

나의 교육 자선 단체 웨이크 업 재단이 측정하는 2050 지수는 서구 사회의 유해한 성향에 대한 대중의 인식을 키우기 위해 만들어졌다. 이 지수에 의하면 미래 트렌드와 충격에 대한 대비에서 미국은 35개국 중 23위를 기록했다. 20위를 기록한 프랑스보다 낮은 순위다. 미국은 보다 개방적이고 평등해져야 하며, 보다 잘 대비해야 한다.

개방과 평등이라는 두 단어는 서구 전체에 아주 중요하다. 트럼프와 르펜 같은 포퓰리스트들은 논의의 프레임을 글로벌리즘 대 애국주의로 잡으려 했다. 하지만 그건 진정한 이슈에서 관심을 돌리는 일이다. 진짜 이슈는 과거에 개방성과 강한 평등 의식을 조합해 과거에 성공을 거두었던 개방적이며 진보적인 사회다. 이 조합은 성공적인 공식이었으나, 너무 오래 전에 버려져 이제 한물간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경쟁, 책임, 분권의 가치인 새로운 아이디어, 사람들, 기회를 가져오는데 있어 개방성은 필수적이다. 그러나 개방성이 가져온 변화를 받아들이는데는 사회적 신뢰가 필요하고, 이를 위해서는 평등이 필수적이다. 평등한 목소리를 가지고, 법치로 평등하게 보호받고, 교육과 능력주의로 평등한 기회를 얻는 시민으로 하나가 된다면 개방성은 작동한다. 평등을 잃는다면 환멸과 분노가 스며들고, 닫힌 국경과 마음에 기초한 대안책이 더 매력적으로 보이게 된다.

지금 우리가 그렇다. 고전적인 영국식 진보주의적 사상이 후퇴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지난 10~15년 동안 우리가 그런 사상을 유지하고 시행하지 못했다는 게 문제다. 우리는 시민들이 기대하게 된 안보, 생활 수준 향상, 평등한 처우를 이뤄내지 못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성공 공식을 잊어버렸다. 역사상 가장 성공적이었던 정치 아이디어인 이 공식이 작동하려면 새로운 아이디어 뿐 아니라 모든 정치 참여자들에게 평등한 목소리를 주어야 한다는 것을 잊었다.

macron supporters

개방성과 평등에 대한 이념은 프랑스에서처럼 선거에서 이겨야 한다. 하지만 모든 국가들의 공공 정책과 정치 제도에 개방과 평등이 다시 도입되어야 한다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그래야 사회적 이동성과 시민권에 대한 필수적 감각을 복구할 수 있다.

엠마뉘엘 마크롱에게 있어 승리는 쉬운 부분이었다. 여론 조사에 따른 예측보다 더 큰 승리를 거두어 기쁠 것이다. 프랑스가 NATO와 EU를 통해 오랫동안 헌신해온 개방적인 국제적 관여를 계속하며 프랑스의 활기를 되찾게 하려면 평등에도 사람들이 받아들일 수 있을 정도의 큰 관심을 쏟아야 한다. 서구 다른 국가들 역시 마찬가지다.

이 싸움은 길고 힘들 것이다. 그러나 이겨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다음 선거철에는 르펜과 같은 개방성의 적들이 그 어느 때보다 강해져서 돌아올 것이다.

허핑턴포스트US의 Macron’s Victory Does Not Mean Liberalism Is Safe를 번역, 편집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