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프대선] 장애인들의 선거권 문제를 우리가 몰랐던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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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기준 한국 장애인 인구는 약 250만명, 전체 인구의 약 5%다. 확률로만 보면 스무 명 중 한 명꼴이다. 하지만 우리는 일상에서 정말 스무 명 중 한 명 꼴로 장애인을 마주치고 있을까?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장애인유권자 투표편의 제도를 보완하고 있지만, 문제는 선거날로 끝나지 않는다. 장애인들이 투표일에 겪는 어려움은 사실 이들이 평생 동안 매일 겪는 어려움(관련 기사 보기)이기 때문이다. 이 어려움은 '평소 장애인이 우리 주위에서 보이지 않는 이유'와도 맞닿아있다.

허프포스트코리아에 블로거로 기고하고 있는 안승준씨와 서울 노들장애인야학 교장이자 장애인 인권 운동가로 활동하고 있는 박경석씨가 그 이유를 말했다.



#1. "우리는 장애인의 자연스러운 삶에 대해서 알지 못하는 거 같아요, 눈에 보이지 않으니까"



"초등학교 6학년 때 눈 안 보이고서는 2년 동안 눈 고치러만 다녔어요. 중도에 장애 얻는 사람들은 다 똑같이 겪는 거 같아요. 울고, 기도하고, 고치려고 노력하고, 포기하고, 좌절하고. 그런데 특수학교에 들어간 후엔 장애를 슬퍼할 겨를이 없었어요. 다 시각장애인이잖아요. 저를 불쌍히 여기거나 도와주려고 하는 게 아니라 '쟤는 왜 저렇게 몸이 둔하냐' 이런 이야기만 듣고. 전학 간 학교에서는 안 보이는 게 문제가 아니라 사람들한테 '괜찮은 애'라는 인정을 빨리 받아야 했어요. 저는 그게 자연스러운 회복 과정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처음 2년 동안 그러지 못했던 건 눈이 보였을 때 '장애인은 실패자', '힘들고 도와줘야 하는 사람', '낙오자', 이런 이미지를 누누이 보고 들어와서 장애인에 대해 늘 그렇게 생각해왔기 때문이에요." (안승준)

"만약에 저 어릴 때 친구 중에 장애인이 있었거나, 동네에서 봤다면 슬프기는 해도 저 사람처럼 살면 되겠구나, 생각했겠죠. 그런데 우리는 그런 자연스러운 장애인의 삶에 대해서 알지 못하는 거 같아요. 장애인을 볼 기회가 별로 없어요." (안승준)



#2. "중증장애인들을 쉽게 관리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격리 거주 시설을 우리 사회는 '복지'라고 말해요."



"'자립생활주택'이라는 게 있어요. 시설에 사는 장애인들이 지역사회로 자립하기 전에 중간단계로 만든 공동주택이에요. 서울만 해도 3천명 가까운 인구가 44개 거주시설에 사는데, 사회로 나오기 전에 훈련이 필요하잖아요. 그런데 '자립생활주택'이 서울에서 종로구에만 하나도 없어요. 땅값이 비싸다고 하는데 마찬가지로 땅값 비싼 강남구에도 있는데요. 수백억도 아니고 오천만원에서 일억 정도 보증금 가지고 하는 건데 이건 돈이 없는 게 아니라 만들 의지가 없는 거죠." (박경석)

"시설은 중증장애인들을 아주 쉽게 관리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곳이죠. 중증장애인들의 인권이나, 요구나, 필요에 의해서 만들어진 게 아니에요. 그런데 우리 사회는 그게 '복지'라고 하고, '대안'이라고 말하면서 '장애인들이 지역사회에 나와서 살면 더 불안하고 불편하다'는 식의 위협으로 군대처럼 집단적으로 통제하는 구조를 정당화하는 거예요. 스스로 먹고 살 능력이 없는 중증장애인들에게는 (자립과 시설 중 선택권이 없으니까) '자립생활주택'이 꼭 필요하죠." (박경석)



#3. "국가는 '복지'를 해야지, 가족에게 '효'를 '강요'하면 안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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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8월 11일 '장애등급제 폐지'를 위한 광화문역사 내 무기한 농성을 시작했다.



"2012년 8월 11일날, 대선 전에 광화문역에 '장애등급제'와 '부양의무제 기준'을 폐지하라고 들어갔습니다. 12월 대선이 얼마 안 남았을 때 시작하면 다른 큰 주제들 때문에 애초에 말도 못 꺼낼까봐 미리 시작했죠. 이제 1천700일이 넘었습니다. 4년이 넘게 지났는데 예산 삭감되고, 한 발짝도 못 나아갔습니다."

"해외에서도 유엔장애인권리협약(CRPD)에 따라서 '의학적 손상으로 복지 결정하는 장애등급제 재검토'는 한국 정부에 권고한 사항이에요. 장애등급제는 그 사람의 개인 환경은 하나도 안 봐요." (박경석)

"부산에 사는 신부전증 있는 남자가 이혼 후에 혼자 기초생활수급권자로 살고 있었어요. 그 딸이 장성해서 연봉 2천짜리 직장에 처음 취직했어요. 그러면 아버지에게 통보가 옵니다, 딸이 취직 했으니 당신 수급권 끊겠다고. 입원 치료비가 백만원 씩 나오면 수입 있는 딸이 대줘야 한다고. 만약 딸이 결혼하면 사위까지, 아들이면 며느리까지 묶어서 이중에 누구든 소득이 발생하면 아버지의 수급권을 끊어버리는 거예요. 그 백만원 안 주면 전부 다 불효 자식들 만드는 게 국가 아닙니까? 그게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예요. 효자가 되는 건 공동체의 문제예요, 국가가 강요할 문제가 아니고. 국가는 그 가족 공동체를 잘 유지하기 위해서 복지를 책임져야 하는 거 아닙니까?" (박경석)



#4. "'장애인은 도와주면 되지' 생각하는데, 아니에요."

"시각장애인들이 길 다닐 때 제일 무서워하는 건 볼라드(말뚝)예요. 발목 높이, 무릎 높이에 있어서 시각장애인들에게는 짐승한테 놓인 덫과도 같아요. 심하면 다리가 부러지기도 하고요, 피나는 건 다반사고요. 그런 부상을 한두번 겪다보면 밖에서 혼자 길 찾아다니려는 의지가 꺾이거든요." (안승준)

"장애를 갖게 됐을 때 사람들이 당황하고 좌절하고 슬퍼하는 건 장애를 가지면서 부적응자가 될 수 밖에 없는 사회구조 때문이에요. 그러니까 장애가 없는 사회의 90%가 나도 장애를 가질 수 있다는 가정을 갖고, 사회의 모든 환경을 미리 살기 편하게 만들어 놓는다면 장애인에 대한 부가적인 복지는 필요 없거든요. 누구든 '나도 장애인이 될 수 있다', '나도 노인이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약자를 배려해서 사회 모든 구조물을 만들면 100%가 편할 수 있는 거예요. 그래서 그 누가 노인이나 장애인이 되더라도 자신의 삶을 계속 그대로 살아가고 국민으로서 사회적 책임도 다할 수 있는 구조가 되는 거예요. 복지라는 게 '약자에게 주는' 게 아니라 '모두에게 투자하는' 거라고 생각하면 좋겠어요." (안승준)

""장애인들에 대해 보통 사람들이 가장 높은 수준의 선의라고 생각하는 것이 '도와주면 되지'예요. '도와주면 된다'는 건, 동시에 '가족이 있는데 왜 나라에 바라느냐',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는 거예요. 우리 사회는 '도와주는 거'라는 생각이 너무 뿌리깊게 박혀있어서, 자기 가족 중에 장애인이 생겨도 '내가 이 아이를 도와주지 못하면 죄인이다'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건 미안한 게 아닌거죠. 가족들이 도와줘야 하는 게 아닌 거고요. 성인이 된 장애인들은 독립해야 해요. 가족들도 가족들의 삶이 있고, 성인 장애인들도 성인 장애인들의 삶이 있는데, 언제까지나 어머니 아버지 형제들이 그 장애인을 위해 희생하는 사회 구조는 비정상적이라고 생각해요. 스스로 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거. '내가 도와주지'가 아니라 그 사람이 스스로 할 수 있는 부분들을 찾아주는 게 실질적으로 장애인을 '돕는' 거고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거죠." (안승준)


*주요 후보 5명 모두 기초생활수급자 부양의무자 기준을 폐지하겠다는 내용을 공약에 밝혔다. 장애등급제 폐지와 자립생활주택 지원에 대해서는 문재인, 안철수, 심상정 세 후보가 긍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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