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로 60년대 '한강의 기적'은 박정희 덕택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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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K CHUNG HEE
A supporter of South Korea's president-elect Park Geun-Hye of the ruling New Frontier Party holds up a portrait of Park's father Park Chung-Hee, the country's former dictator, after the Park's victory speech in Seoul on December 20, 2012. South Korea elected its first female president on December 19, handing a slim but historic victory to conservative ruling party candidate Park Geun-Hye, daughter of the country's former military ruler. AFP PHOTO / CHOI WON SUK (Photo credit should read | AFP via Getty 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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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한국 경제의 도약, 이른바 '한강의 기적'은 독재 정치가 남긴 많은 폐단에도 불구하고 박정희 전 대통령을 지금까지도 추앙받게 만들고 있다. 비록 정치적 측면에서는 많은 과오를 남겼으나 경제적 측면에서는 대한민국을 빠르게 일으켜 세웠다는 것이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통상적인 평가다.

그러나 당시의 한국 경제의 고도성장은 박정희 정부의 정책이 아닌 미국의 지원 덕택이었다는 주장이 최근 제기됐다. 박근호 일본 시즈오카대 교수가 자신의 신간 '박정희 경제신화 해부'에서 주장한 것이다.

박근호 교수는 60년대 후반에 시작된 고도성장이 박정희 정부의 정책이 밀던 것이 아닌 산업 분야에서 시작됐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박정희 정부의 경제정책과 경제성장의 결과 사이에 인과관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말한다:

“경제개발계획의 목표와 실적 간에 격차가 크게 벌어지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정책방침과도 엇갈리는 경우가 허다하게 나타나는 등 경제정책과의 인과관계가 성립되지 않습니다. 예컨대 수출 전략상품이었던 피복류는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반면, 전략상품이 아니었던 내의류는 피복류의 2배에 가까운 수출실적을 달성하는 등 정부의 의도와는 반대되는 결과가 나왔어요. 제품의 국제경쟁력이 좋았던 게 아니라 미국이 물건을 사줬기 때문입니다.” (경향신문 3월 29일)

박 교수는 당시 수출촉진 정책을 펴고 있던 무수한 아시아 국가들 중 유독 한국만이 성과를 거둘 수 있던 것은 다름 아닌 미국의 정책 덕택이었다고 주장한다. 베트남전 이후 한국을 반공의 보루로 삼아 미국이 적극적으로 한국에 투자한 결과라는 게다.

그러나 기존의 자료 중에는 이러한 관점과 상반되는 시각의 것도 존재한다. 1976년 코리아게이트 스캔들로 인해 미국 의회의 소위원회에서 1978년 작성한 이른바 '프레이저 보고서'의 내용이 그렇다.

프레이저 보고서는 경제관계를 포함한 한미관계에 대해 포괄적으로 분석하고 있는데 보고서는 원조, 자문 등을 제공한 것 외에 한국의 경제개발에서 미국이 큰 역할을 하지 않았다고 분석하고 있다. 특히 70년대부터의 경제개발 과정에서는 미국의 자문도 없었으며 원조도 미미했다고 한다.

박정희 시절의 경제성장을 단 하나의 요인만이 견인했다고 주장하기란 무리다. 하지만 박근호 교수가 제기하는 관점이 이에 대한 논쟁을 보다 풍요롭게 할 수는 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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