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트 출신 비주류' 에마뉘엘 마크롱이 일단 극우 포퓰리즘을 막아냈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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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CRON HOLLANDE
France's former Minister of the Economy Emmanuel Macron looks on after handling over power to French Minister of Finance and also current Minister of Economy Michel Sapin in Paris, on August 31, 2016 following his resignation as economy minister.France's Emmanuel Macron vowed after stepping down as economy minister on August 30, 2016 to 'transform' an ailing country but stopped short of declaring a presidential run. The 38-year-old said he had 'seen at first hand the limits of our political syst | PHILIPPE LOPEZ via Getty 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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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파리에서 북쪽으로 120km 떨어진 아미엥의 16살 소년 엠마뉘엘 마크롱은 파리로 유학을 떠나면서 24살 연상의 연극 선생님인 브리지트 트로뇌에게 “당신과 반드시 결혼하겠다”고 고백했다. 트로뇌는 연상녀에 대한 소년의 철없는 사랑으로 생각했다.

“그는 항상 나에게 전화를 했고, 우리는 몇시간이나 전화 통화를 했다. 조금씩 그는 나의 저항을 믿을 수 없는 인내로 정복했다.” 2007년 트로뇌는 3명의 자녀를 둔 결혼을 정리하고 결국 마크롱과 결혼했다. 마크롱은 트로뇌에게 말했다. “나는 내 인생을 위해 싸워왔다. 그건 쉽지않고, 눈에 뻔히 보이는 자동적인 인생이 아니었다. 기성의 방식과도 맞지 않았다”고.

2016년 4월. 마크롱은 자신을 대통령 경제보좌관과 경제장관에 임명하는 등 정계로 이끈 스승인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에게 ’마치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이야기를 꺼냈다. “그런데 말할게 있습니다. 4월6일 아미엥에서 뭔 일을 하려고 합니다. 싱크탱크 같은 청년운동을 출범하려고 합니다.”

마크롱이 말한 청년운동이란 이번 프랑스 대통령 선거에서 올랑드와 사회당의 등에 비수를 꼽은 앙마르슈(전진)이라는 새로운 정당 창당이었다. “그날 마크롱은 자신의 이중성을 최고로 보여줬다.” 마크롱의 한 참모는 <르몽드>에 “마크롱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 특히 힘있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정치적 애매모호함으로 일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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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일화는 마크롱이 7일 프랑스 대선 결선투표에서 노련한 경쟁자인 극우파 마린 르펜을 꺾고, 39살 최연소 대통령으로 당선된 비결을 설명해준다. 16살 소년이 40살 여인에게 구혼하고 그 뜻을 끝내 관철시킨 파격성과 끈질김, 자신을 키워준 대통령의 뒷통수를 때리는 이중성과 도박사적 승부 근성이 그를 대통령으로 이끌었다.

하지만, 그가 의원 한명 없는 급조 정당을 꾸려 기존 프랑스 정치구도를 붕괴시키고 프랑스 역사상 최연소 대통령으로 당선된 이 정치적 현상은 그의 개인적 자질만으론 설명되지 않는다. 위기에 처한 프랑스, 더 나아가 유럽연합 전체의 기성 좌·우파 엘리트 세력의 전폭적 지지가 그에게 결집했다. 마크롱은 재계와 정계를 오가며 기존 주류 엘리트들의 중개인으로 성장해 왔다. 이번 선거에서 좌파의 주류 사회당, 우파의 주류 공화당이 몰락하자, 프랑스의 기존 엘리트들은 마크롱을 자신들의 대안으로 선택할 수 밖에 없었다.

프랑스 북부 아미엥에서 의사 부모 사이에 태어난 마크롱은 소년 시절부터 탁월한 지적 능력을 보여줬다. 그는 프랑스의 엘리트 코스만을 거치며 주류 엘리트들과의 관계를 쌓았다. 프랑스 최고의 명문고등학교인 앙리4세고교, 프랑스 정·재계와 엘리트 관료들의 산실인 국립행정학교와 파리정치대학(시앙스포)을 졸업했고, 프랑스 최고 철학자인 폴 리쾨르의 조교로 철학을 공부하기도 했다. 국립행정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한 그는 프랑스 엘리트들의 최종학교라 불리는 재정감사원에서 사회 경력을 시작했다. 그곳에서 그는 프랑스 정재계의 최고 중개인인 알렝 멩, 미셸 로카르 전 총리 등과 관계를 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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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금융위기가 한창이던 2009년 유럽 금융계를 좌우해온 투자은행 로스차일드가 금융계 경력이 전혀없는 마크롱을 영입했다. 프랑스 정재계의 막강한 인사들이 로스차일드 사업에 중요한 브로커가 되줄 것이라며 마크롱을 추천했다. 마크롱은 재정감사원 시절 니콜라 사르코지 당시 대통령이 구성했던 거국현인경제위원회의 실무자로 일하면서 관계를 맺은 글로벌 식품회사 네슬레 회장에 접근해, 제약회사 화이자의 자회사인 유아용 식품회사를 인수합병하는데 성공한다. 118억달러짜리 이 인수합병전에서 마크롱은 프랑스 최대 식품회사 다농과 경쟁해 승리했다. 이 거래를 계기로 마크롱은 로스차일드의 파트너로 승격했고 연봉은 300만달러가 넘게 됐다.

그는 곧이어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에 도전하는 프랑수아 올랑드 당시 사회당 대선 후보의 경제참모로 변신했다. 마크롱은 100만유로 이상 소득자에게 75%의 소득세를 물리겠다는 올랑드의 공약에 경악하는 재계 인사들을 달래는 역할을 맡았다. 올랑드는 당선된 뒤인 2012년 마크롱을 부비서실장으로 발탁했다. 재계 인사들은 올랑드의 소득세 공약 때문에 프랑스를 떠나겠다고 협박했다. 마크롱은 올랑드에게 이메일을 보내 그가 프랑스를 ’햇볕이 없는 쿠바’로 만들고 있다고 경고해, 그 공약을 완화시켰다.

마크롱의 이런 역할은 프랑스 재계뿐 아니라 사회당 내의 자유시장 그룹 의원들 사이에서 명성을 얻었다. 미국 회사 지이(GE)가 프랑스 국영회사 알스톰의 터빈 사업을 인수하려할 때 올랑드 내각의 좌파 경제장관 아르노 몽트부르가 이를 무산시키려 하자, 마크롱이 개입해 거래를 성사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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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롱은 2014년 자신의 사업을 하겠다며 대통령 보좌관을 전격 사임했다. 올랑드는 성대한 환송회를 열어 “내가 해외를 순방할 때마다 사람들은 ’아 당신이 엠마뉘엘 마크롱과 일하는군요’라고 말했다”며 마크롱은 치하했다. 마크롱은 이날 정치인들이 프랑스를 완전히 수술해야 한다는 내용의 심각한 연설을 했다. 몇주 뒤 올랑드는 정부지출 삭감에 반대하는 몽트부르 경제장관을 사임시키고 마크롱을 경제장관에 임명했다. 자크 시라크 등 프랑스의 역대 대통령들이 거쳤갔던 자리다.

마크롱은 즉각 이를 수락하지 않고, 자신에게 경제를 개혁할 권한을 달라고 요구했다. 올랑드는 “개혁을 하려고 당신이 오는거다”라고 수락했다. 경제장관으로서 마크롱은 ‘마크롱 법’으로 불리는, 친시장적인 법을 추진했다. 고용와 해고 절차, 관료적 행정절차를 단순화하고, 휴일에도 가게 문을 열게 하는 이 법은 프랑스 좌파들과 노조들의 대대적인 항의 시위를 불렀다. 올랑드는 고용과 해고 제한을 완화하는 핵심조항을 삭제한채 이 법을 대통령령으로 시행했다.

이런 이견은 마크롱이 올랑드에 반기를 드는 도화선이 됐다. 마크롱은 2015년초 <월스트리트저널> 인터뷰에서 대통령이 되려는 야망을 품은 적이 있냐는 질문에 “없다, 하지만 억만장자가 되거나,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려면 최선을 다해야 한다. 왕이 되는 것도. 나는 정권을 바꾸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마크롱은 올랑드에게 계속 친시장, 친기업적인 개혁을 해야 한다고 촉구했지만, 올랑드는 대답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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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랑드는 마크롱이 추진한 친시장적 개혁과 이에 항의하는 거리시위 사이에 끼여, 역대 최대 지지율로 추락했다. 올랑드의 무기력함을 보면서 마크롱은 대통령 야망을 키우기 시작했다. 마크롱은 제라르 콜롱 리용 시장 겸 상원의원 등 사회당 내의 대표적인 자유시장파 거물 정치인들과 함께 당내 반란을 획책하며 대통령 출마를 도모하기 시작했다.

사회당 등 기존 주류 정당의 지지를 공개적으로 받을 수 없자, 마크롱 쪽은 재계와의 접촉에 나섰다. 프랑스 정치 역사상 전례가 없던 개인 모금과 만찬 행사들이 이어졌다. 마크롱이 인맥을 쌓아온 프랑스 재계 인사들은 적극적으로 호응했다.

마크롱은 2016년 4월 고향 아미엥에서 수백명을 초청한 가운데 앙마르슈를 출범시켰다. 올랑드는 현직 경제장관인 마크롱의 이런 행동이 자신과 사회당에 대한 배신이라고 봤다. 올랑드는 “마크롱은 나에게 빚진 것을 알고 있다. 개인적이고 정치적인 신뢰의 문제이다”라며 분개했다. 며칠 뒤 마크롱은 인터뷰를 통해 “대통령이 한 사람을 장관으로 임명할 때는 그를 하인으로 만들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직격탄을 날렸다. 8월30일 마크롱은 경제부 청사 앞을 흐르는 센강에 정박한 배를 타고 엘리제궁으로 향하면서 경제장관직 사임을 발표했다. 대통령 출마를 시사하는 세레모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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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1월16일, 에마뉘엘 마크롱이 대선 출마를 선언하는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Reuters

지난해 11월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한 마크롱은 의원 한명도 없는 정당을 기반으로 대통령에 출마한다는 비웃음을 샀다. 하지만, 마크롱은 곧 선두 주자로 떠올랐다. 기존 좌우파 주류 정당인 사회당과 공화당이 힘을 못쓰자, 그가 프랑스 주류의 대안으로 부각될 수 밖에 없었다. 좌파 유권자들은 좌파 이념을 내걸고는 우파 정책을 추진하는 등 이도저도 아닌 정당이 되버린 사회당에 등을 돌렸고, 우파 유권자들은 공화당이 프랑스의 정체성 수호에 미온적이라고 의심하며 극우인 국민전선의 마린 르펜 쪽으로 이탈했다.

프랑스 정치와 사회의 폐해는 좌우파 구분 때문이라며 마크롱이 표방한 중도노선은 갑자기 마크롱의 독무대로 변했다. 사회당과 공화당의 유력 중도 후보들이 연이어 몰락했기 때문이다. 사회당 내에서는 중도파 거물인 마뉘엘 발스 전 총리가 대선 후보 경선에 패하고, 정통좌파이지만 경량급인 브누아 아몽 전 교육장관이 당선됐다. 공화당에서도 중도파 거물 알렝 쥐페 전 총리가 탈락하고, 강경 보수우파인 프랑수아 피용이 당선됐다. 아몽은 급진좌파 후보인 장 뤼크 멜랑숑에게 가려 빛이 바랬고, 피용은 부인과 자녀를 보좌관으로 등록해 세비를 챙겼다는 부패 스캔들로 몰락했다.

사회당에서는 아몽이 대선 후보로 선출되자마자, 사회당 거물들이 이탈해 마크롱 지지를 선언했다. 좌우파 기존 정치엘리트들과 대부분의 언론들은 극우 르펜의 당선 저지라는 명분을 내걸고 마크롱으로 결집했다. 그 이면에는 확실한 친 유럽연합, 친 시장 개혁을 표방한 마크롱 노선에 대한 재계 등 프랑스 주류 엘리트의 지지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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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와 유럽연합은 마크롱이라는 신예 병기를 내세워 극우 포퓰리즘을 일단 막았다. 마크롱은 “기성 세력의 반 기성후보”였다. 기존 틀을 깬 정치인이지만, 주류 엘리트들의 핵심 이익을 그 누구보다도 옹호했다. 그는 프랑스의 사회안전망을 보전할 것이라고 밝히면서도 은퇴연금과 고용보장 등 프랑스의 사회보장제도를 축소하고 친기업적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마크롱 대통령의 등장으로 프랑스 앞에는 두개의 길이 열렸다. 기존 좌우파 정치질서를 깨는 실용주의로 나아갈 수도 있지만,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인한 불평등 확대로 극우파가 더욱 저변을 넓히는 길이 열릴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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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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