틸러슨의 '아무말 대잔치'는 계속된다. 그러나 한반도의 앞날을 생각하면 비웃을 수만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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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 Secretary of State Rex Tillerson speaks with a delegate during the afternoon ministerial plenary for the Global Coalition working to Defeat ISIS at the State Department in Washington, U.S., March 22, 2017. REUTERS/Joshua Roberts | Joshua Roberts / Reu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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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기 첫 해외 순방으로 한·중·일 3국을 방문하면서 이미 숱한 화제를 뿌렸던 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이 잇따른 설화와 외교 전문가들을 당혹케 하는 행동으로 임기를 시작한 지 두 달도 되지 않아 광범위한 비판에 직면했다.

이는 단지 틸러슨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국무부가 예산 감축 등으로 유명무실해지는 추세가 뚜렷이 보이면서 미국의 외교정책이 보다 권위주의적으로 집행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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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로해서 한국 측과의 만찬을 거부했다'는 코리아헤럴드의 보도로 시작된 '만찬 논란'은 어떻게 보면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워싱턴포스트에서 팩트체크 칼럼을 쓰는 글렌 케슬러는 코리아헤럴드의 보도를 자신의 트위터에 소개했는데 그 이유에 대해 NPR에 이렇게 말했다:

"내가 코리아헤럴드의 기사를 트윗한 것은 외교 관계자들이 국무장관이 자신과 함께 순방하는 기자들이 없으면 상황을 호도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기 위해서였다. (중략) 콘돌리자 라이스가 2005년 3월 한중일 3국을 방문했을 때는 최소 12명의 언론사 직원들을 대동했으며 사흘동안 16개 언론사의 취재와 인터뷰에 응했다." (NPR 3월 20일)

틸러슨은 역대 미국 국무장관의 전통을 저버리고 이번 순방길에 단 한 명의 기자만 대동했다. 인디펜던트 저널 리뷰(IJR)라고 하는, 미국 바깥에서는 아는 사람이 거의 없는 매체의 기자였다. '보수의 버즈피드'라는 평을 듣는 곳이니 그 성격이 어떤지는 쉽게 짐작할 수 있으리라.

틸러슨이 언론을 기피한다는 것은 쉽게 알 수 있다. 첫 해외순방 중에 IJR과 가진 인터뷰에서 그는 향후에는 더 많은 기자들을 대동할 것이냐는 질문에 "나의 필요에 따라" 결정할 것이라고 답했다. "내가 하는 말들이 많이 언론에 보도되고 언론에 더 자주 노출되는 걸 좋아하지도 않고 원하지도 않는다."

이런 태도는 물론 많은 비판을 받았다. 워싱턴포스트는 "언론 접근권은 공중(the public)이 필요로 하는 것이지 국무장관이 필요로 하는 게 아니다"라며 틸러슨의 언론에 대한 인식이 구시대적이라고 비판했다. '자신이 아직도 엑손모빌의 CEO인줄 안다'는 비난도 쇄도했다.

글쎄, 틸러슨이 맡은 일에 능하다면 그렇게 기피하는 언론 보도는 덜했을지도 모르겠지만 현실은 달랐다. 순방이 끝나고 나서도 그의 이름은 연일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있다. 21일에는 그가 4월초 열리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외교장관 회의에 불참할 계획이라는 로이터의 단독보도가 나와 모든 외교 전문가들을 경악하게 만들었다.

NATO는 대표적인 군사동맹 기구이자 서구 안보질서의 중요한 축이다. 미국 국무장관이 NATO 장관회의에 불참하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다. 포린폴리시는 매년 여러 차례 열리는 NATO 회의에 국무장관이 불참한 마지막 사례는 2003년이었다고 알려준다. 콜린 파월 당시 국무장관은 미국이 이라크 전쟁읠 개시하면서 막판에 회의에 불참했다.

그럼 틸러슨이 NATO 회의에 불참하겠다는 이유는 뭘까? 시진핑과 도널드 트럼프의 정상회담에 참석하기 위해서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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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트럼프가 (틸러슨과 함께) 만날 시진핑은 틸러슨이 지난주 만난 시진핑과 동일인물이다.

게다가 그가 4월에 러시아를 방문할 계획이라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외교 전문가들은 일제히 트럼프 행정부의 외교정책이 향하는 방향에 (보다 깊은) 우려를 표하기 시작했다. "이는 유럽에 끔찍한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다. 틸러슨이 NATO보다 러시아와 먼저 대화할 준비가 돼 있다는 신호가 된다." 미 국방부의 전직 관계자는 포린폴리시에 이렇게 말했다.

IJR은 22일 틸러슨과의 심층 인터뷰 기사를 추가로 발행했는데 이번에는 그가 국무장관직을 맡게 된 계기에 대한 발언이 구설수에 올랐다. 자신은 국무장관이 되고 싶지 않았는데 자신의 아내가 해보라고 해서 했단다:

"난 이 직업을 원하지 않았다. 이 직업을 얻으려고 물색하지도 않았다." 그는 여운을 남기기 위해 말을 멈추었다.

한두 호흡이 지나자 한 보좌진이 왜 국무장관직을 수락했느냐고 물었다.

"내 아내가 나보고 (국무장관직을) 수락해야 한다고 말했다." (IJR 3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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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일단 부인에게 따뜻한 남자라는 점에서 가산점 드립니다.

3월초 틸러슨의 언론 기피증을 지적하면서 언론과 더 많은 대화를 할 것을 주문하는 글을 워싱턴포스트에 썼던 다니엘 드레즈너 터프츠대학 교수는 이 인터뷰에 적잖이 경악한 듯하다. 22일에 같은 신문에 기고한 글에서 드레즈너는 "틸러슨은 자신이 뭔 소리를 하는지 알고 있다는 걸 입증할 수 있을 때까지 입을 닥쳐야 한다"고 강도 높게 비난했다.

"(문제의 인터뷰 단락에서) 무서운 부분은 틸러슨의 부인이 그를 설득해서 국무장관이 됐다는 게 아니다. 국무장관이 돼달라는 요청을 받기 전까지 트럼프를 만난 적이 전혀 없다는 게 무서운 부분이다." 드레즈너의 지적은 트럼프 행정부가 국무부 예산을 대폭 삭감했다는 사실과 맞물리면서 이제 미국의 외교에서 국무부가 차지하는 위상이 급격히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를 준다.

이러한 현상은 미국의 외교정책이 보다 권위주의적으로 수립될 가능성을 높인다. 포린폴리시의 기자인 아이작 스톤 피시의 지적이다:

국무부가 취약해지는 것은 트럼프와 그 측근들의 영향력을 증대시킨다. 그리고 이들이 외교정책적 결정을 내릴 때 보다 쉽게 유권자와 관료제를 피할 수 있게 한다.

이것이 바로 권위주의적 국가들이 (거의 아무런 예외 없이) 약한 외교부를 갖고 있는 까닭이다. 러시아는 크렘린에서 외교정책을 시행하고 외교부의 결정은 종종 무시되곤 한다. 혹은 25명으로 이루어진 당 중앙정치국과 특히 그중에서도 7명으로 이루어진 중앙정치국 상무위원회가 지배하는 중국을 생각해보라.

중국의 최고위 외교정책 담당관인 양제츠 국무위원조차도 중앙정치국원이 될 수 있을 정도로 중요하다고 여겨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양제츠의 직위는 중국의 외교부장인 왕이보다 훨씬 높다. (가디언 3월 21일)

하지만 틸러슨은 멈추지 않는다. 22일(현지시간) 68개국의 대표를 워싱턴에 초청하여 가진 '반(反)IS 국제연대회의'에서 틸러슨은 '난민 안전지대'를 설치하겠다는 발언으로 우방국과 인도주의 기구들의 비난을 받았다.

이는 난민이 서구로 흘러들어 오는 것을 막기 위해 IS로부터 탈환한 이라크·시리아 지역에 '안전지대'를 만들어 난민들을 다시 돌려보내겠다는 계획으로 트럼프 대통령이 오래 전부터 지지해온 개념이기도 하다.

트럼프 행정부는 곧 대북 정책도 입안할 것이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트럼프 행정부의 향후 움직임에 그나마 예측가능성을 담보했던 것이 국무부를 비롯한 관료제의 존재였다는 걸 생각해보면 트럼프의 대북 정책과 그에 따른 한반도 정세는 한 걸음씩 더 예측불허로 빠져들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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