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모두를 놀라게 했던 '박근혜의 어록'(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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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잘하는 것과 말재주는 다른 것이다. 국가 지도자의 말은 말재주 수준이 아니고 사상의 표현이고 철학의 표현이다. 가치와 전략, 철학이 담긴 말을 쓸 줄 알아야 지도자가 되는 법이다.”

윤태영 전 청와대 대변인은 자신의 책 <대통령의 말하기>에서 “말은 한 사람이 지닌 사상의 표현이다. 사상이 빈곤하면 말도 빈곤하다. 결국 말은 지적능력의 표현”이라며 노무현 전 대통령이 강조했던 ‘말의 철학’을 소개했다.

31일 구속된 박근혜 전 대통령은 임기 내내 ‘독특한’ 발언으로 구설에 자주 올랐다. 대통령의 말은 단순한 ‘사실의 전달’이 아닌, 국정 철학과 방향을 국민들과 공유하고 설명하고 설득하는 도구다. 국민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짜임새있게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얘기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은 연설문을 읽어내리는 경우를 제외하곤, 즉석 연설이나 대화에선 언제나 ‘말’이 ‘말’을 낳았다. 자신만이 ‘완전무결한 존재’라는 인식에서 출발한 불통의 어법, 뒤죽박죽 어순과 그, 저 등의 대명사로 채워진 중언부언 화법, 구체적인 사실관계가 아닌 ‘혼’, ‘우주’, ‘에너지’ 등의 단어를 구사한 신비주의 화법이 대표적이다.

■ 뒤죽박죽·중언부언·유체이탈

정치권의 한 원로 인사는 박 전 대통령에 대해 “대통령은 되고 싶었지만, 하고 싶지는 않았던 사람”이라고 평했다. 권력의지는 누구보다 강했던 반면, 대통령직을 제대로 수행할 능력과 의지는 없었다는 평가다. 박 전 대통령은 임기 내내 무능·무책임·무기력 등 ‘3무 정부’라는 비판에 시달렸다. 박 전 대통령은 취임 전에는 침묵하거나 필요할 때만 ‘한 마디’를 던지는 방식을 선호했다. 전여옥 전 의원은 이를 ‘베이비 토크’(아기의 옹알거림)에 비유하기도 했다. “밑천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대전은요?’, ‘참 나쁜 대통령’ 등 단문 전술을 썼고 대부분의 경우는 침묵 전략을 고수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대통령 취임 뒤에는 수많은 연설과 회의, 간담회 등이 박 전 대통령을 압박했다. 박 전 대통령은 ‘돌발연설’은 거의 하지 않고 미리 준비된 연설문을 읽는 것을 선호했다. 박 전 대통령이 즉석에서 하는 말은 상황에 맞지 않거나 잘못된 비유, 비문, 공감력 부족, ‘유체이탈 화법’이라는 혹평을 받았다.

# 2015년 메르스 대응 민관합동 긴급점검회의

“그동안의 여러 문제점에 대해 국민의 불안함 속에서 어떻게 확실하게 대처방안을 마련할지 이런 것을 정부가 밝혀야 합니다.”

# 2015년 6월5일 메르스 관련 병원 환자 방문

“여기 계시다가 건강하게 나간다는 것은 다른 환자들도 우리가 최선을 다하면 된다는 의미죠?”

# 2014년 4월15일 세월호 참사 1주년 관련 회의

“간첩도 그렇게 국민이 대개 신고를 했듯이, 우리 국민들 모두가 정부부터 해가지고 안전을 같이 지키자는 그런 의식을 가지고, 신고 열심히 하고..”

# 2014년 5월16일 세월호 가족 면담

“여러분의 그 깊은 마음의 상처는 정말 세월이 해결할 수밖에 없는 정도로 깊은 거지만 그 트라우마나 이런 여러가지는 그런 진상 규명이 확실하게 되고 그것에 대해서 책임이 소재가 이렇게 돼서 그것이 하나하나 밝혀지면서 투명하게 처리가 됩니다. 그런데서부터 여러분들이 조금이라도 뭔가 상처를 위로받을 수 있다. 그것은 제가, 분명히 알겠습니다.”

# 2016년 정부 업무보고

“있는 규제를 일단 모두 물에 빠뜨려놓고 꼭 살려내야 할 규제만 살려두도록 전면 재검토하겠습니다.”

‘박근혜 번역기’가 필요하다는 비판이 항상 제기됐지만, 박 전 대통령의 ‘심복’으로 꼽히던 이정현 전 새누리당 대표는 자신의 책에서 “박 전 대표는 애매하게 얘기하는 법이 없었다. 늘 분명하고 명확하고 아주 쉬운 단어로 짧게 말한다. 이 말을 알아듣지 못한다면 한국어를 잘 모르는 사람이다”라고 추어올렸다.

■ 혼과 기운과 우주의 ‘하모니’

“간절하게 원하면 전 우주가 나서서 도와준다. 그래서 꿈이 이뤄진다. 그런 아름다운 꿈이 꼭 이뤄질 것으로 생각하고…”(2015년 5월5일 어린이날 행사)라던 박 전 대통령의 ‘신비로운’ 화법은 두고두고 패러디와 비아냥의 대상이 됐다. 최종희 ‘언어와생각 연구소’ 소장은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박 전 대통령의 어법이 사교의 교주였던 최태민씨에게서 영향을 받은 ‘영매 어법’이라고 표현했다. 영적·주술적 표현을 공식적인 석상에서 서슴없이 발언한 것을 두고 ‘최태민 사교의 영향’이라는 수군거림도 적잖았다.

# 2015년 3월19일, 무역투자진흥회의

“우리가 경제 재도약을 염원하고 어떻게든지 경제활성화를 해야 된다고 노력하고 있고 간절하게 기도하는 마음으로 염원하는데 그거에 대한 하늘의 응답이 바로 지금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것이 바로 메시지라고 우리가 정확하게 읽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2015년 5월12일, 국무회의 모두발언

“우리의 핵심 목표는, 올해 달성해야 할 것이 이것이다, 하고 정신을 차리고 나아가면 우리의 에너지를 분산시키는 것을 해낼 수 있다는 그런 마음을 가지셔야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 2015년 11월10일, 국무회의 모두발언

“자기 나라 역사를 모르면 혼이 없고, 잘못 배우면 혼이 비정상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생각하면 참으로 무서운 일”
박 전 대통령이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강행했던 2015년 10월, 박 전 대통령과 만났던 이종걸 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이후 페이스북에 “그 자리에서 박 대통령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말하자면 어떤 ‘귀기(鬼氣)’ 같은 것을 느꼈다”고 밝혔다.

# 2015년 10월22일 대통령-여야 대표·원내대표 5자회동

- 박 전 대통령 “기존의 역사 교과서가 ‘자학사관’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에 국정 교과서가 필요하다.”
- 이종걸 전 민주당 원내대표 “부끄러운 역사로 보이는 것이 어떤 부분이냐.”
- 박 전 대통령 “전체 책을 다 보면 그런 기운이 온다.”

이 전 원내대표는 “여야 대표회담이었다. 그리고 국정교과서는 가장 중요한 의제의 하나였다. 그런데 대통령의 입에서, 역술인 대표들이 모여서 신통력을 겨누는 자리에서나 할 법한 발언을 했다”고 꼬집었다. 전여옥 전 의원은 자신의 책 <오만과 무능>에서 박 전 대통령의 발언을 겨냥해 “이런 주술적인 표현이 판타지 영화 주인공도 아닌 대통령의 입에서 나온 것은 적절치 않다. 이상해도 한참 이상하고 기이하고 괴기스럽게 느껴진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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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통’ 군주의 언어

박 전 대통령은 자신의 ‘심기’에 어긋나는 상황이나 사람은 참지 못했다. 박 전 대통령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암살된 뒤 18년 동안 칩거하며 “당시 아버지의 가장 가까이 있던 사람들조차 싸늘하게 변해가는 현실은 나에게 적지않은 충격이었다”고 회상한 적도 있다. ‘배신’과 ‘의리’로 사람을 판단했고, 참을 수 없을 때는 ‘배신자’로 낙인찍어 내쳤다. 국회법 개정안을 야당과 합의한 유승민 전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대표적이다.

# 2015년 6월25일 국무회의 모두발언

“정치적으로 선거수단으로 삼아서 당선된 후에 신뢰를 어기는 배신의 정치는 결국 패권주의와 줄세우기 정치를 양산하는 것으로 반드시 선거에서 국민이 심판해주셔야 할 것”

박 전 대통령의 언어는 임기 후반부로 갈수록 독해졌다. ‘배신의 정치’를 포함해, “암덩어리”, “규제는 우리가 쳐부술 원수”, “규제들을 단두대에 올려 처리해야” 등 강렬한 표현을 즐겨썼다. 특히 자신이 밀어붙였던 노동관계법과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등 주요법안이 야당의 반대에 부딪히자 원색 비난에 나섰다.

# 2015년 11월10일 국무회의

“국민 여러분께서도 국회가 진정 민생을 위하고 국민과 직결된 문제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소신있게 일할 수 있도록 나서 주시고 앞으로 그렇게 국민을 위해서 진실한 사람들만이 선택받을 수 있도록 해주시기를 부탁드린다.”

# 2015년 11월24일 국무회의

“맨날 앉아서 립서비스만 하고, 경제 걱정만 하고, 민생이 어렵다면서 자기 할 일은 안 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위선이라고 생각한다.”

# 2016년 3월21일 수석비서관회의

“선거 기간 멈춰있는 3∼4개월 동안 국민을 위해 정치권과 국회가 아무 일도 못하고 오직 각자의 정치만 하고 있다면 그만큼 잃어버린 시간이 될 것이다.”

박 전 대통령의 끈질긴 국회 심판론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4·13 총선은 여당의 패배로 마무리됐다. 같은 해 9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드러나면서 박 전 대통령은 민주화 이후 처음으로 임기를 채우지 못한 대통령으로 남게됐다. 하지만 대통령은 탄핵 국면에서도 특유의 단순한 단어를 활용하며 자신의 무고를 줄곧 강조해왔다.

# 2017년 1월1일 청와대 출입기자 신년간담회

“(삼성합병 지시 의혹은) 완전히 엮은 것이다. 어디를 도와주라 한 것과는 제가 정말 확실하게 말씀드리는데 그 누구를 봐줄 생각, 이것은 손톱만큼도 없었고 제 머릿속에 아예 없었다. 어떤 결정을 내리든 간에 그것은 국가에 올바른 정책 판단이다, 그렇게 생각을 한다.”

# 2017년 1월 26일 <정규재TV> 인터뷰

“(특검이) 희한하게 경제공동체라는 말을 만들어 냈는데 엮어도 너무 어거지로 엮은 것”

"그동안 쭉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관련) 진행 과정을 추적해 보면 그렇게 좀 뭔가 오래 전부터 기획된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건 지금 뭔가 우발적으로 된 건 아니라는 느낌은 가지고 있다.”

박 전 대통령은 3월10일 헌법재판소의 파면선고 뒤에는 ‘침묵’으로 불만과 불복 의사를 표현했고, 청와대 관저에서 이틀을 더 머물다 3월12일 서울 삼성동 자택으로 돌아갔다. 대국민 사과나 책임 인정은 여전히 없었다.

# 2017년 3월12일 민경욱 자유한국당 의원 대독

“제게 주어졌던 대통령으로서의 소명을 끝까지 마무리하지 못해 죄송하게 생각한다. 저를 믿고 성원해주신 국민 여러분께 감사드린다. 이 모든 결과에 대해서는 제가 안고 가겠다. 시간이 걸리겠지만 진실은 반드시 밝혀진다고 믿고 있다.”

박 전 대통령은 3월21일, 파면 열흘 만에 받게 된 검찰 조사에서 “국민 여러분께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성실하게 조사 받겠습니다”라는 짤막한 메시지를 남겼고, 30일 오전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법원에 들어설 때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지도자의 말’을 이렇게 정의했다고 한다. “민주주의 핵심은 설득의 정치이다. 그래서 ‘말’은 민주정치에서 필수적이다.” 민주주의를 체득하지 못했던 박 전 대통령에게는 너무 어려운 주문이었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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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구속수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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