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할머니는 90세에 일생의 사랑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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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친구가 생겼어.”

할머니가 전화로 말씀하셨다. 2016년 8월이었고, 나는 이스탄불로 이사한 뒤였지만 애리조나에 있는 척하고 있었다. 몇 년 동안 할머니는 터키는 ‘아주 위험한 곳’이니 여행가지 말라고 말씀하고 계셨다. 쿠데타, 집단 검거, 여러 차례의 폭탄 테러(할머니 말이 어느 정도 옳았는지도 모르겠다) 때문에 할머니를 걱정하게 하는 것보다는 진실을 숨기는 게 낫다고 생각한 나는 대화 내용을 얼른 할머니의 근황으로 돌렸다. 하지만 할머니의 삶이 갑자기 내 삶보다 더 흥미진진했으리라곤 예상하지 못했다.

“93세고 정말 신사야.”

“남자친구를 원하지 않으시는 줄 알았는데요?”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1년 뒤 나는 할머니에게 남자친구를 사귀라고 말씀드렸다. 할머니는 마치 내가 광인구속복을 사라고 말한 것처럼 반응하셨다. “나한테 남자친구가 왜 필요해? 개가 있는데!”)

“그렇게 됐어.”

“네?”

“우리 간병인이 두 달 전에 소개시켜줬어.”

“친구예요, 남자친구예요?”

“당연히 남자친구지.”

할머니의 그런 즐거운 목소리는 난 딱 한 번 들어보았다. 푸들 잡종견인 코코를 키우기 시작한 직후였다.

“일주일에 몇 번씩 날 데리고 저녁을 먹으러 가.”

“손 잡고 다니세요?”

“아니, 그러면 불편해. 우리 둘 다 지팡이를 짚거든.”

나는 자랑스럽게 직장 동료들에게 할머니의 연애 이야기를 했다. 그들은 “귀엽네. 동반자가 있으니까.” 다들 두 분의 연애가 플라토닉한 관계일 거라 생각했지만, 나는 그 이상을 바랐다.

nektaria petrou

할머니와 나

할머니는 1926년에 브루클린에서 태어나 1945년에 결혼하셨고 2010년에 할아버지와 사별하셨다. 이젠 운전도 하지 않으시고, 이메일과 스카이프는 너무 어렵다고 불평하시지만 지금도 뉴욕과 플로리다의 연립 주택에 혼자 사신다. 어렸을 때 나는 할머니와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다. 내가 할머니와 있는 걸 좋아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내 부모님이 나를 떠넘기고 싶어하셨기 때문이기도 하고, 아들만 넷을 둔 할머니가 갖고 싶어하셨던 딸 역할을 내가 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버지가 내가 태어났다고 알리자 할머니는 “내가 드디어 딸을 얻었구나!”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초등학교에 다닐 때 할머니와 함께 재봉틀로 인형 옷을 만들고, 할머니 정원에서 껍질콩과 토마토를 따고, 버터 팝콘을 먹으며 로맨틱한 영화를 보고, 메이크업과 네일을 하며 놀았다. (할머니가 껄끄러운 결혼 생활 대신 원하셨던) 로맨스를 대신한 취미였던 수채 정물화를 그리시는 걸 지켜보기도 했다. 10살 밖에 되지 않았을 때도, 할아버지의 캐딜락 뒷자리에서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말다툼을 들으며 나는 왜 두 분이 진작 이혼하시지 않았나 의아해 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 나는 할머니에게 개 코코가 남편보다 더 중요하게 느껴지는 걸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코코의 신선함이 가시고 나자 할머니는 점점 더 짜증이 많아지셨다. 2015년 주말에 플로리다로 할머니를 찾아갔을 때, 나는 할머니의 삶에 대한 의미있는 대화를 나누길 바랐지만, 할머니는 주말에 할 일 목록에만 관심이 있으셨다. 일요일 오후에 내가 케일 줄기를 넣어서 음식물 쓰레기 처리기가 막혔다고 역정을 내셨다. “넌 집에 처리기도 없니? 녹색 채소를 넣으면 안 된다는 것도 몰라?”

“사실 집에선 케일 줄기를 늘 처리기에 넣는데-”

“네 방으로 가!”

“저 39살이에요.”

“말대꾸 하지 마!”

나는 하던 말을 멈추고 개 끈을 들고 코코를 불렀다. 산책하면서 할머니는 거의 평생 동안 우울증으로 고생하셨다는 삼촌 말씀을 떠올렸다. 30대 무렵에 할머니는 우울증이 너무 심해져서 한겨울에 잠옷만 입고 맨발로 뉴욕의 집에서 나오신 적이 있었다. 이 사실을 떠올리자 할머니가 처리기가 막힌 게 얼마나 끔찍한 일인지(고치고 나서도) 계속 중얼거리는 걸 참는 데 도움이 되었다. 월요일 아침에 내가 공항으로 떠나기 직전에 할머니는 화를 내서 미안하다고 하셨다. 나는 할머니의 이마에 키스하고 “괜찮아요.”라고 말했다. 하지만 다음에 또 찾아오겠다는 약속은 하지 않았다.

나는 이 일을 제쳐놓으려고 할머니에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소설을 한 권 보냈다. ‘콜레라 시대의 사랑’이었다(노년의 로맨스가 등장한다). 어떻게 생각하셨는지 묻자 할머니는 “내 취향은 아니더라. 나는 다니엘 스틸이 더 좋아.”라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같은 집에서 주말을 보낼 수도 없고, 문학 취향도 다르고, 할머니는 남자친구를 사귈 가능성조차 완강히 부인하셨다. 하지만 할머니가 다니엘 스틸을 좋아하신다면 사랑을 아예 등진 건 아니라는 뜻이다. 그래서 나는 2016년 8월에 남자친구가 생겼다는 말을 듣고 정말 신이 났다.

9월에 나는 다시 안부를 전했다. 남자친구는 레스토랑에 걸어들어갈 때 손을 잡을 수 있도록 지팡이를 왼손으로 잡기 시작했다. 일주일 전에는 저녁을 먹고 나서 할머니를 차로 집까지 태워주고, 문 앞까지 데려다 주고, 자기 사진을 주었다고 한다. 다음 만남에서는 할머니가 자기 사진을 주셨다. 1940년대 에티켓에 의하면 사진 교환은 서로만을 만난다는 걸 의미한다. 10월에 할머니는 저녁 데이트 이후 남자 친구가 할머니 집에 와서 디카페인 커피를 한 잔 마시기 시작했다고 말씀하셨다.

“키스를 꽤 잘해. 하지만 전에는 내가 준비되지 않은 일을 하려 했어.”

“자세히 말해 보세요.”

“말 안 할 거야.”

“뭐가 걱정이에요, 할머니? 임신하실까봐요?”

“난 준비가 안 됐어. 우린 그렇게 오래 만나지 않았단 말이야.”

할머니의 옛스러운 말이 사랑스러웠다. 할머니와 남자친구는 '사귀는(dating)' 게 아니라 '만나는(going)' 것이었다.

“할머니, 남자친구가 할머니가 관심이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잖아요.”

“하지만 난 내가 그걸 원하는지 잘 모르겠어.”

“그걸 원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아직도 할 수 있는 남자를 만난 걸 행운으로 생각하세요.”

“그는 기다릴 수 있어.”

“93살인데요? 할머니, 제가 가르쳐 드릴 게 몇 가지 있는데-”

“내가 너한테 가르쳐 줄 게 있겠지!”

11월에 전화했더니 할머니는 가족들의 추수감사절 저녁 식사에 데리고 가고 싶어서 남자친구에게 새 양복을 사주었다고 하셨다. 다른 사람들은 다 캐주얼하게 입겠지만, 할머니는 말쑥하게 차려 입은 남자를 데리고 가겠다고 우기셨다. 할머니가 할아버지의 낡은 ‘작업복’과 형편없는 미용사를 두고 싸우던 게 기억났다. 고맙게도 이 남자친구는 할아버지보다 고분고분했다.

크리스마스에 남자친구는 할머니에게 은과 다이아몬드로 된 목걸이를 주었다. 영리한 사람이다. QVC 채널에 중독된 우리 할머니의 마음을 얻는데는 언제나 보석이 최고였다. 할머니는 남자친구를 데리고 구두를 사주러 가셨다(할머니는 그의 ‘끔찍한’ 로퍼가 싫으셨다). 그리고 자기 집에서 자고 가라고 초대도 하셨다. 할머니는 크리스마스 이브에 통화할 때 “우린 너무나 사랑해!”라고 말씀하셨다.

“란제리는 사셨어요?”

“내 나이에? 장난하니? 그는 그냥 만족할 거야.”

“비아그라 먹는대요?”

“아니, 필요없대.”

나는 크리스마스 다음날 전화했다.

“하셨어요?”

“아니. 그가 설사를 했어. 거사는 내 생일로 미뤘어.”

내가 12월 29일에 이스탄불에서 점심을 먹고 있을 때, 뉴욕에선 할머니의 90번째 생일 파티가 끝나가고 있었다. 내 아이폰에 희색이 만면한 커플의 사진들이 들어왔다. 할머니는 수십 년 전에 직접 만드신 우아한 핑크색 옷을 입고 앉아계셨고, 양복을 잘 차려입은 남자친구는 의자 등에 기대 있었다. 지팡이를 짚지 않고 사진을 찍는 제일 좋은 방법이었을 것이다. 나는 그리스, 터키, 아르메니아, 아랍 출신의 동료들에게 사진을 보여주었다. 그들은 나이를 잊은 이 연애를 보며 경이로워했다. 90세인 할머니가 75세 정도의 중동 여성들 대부분보다 더 젊어보여서 더욱 그랬다.

나는 며칠 뒤 플로리다로 전화를 걸었다. “드디어 하셨어요?”

“그런 셈이야. 파티가 늦게 끝났고, 우린 와인을 너무 많이 마셨어. 우리가 한 게 뭐였든, 암튼 좋았어. 다음 날 아침에 차로 날 공항까지 데려다 줬어. 작별 인사하기가 정말 힘들었어! 페이스타임으로 하루에 서너 번씩 이야기해.”

“페이스타임 쓰는 법을 배우셨어요?”

“응. 아이패드로. 그나저나 귀여운 잠옷이랑 검정 레이스 브라와 팬티를 샀어.”

“끈 팬티는요?”

“너무 몰아붙이지지 마.”

아이들이 소리지르는 것이 들렸다. “어디세요?”

“다음 주에 남자친구 94번째 생일이라 카드 사러 왔어.”

“할머니, 두 개 사세요. 섹시한 것 하나, 로맨틱한 것 하나.”

“알았어. 남자친구를 진작 사귈 걸 그랬다.”

“할아버지 돌아가시고 나서 제가 연애하라고 하신 거 기억 안 나요? 절대 안 한다고 그러셨잖아요.”

“음, 네 말이 맞았어. 좋은 삶이다.”

발렌타인 데이에 다시 전화했다. 남자친구가 2주 동안 함께 지내러 막 도착했다는 걸 알고 있었다.

“분명 저보다 더 좋은 발렌타인 데이를 보내고 계시겠죠.”

할머니는 뻔뻔하게 “응, 그렇지.”라고 대답하셨다.

수화기 너머로 남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누구죠?”

“우리 큰 손녀요. 나보고 섹시한 속옷을 사라고 하는 아이.”

남자친구가 전화를 받았다. “안녕, 넥타리아. 란제리에 대해서는 고마워요.”

“괜찮아요. 할머니가 끈 팬티를 사실 때까지 계속 잔소리할게요.”

“기대할게요.”

“할머니를 행복하게 만들어주셔서 고마워요. 다른 사람이 되셨어요.”

그는 웃었다. “우리 나이에 로맨스를 갖는 사람들이 많지는 않죠. 아무튼 조만간 만나요. 당신 할머니에 대한 당신이 들어본 적이 없는 이야기들을 들려줄게요.”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이었다.

“최대한 빨리 찾아뵙겠다고 약속할게요.”

*허프포스트US의 블로그 글 My Grandmother Found The Love Of Her Life At Ninety를 번역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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