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준 입국 막는다고 '국방의 의무'가 신성해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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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한국 정부는 병역의무에서 벗어나기 위해 국적을 포기한 가수 유승준의 입국을 금지했다. 그로부터 13년이 지난 2015년 유승준은 소송을 냈다. 지난 2월 항소심 법원은 유승준의 입국금지가 정당하다고 판결했다. 유승준의 ‘죄’가 무엇이기에 그토록 기나긴 ‘형벌’을 받고 있는 것일까. 법원은 어떤 논리로 15년째 계속되는 사실상의 ‘형벌’을 지지했을까.

“공공의 안전(public-safety)을 해할 염려가 있다.”

2002년 2월 대한민국 법무부는 가수 유승준(미국이름 스티브 승준 유)의 입국을 금지했다. 유승준은 2002년 1월 한국 국적 대신 미국 시민권을 얻어 “사실상 병역의무에서 면탈(벗어남)”했는데, 그가 입국해 연예활동을 하면 “국군 장병들 사기가 저하되고 청소년들이 병역의무를 경시하게 된다”는 게 병무청의 입국금지 요청 이유였다. 법무부는 “대한민국의 이익이나 공공의 안전, 사회질서를 해할 염려가 있는 외국인은 입국을 금지할 수 있다”는 출입국관리법 11조를 근거로 삼았다.

지난해 9월과 올해 2월 한국의 법원이 판결을 내놨다. 1·2심 모두 15년 동안 유지돼 왔고 앞으로도 무기한 효력이 있는 ‘유승준 입국금지’가 정당하다고 판결했다. 소송은 지난 3월14일 대법원으로 넘어갔다.

항소심 판결이 나오던 그때, 유승준이 사는 미국에선 ‘반 이민·난민 행정명령’을 법원이 효력 정지시키고 있었다. 이슬람 7개국 난민의 입국을 금지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하며 도널드 트럼프 정부가 밝힌 이유도 “공공의 안전”이었다. 무슬림 국가 국민들의 입국을 막아 “미국인과 미국의 이익, 공공의 안전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유승준이 입국금지된 이후 한국사회에선 그를 앞세워 국방의 의무와 징병제, 국적과 애국, 유명인과 사회적 책무 등을 둘러싼 오랜 격론이 펼쳐졌다. 입국금지 14·15년째 해에 내려진 법원의 판결은 그 시간을 어떻게 반영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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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준이 낸 ‘사증 발급 거부 취소소송’을 다룬 법원은 △2002년 국적을 포기한 목적이 병역 기피였는지 △입국금지 조치가 적절했는지 △기한 없는 입국금지 조치가 과했는지 △입국금지 조치로 공익을 달성했는지 △그 공익이 유승준의 권리를 침해했는지 등을 따졌다. 결론은 “병역의무를 기피하기 위해 미국 시민권을 취득했고, 이런 유승준이 입국하면 장병들 사기를 떨어뜨리고 병역의무 기피 풍조를 낳을 수 있기 때문에 입국금지 조치는 적절했다”였다.

유승준 쪽은 2015년 10월 제기한 소송에서 입국금지 조치의 적절성을 “현재 시점”에서 판단해주길 바랐다. 설령 병역기피 목적의 국적 상실이었고 입국금지 조치가 당시로선 ‘최선’이었다 하더라도 13년(당시 기준) 이상이 지난 지금까지 입국을 못하게 막는 건 과하다는 논리였다. 유승준의 변호인은 항소이유서에 “현재 시점에서도 과거의 입국금지 조치를 유지할 실익이 있는지 따져야 한다. 2002년 2월 기간의 제한 없이 내려진 입국금지 조치가 2015년 9월을 기준으로 더 이상 유지할 이유가 남아 있지 않다고 판단된다면 위법하다”고 주장했다.

1심 판결 대부분을 그대로 받아들인 항소심 법원은 “당시엔 기간을 특정하지 않았던 필요성이 인정된다”며 유승준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당시 유승준이 한 행동의 “사회적 영향과 충격을 감안할 때” 무기한 출국금지 조치를 받을 만했고, 출국금지 조치가 당시 기준으로 문제가 없다면 당연히 지금도 문제가 없다는 논리다.

1·2심 법원의 판결문은 ‘유승준이기 때문에’ 유독 단호하게 쓰인 듯하다. 유승준은 자신을 제외하면 수많은 국적포기자 중 병역 면탈을 이유로 입국금지 조치된 사례가 없다는 점을 강조했는데, 법원은 ‘그들과 너는 죄질이 다르다’는 논리로 이를 강하게 배척한다.

법원은 “탈법적인 방법으로 병역의무를 기피하였음에도 자숙하지 아니하고 국적상실 신고를 한 바로 다음날 재외동포 자격의 사증 발급을 신청했다는 점”을 형평성이 어긋나지 않는 이유로 제시했다. 법원은 “(수많은 국적포기자들은) 유승준의 입국금지 조치 이후의 사례에 불과하고, 이들이 유승준처럼 탈법적인 방법으로 국적을 포기했다는 사정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유도 들었다. ‘입국금지 조치 이후 국적을 포기한 사람들과 비교해 차별이 존재한다’는 유승준의 문제 제기에 ‘(너만큼 그들의 죄질이 나쁘다는) 증거를 대라’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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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준이 주장하는 “고향을 방문할 수 있는 자유”와 “병역의무를 부담하는 국민들의 의지가 약화되는 것을 방지함으로써 얻는 공익”은 비교 대상 자체가 될 수 없다는 것이 법원의 판단이었다. 더군다나 유승준은 “외국인”이었다. “기본권 주체성이 인정되지 않는 외국인”이자 “굳이 한국에 입국하지 않더라도 한국 언론의 해외지사, 타국 언론과의 기자회견 등을 통해 얼마든지 진실을 해명할 기회를 가질 수 있는 외국인”이었다. 법원은 14~15년 전의 행정적 판단을 법의 용어로 되풀이했다.

유승준의 군입대에 대한 관심이 커지기 시작한 건 2001년 즈음이었다. 1976년 서울에서 태어나 1989년 미국으로 이주한 뒤, 1996년 한국 가요계에 데뷔한 유승준은 한국 군대에 갈 의무가 없었다. 미국 영주권자였기 때문이다. 병역법과 그 시행령에 따라 외국 영주권자는 국내 체류기간이 1년을 넘지 않으면 병역 의무를 지지 않아도 됐다. 그래서 영주권자 연예인들은 1년이 되기 전 출국해서 몇개월 쉬다 다시 돌아오는 방식으로 활동했다.

2001년 3월 병역법 시행령이 개정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새 시행령은 영주권자라도 ‘국내 체류기간이 1년 중 60일이 넘고 공연, 방송, 영화 출연, 경기 참가 등으로 돈을 벌 경우’ 병역의무를 부과할 수 있게 했다. 유승준을 비롯해 징집 대상자가 된 연예인들은 병무청의 고시가 발표된 뒤 60일 이내에 한국을 떠나야 했다. 군대에 가지 않으려면.

1990년대 말부터 시작된 병역비리 여파가 마무리되는 시점이었다. 검찰과 군 검찰은 합동수사반을 꾸려 대대적인 수사를 벌였지만 정작 핵심 사회지도층 인사들의 이름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나마 기소된 이들도 대부분 집행유예 선고에 그쳤다. 비판에 직면한 국방부는 병역비리를 근절하겠다며 여러 대안을 급히 내놨는데 그중엔 병역면제 대상 축소도 들어 있었다. 2001년 병역법 시행령 개정은 그 연장선이었다.

유승준은 2001년 3월 이후에도 국내에서 활동을 계속했다. 그해 10월 수핵탈출증(허리디스크)을 이유로 4급 공익근무요원 판정을 받았다. 그해 초 뮤직비디오를 촬영하다 허리부상을 입어 수술을 받은 게 원인이었다. 이 부상에 대해서도 “일부러 다쳤다”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병역의무와 관련된 연예인의 일거수일투족에 곱지 않은 시선이 쏠리던 때였다. 사람들은 유승준의 ‘확답’을 듣고 싶어했다. “당시 ‘군대 빠지려고 일부러 허리 다친 거 아니냐’는 질문을 계속 받았다. 그런 거 아니라고, 군대 갈 거라고 답하는 게 당연했다”(2015년 5월 <아프리카TV> 인터뷰). 이때 나온 보도들은 훗날 유승준을 ‘대국민 거짓말쟁이’로 낙인찍는 근거가 된다.

그로부터 1년도 채 되지 않은 2002년 1월 유승준은 미국 시민권을 얻고 한국 국적을 상실했다. 팬들은 물론이고 적지 않은 사람들이 충격을 받았다. ‘유승준 쇼크’(2002년 1월23일 <국민일보>)라고도 했다. 충격은 곧 분노로 바뀌었다. ‘군대 간다던 유승준, 미 시민권 취득 변심’(세계일보), ’“군대 안 가려 거짓말…배신감” 유승준 국적포기 비난 봇물’(국민일보) 등의 기사가 잇따랐다. 보건복지부는 금연홍보대사이던 그를 해촉했고, 유승준이 출연한 예능프로그램과 광고의 방송이 보류됐다. 미국 영주권을 포기하고 한국 군대에 자진입대한 ‘훌륭한 젊은이들’ 기사가 뒤따랐다.

병무청은 법무부에 입국금지 요청을 하기에 이른다. 여론의 분노와 국가기관의 제재는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한목소리로 유승준을 비난하던 언론들 중엔 법무부의 입국금지 결정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인 곳도 있었다. <문화일보>는 2002년 2월2일 사설에 “유씨를 국익이나 공공 안전을 해칠 인물로 판단한 것은 분명 과잉이다. (…) 책임을 소홀히 하거나 도덕적 지탄을 받는 연예인은 시장에서 퇴출당한다. 입국거부보다 이게 더 근본적 방법”이라고 썼다.

병무청 입장에서 유승준은 군입대의 ‘모범 사례’가 될 수 있었다. 그런 유승준이 소집통지서를 받은 뒤 국적을 바꿔버렸다. 유승준에게 ‘한방 먹은’ 병무청이 가만있긴 힘들었을지 모른다.

2014년 안규백 의원의 국정감사 자료를 보면, 국적을 포기하면서 병역의무에서 벗어난 사람은 한 해 평균 3400명에 이른다. 그중 유승준과 같은 이유로 입국이 금지된 외국인은 유승준이 유일하다. 병무청은 “병역을 기피할 (나쁜) 목적으로 국적을 상실했기 때문”이라고 입국금지 조치의 배경을 설명하지만 ‘왜 유승준만?’이라는 질문엔 15년째 납득할 만한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국적 포기자들의 구체적인 사정까지 일일이 조사하지 않기 때문에 알 수 없다”고만 할 뿐이다.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은 병무청의 이런 태도를 “국가의 횡포”라고 지적했다. 오 사무국장은 “국적법이 국적 선택의 자유를 인정하고, 국제인권규약에도 국적 취득의 자유가 인정된다. 우리 헌법은 거주·이전의 자유라는 기본적 인권을 허용하고 있다. 이렇게 국가가 나서 잡도리를 해야 국방의 의무가 신성해지는지 묻고 싶다”고 말했다.

유승준을 대리하는 임상혁 변호사는 “유씨는 한국에 와서 연예활동을 할 계획도 없으며 ‘정상적인’ 활동이 가능하리라고 예상하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고의 발치 혐의로 기소됐다 무죄 판결이 났지만 공개적인 활동을 못하고 있는 가수 엠씨(MC)몽을 보면 임 변호사의 말에도 일리가 있다. 그런 유승준의 입국을 그토록 막는 병무청의 속뜻은 무엇일까. 입법·사법·행정 3부가 예외 없이 나서 유승준을 단죄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유승준이 입국하면 정말 “국군 장병들의 사기가 떨어지고 청소년들이 병역의무를 경시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할까.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국립대 교수는 책 <당신들의 대한민국 02>에서 “(유승준은) 가시적으로 병역을 면하게 된데다 ‘우리’의 울타리를 벗어나 ‘남’이 됨으로써 ‘우리’의 집단주의적 감정을 건드려… 최적의 희생양이 되고 만 셈”이라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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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개월 안팎의 ‘잃어버린 시간’(군복무)을 경험하고 지켜본 대다수 한국인들은 면제를 받든 기피를 했든 군대를 가지 않은 사람들에게 분노하고 괘씸하게 여긴다. 유승준은 그 분노를 투영할 수 있는 ‘공격 가능한 대상’으로 선택됐다는 게 박 교수의 설명이다. 그런 유승준을 “왕따시켜봐야 국민개병제(국민 모두에게 병역을 부과하는 제도)로 인한 심각한 문제들-군 안에서의 인권 유린, 장기 복무로 인한 고학력자의 수학 능력 저하, 지배층의 고질적 병역기피 문화 등-이 해결되지 않는”데도 말이다.

대신 ‘유승준 시범 케이스’의 학습 효과는 톡톡히 발휘되고 있다. 그의 사례는 권력층 자녀들의 병역비리와 화학작용하며 ‘군대 가지 않은 사람=절대악’이라는 공식으로 보수·진보를 가리지 않고 파고들었다. 이재명 성남시장은 2015년 5월 자신의 트위터에 유승준을 “국민의 의무를 피하기 위해 조국을 버린 자”로 칭하며 “왜 우리가 외국인인 그대에게 특혜를 주고 상대적 박탈감에 상처받아야 하냐”고 적었다. 정의당 대선후보 심상정 의원은 지난 3월27일 <서울신문>과 한 인터뷰에서 “집권하면 병역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분은 장관으로 임명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병역을 회피했든 질병 등으로 면제받았든 구별하지 않겠다고 했다.

백승덕 징병제 연구가는 “지금도 병무청, 나아가 정부 또는 국가는 제2, 제3의 유승준을 찾아 ‘주홍글씨’를 박으려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인터넷 신상 공개를 예로 들며 “병사들의 인권을 보장하기 위한 실효성 있는 대책과 군필자에 대한 현실적인 보상안을 마련하는 대신 여성들의 권리를 빼앗아 남성들에게 제공하는 군가산점제 같은 정책들을 내놓는 게 한국 군대의 현실”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