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회사가 시행하는 '포괄임금제'가 나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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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구로디지털단지에 있는 정보통신(IT)업체에서 개발자로 근무하는 ㄱ씨의 연봉계약서에는 매일 2시간의 연장근로를 하는 것으로 간주하는 ‘고정연장수당’이 포함돼 있다. 이른바 ‘포괄임금제’ 계약 형태다. 연장근로를 하든 그렇지 않든 매일 2시간의 수당을 받으니 나쁘지 않아 보이지만 실제 연장근로시간은 이보다 훨씬 많은 것이 ㄱ씨의 불만이다.

야근도 밤 9시 넘어서까지 이어지는 게 일쑤고 한 달에 두세번씩은 휴일에 나와서 일하기 때문이다. 이른바 ‘공짜야근’을 하고 있는 셈이다. ㄱ씨는 29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초과수당을 청구할 수 없다고 연봉계약서에 적혀있는데 일한 만큼 수당을 달라고 하기도 눈치 보이고, 노동청에 진정을 넣고 싶어도 신원이 밝혀질까 두렵다”고 말했다.

서울 가산디지털단지에 있는 한 제조업체에 생산직 노동자로 근무했던 ㄴ씨는 ‘무료노동’을 하다가 퇴직한 이후에야 노동청에 진정을 넣어 밀린 수당을 받을 수 있었다. 회사 관리자들은 ‘출근시간 30분 전에 교육을 할 테니 참석하라’는 문자를 수시로 보냈다. 교육·조회 역시 근로기준법상 노동시간에 포함되지만, 회사는 이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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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씨는 다른 퇴직자 8명과 함께 지난해 4월 진정을 넣었으며, 지난 1월에서야 노동청으로부터 ‘무료노동’ 30분에 대한 체불임금 지급명령을 받아냈다. 진정을 함께한 서울남부지역 노동자권리찾기 사업단 ‘노동자의 미래’ 이규철 조직위원장은 “노동자들과 상담하다 보면 사용자들은 근로기준법을 무시하고 고용노동부는 감독이 부실해 법이 휴짓조각이 되는 모습을 많이 봤다”며 “노동자들이 마땅히 받아야 할 임금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렇게 ‘공짜야근’ 등으로 못받은 연장근로수당도 체불임금에 포함된다. 지난해 한국의 체불임금이 1조4천억원으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지만 ‘공짜야근’에 따른 임금체불은 고용노동부가 근로감독을 통해 적발하거나 노동자 스스로 진정을 하기 전까지는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노동자들이 못받은 수당에 대한 전체적인 규모가 추정되지 않는다.

지난해 4월 이해욱 대림산업 부회장이 자신의 운전기사를 폭행한 뒤 고용부가 대림산업을 상대로 ‘징벌적’ 차원의 특별근로감독을 했는데, 이 과정에서 적발된 미지급 연장·야간·휴일근로수당만 2128명, 44억1500만원에 이르기도 했다. 이 부회장이 ‘사고’를 치지 않았다면 적발되지 않았을 테고, 노동자들은 1인당 약 207만원에 이르는 체불임금을 받아내지 못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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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짜야근’과 이를 가능하게 하는 포괄임금제 계약은 곧 장시간 노동으로 이어지는 문제도 있다.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가 실시한 게임산업종사자 노동환경 실태 설문조사를 보면, 포괄임금제가 만연한 정보통신업종의 경우 주 52시간 이상 근무한다고 답한 사람이 전체의 20%를 차지했고, 한달 휴일근무가 1번 이상인 이도 43%에 달했다.

김요한 민주노총 서울본부 노동법률지원센터 노무사는 “연장근로수당의 입법 취지는 추가된 시간에 대한 가산임금을 부과해 사용자가 법정근무시간만 일을 시킬 수 있도록 하게 한 것”이라며 “연장근로수당만 제대로 지급되면 장시간 노동도 상당 부분 극복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포괄임금제로 계약했다고 해서 추가 근무한 시간에 대해서 수당을 받을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사용자가 출퇴근 기록을 보관하게 하고 노동자에게 수당의 종류가 적힌 급여명세서를 반드시 교부하도록 입법화해야 한다고 노동계는 주장한다. ‘포괄임금제’를 법으로 금지하는 법안도 발의됐다. 지난 23일 이정미 정의당 의원이 발의한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보면 근로시간에 연장·근로·휴일근로시간을 구분하지 않은 근로계약, 즉 포괄임금제 계약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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