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적 지향으로 차별받지 않길" 박찬욱 수상소감에 대한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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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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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씨>로 상을 받는 자리니만큼 이런 얘기 한마디쯤은 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성별, 성 정체성, 성적 지향… 이런 것 가지고 차별받는 사람이 없는 그런 사회를 만들 수 있는… (박수 소리에 잠시 말을 멈췄다가) 후보를 볼 때, 투표를 할 때 여러 가지 기준 중에 그런 것도 한 번쯤 고려해 보시기를 권하고 싶습니다.”

대통령 선거 사전투표 시작 하루 전 열린 제53회 백상예술대상 시상식에서, 영화 부문 대상을 수상한 <아가씨>의 박찬욱 감독은 수상 소감에서 성 소수자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모 매체는 이 소감을 ‘엄청나게 멋진’ 발언이라 이야기했지만, 생각해보면 유별난 발언도 아니다. <아가씨>가 어떤 영화인가. 레즈비언 역사 스릴러 소설의 장인으로 추앙받는, 자기 자신도 레즈비언인 세라 워터스가 쓴, 레즈비언 스릴러 로맨스 소설 <핑거스미스>를 번안해 만든 레즈비언 스릴러 로맨스 영화 아닌가. 남자들을 뿌리치고 폐쇄적인 식민지 조선에서 벗어나 블라디보스토크로 달아나는 레즈비언 커플이 주인공인 영화이니, 수상 소감에 성 소수자들에 대한 연대와 성 소수자 정치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일견 논리적인 귀결이다.

아가씨가 ‘걸 크러시’?

이 전혀 유별날 일 없는 발언을 멋지고 용기 있는 사건으로 만드는 건 여전히 <아가씨>를 ‘동성애 영화’라고 말하지 못하는 이들의 존재다. 박찬욱의 수상 소감을 전하는 매체들 중 일부 매체는 누가 봐도 레즈비언 영화인 <아가씨>를 ‘동성애 코드’ 영화라 지칭했다. 영화 개봉 당시 ‘레즈비언’이나 ‘동성애’라는 말 대신 ‘걸 크러시’, ‘워맨스’ 등의 단어로 영화를 설명했던 이들과 그 맥락을 같이한다. 레즈비언 섹스신이 세 차례나 등장하고 끝내 레즈비언 커플이 사랑의 도피에 오르는 것으로 끝나는 영화가 ‘동성애 코드’ 영화이고 ‘워맨스’ 영화라고 한다면, 영화 시장에 나와 있는 저 수많은 멜로 영화들도 ‘이성애 코드’ 영화나 ‘이성 간의 뜨거운 우정’ 영화 정도로 수식어를 다시 고쳐 달아야 할 일이다. 호부호형을 할 수 없었던 홍길동도 아니고, 도대체 왜 저리도 많은 이들이 레즈비언을 레즈비언이라 부르지 못하고 게이를 게이라 부르지 못하는 호레호게 불가 상태에 머물러 있는가?

산 넘어 산이라고, 기껏 이 영화를 레즈비언 영화라고 인정한 이들 중에도 이상한 소리를 하는 사람들이 한 무더기는 나왔다. 제 정체성의 혼란이나 고통을 겪지 않는 주인공들 때문에 영화에 설득력이 없다고 지적하거나, 범죄자와 변태 남성들이 가한 학대 때문에 두 여성 주인공이 다른 남성들과 ‘정상적’인 사랑을 하지 못하게 되고 자신의 궤도를 이탈하게 되었다는 식으로 작품의 메시지를 오독하는 이들이 잊을 만하면 다시 튀어나왔으니까. 성 소수자의 존재를 언급하지 않거나 다른 무언가로 지그시 덮어 가림으로써 그 존재를 시야에서 지워버리려는 이들이나, 성 소수자는 혼란과 고통을 겪은 끝에 궤도를 이탈해버린 ‘비정상적인’ 존재라는 식으로 이야기하는 이들이 이리도 득시글거리는 사회이니, 백상예술대상 시상식에서 수상 소감으로 성 소수자들 또한 차별 없이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들자는 박찬욱 감독의 지당한 발언이 ‘엄청나게 멋’진 발언이 된 것이다. 하긴, 모두가 “태양이 지구 주변을 돈다”고 말하는 세상에선, 지구가 태양 주변을 돈다는 지당한 말조차 용기 있는 발언이 되는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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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눈앞에 뻔히 존재하는 사안을 못 본 척 외면하거나 다른 무언가로 덮어버리는 전략은 사실 성 소수자 이슈에서만 사용되는 게 아니다. 영화 <델마와 루이스>가 재개봉했을 때 “저 영화는 페미니즘 영화라기보단 그냥 두 여성의 우정에 대해 다룬 영화”라는 식으로 이야기하던 이들, 영화 <말아톤>이 개봉했을 때 “이 작품은 장애인의 자립에 대한 영화이기 이전에 장애아를 번듯하게 키워낸 어머니의 모성애에 대해 다룬 영화”라는 식으로 이야기하던 사람들, 트랜스젠더 이슈에 대해 조심스레 접근했던 영화 <천하장사 마돈나>를 두고도 “영화의 본질은 사춘기 소년의 성장 서사”라고 이야기하던 이들이 꼭 있었으니 말이다. 서사 안에 조금이라도 자신이 불편해할 만한 이슈가 등장하면 “사실 그건 각론이고 영화의 본론은 다른 것이다”라는 식으로 애써 덮어버리려는 이들의 의도는 명확하다. 그 이슈가 중요한 이슈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해서 자꾸만 다른 이야기들로 본질을 흐리고, 다른 이들의 시야를 분산시키는 것이다.

이렇게 암묵적으로 합의된 침묵 속에서는 누군가 치고 나와 이슈를 환기시키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된다. 이를테면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 지도위원이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영도 조선소 85호 크레인 위로 올라가 고공농성을 벌이던 2011년을 생각해보자. 부산국제영화제에 참여한 영화인 1543명은 김진숙 지도위원 지지선언을 발표했다. 부산시를 비롯한 관변단체들이 영화제의 원활한 개최를 핑계로 희망버스를 자제해 달라는 이야기를 꺼내며 침묵을 강요하자, 침묵하지 않겠다며 이슈를 환기한 것이다. 그해 부산국제영화제 레드카펫 중 가장 많은 이들의 시선을 모으며 인구에 회자되었던 의상은 그 누구의 턱시도나 드레스도 아닌, 영화배우 김꽃비가 드레스 위에 걸친 푸른색 한진중공업 작업복이었다. 축제의 한가운데이니 껄끄럽고 보기 불편한 것은 잠시 가려두자는 목소리에 맞서서 “저들은 실존하고 있으며 가릴 수 없다”는 걸 시각적으로 보여준, 그 낡고 푸른 작업복.

2013년은 어땠나. 수서발 고속철도 법인 설립을 철도 민영화의 시작이라 지적하며 파업에 돌입한 철도노조는, 경찰의 민주노총 사무실 강제침탈이라는 전에 없던 강경진압으로 큰 상처를 입었다. 경향신문 사옥 13층 민주노총 사무실 창문 밖으로 휘날리던 민주노총 깃발을 지켜보던 시민들의 마음속에도, 주체하기 어려운 참담함이 내려앉았다. 철도노조가 국회의 철도산업발전소위원회 구성에 파업을 접은 다음날인 12월31일, 한국방송 <왕가네 식구들>로 연기대상 신인상을 수상한 배우 한주완은 수상 소감에서 이렇게 말했다. “공공의 재산을 지키기 위해 요즘따라 애쓰고 있는 아버지들이 많이 계십니다. 노동자 최상남을 연기한 배우로서 지지하고 응원합니다. 힘내십시오.” 노동절을 근로자의 날이라 부르고 노동자를 근로자라고 불러야 하는 나라에서, 자신의 배역은 ‘노동자’라고 밝힌 한 신인 배우가 다른 노동자들에게 건넨 응원과 연대의 손길은 많은 이들에게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연대선언이 반갑다

여전히 한국에는 강요된 침묵과 편견 속에서 ‘없는 존재’로 지워지기를 강요받는 이들이 많다. 성 소수자, 장애인, 노동자, 이주민… 엄연히 한국 사회의 구성원이지만, 문화적으로나 정책적으로나 철저히 사각지대에 버려진 채 유무형의 차별을 강요받는 이들. 해서 누군가 공개적인 장소에서 강요된 침묵의 장막을 찢고 자신들의 존재를 소리 내어 말하고 연대를 선언하는 것이 그들에겐 귀하다. 이번 대선후보 티브이 토론회를 시청한 수많은 성 소수자들과 그들의 가족, 친구, 동료들은 혐오와 침묵, 편견의 장막을 찢은 심상정 후보에게 핑크 보트(성 소수자 지지표)를 던지겠다고 이야기했다. 그나마 성 소수자 이슈는 가시화라도 됐지, 장애인 정책과 관련해서는 문재인 후보가 장애등급제와 장애인 연금 인상에 대해 한 차례 언급한 것을 제외하면 철저히 언급에서 배제되었다. 누군가는 “모두가 반려동물과 동물권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성 소수자와 장애인의 권리에 대해선 이상하리만치 침묵하는 이들이 많은 선거”라며 “우리는 저들의 우선순위에서 동물보다 못한가?”라고 묻는다. 우리가 새로 만들 세상은 부디 그 누구도 ‘없는 존재’로 지우지 않는 세상이기를, 그래서 박찬욱의 수상 소감이 마치 “지구는 태양 주변을 돈다”처럼 지당하고 대수롭지 않은 발언으로 여겨지는 세상이 되기를 바라본다.

▶ 이승한 티브이 칼럼니스트. 정신 차려 보니 티브이(TV)를 보는 게 생업이 된 동네 흔한 글쟁이. 담당기자가 처음 ‘술탄 오브 더 티브이’라는 코너명을 제안했을 때 당혹스러웠지만, 연재 4년차인 지금은 그러려니 한다. 굳이 코너명의 이유를 붙이자면, 엔터테인먼트 산업 안에서 무시되거나 간과되기 쉬운 이들을 한 명 한 명 술탄처럼 모시겠다는 각오 정도로 읽어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