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도 안 돼? 유권자는 뭐 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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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월17일 0시부터 19대 대통령 선거운동 기간이 시작됐습니다. 선거는 주권자인 시민들이 스스로 대표자를 선택하는 축제의 장이지만, 현행 공직선거법 규제 틀 속에서 유권자들은 여전히 구경꾼에 머무는 것이 현실입니다. 최근 선거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거나 선거관리위원회에 단속된 사례를 통해 유권자들의 정치적 의사 표현을 가로막아온 선거법 독소 조항을 짚어보았습니다.

the지난해 10월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소속 단체 대표 등이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2016 총선넷’ 활동가들을 규제 중심의 선거법으로 기소한 검찰을 규탄하며 법 개정을 촉구하고 있다.

“식당 밖에 문재인 후보를 지지하는 문구를 쓴 현수막을 걸면 선거법 위반인가요?”

지난 19일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판에는 이런 질문이 올라왔다. ‘개인적 의사 표현도 걸리냐’는 반응과 ‘5월9일에 보름달(문재인을 의미)이 뜨면 할인이나 술 제공 같은 표현을 현수막에 쓰면 법 위반이 아니지 않을까’ 등의 댓글이 달렸다. 합법 혹은 불법을 확신하는 댓글은 없었다. 기자도 헷갈렸다. 공직선거법(이하 선거법) 제90조 제1항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누구든지 선거일 전 180일부터 선거일까지 선거에 영향을 미치게 하기 위하여 1. 화환·풍선·간판·현수막·애드벌룬·선전탑, 그 밖의 광고물을 설치·진열·게시·배부하는 행위 2. 표찰이나 그 밖의 표시물을 착용·배부하는 행위 3. 후보자를 상징하는 인형·마스코트 등을 제작·판매하는 행위를 할 수 없다. 정당(창당준비위 포함) 명칭·후보자(후보자가 되려는 사람 포함) 이름과 사진 또는 그 명칭·이름을 유추할 수 있는 내용을 명시하면 선거에 영향을 미치기 위한 것으로 본다.”

그러니까, 질문을 한 누리꾼이 대선 후보자를 지지하는 문구가 들어간 현수막을 식당 앞에 건다면 선거법을 어기는 셈이다. 이 조항에 따르면, 문재인·안철수·심상정 등의 이름이나 얼굴 사진이 들어간 피켓을 들고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 서 있어도 문제가 될 수 있다. 선거법 제58조 제2항은 ‘누구든지 자유롭게 선거운동을 할 수 있다’고 했지만, 이 원칙을 믿었다간 낭패 보기 십상이다.

지난해 20대 총선을 앞두고 낙선운동을 진행한 ‘2016 총선시민네트워크(총선넷)’는 선거법 제90조 제1항 규제를 피하기 위해 ‘나는 □ 안 찍어!’라고 쓰인 구멍 뚫린 피켓을 활용했다. 이 피켓에는 후보자 이름, 정당명이 포함돼 있지 않다. 그러나 검찰은 지난해 총선넷 활동가 22명을 무더기 기소하면서 “(피켓 구멍 모양을) 선거사무소 건물 외벽에 설치된 현수막 등으로 향하게 한 뒤 구멍을 통해 후보자 사진이나 이름이 보이도록 해 사실상 특정 후보자들을 반대했다”며 선거법 위반 혐의를 적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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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20대 총선을 앞두고 낙선운동을 진행한 ‘2016 총선시민네트워크’는 지난해 공직선거법 규제를 피하기 위해 ‘나는 □ 안 찍어!’라고 쓰인 구멍 뚫린 피켓을 활용했다. 이 피켓에는 후보자 이름, 정당명이 들어가 있지 않다. 사진=한겨레

선거법 제103조 제3항을 보면 “누구든지 선거 기간 중 선거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 향우회·종친회·동창회·단합대회 또는 야유회, 그 밖에 집회나 모임을 개최할 수 없다”고 돼 있다. 검찰은 이 조항을 활용해 총선넷 활동가들이 연 기자회견에 대해서도 선거법 위반이라고 판단했다. 2017년 4월말 현재, 총선넷 활동가들에 대한 선거법 위반 기소 사건은 1심 재판이 진행 중이다.

공천반대 1인시위도 불법?

2016년 2월16일, 청년유니온 김민수 위원장은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정문 앞에서 40분간 1인시위를 한다. 그가 손에 들었던 피켓에는 ‘중소기업진흥공단 취업청탁 채용 비리?’, ‘청년 구직자의 노력을 비웃는 채용비리 인사가 공천되어선 안 됩니다’라는 문구와 함께 최경환 당시 새누리당 의원의 이름과 사진이 포함돼 있었다.

the지난해 2월 김민수 청년유니온 위원장이 서울 국회 앞에서 최경환 의원의 공천을 반대하는 1인시위를 벌이고 있다. 검찰은 김 위원장을 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다.

검찰은 총선이 끝난 뒤 김 위원장을 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한다. 정해진 선거운동 기간 이전에 법에서 금지하는 ‘선거운동’을 했으며(선거법 제254조 제2항 위반), 선거일 180일 전부터 선거일까지 선거에 영향을 미치기 위한 광고물(피켓) 설치·게시 행위를 했다(선거법 제90조 제1항 위반)는 이유였다. 비리 의혹이 불거진 인사에 대한 공천 반대 1인시위도 선거운동 기간에만 할 수 있는 선거운동이라고 해석한 것이다.

미국·영국·독일 등 대다수 선진국은 선거운동에 대한 개념을 따로 정의하지 않는다. 반면, 한국 선거법은 선거운동을 ‘당선되거나 되게 하거나 되지 못하게 하기 위한 행위’로 정의한다. 그런데 여기서 단서 조항이 붙는다. 선거에 관한 단순한 의사 표시, 입후보와 선거운동을 위한 준비 행위, 정당의 후보자 추천에 관한 단순한 지지 및 반대의견 개진, 통상적 정당활동 등은 선거운동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선거운동을 할 수 있는 기간을 따로 정해 이를 어길 경우 처벌한다. 대통령 선거는 22일간, 국회의원 선거 13일간만 선거운동을 할 수 있다. 선거운동을 포괄적으로 제한한 상태에서 허용 가능한 활동을 추가하고 있는 모양새다. 선거운동을 허용한 상태에서 일부 제한 행위를 두는 선진국과 접근 자체가 다르다. 유권자들로서는 선거법 조항이 복잡한데다 이해하기 어려운 문구가 많아, 어떤 활동이 합법인지 아닌지 구분하기조차 어렵다. 선거법 체계를 흔들어 금지 행위만 나열하고 그 외 활동은 모두 허용하는 방식으로 바꾸거나, 선거운동 정의에 대한 명확한 재정리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거듭 나오는 배경이다.

검찰은 김민수 위원장의 1인시위를 선거운동으로 보았지만, 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올해 1월 서울남부지법 형사11부(재판장 반정우)는 “최경환은 2016년 2월11일 새누리당에 경산시 지역구 국회의원 후보자 신청을 했고 피고인이 1인시위를 한 시점은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은 2월16일이었으며, 지역구와 상관없는 국회의사당 정문에서 유권자들이 지나다닐 가능성이 거의 없는 점심시간에 40여분 정도 1인시위를 한 상황 등을 종합해 피고인의 행위는 정당의 후보자 추천에 관한 단순 지지·반대 의견을 내놓은 것에 해당한다”고 했다. 선거운동에 포함되지 않으므로 정해진 선거운동 기간이 아닌 시기에 1인시위를 한 것은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또 재판부는 “원칙적으로 선거운동 자유를 보장하는 선거법 취지와 죄형법정주의 원칙을 고려해, 선거운동 등의 제한 규정은 엄격하게 해석해야 한다. 선거법 제90조에서 규정한 광고물 ‘게시’는 특정한 장소에 내붙이거나 내걸어 고정시키는 행위로 봐야 하며, 피고인이 피켓을 들고 있는 행위가 (선거에 영향을 미치기 위한) 광고물 ‘게시’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며 선거법 제90조 제1항 위반 혐의에 대해서도 무죄를 선고했다. 이 재판은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됐는데, 두가지 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해 배심원 7명 가운데 4명은 무죄로 판단했다. 현재 이 사건은 검찰의 항소로 서울고등법원에서 2심 재판이 진행 중이다.

정책평가 인쇄물도 못 돌린다고요?

청소년·학부모·인권단체들의 연대체인 ‘인권친화적 학교+너머 운동본부'(이하 너머본부)는 올해 3월 대선 후보 및 예비후보 10명에게 학습시간 축소, 청소년 참정권 확대 등 10가지 정책에 대해 어떤 의견을 갖고 있는지 물었다. 10명 가운데 7명이 답변을 보내왔고, 이 내용은 인터넷을 통해 공개돼 있다. 너머본부는 문재인·안철수·심상정·김선동 후보 4명이 보내온 답변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청소년인권시험 치른 대선 후보들’이란 제목의 4쪽짜리 인쇄물을 만들었다. 이 단체 활동가들은 지난 15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해당 인쇄물을 시민들에게 나눠 주다 서울시선거관리위원회 직원들의 제지를 받았다.

고유경 너머본부 활동가는 “선관위로부터 인쇄물 앞면에 대선 후보자들의 이름과 사진이 나와 있다는 이유로 시민들에게 나눠 줄 수 없다는 설명을 들었다. 애초 각 후보의 답변에 점수를 매겼는데 이런 활동도 선거법상 금지돼 있더라. 그래서 우리가 주장하는 정책에 대해 후보들이 찬성하는 정도를 ○나 △로 표시하는 등 불법을 피하려고 노력했는데 또다른 복병이 있었다”며 황당해했다. 서울시선관위 쪽은 선거법 제93조 제1항에 따라 이 단체의 인쇄물 배포를 단속했다는 입장이다.
선거법 제93조 제1항은 정당·후보자를 지지하거나 반대하는 문서 등을 게시하거나 나눠 주는 걸 금지하고 있다.

“누구든지 선거일 전 180일부터 선거일까지 선거에 영향을 미치게 하기 위하여 정당(창당준비위, 정당의 정강·정책 포함)과 후보자(후보가 되려는 자 포함)를 지지·추천·반대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거나, 정당 명칭 또는 후보자의 성명을 나타내는 광고·인사장·벽보·사진·문서 및 도화·인쇄물이나 녹음·녹화테이프, 그 밖에 이와 유사한 것을 배부·첩부·살포·상영 또는 게시할 수 없다.”

반세기도 훨씬 전인 지난 1958년 제정된 민의원의원 선거법에 뿌리를 두고 있는 이 조항은 유권자들의 의사 표현을 제한하는 대표적인 선거법 규정으로 꼽힌다. 선거가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현실에서, 선거일 6개월 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문서를 통해 후보자가 되려는 사람이나 정당에 대한 지지·추천 의사 표현을 원천적으로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선거법상 후보자들의 경우엔 선거벽보·공보·공약서·신문광고 등 인쇄물을 통해 선거운동을 할 수 있지만, 일반 유권자들이 문서를 통해 정치적 표현을 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2012년 참여연대는 복지 공공성 확보, 복지 재원의 확보 등 6개 원칙에 따라 정당별 복지정책을 비교 평가했으나, 순위를 외부에 공개하지 못했다. 선거법 제108조의3을 살펴보면 “언론기관·단체가 정당 및 후보자 정책과 공약에 대해 비교 평가하고 그 결과를 공개할 수 있다”고 돼 있다. 그러면서도 후보자별 점수 부여, 순위나 등급을 정해 서열화하는 것은 금지했다. 정책과 공약을 비교할 수 있지만 어떤 쪽이 더 좋은지 순위는 매기지 말라는 것이다.

서복경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연구원은 “후보자들이 내놓는 공약과 정책이 실현 가능한지를 따져 묻는 정책선거는 시민들이 자유롭게 정보를 교환하면서 만들어갈 수 있지만, 우리 법 제도는 원내 의석을 지닌 정당과 선거 후보자, 유력 언론사, 선관위만 정책과 공약을 말할 수 있게 했다”고 지적했다.

인터넷 선거운동 허용됐지만…

2012년 선거법이 개정되면서, 예외적으로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활용한 선거운동은 상시적(선거 당일 제외)으로 가능해졌다. 그러나 여전히 ‘말’로 하는 선거운동은 선거운동 기간 이외엔 허용되지 않는다. 카카오톡을 통해 특정 후보자나 정당을 지지하는 발언을 하면 합법이지만, 같은 내용을 구두로 전달하면 법 위반이라는 것이다.

인터넷 선거운동의 활로가 열렸지만, 선거법 제251조(후보자비방죄)를 활용한 검찰의 자의적 기소·처벌이 의사 표현을 옥죄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 조항에 따르면, 당선되게 하거나 그 반대 목적으로 공연히 사실을 적시해 후보자 및 배우자, 형제자매 등을 비방한 자는 3년 이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 벌금형을 받을 수 있다. 다만, 표현한 내용이 사실이며 공공의 이익에 부합하면 처벌하지 않는다.

2014년 5월12일 새누리당의 서울시장 후보 경선을 앞두고, 대학생 전아무개씨는 후보자 비방 혐의로 기소된다.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 “정몽준 의원은 미개한 국민들 상대로 7선을 했고… 최후의 양심이 있다면 후보 자진사퇴하길”, “부인 선거법 위반, 몽가루 집안이래” 등의 글을 세 차례 올린 것이 화근이었다. 그러나 1·2심 재판부는 “후보자의 인격권을 침해할 수 있는 비방 행위라 하더라도, 공직선거에 입후보한 자에 대한 사실은 유권자에게 알려져 투표의 판단 자료로 제공되는 것이 공익에 부합한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선거 때마다 유권자들은 적극적 권리 행사를 주문받지만, 한국의 선거법은 수동적 유권자로 살 것을 강요하고 있다.
지난해 8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참여연대 등 전국 500여개 단체가 모인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는 “현행 선거법이 정치 선진국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기간, 주체, 방법별 규제로 유권자의 정치적 표현을 침해하고 있다”며 선거 6개월 전부터 인쇄물 등을 통한 의사 표현을 규제하는 조항 삭제, 후보자비방죄 폐지, 선거연령 18살 하향 조정 등을 뼈대로 한 선거법 개정 청원안을 20대 국회에 제출했다.

*참고자료: <공직선거법상 선거규제의 헌법적 정당성에 관한 연구>(2016·한국헌법학회), <한국선거의 선거운동 자유 증대를 위한 입법제도에 관한 연구>(2015·박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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