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에게 '더 강해지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여성이 있다(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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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 교육기관인 '스쿨오브무브먼트' 최하란 대표는 2013년 7월부터 '자기방어'(Self-Defense) 훈련을 가르치고 있다.

호신술의 일종인 '크라브마가' 지도자인 최하란 대표는 '자기방어', 그리고 '호신술'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자기방어, 호신술이라고 하면 누군가를 바닥에 때려눕힌다든지 되게 역동적인 상황을 생각하시는데.. 사실 '자기방어'라고 하는 것은 굉장히 범주가 넓어요. 기본적으로 '나 자신을 안전하게 보호한다'는 것이기 때문이죠. 육체적/물리적으로 부딪혀서 스스로를 방어하기 이전에도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생각보다 많거든요. 남녀노소 관계없이 '어떻게 나를 방어하는 게 효과적일지'에 대해 배울 필요가 있어요.

'자기방어 훈련'을 접하시는 분들은 '왜 자기방어를 배워야 하나?' '자기방어를 배워도 되지 않는 세상을 만드는 게 먼저 아니냐?'고 많이들 반응하시는데, 저 역시도 그런 세상이 오기를 무척이나(!!) 바랍니다. 하지만 이건 여성과 같은 사회적 약자의 발언권이 확대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사회적 노력과는 또 다른 차원이거든요. 약자가 자기방어를 배워야 하는 세상을 옹호하는 게 아니에요. 예방 차원에서 우리가 개인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자는 것이죠. 여성은 생각보다 약하지 않거든요."

selfdefense

아래는 일문일답.

- '자기방어 훈련'을 왜 배워야 하는지 설명해 주세요.

"위험한 상황, 범죄의 상황에 부닥쳤을 때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반응은 '얼어버리는 것'이에요. 그 순간, 머릿속에 하얘지면서 아무 생각도 안 떠오르죠. 나중에 '내가 바보같이 왜 그랬을까' 자책하기 쉽지만, 사실 누구나 다 그래요.

그런데 두려운 상황에서 내가 '얼어붙을 수 있다'는 것을 미리 인지하고 있고, 빨리 그 '얼어버림'을 극복할 수 있도록 훈련을 해놓은 사람들은 평소 자신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시간을 매우 단축할 수 있어요. 그냥 멍하게 있는 게 아니라, '맞아, 이럴 때는 이렇게 해야지'라고 태세 전환을 하는 거죠. 저희는 몸을 활용한 자기방어 호신술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 '자기방어의 범주는 굉장히 넓다'고 말씀하셨는데, 구체적인 예를 들어주실 수 있나요?

"육체적, 물리적으로 위협을 막아내는 것만 자기방어가 아니에요. 예를 들어, 직장이나 학교 혹은 모임에서 불쾌한 말을 들었을 때 '기분 나쁘니까 그만하라'고 제지하는 것도 '자기방어'에 해당되죠. 이상한 짓을 저지르려 다가오는 사람에게 '저리가!!!'라고 소리 지르는 것도요.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막상 그런 상황에 부닥쳤을 때 소리 지르는 게 쉽지 않거든요."

- 혹시 길거리 등에서 직접적인 피해를 본 경험이 있으신가요?

"그럼요. 저도 여성이 흔히 마주칠 수 있는 성폭력적인 상황들을 겪어왔어요. 다행히도 아주 심각한 수위까지는 아니었지만. 직장 내, 길거리 등에서 성추행을 당한 적이 있지요. 저만 겪는 일은 아닌 것 같아요. WHO 통계를 보면 전 세계 여성의 3명 중 1명이 육체적·성적 폭력을 경험한다고 하니까.

어렸을 때.. 그러니까 13살 정도쯤에는 갑자기 길에서 어떤 성인남성한테 맞았어요. 피아노학원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이었는데, 갑자기 뺨을 때리고 제 목을 조르더라고요. 아무 이유도 없이. 너무 당황스럽고 무서워서 눈물만 흘렸던 기억이 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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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기방어 훈련 수업을 하면서 느낀 점이 있다면요?

"상당히 즐거워요. 운동은 10년 넘게 가르쳐 왔는데.. 단순히 '누군가를 건강하게 만드는 것'에 대한 즐거움 이상이에요. '내가 사회를 위해서 긍정적인 일을 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드니까. 사실 여학생이든 남학생이든 저에게는 모두 소중한 학생들이에요. 하지만 아무래도 여학생이 운동을 배워 변화하는 모습을 볼 때 '아 내가 여성으로서 느꼈던 것들을 이들도 느끼고 있구나' 하는 공감대/연대감이 좀 더 느껴지긴 해요.

저 역시 크라브마가를 처음 배웠을 때 그랬어요. '내가 왜 이걸 인제야 배웠지???' '진작 배웠더라면 그때 그렇게 가만히만 있지는 않았을 텐데!!'라고. 그리고 그다음에는 '더 많은 여성에게 이 운동을 알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꾸준히 수련을 한 학생(여성)들한테 물어보면 '삶이 많이 바뀌었다' '자유로워졌다' '다른 여성들에게도 추천하고 싶다'라고 많이들 이야기해요. 실제로 위험한 상황에서 육체적으로 반격해서 공격을 막아냈다든지, 목숨을 구했다든지 하는 스펙터클한 것보다 일상적인 태도가 많이 편해졌다는 거죠.

가끔 수업할 때 '여러분이 실제로 이 기술을 쓸 날이 오지는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할 때가 있어요. 예를 들어, 칼 공격에 대한 방어 기술을 배울 때.. 그 기술을 사용하게 된다는 것은 칼 공격을 받았다는 걸 의미하잖아요. '제가 자기방어 기술을 가르치고 있지만, 우리가 이걸 사용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오길 바란다'고. 그게 제가 가장 바라는 거라고."

- 가장 기억에 남았던 수강생이 있나요?

"2013년이었어요. 수업을 하는데... '저리 가!!!' '하지 마!!!'라고 소리 지르는 걸 여성들이 잘 못 해요. 쑥스럽다는 거죠. 누군가의 눈을 노려보면서 그렇게 소리를 지른다는 게. 특히 나이 차이가 있거나 하면 한국에서는 특히.. 저는 강사로서 그 '틀'을 너무나 깨주고 싶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샌드백을 치는 훈련을 할 때였는데.. 갑자기 한 학생(여성)이 눈물을 흘리는 거예요. '왜 울어요?' 놀라서 물었더니 '모르겠어요. 그냥 눈물이 나요'라고 하시더라고요. 사람을 친 것도 아니고, 그냥 샌드백을 쳤을 뿐인데.

그 학생이 아직도 운동하러 나오거든요. 몇 달쯤 전에 운동 배운지 한 달 정도 된 학생 앞에서 시범을 보이니까, '정말 잘한다' '너무 멋지다'며 새로 온 학생이 놀라는 거예요. 3년 전 샌드백 치며 눈물을 흘렸던 학생이 이렇게 성장했다는 걸 실감할 때.. 이럴 때가 가장 뿌듯하고 기억에 남아요. 정말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던 사람이 하나하나씩 배우면서 성장해 가고. 그래서 또 누군가의 롤모델이 된다는 것을 볼 때. 무척 기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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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외에서 열린 자기방어 훈련 지도자 과정에 참여했을 때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무엇이었나요?

"2012년 세르비아에 갔을 때였어요. 여성들이 수업 초반에 '워밍업'을 한다며 물구나무를 서더라고요. 물구나무를 섰다가 막 구르고.. 너무 잘하니까 수업 끝나고 물어봤어요. '너희는 어디서 그런 걸 배웠어?'라고. 그런데 도리어 저에게 '한국에서는 이런 거 안 배워?'라고 묻더라고요. 그래서 말해줬죠. '응, 우리는 안 배워'라고. (웃음) 세르비아에서는 유치원, 초등학교 때부터 배운다는 얘기를 듣고 좀 놀랐어요.

제가 한국에서 뭔가 강해 보이는 운동을 할 때, 제 주변을 보면 대부분 남자예요. 여성은 '정말 소수'죠. 그래서 저를 보고 사람들이 되게 놀라워해요. '우와, 여자가 그런 걸 해?' '정말 대단하다!!'라고. 그런데 세르비아에서는 여자가 물구나무를 서든, 힘들 잘 쓰든, 신기하게 본다거나 '우와' 하면서 놀라질 않더라고요. '여자라고 뭐???' 이런 분위기.

한국이 확실히 여자든 남자든 다른 나라보다 덜 운동해요. 그런데 (가부장적인) 문화적 차이 때문에 여성이 더 운동에서 소외되는 것 같아요. 뭐, 전 세계적으로 성 평등이 완전히 실현된 곳은 없다지만.. 한국은 '여성은 조신해야 한다' '몸가짐을 잘해야 한다' 이런 게 좀 더 심하니까."

* 한국에서 자기방어 훈련을 배울 수 있는 장소 6곳

(출처: '미녀, 야수에 맞서다' 부록에 소개된 프로그램 모음 요약)

1. 한국성폭력상담소


: 1991년에 개소한 여성 인권 단체로 2004년부터 다양한 내용의 자기방어 훈련 프로그램 진행


: 홈페이지는 www.sisters.or.kr


: 문의 전화는 02-338-2890 또는 ksvrc@sisters.or.kr 이메일 문의하면 된다.


2. 부산성폭력상담소


: 2015년부터 성폭력 타파를 위한 자기방어 훈련 '으랏차차' 진행


: 홈페이지는 www.wopower.or.kr


: 문의 전화는 051-558-8832/8833 또는 woman-world@hanmail.net 이메일 문의하면 된다.


3. 살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다짐


: 2012년 서울 은평구에서 창립한 의료협동조합


: 홈페이지는 cafe.daum.net/femihealth


: 문의 전화는 02-6014-9949 또는 salimhealthcoop@daum.net 이메일 문의하면 된다.


4. 스쿨오브무브먼트


: 2010년에 창립됐으며 매주 정기적으로 자기방어 수업 개최


: 홈페이지는 schoolofmovement.org


: 문의 전화는 02-322-3661 또는 schoolofmovement@gmail.com 이메일 문의하면 된다.


5. ASAP 한국형 여성 호신술


: Anti Sexual Assault Program(반성폭력 프로그램)의 약자이자 'As Soon As Possible = 가능한 빨리' 익혀서 활용할 수 있는 호신술


: 홈페이지는 페이스북 'ASAP 한국형 여성 호신술' 페이지로 연락하면 된다.


: 문의는 ryuwoon7134@hanmail.net 여기로 하면 된다.


6. 한국여성태권도문화원


: 2013년 창단


: 여성은 물론 사회적 약자를 위한 자기방어 훈련으로 'Smart - 3s 호신술' 개발하여 보급하는 데 노력


: 홈페이지는 www.kwtf.org


: 문의는 02-517-0546 또는 kwtc2015@naver.com 으로 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