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공화국, 철거민 주거대책까지 삼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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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거민들의 주거안정을 위해 임대주택 입주권을 제공하는 제도가 있습니다. 20년 동안 전셋값 시세의 80%로 거주할 수 있는 서울시 장기전세주택(시프트)은 주거안정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인기가 높습니다. 시세차익을 노린 부동산 중개업자들이 철거민 대상의 시프트 특별공급 입주권을 악용하고 있습니다. 경제지표 상승이 필요할 때마다 정부가 부동산을 동원하고 ‘불패의 치부 수단’으로서 부동산의 지위가 흔들리지 않는 한 ‘시프트 사기’도 계속될 수밖에 없습니다.

“편법이라뇨, 아니죠. 법은 합법과 위법만 있잖아요. 저흰 불법적인 건 아예 하지 않습니다.”

전화기 너머 중개사의 목소리는 낭랑했다. 연신 “불법적인 건 하지 않는다”며 “(사무실로) 나와보면 알 수 있다”, “앞서 입주한 사람들을 소개시켜주겠다”고 했다. 블로그에 자신의 연락처와 얼굴을 공개한 젊고 잘생긴 남성 중개사는 “온라인으론 공개할 수 없는 수많은 공문서와 정보가 있다”고 했다. 그것들로 어느 집이 철거될지 미리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중개사가 소개한 철거 예정 가옥을 사두면 보상으로 ‘시프트’ 입주권이 나온다.

시프트는 보증금이 시세의 80%인 서울의 장기전세주택이다. 서울시 산하 공기업인 서울주택도시공사(에스에이치공사) 소유다. 저렴하고 안정적인데다, 이렇게 구한 시프트는 일반적인 경우와 달라 추첨을 거치지도 않는다. 원하는 지역의 아파트를 그냥 찍기만 하면 된다. 중간에 소득이 늘어도 쫓겨나지 않는다. 세대 구성원 명의로 집을 소유하지만 않으면 최대 20년 동안 계속 살 수 있다. 엄연히 전세지만, 사실상 자기 집을 매입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입주 전까지 단지 1억~2억원의 돈을 한두 해 정도 묶어두기만 하면 됩니다. 보증금 미리 내신다고 생각하면 되죠.” 2년마다 전세 보증금을 올려주고 지긋지긋하게 이사를 다녀야 했던 세입자들에겐 솔깃할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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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인터넷에서 ‘시프트 특별공급’으로 검색하면 “아무 조건 없이 시프트에 입주할 수 있게 해준다”는 광고가 즐비하다. 이들은 “1억원이 조금 넘는 저렴한 금액으로 서울 아파트 전세 입주가 가능하다”며 “청약통장도, 경쟁을 거칠 필요도, 소득에 따른 퇴거 조치도 없다. 차량 가액 제한도, 자산 제한도 없다”며 열을 낸다. 반면 관련된 기사는 모두 ‘주의하라’는 내용 일색이다. 광고처럼 원하는 시기에 원하는 곳에 입주하기가 어려울 수 있다는 것이다. 서울시도 지난달부터 직접 나서 지하철 광고(5호선) 등을 통해 주의를 촉구하고 있지만, 이런 거래는 수년째 근절되지 않는다. 중개사의 말대로 엄연히 불법은 아니기 때문이다.

철거민이 되세요

관련 규칙은 1999년에 제정됐다. 규칙이 만들어진 취지는 철거민 보상에 있다. ‘서울특별시 철거민 등에 대한 국민주택 특별공급규칙’을 보면, 서울시나 서울주택도시공사 혹은 각 구청 등에서 관공서나 주차장, 도로 같은 공공시설을 짓기 위해 도시계획 사업을 벌이는데, 이때 집이 철거되는 경우 그 집의 소유자와 살고 있는 세입자에게 보상이 주어진다. 아무리 공공시설을 짓는다지만 철거민 입장에선 재산권과 주거권을 침해당한 것인 만큼, 이에 대한 보상으로 보상금이나 아파트 특별분양권, 임대주택을 주기로 한 것이다. 한데 그러던 것이 2008년부터는 집 소유자에게 분양권 대신 임대주택을 주는 것으로 제도가 바뀌었다. 철거민에게 주어지는 특별분양권을 노려 철거주택을 미리 사두는 부동산 투기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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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도가 바뀌자 ‘꾼’들의 관심은 시프트로 옮겨갔다. 2007년 오세훈 시장의 서울시가 ‘중산층을 위한 임대아파트가 필요하다’며 시프트를 공급하기 시작했는데, 경쟁률이 100 대 1을 기록하는 등 인기가 매우 높았기 때문이다. 한데 이런 시프트를, 그것도 경쟁 없이 원하는 곳에 바로 입주할 수 있다고 하니 ‘특별공급’ 제도에 관심이 쏠릴 만했다.

당시엔 주민공고 이후, 사업 시행 인가일 이전에 철거 예정 주택을 매입하면 시프트 입주권을 얻을 수 있었다. 이 2~3개월의 기간을 두고 역시 투기가 일었고 다시 제도가 수정됐다. 서울시는 2012년 시프트 특별공급 대상자의 자격 기준이 되는 철거 예정 주택의 소유 시점을 ‘사업 시행 인가일’에서 ‘주민공고 열람일’로 앞당겼다. ‘공고’가 나기 전이니 이런 입주권을 노린 의도적 매매가 이뤄지기 힘들 것이라 본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시프트 특별공급 대상자가 되기 위해 철거 예정 주택을 매입하는 사례는 끊이지 않는다. 한편에선 “유일한 재산인 집을 철거해놓고 임대주택만 주는 건 명백한 재산권 침해”라며 임대주택이나 특별분양권 중에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취지의 규칙 개정 요구(전철수 서울시의원)도 꾸준히 제기된다. 투기꾼이 아닌 재산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인정받지 못하는 이들을 배려해야 한다는 것이지만, 현실에선 철거민들을 위해 만들어진 제도에 철거민 아닌 이들이 지대한 관심을 보이면서 철거민이 되기 위해 애쓰는 형국이 펼쳐진다. 심지어 업자들은 “시프트에 입주한 뒤 세이브된(절약한) 종잣돈으로 다양한 재테크를 이용하는 분들이 많이 늘었다”고 홍보한다. 무주택자여야 할 시프트 입주자에게 부동산을 이용한 돈 굴리기를 권한다.

“소득, 자동차, 부동산(토지) 아무것도 상관 없어요. 주민등록에 등재된 사람이 주택을 보유하지만 않으면 됩니다. 한데 그걸 보유하지 않아도 부동산 투자할 수 있는 방법은 무궁무진하거든요. 무주택이기 때문에 받는 혜택도 많고요.”

주택공급 교란행위

철거민을 위해 만든 제도를 철거민 아닌 자가 이용해 혜택을 보려 한다면 제도를 악용하는 것이다. 서울시 주택정책과 관계자는 “철거 예정 가옥주에게 시프트 특별공급 입주권을 주는 것은 철거민의 주거안정을 위한 차원”이라며 “제도를 악의적으로 이용한 거래는 주택공급 교란행위로 보아 경찰에 수사의뢰하고 있다”고 했다.

시로 접수된 피해 사례를 보면, 중개사들은 철거 예정 가옥을 타인 명의로 미리 사두었다가 시프트 특별공급 입주권을 받으려는 이들에게 되파는데, 이때 수수료와 별도로 수천만원의 매매차익을 남긴다. 게다가 철거될 집으로 소개받아 매입한 집이라고 전부 철거되는 것도 아니다. 시프트 입주권을 받기 위해선 주민열람 공고일 이전에 집을 매입해야 하는데, 이 시점은 엄밀히 말해 사업 시행 자체가 공식화되지 않은 때이기 때문이다. ‘철거민이 되는 일’이 100% 보장되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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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개업자들은 통상 공개돼 있는 각 구청 예산서나 지구단위계획에 포함된 도시계획 사업안, 구청장 같은 권위 있는 책임자들 입을 통해 알려진 사업 일정 등을 토대로 철거 주택을 점찍는다. 하지만 공고가 나지 않는 이상 원론적으론 해당 사업이 어찌될지 아무도 알 수 없다. 실제 도시계획 사업지로 예정되더라도 10년 넘게 사업이 진행되지 않아 장기 미집행으로 해제된 경우도 적지 않다. 이런 경우 중개업자는 “책임지고 다시 되팔아 준다”고 하지만, 중개업자에게 준 수수료나 돈을 빌려 철거주택을 매입한 경우 수년 동안 치른 이자 같은 각종 비용은 집을 되판 금액만으론 보전받기 어렵다.

설사 철거민이 되고 입주권을 받았다 해도 업자들 광고처럼 원하는 지역의 단지에 마음대로 들어가기도 쉽지 않다. 특별공급 입주권을 받게 되면 6개월 이내에 입주 단지를 선택해야 하는데, 이미 살고 있는 이들이 퇴거해야만 공가(빈집)가 생기기 때문이다. 원하는 단지의 공가가 기간 내에 나온다는 보장이 없는 것이다. 게다가 입주권은 6개월을 넘기면 아예 사라진다. 이 과정을 거치는 이들의 입장에선 중개업자의 말만 믿고 몇년 동안 여러 불확실한 상황을 넘나들어야 한다. 그 와중에 중개업자는 많게는 수천만원에 달하는 수수료와 매매차익을 챙긴다.

시프트 10년의 명암

오세훈의 서울시는 시프트 도입 당시 “집은 ‘사는 것’이 아니라 ‘사는 곳’”이라며 대대적 홍보를 했다. 주변 시세의 80% 이하 보증금만으로 최장 20년까지 거주가 가능한 파격적 조건 덕에 10년이 지난 지금도 무주택 서민들 사이에선 인기가 높다. 하지만 2억원대 보증금의 중산층용 아파트를 서울시가 세금을 들여 임대주택으로 공급하는 것이 타당한가라는 문제 제기는 처음부터 있어왔다. 정작 저소득층이나 주거 취약계층을 위한 공공임대주택은 충분히 공급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중산층의 주거 여건 역시 녹록지 않은 우리의 주거 현실 덕(?)에 시프트는 여전히 저렴하고 장기 거주가 가능한 ‘로또 전세‘라 불린다. 최근엔 강남이나 목동 같은 ‘금싸라기’ 땅에도 시프트가 들어섰다. 2015년 강남구 대치동과 역삼동, 서초구 반포동, 양천구 목동 등지에 1703가구가 공급됐다. 지난해 말 현재 서울의 3만69가구가 이 ‘로또 시프트’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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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급은 충분치 않고 수요는 몰리다 보니 시프트 입주를 위한 소득과 자산 요건은 점차 까다로워졌다. 주로 소득이 관건이다. 전용면적 50㎡ 미만은 가구 구성원 전체의 소득이 도시근로자 가구당 월 평균소득(3인 이하 가구 481만6665원) 이하여야 한다. 60㎡ 이하는 여기에 청약저축 가입기간 2년이란 조건이 추가된다. 85㎡ 이하는 소득 기준이 120% 이하로 늘고 85㎡를 넘으면 소득 기준이 150% 이하가 된다. 여기에 부동산(토지)과 자동차 보유 기준(2450만원 이하)이 더해지고 올해부턴 금융자산 기준도 추가됐다. 시프트에 입주했다 해도 사는 동안 2년마다 재계약을 통해 이런 조건을 재확인한다. 소득 등이 기준을 넘기면 퇴거해야 한다.

시프트가 ‘중산층 주거안정’이란 정책 목표에 따라 설계되다 보니 일부 지역에선 이상한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어쨌든 공공임대아파트이니 무주택자이면서 소득이 일정 수준 이하여야 한다는 식의 자격 제한을 뒀는데, 이런 자격을 갖춘 이들은 정작 ‘중산층’ 수준의 전세 보증금을 구하지 못하는 것이다. 최근 몇년 사이 전세 시세가 매매가에 육박할 만큼 오르다 보니 이런 상황은 더 심각해졌다.

강남 등지에선 입주자를 구하지 못해 장기간 비어 있는 시프트가 발생하기도 했다. 최근 공급된 아크로 리버파크 반포(59㎡), 래미안 신반포 자이(59㎡)의 전세 보증금은 각각 6억7600만원, 6억2480만원이었다. 입주가 시작된 지 반년이 넘게 지났지만 80여가구 중 80%가 비었다.

시프트 입주를 위한 소득 기준을 만족시키는 이들 중 누군가의 도움 없이 이런 보증금을 구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2020년까지 3조원가량의 부채를 줄여야 하는 서울주택도시공사는 최근 전용면적 85㎡ 이상인 시프트 2431가구를 리츠(부동산투자신탁)를 통해 매각했다. 철거민이 되어 시프트에 입주하려는 이들의 기회도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주거복지를 허하라

시프트를 두고 일어나는 일종의 사기행위들이 수년째 버젓이 일고 있는 건 우리의 어두운 주거 현실이 빚은 씁쓸한 초상 탓이다. ‘장미 대선’을 앞둔 후보들의 공약도 서민 주거안정과 세입자 보호 등 주거복지 쪽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만 벌써부터 “부동산 시장에 악재로 작용할 것”이란 반발이 여기저기서 나온다. 우리 사회의 강고한 부동산 카르텔이 다시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김정호 한국개발연구원 교수(국제정책대학원)는 최근 <부동산 포커스>(105호) 기고글에서 “2007~2015년 국내총생산(GDP) 대비 피고용인 보수의 비율은 연평균 43.6%였다. 바꿔 말하면 56% 이상이 비근로소득이며, 이 중 절반인 370조원가량은 부동산 매입차액과 임대소득, 즉 불로소득이었다”고 분석했다. 그는 “이렇다 보니 모든 국민이 부동산에 혈안이 되는 것이다. 부동산 보유만이 경제적·사회적 안정을 보장한다고 믿게 된다. 역대 정부는 일자리와 경제 성장을 빌미로 부동산 경기를 부추겨왔고 이 과정에서 집값이 치솟고 가계부채가 눈덩이처럼 늘었다”고 비판했다.

시프트에 입주하라며 유혹하는 중개사는 말한다. “서울에서 1억원대 돈으로 구할 있는 전세 아파트는 장기전세주택 아니면 변두리 지역의 20년 이상 된 10평대 아파트뿐입니다. 어떻게 하실래요?” 오세훈의 서울시가 시프트를 세상에 내놓으며 유행시킨 홍보문구는 1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언제쯤 한국에선 집이 ‘사는 것’이 아니라 ‘사는 곳’이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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