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들! 섹스 앞에 '예스!'라고 외쳐도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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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ckie melfi

옛날 옛적에 외향적이고 에너지가 넘치는 어린 소녀가 있었다. 그 소녀는 부모님에게 사랑받으며 친밀한 가정에서 자랐다. 좋은 것들을 잔뜩 누렸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소녀의 몸의 내면과 외면에 육체적, 감정적 변화가 일어났다. 소녀는 키가 자랐고 몸이 커졌다. 어머니와 함께 첫 브라를 사러가는 중요한 경험을 하기도 했다. 새 ‘틴폼’ 트레이닝 브라를 하고 학교에 갔을 때 얼마나 자랑스러워 했던지!

소녀는 이 상징적 옷을 산지 얼마 지나지 않아 학교 도서관에서 다른 여자 아이들 수십 명과 함께 처음으로 성교육 영상을 보았다. 아이들은 스크린의 영상들을 보며 충격과 조절 안 되는 키득거림 사이를 오갔다.

그 소녀가 나였고, 나는 그때를 마치 어제처럼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여성으로서의 내 섹슈얼리티에 대해 정직하게 공유한 기억은 없다. 우리는 사춘기가 되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잘 알고 있었다. 가슴이 커질 것이고, 털이 나지 않을 것 같은 곳들에 털이 날 것이고, 자연은 우리가 앞으로 최소 40년간은 받게 될 선물을 줄 것이다! 우리 몸은 언젠가 자궁 깊은 곳에 아기를 품게 될 것이라고 배웠고, 어머니가 되기까지의 9개월 동안의 과정을 상당히 생생하게 들었다. 어머니가 되는 건 물론 결혼을 하고 난 다음이고, 결혼을 해야 우린 마침내 섹스를 할 수 있다고 배웠다.

학교가 내가 성인의 세계를 보아도 될 정도로 성숙하다고 생각한다는 것이 무척 짜릿하고 인상적이었지만, 성교육을 받으면서도 나는 학교에서 내게 알려주는 것 대부분이 별로 쓸모있다고 느껴지지는 않았다. 결혼 전까지 섹스를 하면 안 된다는 데 뭐. 물론 생리에 대해 알게 된 것은 쿨하다고 생각했고, 집에 오자마자 내 음모를 살폈지만, 이 ‘교육’의 다른 부분은 별로 와닿지 않았다. 소녀들은 처녀였고, 소년들에겐 다른 규칙이 적용된다는 걸 누구나 알고 있었다. 소녀들이 집에 있는 동안 소년들은 돌아다니며 씨를 뿌리지만, 누구에게 씨를 뿌리는 건지는 나는 몰랐다. 우리 소녀들은 전부 집에 앉아 왕자님만 기다리고 있어야 한다는데 말이다.

세세한 내용은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나는 그저 모든 소녀들이 배우는 중요한 단어를 사용해야 한다는 것밖에 몰랐다... “안 돼!” 내 섹슈얼리티를 실험하는 것에 대한 논의는 없었다. 젠장, 내가 배운 바에 따르면 내겐 섹슈얼리티가 없었다. 나는 내가 느끼는 성적 감정들을 무시하고 모른 척해야 했다. 스스로의 욕구에 굴복하면 처녀성 상실, 평판 추락 등 끔찍하고 인생이 뒤바뀌는 일이 생길 수 있었다. 최악은 결혼 전에 임신해서, 평생 내 죄를 지고 살아갈 사생아를 낳는 것이다. 내 세대에겐 이런 것들은 상당히 강력한 제지력이 있었다.

그러나 공포에 기반한 이런 전략들은 우리의 거친 호르몬에 맞설 수 없었다. 교사와 종교 지도자들이 성적인 행위를 하지 말라고 말리면서 어린 소녀였던 우리들을 보호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건 알지만, 그로 인해 자연스럽게 서로에게 자석처럼 끌리는 육체적이고 생생한 성적 매력에 대한 대비를 우리에게 시켜주지 못했다. 성적 탐구에 대한 대화와 격려가 없는 것이 여성들을 이런 덫에 가둔다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40대 말이 될 때까지 이 덫에서 탈출하지 못했고, 자유로운 스와핑을 시작하기 전까지는 내가 이런 덫에 갇혀있다는 것도 몰랐다.

성적이 되기로 한 선택은 내 인생에서 최근에 생긴 변화였다. 처음에는 아주 어려웠다. 섹스를 하고 싶어하는 여성이라니! 대단한 개념이다! 내가 섹스를 하고 싶어해도 괜찮다고 느끼는 게 어려웠다. 그리고 어쩌면 1명 이상의 파트너와! 70년대에 성인이 될 때는 큰힘을 얻었다. 나는 나보다 나이 많은 여성 친척들을 통해 여성 해방 운동을 접했고 성적 자유 운동에 대해 많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처녀가 왕자를 만난다는 건전한 이미지에 따라 양육되었다. 이 동화에는 흰 말뚝 울타리와 천사 같은 아기들이 등장했고, 이 모든 것은 남성의 성욕을 중심으로 하고 있었다. 누군가가 나의 섹슈얼리티에 대해 말했던 기억은 없다. 그 누구도 내게 와서 “너에게 파트너가 있든 없든 섹스는 네 삶의 중요한 부분이 될 거야.그러니까 너는 섹스를 실험해야 할 뿐 아니라 그 과정도 포용해야 해.”라고 말하지 않았다. 와! 여성이 섹슈얼리티를 포용하고 섹스를 하는 것이 완벽하게 정상적인 일이라는 말을 들었다면, 오늘날 정말 많은 여성들의 삶이 달라졌을 것이다.

나는 우리가 평등을 위한 싸움에서 정말 많은 것을 이루었다고 믿지만, 여성들에겐 아직도 처녀 이야기를 가르친다. 그래서 오늘날의 사회에서도 우리는 ‘소울메이트’를 만날 때까지 몸을 아끼고 몸 안에서 요동치는 호르몬을 무시하라고 배운다.

그러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우리의 몸이 보내는 메시지에 따라 행동하고 싶어하면 어떤 일이 생기나? 우리가 욕망하지만 엄격한 제한이 있는 특정 상황에서만 가능하다고 배운 행동을 하면 괜찮을 수 있을까? 이것 때문에 동의라는 주제가 곤란해진다. 수년간의 억압적 교육이 성적 자유를 방해하는 것이다. 여성은 ‘안 돼’라고 말하라고 배웠다. 그런데 섹스에 대해 ‘좋아’라고 말하며 괜찮다고 느낄 수 있을까?

여성들에게 섹스는 사회가 도덕적이라고 정한 상황이 아니면 잘못이라고 가르치지만 여성이 섹스를 원한다면 그때부터 상황이 곤란해진다. 여성이 반대되는 이 두 가지 힘에 맞서 어떻게 싸워야 하나? 내게 있어 첫 단계는 내 결정에 스스로 책임을 지는 것이었다. 당시 남자친구였던 지금의 남편과 스리섬을 하는데 처음 동의했을 때, 나는 좋든 나쁘든 결과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었기 때문에 나는 내 선택의 다른 면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별로 중요하지 않은 진전으로 들릴 수도 있지만, 내게 있어서는 힘, 회복력, 자신감이 달린 일이었다.

나는 똑바로 앉아서 존에게 응, 우리의 플레이 파트너를 만나고 싶어, 응, 이 판타지를 시험해 보고 싶어, 라고 말했던 걸 기억한다. 내가 어떤 생각이 들지, 어떤 느낌일지 직접 알아보고 싶었다. 나는 그 전에 공포 때문에 존과의 스리섬 데이트를 몇 번 취소한 적이 있었다. 어쩌면 존이 내가 얼마나 충직한지를 시험하는 건지도 몰라. 내가 승락하면 존이 나를 떠날지도 몰라. 아니면 반대로 내가 거절하면 떠날지도 몰라. 그렇지만 그 날 밤에 어떤 일인가가 일어났다. 내 안에서 무언가가 부러졌다. 나는 사고 패턴을 바꾸었다. 존이 떠날 테면 떠나라지. 그 순간 나는 내가 그걸 해보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응, 이라고 말하고 싶었다! 내 선택에 대한 책임을 졌을 뿐 아니라 포용했다.

그때서야 나는 성인이 된 이래 내내 이 덫에 갇혀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내 성적 탐구를 나쁜 것으로 보는 곳에 붙잡혀 있었다. 이와 같은 신조가 틀렸을 뿐 아니라 위험하다는 걸 이젠 안다. 자신의 섹슈얼리티의 주인이 되길 두려워했던, 그리고 지금도 두려워 다른 여성들은 얼마나 많을까? 몸은 자연스럽고 본능적인 반응을 느끼는데 섹스를 거부한 여성들은 얼마나 많을까? 내가 평생 배워왔던 범위를 넘어선 사람과 섹스를 하고 있다. 내가 원해서. 내가 원해서. 나는 방금 만난 남성과 섹스를 하고 싶었으니까. 그래, 말할 수 있다!

교훈은 이것이다. 당신의 선택의 결과가 당신 마음에 들든 아니든, 그 행동에서 무언가를 배워라. 무언가 배웠다면 성장하는 것이라는 사실에 기뻐하라! 스스로의 주인, 특히 자기 섹슈얼리티의 주인이 된다는 건 우리 여성들의 책임이다. 우리가 배웠던 이야기를 고쳐 쓰는 건 우리에게 달렸다. 우리의 우주, 우리의 모든 성적 접촉의 주인은 우리다. 우리의 힘을 포기해 버릴 때 우리는 피해자가 된다.

우리는 우리가 누군가와 섹스를 했다는 이유 만으로 ‘하자가 있는 상품’이 된다는 내러티브를 바꿔야 한다. 다음 세대에겐 성적인 안정을 갖도록 교육해야 한다. 우리가 가진 힘을 당당히 쥐는 것은 우리 여성들에게 달렸다. 섹스를 해도 괜찮다! 많이 해도 괜찮다! 더 이상 수치스러워하지 않아도 된다. 우리는 아름답고 대단하고 강력하다. 우리의 섹슈얼리티 때문만은 아니다. 우리가 자신에게 진실된 삶을 살기 때문이다.

허핑턴포스트US의 It’s OK To Say ‘Yes’ To Sex를 번역, 편집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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