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수의 메이크업 철학은 분명하다: "보는 사람이 아니라, 나 좋으라고 하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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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이승한의 술탄 오브 더 티브이 뷰티크리에이터 김기수

뜬금없이 고백 하나 하고 시작하자. 내가 처음으로 화장을 해본 건 중학교 2학년 때였다. 누나들과 함께 엄마 화장품을 훔쳐 바르며 하는 연지곤지 놀이 수준의 화장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사춘기가 남들보다 조금은 일찍 온 나는 거울을 볼 때마다 이렇다 할 특징 없이 너부데데한 내 얼굴에 대한 짜증을 금치 못했다. 작은 눈도 난리지만 숱 적은 눈썹은 난리도 아니었다. 결국 난 그 무렵 한창 시장에 등장하던 10대들을 겨냥한 파운데이션을 바르고, 갈색 눈썹연필로 듬성듬성한 눈썹의 틈을 메우기 시작했다. 사소한 터치 몇 번이 사람의 인상을 어떻게 바꾸는지 그건 오직 체험해본 사람만이 알고, 그 마법을 맛본 이들은 결코 거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눈썹을 그리는 것만으로도 자존감이 충만해진 나는 핏기가 없는 입술에 틴트를 바르고, 살이 넘쳐 흐르는 턱 주변에 음영을 넣어 윤곽을 깎는 터치까지 시도해보았다.

물론 그 화장은 보는 사람 말고 나만 좋으라고 했던 화장이었다. 그 시절이 아직 남자가 화장하는 게 이상한 일이라 여겨지던 시절이었다는 점을 빼더라도, 화장법을 코치해줄 만한 사람이 없었다는 점은 치명적인 단점이었다. 지금처럼 인터넷이 대중화된 시절도 아니었으니, 유튜브 튜토리얼 비디오 같은 게 있었을 리 만무하지 않았겠는가. 혼자 어설픈 솜씨로 한 화장은 누가 봐도 티가 심하게 나는 것이었고, 아무리 동네 유일의 사복 중학교를 다니는 학생이라 해도 눈에 띄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자존감이 차오르는 동안 나를 보는 사람들은 당혹감이 차오르는 이 동상이몽은, 친하게 지내던 동네 레코드점 사장님의 충고를 듣는 순간 끝이 났다. “네가 최근에 집안에 크고 작은 일들이 많아 심란한 건 알겠는데, 그렇다고 이렇게 막 나가면 안 돼.” 내 생애 화장과의 인연은 그게 마지막이었다.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고 있었더라면. 희극인 김기수가 SBS의 인터넷 동영상 플랫폼 ‘방언니’(방송국에 사는 언니들)에서 진행하는 뷰티 노하우 프로그램 '예살그살'(예쁘게 살래, 그냥 살래?)을 보고 있노라면, 내가 어린 시절 그리던 눈썹은 눈썹도 아니구나 하는 짙은 회한이 밀려온다. 눈썹 산을 따라 세 군데에 눈썹연필로 포인트를 찍고 연결을 한 다음, 눈썹이 자란 방향을 따라 그 안을 메워주고, 눈썹 솔로 문질러서 모양을 자연스럽게 잡아준 뒤, 컨실러를 브러시에 찍어 주변을 깔끔하게 정리해주는 디테일이란. 그 동영상을 다 보고 난 뒤 과거 내가 어떻게 눈썹을 그렸는지 떠올려 보면, 김기수의 앙칼진 잔소리가 귓전에서 자동으로 재생된다. “눈썹이 그게 뭐니? 똥손(솜씨가 영 좋지 못한 손)들은 이래서 안 돼. 송승헌이니?” 어쩐지. 레코드점 사장님이 내게 “막 나간다”는 표현을 괜히 썼던 게 아니었던 게다.

30년간 화장품 ‘덕후’로 살았다는 김기수가 매주 '예살그살'을 통해 아낌없이 퍼주는 뷰티 노하우는 나처럼 화장을 끊은 지 20년이 다 되어가는 사람이 봐도 이해가 쉬울 만큼 직관적이다. 뷰러로 속눈썹을 집어 올릴 때엔 결코 한번에 올려 직각으로 만드는 게 아니라 3단계로 나누어 집어 올려줘야 한다는 3.3.7 뷰러법이나, 립라인을 그리기 힘들 때에는 아랫입술을 따라 진하게 바른 다음 ‘엄-마’를 외치며 입술을 모아 윗입술에 자연스레 라인을 찍어준다는 팁은 언제 봐도 쉽고 신기하다. 입술 안쪽에 묻은 립스틱이 앞니에 묻는 참사를 미연에 방지하려면 손가락을 한번 쪽 빨아주며 입술 안쪽에 묻은 립스틱을 손가락에 다 묻혀 닦아내면 좋다는 팁쯤 가면 무릎을 치게 된다. 화장을 잘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사람은 많아도, 이런 실수를 하면 화장이 망하니까 조심하라는 것까지 짚어 알려줄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건 오랜 기간 화장품과 씨름하며 실수를 해보고 자신의 힘으로 극복해본 사람만이 알려줄 수 있는 팁이니까.

김기수가 메이크업 동영상을 올리기 시작한 건 아이러니하게도 “남자가 무슨 화장을”이라는 세간의 시선 때문이었다. 디제이로 활동하고 있는 그가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무대 영상을 올렸을 때, 무대 자체에 대한 평만큼이나 그의 무대용 메이크업에 대한 악플이 주렁주렁 달렸던 것이다. 그러지 않아도 2010년 동성 강제추행 누명을 쓰고 송사를 겪은 이후, 그에 대한 세간의 인상은 늘 어딘가 “남자가 여자같이 군다”는 수준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던 때다. 공들인 메이크업, 춤을 출 때면 도드라지는 고운 선과 절제된 손동작, 빠르고 앙칼진 특유의 말투를 이유로 그의 성 정체성이나 성적 지향을 함부로 넘겨짚고 예단하는 이들이 여전히 많은 상황. 별일 없이 살고 있는 자신의 이름 뒤에 연관 검색어로 “성전환수술”(성확정수술의 옛 표현)이나 “트랜스젠더”가 따라붙는 건 적잖은 스트레스였을 것이다.

화장이고 뭐고 다 그만둬 버릴까? 가지고 있던 화장품들을 버려가며 깊은 상심을 하고 있던 그에게 지인이 해준 조언은 중요한 터닝 포인트가 됐다. 차라리 나 화장 잘한다고 자랑을 해봐. 네가 뭘 잘하는지 보여주라고. 그렇게 역으로 화장 실력을 뽐내기로 한 게 불과 4개월 전의 일이다. 그 4개월 동안, 김기수는 올리는 동영상마다 적게는 수만뷰에서 많게는 20만뷰 이상을 기록하는 뷰티 유튜버가 되었고, 그를 영입한 에스비에스 ‘방언니’의 '예살그살'은 10회 만에 누적뷰 수 100만뷰를 돌파했다. 급기야 세계적인 화장품 브랜드 맥(MAC)은 그를 아시아권 소셜네트워크 홍보용 동영상 모델로 선정해 함께 프로모션 비디오를 제작하기도 했다. 이유없이 비난하는 손가락을 피해 도망가는 대신, 그 손가락들을 향해 당당히 “그래, 나 화장하는 남자다. 그것도 아주 잘하는 남자다”라고 선언하는 방향을 택한 결과다.

김기수가 남자도 화장을 즐길 수 있고 선이 고운 춤을 출 수 있다는 걸 과시할수록 “여자는 이래야 한다, 남자는 이래야 한다”는 우리 사회의 젠더 고정관념 또한 자연스레 그 힘을 잃는다. 물론 김기수가 자신이 게이라는 소문에 대해 명확하게 선을 긋는 사실을 아쉬워하는 이들도 없진 않을 것이다. 성 정체성에 대한 소문에 선을 그어 부정하는 건, 마치 게이인 것이 부끄러운 오명이고 빨리 부정해야 하는 일처럼 보이게 만드는 부가효과가 있으니까. 그러나 그가 그런 발언을 했던 상황과 발언의 결을 다시 살펴볼 필요도 있다. 김기수는 당시 동성 강제추행의 혐의를 받고 있던 상황이었는데, 누명을 벗기 바쁜 상황 속에서도 그는 자신의 성적 지향에 대해 “보통의 보수적인 성적 가치관을 지니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성애자의 성 정체성을 ‘정상’이나 ‘건강’이란 단어로 수식함으로써 마치 성소수자들이 ‘비정상’이거나 ‘건강하지 못한’ 존재인 것처럼 몰아가는 실수를 저지르는 대신, 수적 보편을 점하고 있는 보수적인 성 정체성이라고 수식한 것이다.

그렇게 아쉬움을 정리하고 다시 보면, 자신이 스트레이트임을 명시한 성인 남자가 자신의 진한 색조화장 애호를 과시하는 건 오히려 고정관념을 더 세게 흔든다. 곱고 예쁘고 섬세한 것에 대한 사랑은 ‘여성스러운 것’이라고 단정짓고, 시스젠더(타고 태어난 생물학적 성과 성 정체성이 일치하는 사람) 남성이 곱고 예쁘고 섬세하게 굴면 “쟨 아마 게이라서 그럴 것”이란 식으로 성소수자에 대한 고정관념을 강화해온 한국 사회의 젠더 고정관념은 김기수 앞에서 여지없이 무너진다. 여자도 아니고 게이도 아니라는데 저렇게 진한 화장을 하고 심지어는 그게 멋진 존재. 기존의 젠더 구분법 안에 사람의 성향을 폭력적으로 정의 내릴 핑곗거리가 사라지는 것이다. 누가 뭐라고 하든 김기수는 “화장은 나 기분 좋으라고 하는 거지, 보는 사람 좋으라고 하는 게 아니다. 무조건 이기적으로 화장하라”고 외치는 걸 멈추지 않을 거고, 그럴수록 우리는 남들의 기대치와 시선에 맞춰 사는 대신 나 자신을 포용하고 사랑하는 법을 익히게 될 것이다. 김기수의 유행어를 빌려 마무리하자면, “이츠 김기수 타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