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퍼스에 불편한 생각과 말로부터 '안전한 공간'을 만드는 것은 편협한 학생들을 만들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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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IVERSITY BERKELEY
Protesters rallying against police violence storm a lecture with PayPal co-founder Peter Thiel at the University of California at Berkeley campus in Berkeley, California December 10, 2014. More than 100 people marched peacefully for several hours before some began breaking windows, looting a cell phone store and spray painting graffiti. REUTERS/Noah Berger (UNITED STATES - Tags: CIVIL UNREST EDUCATION) | Noah Berger / Reu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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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와 시민권 운동가이자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고문이었던 밴 존스가 최근 시카고 대학교에서 연설했다. 주최측은 존스에게 학생들이 좋아하지 않는 생각과 연설자들로부터 보호해 달라는 요구가 커지고 있는 것에 대해 물었다.

밴 존스의 답변은 길게 인용할 가치가 있다. 대학 캠퍼스에서의 정치와 이념의 다양성, 젊은이들이 성장하고 인간으로서 성숙해지고, 언젠가 사회를 바꾸기 위해 도전을 받아야 할 필요에 대한 강력한 주장이었다. 존스는 이념적으로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것을 비난했다.

불편한 생각과 말에 노출되지 않고 모일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을 만들어 달라는 일부 대학생들의 요구에 대해 존스는 “안전한 공간에 대한 두 가지 생각이 있다.”라고 말했다. “한 가지 생각은 아주 좋고, 다른 한 가지는 정말 나쁘다.” 그는 좋은 생각은 “캠퍼스에서 육체적으로 안전한, 성희롱과 육체적 학대의 대상이 되지 않는 곳을 만들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다른 시각이 점점 커지고 있다 … 그건 끔찍한 시각이다. ‘나는 이념적으로 안전해야 한다, 감정적으로 안전해야 한다, 늘 기분이 좋아야만 한다. 누군가 내가 좋아하지 않는 말을 하면 그건 대학 행정부를 포함한 모두의 문제다.’라는 식이다.”

존스는 학생들을 특정 생각으로부터 격리하는 안전한 공간이 대학의 목적과는 다르다고 말했다.

다음과 같은 이유로 아주 나쁜 생각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당신이 사상적으로 안전하길 원하지 않는다. 감정적으로 안전하길 원하지 않는다. 나는 당신이 강해지길 바란다. 이건 다른 것이다. 나는 당신을 위해 정글에 길을 닦아주지 않을 것이다. 부츠를 신고 역경에 맞서는 방법을 배워라. 나는 체육관에서 웨이트를 낮춰주지 않을 것이다. 체육관에 가는 이유가 그것이다.

당신 마음에 들지 않는 말을 사람들이 하는 캠퍼스에서 살 수 없다고? [...] 당신은 현실 세계로 나가는 순간 무용해질 뿐 아니라 불쾌하고 위험해지는 진보주의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나는 당신이 캠퍼스에서 지내는 매일 불쾌해지길 바란다. 당신이 깊이 분개하고 불쾌해하고 언짢아하고, 응답하는 방법을 익히길 바란다.

밴 존스의 발언에 청중은 박수를 보냈다. 그러나 웰즐리 대학의 교수 6명은 밴 존스의 충고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최근 저명한 페미니스트 지식인이자 문화 비평가인 로라 킵니스 교수가 방문한 이후 웰즐리 커뮤니티에 보낸 이메일에서 그들은 ‘힘을 빼앗긴(disempowered) 집단들’이 불쾌하고 해롭다고 여기는 생각과 발언에서 보호될 수 있도록 연설자를 가리는 검열 위원회를 만들겠다고 제안했다. 이 교수들은 킵니스 등 ‘논란이 되고 불쾌한 믿음을 지닌 초빙 연설자들’을 부르면 대학에 ‘웰즐리의 학생, 직원, 교수진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독재 정권이 원치 않는 발언을 막을 때 쓰는 논리가 바로 이것이다. 안보, 대중의 안전, 사회의 조화라는 명목으로 검열을 정당화할 때 이런 이유를 댄다. 이건 탑 다운 식의 검열이다. 하지만 반대로 바텀 업으로 이루어지는 검열도 있다.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의견을 지닌 연설자들을 배제하고, 초대를 취소하고, 입을 막는 학생들의 경우이다. 웰즐리 교수들의 검열 요구가 킵니스의 검열 의식 주간 연설에 대한 발언에 대한 반응으로 나왔다는 건 대단한 아이러니다. 그리고 엘리트 대학교의 교수들이 힘을 빼앗긴 사람들을 괴롭히는 것과 주장을 펼치는 것을 구분하지 못한다니 당황스럽다. 웰즐리 졸업생 알렉시스 장은 보스턴 헤럴드 논평에서 교수들을 비판했다.

이것은 웰즐리의 학생들은 자신들이 동의하지 않는 주장을 반박하는데 마음을 쓸 필요가 없다는 메시지이다. 그 어떤 교육기관이 내놓았다 해도 충격적인 메시지다.

웰즐리 졸업생으로서 나는 이것이 우려된다. 의견 불일치가 없는 캠퍼스란 어떤 곳일까? 웰즐리에 무제한의 표현과 대화의 자유가 없다면, 어떻게 여성 지도자들이 통설에 도전하고 세계에서 성공을 거두게 할 수 있겠는가? 대학 측 발표 내용 그대로, ‘낯선 견해와 경험을 직접 겪고 탐구하는 것보다 지적, 사회적 발달에 더 도움이 되는 것은 없다.’

2015년에 오바마는 아이오와 주 디모인의 고등학생들에게 연설하며, 힘을 빼앗긴 집단에 속해 있으며 싱글 맘 밑에서 자라는 학생이었던 자신의 경험을 말했다. 오바마는 대학 캠퍼스에 다양한 정체성이 있어야 한다는 걸 강조했다.

내가 말했듯, 대학의 목표는 그저 기술을 전달하는 게 아니다. 여러분의 지평을 넓히고, 더 나은 시민으로 만들고, 정보 평가를 돕고, 세상으로 진출하는 것을 돕고, 더 창조적이 되게 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여러 생각들이 제시되고 충돌하는 곳, 사람들이 토론하는 곳, 상대의 이론을 시험하는 곳, 그리고 시간이 흐름에 따라 서로에게서 배우는 곳을 만들어야 한다. 자신의 좁은 시각에서 벗어나 넓은 시각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내가 대학에 들어갔더니 갑자기 나와는 전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다. 내가 어떤 일에 대해 의견을 가지고 있을 경우, 그들은 나를 보며 그건 멍청한 생각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들은 자기가 세상을 어떻게 보는지 설명했다. 정치적 감각이 다를 때도 있었다. 빈곤, 인종에 대해 다른 시각을 가지고 있거나, 그들의 시각을 보면 내가 화가 날 때도 있었다. 하지만 나와 생각이 다르고 배경이 다른 사람들과 교류할 수 있는 공간이 있기 때문에 나는 내 스스로 상정하고 있었던 걸 시험에 들게 할 수 있었다. 가끔은 내가 생각을 바꿀 때도 있었다. 때로는 내가 너무 편협했다는 걸 깨닫기도 했다. 내가 이 점을 고려하지 못했구나. 내가 이 사람의 시각을 고려해야겠구나.

로라 킵니스는 노스웨스턴 대학교에서 영화 제작을 가르치는 교수이며, 다양한 주제에 대한 책 5권을 썼다. 2년 전에는 캠퍼스에서의 ‘성적 편집증’을 비판하는 에세이를 고등교육 연대기에 실었다가 연방 예산의 지원을 받는 교육 프로그램에서 성차별을 금지하는 이른바 ‘타이틀 9’ 법에 관한 수사의 표적이 되었다. 대학원생 2명이 이 에세이가 학생들의 성적 비행 신고를 ‘사기 저하’시킨다며 고소했다. 72일에 걸친 수사 끝에 킵니스는 범법 행위를 하지 않았다는 결론이 났다. 그러나 킵니스가 자신이 어떤 취급을 받았는지 ‘내 타이틀 9 심문’이라는 에세이에서 공개적으로 밝힌 뒤였다.

타이틀 9는 1972년에 만들어진 법으로, 학생들을 성차별에서 보호하려는 법이지만 적용 범위가 확장되어 이제 교육 내용 감시에까지 적용된다. 개인 권리 교육 재단 등 언론 자유를 옹호하는 단체들은 이 법을 비판한다. 킵니스는 검열 의식 주간 행사의 일환으로 웰즐리에 초대 받아 곧 나올 저서 ‘원하지 않는 접근: 성적 편집증이 캠퍼스에 왔다 Unwanted Advances: Sexual Paranoia Comes to Campus’에 대해 이야기했다.

나는 딸과 함께 강연에 참석했다. 킵니스는 여성은 보호받아야 하고 남성은 감시받아야 한다는 생각에 기반한 새로운 가부장주의가 몰아가는 잘못된 페미니즘이 있다고 생각한다며 비판했다. 킵니스는 여성들에게 어디서나 공격이 도사리고 있다고 말하는 것만큼 여성들을 예속시키는 것은 없다고 말했다. 젊은 여성들이 자기 방어와 원하지 않는 접근을 거절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젊은이들을 위한 성교육이 시급하다.

킵니스는 대학 캠퍼스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 보다 광범위한 문화적 변화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내 세대는 섹스를 기쁨과 해방의 원천으로 보았다. 현재는 대학 행정부가 더 통제해야 하는 위험으로 보는 사람들이 많다. 이것은 우리 자신의 삶을 스스로 통제하는 대신 엄청난 권력을 고융주와 행정부에 넘기는 것을 의미한다. 이걸 페미니즘이라고 부른다면 페미니즘은 망가진 것이다.”

킵니스의 강연에 대한 반응은 좋았다. 관객은 30명 정도로 많지 않았다. 학생, 교수, 웰즐리 대학과 관련이 없는 외부 인사들이었다. 대부분의 질문들은 강연 내용에 대한 큰 반대 없이, 내용을 명확히 하기 위한 질문이었다. 강제로 참석한 사람은 없었다.

킵니스에게 여학생 두 명이 이의를 제기했다. 한 명은 행정적 규제와 성범죄 반대 운동이 자신의 성적 해방에 기여했다고 설명했다. 자신의 권리를 잘 알게 되자 성적 관계에서 더 큰 힘을 얻었다고 했다. 다른 학생은 캠퍼스의 성적 편집증에 대한 킵니스의 논문에 반대하며, 성폭력 사건이 줄었다는 통계를 언급했다. 자신의 가까운 친구들 대다수는 오래 알고 지낸 남자 친구들에게 성폭력을 당했으며, 자신의 의지에 반해 섹스를 했지만 법적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의를 강하게 표현했지만 적대감은 없었다. 높은 수준의 의견 교환이었다.

킵니스의 강연과 뒤이은 관객과의 대화는 정중했고 서로에게 기꺼이 귀를 기울이는 환경에서 이루어졌다. 킵니스는 캠퍼스에서의 성범죄에 대한 논란의 핵심적 딜레마들을 드러내주는 질문을 한 학생들을 칭찬했다. 킵니스가 강연 중에 ‘힘을 빼앗긴 사람들을 괴롭혔다’고 비난한 웰즐리의 교수 6명은 현실에 근거를 두고 있지 않다. 킵니스는 인터뷰에서 그 주장이 ‘우스꽝스럽다’고 했다.

“내 강연 이후 활기찬 대화가 이루어졌다. 나와 의견을 달리한 학생들을 포함해, 학생들은 똑똑했고 자신의 의견을 분명히 표현했다.”

웰즐리 교수 6명이 밝힌 입장이 낳을 수 있는 위험한 결과는 대학 캠퍼스를 벗어난 곳까지 미칠 수 있다. 2016년 대선은 여러 미국인들의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 뉴욕 대학교 도덕 심리학 교수이자 캠퍼스에서의 정치적 다양성을 지지하는 조너선 하이트는 이렇게 말한다.

미국인들은 오래 전부터 미국에 인종, 민족, 계급, 지지 정당에 따른 분열이 있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러나 2016년 대선은 우리 모두가 그 간극이 생각보다 크고 많고 위험할지 모른다는 걸 깨닫게 했다. 미국인들은 만나서 서로를 알아가는데 실패하고 있을 뿐 아니라, 점점 더 서로를 증오하게 되어가는 중이다. 특히 지지 정당에 따라 그렇다.

이념적으로 스스로 고립되는 일을 막기 위해, 일부 매체는 새로운 꼭지를 만들었다. 뉴욕 타임스는 좌파와 우파 필자의 읽을 만한 글들을 꾸준히 인용한다. 늘 보던 글들만 보는 게 아니라, 자신과는 다른 시각에도 노출될 수 있게 해주는 새로운 앱들이 개발되고 있다.

이념적 다양성을 포함한 여러 다양성은 대학 캠퍼스와 자유 민주주의에 중요하다. 관용을 길러주기 때문이다. 관용은 여러 모로 우리의 본능과는 정반대이다. 우리는 우리가 좋아하지 않는 가치, 의견, 생활 방식과 어울려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한다. 무언가를 반대한다는 목소리를 내는 것은 관용의 개념에 있어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한계는 있다. 관용이라는 개념은 우리가 의견이 다른 사람들에게 폭력, 겁주기, 위협, 금지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도 암시하고 있다. 이건 쉽지 않다. 고통스럽다. 유럽에서는 다른 믿음을 가진 커뮤니티들이 평화로운 공존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데 수백 년이 걸렸다.

이념적 다양성이 존재할 수 있다면 극단주의와 파괴적 양극화를 막는데도 도움이 된다. 하바드 법학 교수 캐스 선스타인은 ‘극단화: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어떻게 뭉치고 갈라지는가 Going to Extremes: How Like Minds Unite and Divide’라는 책을 썼다. 그는 집단 역학, 극단주의, 양극화를 다룬 사회 심리학 실험들을 분석했다. 그가 내린 결론은 사람들이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집단에 속하면 극단적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었다. 좌파와 우파의 사람들이 비슷한 사람들끼리만 이야기를 나누면 그들의 의견은 더 극단적이 되는 경향이 있었다. 이것은 특정 시기, 국가, 문화권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정치, 가족, 사업, 종교 커뮤니티, 학생 단체에서도 일어났다.

커뮤니티 내부의 의논이 개인과 사회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의미는 아니다. 눈에 띄지 않을 수도 있었던 입장을 키워내야 한다는 뜻이다. 시민권 운동과 LGBTQ 인권 운동 등 여러 사회 운동이 이런 경로를 거쳤다. 그러나 이런 소수 입장에 반대되는 시각이 가려지지 않도록 하고, 집단 안의 사람들과 의견이 다른 사람들이 서로의 관점을 주고받는 것은 중요하다.

선스타인의 주장은 로라 킵니스 같은 사람을 웰즐리에 초빙하는 것, 진보주의자 찰스 머레이를 미들베리 대학에 초대해 그를 좋아하지 않는 학생들을 만나게 하는 것의 가치를 설명해 준다. 우리와 의견이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의 중요성은 인간이라는 것의 근본에 닿아있다. 영국 영사가 티모시 가튼 애시는 언론의 자유에 대한 멋진 책에서 이렇게 표현했다.

표현의 자유가 있어야만 나는 당신이라는 경험이 어떤 것인지 이해할 수 있다. 우리의 차이를 명확히 표현해야만 우리는 우리가 어떻게 다르고, 왜 다른지를 뚜렷이 알 수 있다.

인간의 모든 차이에 대한 열린 마음은 정중함 만큼 중요하다. 내가 다른 사람들과 어떻게 다른지를 알지 못하면 내 자신을 진정 표현할 수가 없다. 우리 모두는 차이점을 느끼고 그에 대해 의식적/무의식적으로 반응한다. 이러한 반응과 감정을 탐구하지 않으면 우리가 깨닫지 못하는 숨겨진 편견을 파헤칠 수 없다. 만약 셰익스피어가 ‘리어왕’ 말미에 썼듯 ‘우리가 해야 할 말이 아니라 느끼는 대로의 말을 한다면’, 우리는 경험을 통해 어떤 것이 타인에게 상처를 주는지 알 수 있게 되며, 그에 따라 이웃으로 함께 살아가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를 스스로 발견할 수 있다.

허핑턴포스트US의 Safe Spaces On College Campuses Are Creating Intolerant Students를 번역, 편집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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