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금지법 제정'에 대한 대선후보 5명의 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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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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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해도 혼나지 않는 꿈을 꾸는데 현실에서는 사랑하면 잡혀가는구나.'

지난 20일 서강대 캠퍼스에 황인찬 시인의 시 ‘무화과 숲’의 한 구절(사랑해도 혼나지 않는 꿈)을 인용한 대자보가 붙었다. 스스로 ‘군미필’ 동성애자라고 밝힌 이 학생은 ‘나도 잡아가라’고 썼다. 이 학교엔 ‘카투사 게이’, ‘예비역 게이’라고 밝힌 이들이 잇달아 대자보를 붙이고 있다. 육군이 동성 간 성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군형법 92조의 6항을 적용해 동성애자 대위를 구속한 데 대한 항의다.

한쪽에서 ‘죄가 되는 사랑’을 비통해하는 동안, ‘인권’, ‘페미니스트 대통령’을 내건 주요 대선 후보들이 정작 성소수자 인권 문제에 침묵을 지키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촛불집회를 계기로 여느 대선 때보다 성소수자 인권 문제가 중요 의제로 떠올랐는데도 주요 후보들이 반동성애 태도를 표방한 보수 기독교계 눈치를 보느라 제 목소리를 못 내고 있다는 비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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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오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대학성소수자모임연대 큐유브이(QUV)와 108개 청년·대학생 단체 회원들이 ‘우리의 시대는 다르다’는 슬로건을 내건 기자회견을 열고 차별금지법 제정을 요구하고 있다.

성소수자 단체들의 대선 참여는 어느 때보다 활발하다. 지난 15일 게이인권단체 친구사이는 국내 최초로 ‘게이서밋’을 열고 게이 커뮤니티 100여명이 모인 가운데 ‘2017 대선 게이 커뮤니티 요구안’을 만들었다. 이들은 차별금지법, 동성결혼 법제화, 다양한 가족구성권 보장, 군형법 제92조의 6항 폐지 등을 담은 요구안을 담아 다음달 1일까지 후보들에게 답변을 요청했다. 지난 3월 ‘성소수자 차별반대 무지개행동’도 ‘성소수자 평등권 실현을 위한 10대 정책과제’를 발표했다. 성전환자들이 좀 더 쉽게 성별 변경을 할 수 있는 특별법 제정과, 일각에서 성소수자들을 ‘전환치료(탈동성애) 할 수 있다’며 내세우는 행사에 대한 공공건물 대관 금지까지 구체적으로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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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보들의 성소수자 인권에 대한 관점은 대개 ‘차별금지법 제정’에 대한 추진 의사 여부로 추려진다. 개인의 성적 정체성과 성적 지향에 대한 차별을 금지하는 조항을 포함하는 법안이다. 지난 20일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가 문재인·안철수·홍준표·심상정·유승민 후보한테 질의해 받은 ‘인권 8대 의제 대선후보 답변서’를 보면, 차별금지법 제정에 대해 ‘추진’ 의사를 밝힌 이는 심상정 정의당 후보뿐이었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는 ‘추진 불가’를 밝혔고, 나머지 세 후보는 명확히 답변하지 않았다.

여론조사에서 1·2위를 달리는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는 “차별받아서는 안 되지만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취지로 답했다.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는 답변 자체를 거부했다.

20일 문재인·홍준표·안철수·유승민 후보 캠프 관계자들은 모두 ‘8천만민족복음화대성회’와 ‘한국기독교공공정책협의회’가 주최한 ‘제19대 대통령선거 기독교 공공정책 발표회’에 참석해 “차별금지법 제정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홍준표 후보는 최근 <와이티엔>(YTN)과 한 인터뷰에서 성소수자 사안에 대해 “난 거 싫어요”라며 혐오성 발언을 하기도 했다. 대선 입후보 등록을 한 후보들 가운데 정책공약집에 차별금지법 제정, 군형법 92조의 6 폐지 등 성소수자 인권 공약을 담은 후보는 심상정 후보와 김선동 민중연합당 후보 2명에 불과하다.

후보들의 성소수자 인권에 대한 ‘소극적 행보’나 ‘외면’을 두고서는 현실의 변화를 제대로 감지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대학가에선 2015년 김보미 전 서울대 총학생회장을 시작으로 ‘커밍아웃’(성소수자가 공개적으로 성적 지향을 밝히는 것)한 학생들이 속속 학생회 대표를 맡을 정도로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적 시각 자체가 사라지고 있지만, 대선 후보들은 이런 변화를 적극적으로 받아안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이들은 “대선 후보들은 근시안적인 표 계산에 갇혀 소수자 인권 보장의 책무를 외면하지 말라. 역사 앞에 부끄럽지 않은 정치인이 되시라”고 촉구했다. ‘행동하는 성소수자 인권연대’의 나라 사무국장은 “기성 정당들이 개혁과 적폐 청산을 얘기하면서 차별금지법, 성소수자 문제는 전혀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며 “이들이 인권에 대해서 어떻게 접근하는지 알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