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가 알려주는 소설 쓰기에서 배우는 인생의 지혜 6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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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히 말하면 '좋은 이야기를 쓰는 비결'에서 배우는 인생의 지혜라고 할 수 있다. 소설가 김연수는 자신이 직접 '좋은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 고민하는 과정에서 배운 몇 가지 마음가짐을 소설을 쓰고자 하는 이들을 위해 풀었는데, 의외로 이것이 소위 '인생의 지혜'와 무척이나 겹치는 부분이 많다. 아마 누군가가 가진 인생의 굴곡을 표현하고자 할 때 '소설 같은'이란 수식어를 붙이는 것도 이런 공통점 때문이리라. 그 중 6가지를 가려 뽑아보았다. 소설보다도, 자신의 인생을 '좋은 이야기'로 만들기 위한 조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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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인용문은 '소설가의 일'(김연수 저)에서 발췌.

1. 재능보단 '안 하곤 못 배기는' 성질이 당신을 만들어낸다.

"재능은 당신을 위해서 대신 소설을 써주지 않는다. 그건 가짜 소설기계이니까...재능 따위는 그만 떠들고...자신을 소설기계로 만들어보기 바란다...사랑이란 재능을 확인한 뒤에야 사랑에 빠지는 사람도 있을까? 그러니까 사랑에 빠진 젊은 소설가여, 매일 그걸 해라."

2. 성공이든 실패든 '일단 하지' 않으면 어떤 이야기도 시작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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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기는 동사와 결합할 때만 유효하다. 제아무리 사소하다고 해도 어떤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으면 그건 용기가 될 수 없다. 우리는 소설에 대해서 말하고 있으니까 이 용기라는 말을 '동기'로 바꿔보자...이야기를 밀고 가는 건 단순한 욕망이 아니라, 주인공의 성격과 과거의 경험이 집약된 동기, 말하자면 앞에서 말한, 평상시에는 장점이지만 하필이면 이 이야기 속에서는 단점인 복합적 성격이다. 장점이자 단점이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는 전기충격을 받는 두 번째 그룹의 개들을 보면 안다...그 개들은 해봐야 안 되는 일에 시간을 허비하느니 한 올의 눈썹마저 곱슬털이 될 때까지 전기충격을 견딜 참이다. 그런 무기력한 개들의 세상에서 갑자기 어느 개가 정신을 차리고 전기충격에서 벗어날 방법을 알아보자고 말한다. 그럼 다른 개들이 모두 말하겠지? 잰 왜 저래? 그 개가 왜 저런지 설명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소설은 시작된다. 그 질문에서 주인공의 성격과, 그런 성격을 가지게 된 백스토리는 만들어진다...그렇다면 이 삶도 마찬가지다. 이 삶이 멋진 이야기가 되려면 우리는 무기력에 젖은 세상에 맞서 그렇지 않다고 말해야만 한다. 단순히 다른 삶은 꿈꾸는 욕망만으로는 부족하다. 어던 행동을 해야만 한다. 불안을 떠안고 타자를 견디고 실패를 감수해야만 한다. 그러므로 지금 초고를 쓰기 위해 책상에 앉은 소설가에게 필요한 말은 더 많은 실패를 경험하자는 것이다."

3. 내가 사랑하는 것이 나를 고생시킨다.

"...마침내 나는 내가 가장 사랑하는 것이 나를 가장 힘들게 한다는 진리를 깨닫게 됐다. 나는 힘쓰는 일은 잘 하지 않는 사람이다. 내가 뭘 짊어지고 다니는 걸 본 사람 있는가? 오직 책, 내가 그 어던 물건보다도 사랑하는 책만을 나는 짊어지고 다닌다. 그러니 이 생고생은 피할 수 없는, 내가 누구인지 증명하는 생고생인 것이다...뒤집어서 말하자면, 이 생고생의 본질은 무엇인가? 그건 내가 누군가를 열렬하게 사랑한다는 뜻이다...이 모든 생고생이 내게 없는 것 때문에 생긴 것이 아니라 나의 장점, 내가 사랑하는 것들 때문에 생긴다는 걸 아는 순간, 구멍에 불과했던 단순한 욕망은 아름다운 고리의 모양을 지닌 복잡한 동기가 된다. 내가 사랑하는 것이 이 인생을 이끌 때, 이야기는 정교해지고 깊어진다."

4.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외치는 한 이야기는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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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쓰는 소설의 주인공이 '행동한다-좌절한다-곰곰이 생각한다-다시 행동한다.'를 반복하면서 점점 절정을 향해 나아간다면, 소설을 쓰는 나 역시 '쓴다-좌절한다-곰곰이 생각한다-다시 쓴다.'를 반복하면서 점점 소설 쓰기의 절정으로 올라가야만 하리라. 그러니까 먼저 소설가가 되라고 말한다면 순서가 잘못됐다. 소설가라면 플롯의 시작점이 행동이라는 걸 알아야만 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그는 자신의 삶이 '쓰기'에서 시작한다는 사실도 알 것이다. 그러니 먼저 소설가가 되어야만 소설을 쓸 수 있는 게 아니라 먼저 뭔가를 써야만 소설가가 될 수 있다. 나는 죽을 때까지 소설가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데, 그건 부처님이 말씀하신 원리에 따라 먼저 뭔가를 쓰고 좌절하고 다시 쓰고 또 좌절하고 그럼에도 다시 쓰는 그 과정을 반복하다가 죽고 싶다는 뜻이기도 하다."

5. 불가능해 보이는 걸 얻기 위해 노력한다고 당신이 꼭 그걸 이룰 수 있다는 법은 없다. 하지만 당신 스스로가 예전엔 '상상해본 적도 없었던' 존재가 될 수는 있다.

"자기에게 없는 것을 얻기 위해 투쟁할 때마다 이야기는 발생한다. 더 많은 걸, 더 대단한 걸 원하면 더 엄청난 방해물을 만날 것이고, 생고생(하는 이야기)은 어마어마해질 것이다. 바로 그게 내가 쓰고 싶고 또 읽고 싶은 이야기다. 그러니 나는 당연하게도...인간은 누구나 최대한의 자신을 꿈꿔야만 한다고 믿는다...가지지 못한 것들이 우리를 밀고 가면서 이야기를 만들어낸다는 이 사실을 이해하면서부터 나는 달라지기 시작했다. 더 많이 원하자고 생각했다...왜 안 되겠는가? 원하는 걸 가지거나, 가지지 못하거나, 그게 해피엔딩이든 새드엔딩이든 엔딩이 찾아오면 이야기는 완성된다. 이야기는 등장인물이 원하는 걸 얻는지 얻지 않는지에 대해선 신경 쓰지 않는다. 인생 역시 이야기라면 마찬가지리라. 이 인생은 나의 성공과 실패에는 관심이 없다. 대신에 얼마나 대단한 걸 원했는가, 그래서 얼마만큼 자신의 삶을 생생하게 느꼈으며 또 무엇을 배웠는가, 그래서 거기에는 어떤 이야기가 담겼는가, 다만 그런 질문만이 중요할 것이다. 인생이 소설과 크게 다르지 않다면, 이 이야기가 계속되기 위해서 우리는 끊임없이 이 질문에 대답해야만 하리라."

6. 좌절은 평범하고 악은 시시하다. 오직 좌절을 극복하는 이야기와 선을 행하는 모습만이 온전히 그 사람의 스토리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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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비전을 보면 확실히 이상한 독거노인들이 정말 많이 등장한다...대개 '세상이 이런 일이' 같은 프로그램에 나오는 노인들인데...놀라운 것은 그 기행 뒤에는 기나긴 백스토리가 있다는 점이다...노인들의...행동은 한때 그의 삶에 큰 좌절, 혹은 절망이 지나간 적이 있다는 사실을 뜻한다...좌절과 절망이 소설에서 왜 그렇게 중요하냐면, 이 감정은 이렇게 사람을 어떤 행동으로 이끌기 때문이다. 예컨대 인도에 가면 타지마할이 있다...극단적으로 말해서 모든 위대한 예술은 거기 한때 큰 좌절과 절망이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존재한다. 그래서 이런 결론이 나온다...인간이라면 일생에 한 번은 심하게 꺾인다. 좌절이라고 해도 좋고, 전락이라고 해도 좋다...하지만 진짜 이야기는 그 다음부터다. 모든 사람은 각자 나름의 방식으로 그 밑바닥에서 빠져 나온다...빠져나오는 방식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더 중요한 건 '그에게 타지마할은 무엇인가?'하는 질문이다...사람이 절망 속으로 빠져드는 과정은 개성을 가질 겨를이 없기 때문에 전락의 이야기는 동서고금 다 비슷하다. 그러므로 누구에게나 자신의 고통이 세상에서 가장 큰 것이겠지만, 그것만으로 소설을 쓸 때 그 이야기는 너무나 진부해진다는 것. 타지마할은 그 다음에 나온다...그러니까 남들과 다른 진부하지 않은 독특한 이야기를 쓰겠다면 전락의 이야기보다 회복의 이야기에 집중하는 게 더 좋을 것이다."

"...요점은 이것이다. 악행의 이야기만으로는 우리가 어떤 깊이도 담을 수 없다는 사실. 언젠가 대학생들의 작품을 심사하다가 이런 소설을 본 적이 있었다. 문창과 학생인데, 지적으로 도도한 척 구는 여자 교수를 찾아가서 칼로 배를 찔러 죽인다...좋다. 소설 쓰는 데 한나 아렌트까지 알 필요는 없다. 그렇지만 파괴적인 이야기는 선이 결여된 인간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기 때문에 서사적 논리도 없거나 미미하다는 사실만은 알고 있어야 한다. 우리가 사이코패스와 시선을 안 마주치려는 이유는 그자가 우리의 심연을 반영하기 때문이 아니라 한없이 저열하고 하찮은 인간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오직 살인하고 죽이기만 하는 소설을 우리가 싫어하는 까닭은 심성이 착해빠졌다거나 그게 인간의 추잡한 일면을 반영하기 때문이 아니라 서사적으로 완벽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세 살배기도 악을 저지를 수 있듯이 한 번도 제대로 글을 안 써본 사람이라도 살인하고 죽이기만 하는 소설은 쓸 수 있다. 서사적으로 봤을 때, 그런 이야기는 단순한 구조라 쓰기 쉽다. ...악(증오)의 이야기로는 진부한 이야기를 쓸 가능성이 많다. 지금 우리가 신문이나 방송으로 접하는 모든 범죄자들의 이야기가 진부하기 짝이 없듯이 말이다. 그들은 모두 카인의 후예일 뿐이다. 말하자면 카인 이야기의 표절자들이다. 하지만 선(사랑)의 이야기는 모두가 오리지널이다. 만약 소설을 쓰는데, 뭔가 파괴적인 이야기를 쓰고 있다면 좀 더 어렵고 인간적인 길을 선택하는 용기를 발휘하는 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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